| 양쪽 이전 판이전 판다음 판 | 이전 판 |
| 0-003 [2026/07/12 08:51] – ssio2 | 0-003 [2026/07/13 11:07] (현재) – ssio2 |
|---|
| 後相望爾時未經無一家相傳之譜而中年屢經亂離舊家 | 後相望爾時未經無一家相傳之譜而中年屢經亂離舊家 |
| 靑氊蕩失於兵燹流𥦻之中其序譜之亡失而無傳無足怪 | 靑氊蕩失於兵燹流𥦻之中其序譜之亡失而無傳無足怪 |
| 也吾宗人之所痛恨其有亡乎吾再從兄黃煬晦叔甫慨然 | 也吾宗人之所痛恨其有亡乎吾再從兄黃燖晦叔甫慨然 |
| 於斯志欲修緝族系以幸其終不至於珉珉也乃轉借他譜 | 於斯志欲修緝族系以幸其終不至於氓氓也乃轉借他譜 |
| 之連派者而傳寫之尋問古老之流傳者而附錄之至於往 | 之連派者而傳寫之尋問古老之流傳者而附錄之至於往 |
| 尋籍卿遍訪姓族聞其所未聞見其所未見於是自源而究 | 尋籍卿遍訪姓族聞其所未聞見其所未見於是自源而究 |
| 其爲一語以序之余辭不獲謹頷之退則鄭重而不敢下筆 | 其爲一語以序之余辭不獲謹頷之退則鄭重而不敢下筆 |
| 已十有餘朔矣兄之懇至再至三而不已則亦不敢終以不 | 已十有餘朔矣兄之懇至再至三而不已則亦不敢終以不 |
| 文辭於是乎謹序其成譜之顛末書之卷尾以歸之遂膽寫 | 文辭於是乎謹序其成譜之顛末書之卷尾以歸之遂謄寫 |
| 一本莊于家且念先世累代墳塋未能皆有表誌深恐久遠 | 一本莊于家且念先世累代墳塋未能皆有表誌深恐久遠 |
| |
| \_우리 황씨는 평해에서 나와 예로부터 나라의 저명한 성씨였으나, 유독 족보와 서문만은 빠져 있었다. 자손 된 자들이 겨우 종계(宗系)의 세차(世次)만 잃지 않았을 뿐, 방계와 먼 갈래에 이르러서는 상고하여 알 길이 없었다.\\ | \_우리 황씨는 평해에서 나와 예로부터 나라의 저명한 성씨였으나, 유독 족보와 서문만은 빠져 있었다. 자손 된 자들이 겨우 종계(宗系)의 세차(世次)만 잃지 않았을 뿐, 방계와 먼 갈래에 이르러서는 상고하여 알 길이 없었다.\\ |
| |
| \_우리 시조 검교공(檢校公) 인온(仁溫) 이후로 연이어 5대가 모두 관직에 있어 지위와 명망이 세상에 드러났고, 또 그 아래 4대도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현달한 벼슬에 올라 명공(明公)과 거경(鉅卿)이 앞뒤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때까지 한 집안에 전해 오는 족보가 마련되지 못했고, 중년에 여러 차례 난리를 겪으면서 옛집의 청전(靑氈, 대대로 전해 오던 가보)이 병화 속에 흩어져 사라졌다. 유리(流離)하는 가운데 그 서문과 족보가 없어져 전하지 못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으나, 우리 종인(宗人)들이 통한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 \_우리 시조 검교공(檢校公) 인온(仁溫)((금오공 온인(溫仁)을 선조로 확립한 것은 경인보(1770년) 부터임)) 이후로 연이어 5대가 모두 관직에 있어 지위와 명망이 세상에 뛰어났고, 또 그 아래 4대도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현달한 벼슬에 올라 명공(明公)과 거경(鉅卿)이 앞뒤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때까지 한 집안에 전해 오는 족보가 마련되지 못했고, 그 와중에 여러 차례 난리를 겪으면서 옛집의 청전(靑氈, 대대로 전해 오던 가보)이 병화 속에 흩어져 사라졌다. 유리(流離)하는 가운데 그 서문과 족보가 없어져 전하지 못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으나, 우리 종인(宗人)들이 통한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
| |
| \_나의 재종형(再從兄) 황양(黃煬) 회숙보(晦叔甫)께서 이를 개연히 여기시어, 족계(族系)를 수집(修緝)하여 마침내 민민(泯泯)히 사라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을 두셨다. 이에 다른 문중의 족보 가운데 우리와 연결되는 갈래를 빌려 옮겨 적고, 옛 노인들에게 전해 오는 이야기를 물어 부록으로 실었다. 나아가 여러 문적을 찾아다니고 성족(姓族)을 두루 방문하여, 듣지 못했던 것을 듣고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다. 이에 근원으로부터 그 갈래를 궁구하고 뿌리로부터 가지에 이르기까지, 대(代)의 계통을 나누어 정리하여 한 권으로 합쳤다.\\ | \_나의 재종형(再從兄) 황심(黃燖) 회숙(晦叔)((17世, 父 선갑(善甲)의 2子, 字晦叔 丙午生 墓直長公墓右 艮坐 配順興安氏 墓雙封 父 璐)) 어른께서 이를 개연히 여기시어, 족계(族系)를 수집(修緝)하여 마침내 완전히 없어져서(泯泯) 사라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을 두셨다. 이에 다른 문중의 족보 가운데 우리와 연결되는 갈래를 빌려 옮겨 적고, 옛 노인들에게 전해 오는 이야기를 물어 부록으로 실었다. 나아가 여러 문적을 찾아다니고 성족(姓族)을 두루 방문하여, 듣지 못했던 것을 듣고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다. 이에 근원으로부터 그 갈래를 궁구하고 뿌리로부터 가지에 이르기까지, 대(代)의 계통을 나누어 정리하여 한 권으로 합쳤다.\\ |
| |
