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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10 [2025/05/22 13:32] ssio2a-110 [2025/05/30 19:09]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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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조선승사랑의릉참봉황공묘지명(有明朝鮮承仕郞義陵奉黃公墓誌銘)===+===유명조선승사랑의릉참봉황공묘지명(有明朝鮮承仕郞義陵奉黃公墓誌銘)===
 <WRAP 35em justify><hidden \_한문 원문 보기> <WRAP 35em justify><hidden \_한문 원문 보기>
 <typo ff:'한양해서'> <typo ff:'한양해서'>
-\_有明朝鮮承仕郞義陵奉黃公墓誌銘 幷序\\ +\_有明朝鮮承仕郞義陵奉黃公墓誌銘 <fs:0.8em>幷序</fs>\\ 
-公諱字德器貫平海侍中諱裕中仕顯高麗六代祖諱原老知寧州牧玄祖諱瑾恭愍+公諱字德器貫平海侍中諱裕中仕顯高麗六代祖諱原老知寧州牧玄祖諱瑾恭愍
 朝寶文閣提學抗疏忤貶史贊其忠鯁高祖諱有定\_本朝漢城判尹工曹判書嘗讀論 朝寶文閣提學抗疏忤貶史贊其忠鯁高祖諱有定\_本朝漢城判尹工曹判書嘗讀論
 語曰一部吾師母弟鄭三峯亟稱許之曾祖諱鋋抱屈上庠銓鉉二兄陞夫相明經術見 語曰一部吾師母弟鄭三峯亟稱許之曾祖諱鋋抱屈上庠銓鉉二兄陞夫相明經術見
 重師儒士之稱家風者歸焉具輿地志王父諱末孫敎授司醞主簿三十卒皇考\_順陵 重師儒士之稱家風者歸焉具輿地志王父諱末孫敎授司醞主簿三十卒皇考\_順陵
-奉諱孝風懷蕭散蓄書畫養花草以自娛妣永定秦氏司憲府掌令浩之孫太造殿 +奉諱孝風懷蕭散蓄書畫養花草以自娛妣永定秦氏司憲府掌令浩之孫太造殿 
-丞承祖女德著柔嘉克執儀以壬子四月乙卯生公公生而穎秀通涉經史人謂復振 +丞承祖女德著柔嘉克執儀以壬子四月乙卯生公公生而<fc #ff0000></fc>秀通涉經史人謂復振 
-家聲弱冠患風不事業性本恬簡不妄言笑正直出天誠孝盡已友兄弟善隣族信朋+家聲弱冠患風不事業性本恬簡不妄言笑正直出天誠孝盡已友兄弟善隣族信朋
 友交恩僕隸各得其歡常於便避日月之明取與審義利之辨甘旨先老病契活足苟完 友交恩僕隸各得其歡常於便避日月之明取與審義利之辨甘旨先老病契活足苟完
-聞善若已見惡如浼平生無過累乎身者二歲失慈乳四十違嚴終天永慕至誠享 +聞善若已見惡如浼平生無過累乎身者二歲失慈乳四十違嚴終天永慕至誠享 
-薦移孝母一如出嘗戒子弟曰敬爾持己爾居官廉孝世其德文學趾其美無毀先+薦移孝母一如<fc #ff0000>巳</fc>出嘗戒子弟曰敬爾持己爾居官廉孝世其德文學趾其美無毀先
 人貽厥晩年軒竹池蓮以寓雅懷不求人知自樂有裕爲\_義陵齋郞亦不屑就善治身 人貽厥晩年軒竹池蓮以寓雅懷不求人知自樂有裕爲\_義陵齋郞亦不屑就善治身
 解醫藥調護餘術濟人亦多去秋因舊證兼病店禱藥未效今二月初吉遷外寢沒享年 解醫藥調護餘術濟人亦多去秋因舊證兼病店禱藥未效今二月初吉遷外寢沒享年
-五十七聞訂之日鄕鄰慟惜爭致祭賻巷老山亦多奔吊曰不復霑急人之惠矣遺令+五十七聞訂之日鄕鄰慟惜爭致祭賻巷老山亦多奔吊曰不復霑急人之惠矣遺令
 勿床果侈觀美母齋僧邀冥佑喪儀祭式一遵家禮以十一月壬申厝于郡東六里許山 勿床果侈觀美母齋僧邀冥佑喪儀祭式一遵家禮以十一月壬申厝于郡東六里許山
-谷坎坐之原其流爲兌夫人檢山黃氏敎授諱漢弼女敎授公誨不倦人多有成公+谷坎坐之原其流爲兌夫人檢山黃氏敎授諱漢弼女敎授公誨不倦人多有成公
 亦受業學始知方常事以父師生二男二女女長適忠順衛金砥石泣血閱月而逝有子 亦受業學始知方常事以父師生二男二女女長適忠順衛金砥石泣血閱月而逝有子
  
-女幼男長俊良丁酉司馬登庚子科官工曹佐郞娶奉李文樑女乃聾巖李相國賢輔+女幼男長俊良丁酉司馬登庚子科官工曹佐郞娶奉李文樑女乃聾巖李相國賢輔
 之孫次秀良方業儒娶忠義衛鄭師周女東平君種之孫有男幼次二女皆年弱未字銘 之孫次秀良方業儒娶忠義衛鄭師周女東平君種之孫有男幼次二女皆年弱未字銘
-曰生稱善人卒表處士之墓種德旣深竟未於食祿吾誰尤乎彼茫茫之蒼昊\\+曰生稱善人卒表處士之墓種德旣深竟未於食祿吾誰尤乎彼茫茫之蒼昊\\
 \_\_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武陵周世鵬撰\\ \_\_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武陵周世鵬撰\\
