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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05 [2025/05/22 13:27] ssio2a-105 [2025/05/27 16:20]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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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祖也曾祖諱原老號七林亭登第宰寧海府祖諱瑾文科直提學考諱有定號米囷入 世祖也曾祖諱原老號七林亭登第宰寧海府祖諱瑾文科直提學考諱有定號米囷入
 我朝工曹判書自少至老愛誦論語一部鄕人稱之以米囷先生出仕中外晩以謝病南 我朝工曹判書自少至老愛誦論語一部鄕人稱之以米囷先生出仕中外晩以謝病南
-歸掃灑軒楣於龜城之下城底里第即三判書古宅是也妣\_貞夫人奉化鄭氏書云+歸掃灑軒楣於龜城之下城底里第即三判書古宅是也妣\_貞夫人奉化鄭氏書云
 敬女生三子長銓即公次鉉成均館大司成次鋋生員訓導三棣聯芳詳見榮州誌公生 敬女生三子長銓即公次鉉成均館大司成次鋋生員訓導三棣聯芳詳見榮州誌公生
 于元至正癸卯卒于我\_太廟辛卯而文獻無徵固無可據之籍但書之於舊譜小<fc #ff0000>紸</fc> 于元至正癸卯卒于我\_太廟辛卯而文獻無徵固無可據之籍但書之於舊譜小<fc #ff0000>紸</fc>
줄 42: 줄 42:
 근(瑾)인데 문과에 올라 직제학(直提學)이 되었고, 아버지의 휘는 유정(有定)이니 호가 미균(米囷)인데 조선조에 들어와 공조판서가 되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논어 일부를 근(瑾)인데 문과에 올라 직제학(直提學)이 되었고, 아버지의 휘는 유정(有定)이니 호가 미균(米囷)인데 조선조에 들어와 공조판서가 되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논어 일부를
 애송(愛誦)하니 향인(鄕人)들이 미균(米囷: 쌀창고 [註] 古書에 문장을 잘하는 이를 곡식이 풍성하다고 한데서 비유하는 것으로 생각됨)선생이라고 불렀다.\\ 애송(愛誦)하니 향인(鄕人)들이 미균(米囷: 쌀창고 [註] 古書에 문장을 잘하는 이를 곡식이 풍성하다고 한데서 비유하는 것으로 생각됨)선생이라고 불렀다.\\
-\_벼슬은 내직과 외직을 거치고 늙어서 병(病)을 이유로 낙향(落鄕)하여 구성(龜城) 아래 +\_벼슬은 내직과 외직을 거치고 늙어서 병(病)을 이유로 낙향(落鄕)하여 구성(龜城) 아래 
-동리의 자택(本家)에서 소쇄헌(掃灑軒)이란 현판을 걸었는데 이것이 곧 삼판서고택(三判書古宅)이다.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봉화정씨(奉化鄭氏)인데 상서(書)를 지낸 운경(云敬)의+동리의 자택(本家)에서 소쇄헌(掃灑軒)이란 현판을 걸었는데 이것이 곧 삼판서고택(三判書古宅)이다.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봉화정씨(奉化鄭氏)인데 상서(書)를 지낸 운경(云敬)의
 딸이니 세 아들을 낳았다.\\ 딸이니 세 아들을 낳았다.\\
 \_그 맏은 전(銓)이니 바로 공(公)이고, 둘째는 현(鉉)이니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 \_그 맏은 전(銓)이니 바로 공(公)이고, 둘째는 현(鉉)이니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
줄 68: 줄 68:
 있을 터인데, 세월이 너무 지나 그 상세함을 얻지 못하고, 또 후손들이 침체되어 일찍이 있을 터인데, 세월이 너무 지나 그 상세함을 얻지 못하고, 또 후손들이 침체되어 일찍이
 그 묘소에 표석(表石)도 세우지 못했으니 그 둘째와 셋째 아들 후손 중 병삼(秉三), 그 묘소에 표석(表石)도 세우지 못했으니 그 둘째와 셋째 아들 후손 중 병삼(秉三),
-한주(漢柱),해진(海鎭) 등이 계획 의론 합의하여 비석(碑碣)을 세우기로 하였으니 좌(左)와 같이+한주(漢柱), 해진(海鎭) 등이 계획 의논 합의하여 비석(碑碣)을 세우기로 하였으니 좌(左)와 같이
 이에 명(銘)하노라.\\ 이에 명(銘)하노라.\\
 이 명(銘)에 이르기를\\ 이 명(銘)에 이르기를\\
a-105.1747888046.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2 13:27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