| \_우리 9대조 판서공(判書公) 유정(有定) 이상은 세대가 아득하고 문헌으로 증빙할 것이 없으므로, 다만 그 세차와 직명만을 기록하였다. 국사(國乘)에 실린 사적과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문장은 듣고 본 대로 차록(剳錄)하여 별록(別錄)으로 만들어 권두에 실었다. 8대조 전(詮) 이하로는 그 내외 근파(根派)를 특히 상세히 기록하였다. 권질(卷帙)은 비록 많지 않으나, 가까운 예닐곱 고을의 이름난 성족들이 대개 우리 조상의 후예 아님이 없고, 다른 도의 먼 고을에 흩어져 사는 이도 많으니, 아! 우리 조상께서 덕을 쌓고 경사를 기르신 여경(餘慶)이 무궁함에 미친 것을 또한 이에서 상상해 볼 수 있다.\\ | \_우리 9대조 판서공(判書公) 유정(有定) 이상은 세대가 아득하고 문헌으로 증빙할 것이 없으므로, 다만 그 세차와 직명만을 기록하였다. 국사(國乘=國史)에 실린 사적과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문장은 듣고 본 대로 차록(剳錄)하여 별록(別錄)으로 만들어 권두에 실었다. 8대조 전(詮) 이하로는 그 내외 근파(根派)를 특히 상세히 기록하였다. 권질(卷帙)은 비록 많지 않으나, 가까운 예닐곱 고을의 이름난 성족들이 대개 우리 조상의 후예 아님이 없고, 다른 도(道)의 먼 고을에 흩어져 사는 이도 많으니, 아! 우리 조상께서 덕을 쌓고 경사를 기르신 여경(餘慶)이 무궁함에 미친 것을 또한 이에서 상상해 볼 수 있다.\\ |
| |
| \_지난해 가을 회숙형께서 이 한 부를 소매에 넣고 오셔서 나에게 보이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족보에 마음을 둔 지 오래지 않은 것이 아니요, 힘을 쏟은 것이 부지런하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견문이 넓지 못하여 수집하여 기록한 바가 매우 적으니 참으로 한스럽다. 그러나 만일 우리 종인들과 우리 자손 된 자들로 하여금 이 일을 폐하지 않고 이어서 닦게 한다면, 혹 이로 말미암아 완전한 족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어찌 나와 그대가 함께 힘쓸 바가 아니겠는가. 그대는 한마디 말을 지어 서문을 써 주게" 하셨다.\\ | \_지난해 가을 회숙(晦叔)형께서 이 한 부를 소매에 넣고 오셔서 나에게 보이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족보에 마음을 둔 지 오래지 않은 것이 아니요, 힘을 쏟은 것이 부지런하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견문이 넓지 못하여 수집하여 기록한 바가 매우 적으니 참으로 한스럽다. 그러나 만일 우리 종인들과 우리 자손 된 자들로 하여금 이 일을 폐하지 않고 이어서 닦게 한다면, 혹 이로 말미암아 완전한 족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어찌 나와 그대가 함께 힘쓸 바가 아니겠는가. 그대는 한마디 말을 지어 서문을 써 주게" 하셨다.\\ |
| |
| \_내가 사양하지 못하고 삼가 응낙하였으나, 물러나서는 정중히 여겨 감히 붓을 대지 못한 지 이미 열 달 남짓이 되었다. 형의 간청이 두 번 세 번에 이르러 그치지 않으시니, 나 또한 끝내 문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양하지 못하였다. 이에 삼가 이 족보가 이루어진 전말을 서술하여 권말에 적어 돌려드리고, 마침내 한 본을 등사하여 집에 소중히 보관하였다.\\ | \_내가 사양하지 못하고 삼가 응낙하였으나, 물러나서는 정중히 여겨 감히 붓을 대지 못한 지 이미 열 달 남짓이 되었다. 형의 간청이 두 번 세 번에 이르러 그치지 않으시니, 나 또한 끝내 문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양하지 못하였다. 이에 삼가 이 족보가 이루어진 전말을 서술하여 권말에 적어 돌려드리고, 마침내 한 본을 등사하여 집에 소중히 보관하였다.\\ |
| |
| \_또 생각건대 선대 여러 대의 분영(墳塋, 묘소)에 아직 모두 표지(表誌)를 세우지 못하여,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자손들이 어느 조상 어느 묘인지 알지 못할까 깊이 염려되었다. 그러므로 삼가 그 묘산(墓山)의 명칭과 소재지 및 좌향(坐向)과 차례를 열거하여 뒤에 기록해서, 우리 자손들이 참고하여 열람하는 데에 대비하고자 한다.\\ | \_또 생각건대 선대 여러 대의 분영(墳塋, 묘소)에 아직 모두 표지(表誌)를 세우지 못하여,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자손들이 어느 조상 어느 묘인지 알지 못할까 깊이 염려되었다. 그러므로 삼가 그 묘산(墓山)의 명칭과 소재지 및 좌향(坐向)과 묘의 순서를 열거하여 뒤에 기록해서, 우리 자손들이 참고하여 열람하는 데에 대비하고자 한다.\\ |
| |
| \_\_병신년(1611sus) 윤5월 기망(旣望, 16일) 족말(族末) 성균전적(成均典籍) 황중연 삼가 씀.\\ | \_\_병신년(1611sus) 윤5월 기망(旣望, 16일) 족말(族末) 성균전적(成均典籍) 황중연 삼가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