 \_\_通訓大夫行奉化縣監密陽朴苾書\\ \_\_通訓大夫行奉化縣監密陽朴苾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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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dden> </hidden>
 \\ \\
-\_명나라 때 조선 승사랑 의릉의 참봉 황공 묘지명 병서\\ +<typo fs:0.8em> 
-\_공(公)의 휘(諱)는 치()요 자는 덕기(德器)요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_명나라 때 조선 승사랑 의릉 참봉 황공 묘지명 병서\\ 
-시중(侍中) 벼슬을 한 휘(諱) 유중(裕中)은 고려조에 출사(出仕)하여 현달했고, 6(六)대조 휘(諱)는 원로(原老)이니 영주(寧州)의 목사(牧使)요 현조(玄祖)의 휘는 근(瑾)이니 공민왕 때보문각(寶文閣) 제학(提學)인데 상소를 올렸다가 임금의 뜻에 거스른 바 되어 좌천되었다. 사가(史家)들이 그를 충직하고 굳센 인물이라고 찬양하였다. \\ +\_공(公)의 휘(諱)는 치()요 자는 덕기(德器)요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_고조 휘(諱)는 유정(有定)이니 조선조 때 한성윤(漢城判尹)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시중(侍中) 벼슬을 한 휘(諱) 유중(裕中)은 고려조에 출사(出仕)하여 현달했고, 6(六)대조 휘(諱)는 원로(原老)이니 영주(寧州)의 목사(牧使)요 현조(玄祖)의 휘는 근(瑾)이니 공민왕 때 보문각(寶文閣) 제학(提學)인데 상소를 올렸다가 임금의 뜻에 거스른 바 되어 좌천되었다. 사가(史家)들이 그를 충직하고 굳센 인물이라고 찬양하였다. \\ 
 +\_고조 휘(諱)는 유정(有定)이니 조선조 때 한성윤(漢城判尹)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지냈는데 일찍이 논어(論語)를 읽고 말하기를 논어는 온통 나의 선생(一部吾師)이라고 하였다.\\ 지냈는데 일찍이 논어(論語)를 읽고 말하기를 논어는 온통 나의 선생(一部吾師)이라고 하였다.\\
 \_정삼봉(鄭三峰)((정도전(鄭道傳): 고려 말기ㆍ조선 전기의 문인ㆍ학자(1342~1398).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峯). 이색의 문인으로, 조선 개국 일등 공신이 되었으며 성리학을 지도 이념으로 내세워 불교를 배척하였다. 전략, 외교, 법제, 행정에 밝았으며 시와 문장에 뛰어나 ≪고려사≫ 37권을 개수하고, <납씨가>, <신도가> 따위의 악장을 지었다. 저서에 ≪조선경국전≫, ≪경제문감≫과 문집 ≪삼봉집≫ 따위가 있다.))이 자주 그를 칭찬하고 인정하였다.\\ \_정삼봉(鄭三峰)((정도전(鄭道傳): 고려 말기ㆍ조선 전기의 문인ㆍ학자(1342~1398).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峯). 이색의 문인으로, 조선 개국 일등 공신이 되었으며 성리학을 지도 이념으로 내세워 불교를 배척하였다. 전략, 외교, 법제, 행정에 밝았으며 시와 문장에 뛰어나 ≪고려사≫ 37권을 개수하고, <납씨가>, <신도가> 따위의 악장을 지었다. 저서에 ≪조선경국전≫, ≪경제문감≫과 문집 ≪삼봉집≫ 따위가 있다.))이 자주 그를 칭찬하고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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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하여 서로 경술(經術)을 밝혀서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에게 중요시함을 얻었고 선비들 이리하여 서로 경술(經術)을 밝혀서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에게 중요시함을 얻었고 선비들
 중에 가풍의 칭찬을 받았으니 이는 대동여지승람(大東輿地勝覽)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중에 가풍의 칭찬을 받았으니 이는 대동여지승람(大東輿地勝覽)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_할아버지의 휘(諱)는 말손(末孫)이니 교수(敎授)와 사온주부(司醞主簿)로 30(三十)세에 작고하고 아버지는 순릉(順陵)의 참봉(奉)으로 휘(諱)가 효동(孝仝)이니 풍모와 회포가+\_할아버지의 휘(諱)는 말손(末孫)이니 교수(敎授)와 사온주부(司醞主簿)로 30(三十)세에 작고하고 아버지는 순릉(順陵)의 참봉(奉)으로 휘(諱)가 효동(孝仝)이니 풍모와 회포가
 자연스러워서 구속을 받지 않고 서화 작품을 모으고 화초를 길러 스스로 즐겼다.\\ 자연스러워서 구속을 받지 않고 서화 작품을 모으고 화초를 길러 스스로 즐겼다.\\
 \_어머니는 영정진씨(永定秦氏)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 호(浩)의 손녀이고 태조전승 \_어머니는 영정진씨(永定秦氏)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 호(浩)의 손녀이고 태조전승
줄 45: 줄 46:
 \_공은 나면서부터 영특하였고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두루 읽어 섭렵했으니 남들이 \_공은 나면서부터 영특하였고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두루 읽어 섭렵했으니 남들이
 말하기를 공이 가문의 명성을 다시 떨칠 것이라고 하였다.\\ 말하기를 공이 가문의 명성을 다시 떨칠 것이라고 하였다.\\
-\_그러나 약관의 나이에 중풍의 병을 얻어 과거(科)에 나아가지 않았다. 성질이 본래+\_그러나 약관의 나이에 중풍의 병을 얻어 과거(科)에 나아가지 않았다. 성질이 본래
 차분하고 단정해서 말하고 웃고 하는 것을 함부로 하지 않았고 천부적으로 정직하고 성실과 차분하고 단정해서 말하고 웃고 하는 것을 함부로 하지 않았고 천부적으로 정직하고 성실과
 효가 극진했다. 형제간에 우애하고 이웃과 친속들과 잘 지냈고 친구 간에 신의를 지켰으며 효가 극진했다. 형제간에 우애하고 이웃과 친속들과 잘 지냈고 친구 간에 신의를 지켰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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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름다운 지혜를 주신 것을 훼손시키지 말라고 했다.\\ 그 아름다운 지혜를 주신 것을 훼손시키지 말라고 했다.\\
 \_만년에는 집에 대나무를 심고 못에는 연꽃을 심어서 그 전아한 회포를 표현했다.\\ \_만년에는 집에 대나무를 심고 못에는 연꽃을 심어서 그 전아한 회포를 표현했다.\\
-\_남이 알아주는 것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즐김이 여유가 있었다. 의릉참봉(義陵奉)이+\_남이 알아주는 것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즐김이 여유가 있었다. 의릉참봉(義陵奉)이
 되었는데 역시 기꺼이 취임하지 않았다. 몸 다스리는 것을 잘하고 의약을 잘 이해하여 되었는데 역시 기꺼이 취임하지 않았다. 몸 다스리는 것을 잘하고 의약을 잘 이해하여
 자기의 건강을 조정하고 보호하고 또 나머지로는 남을 구제하는 것이 많았다.\\ 자기의 건강을 조정하고 보호하고 또 나머지로는 남을 구제하는 것이 많았다.\\
줄 70: 줄 71:
 통하여 명복을 구하지 말며 초상을 치르는 의식과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한결같이  통하여 명복을 구하지 말며 초상을 치르는 의식과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한결같이 
 주자가례(家禮)에 따르라고 했다.\\ 주자가례(家禮)에 따르라고 했다.\\
-\_11(十一)월 임신일에 군(郡) 동쪽의 6(六)리쯤 되는 산악의 감좌(坎坐)의 언덕에 임시 장사를 지냈으니 그 흐름은 태방(方)이었다.\\+\_11(十一)월 임신일에 군(郡) 동쪽의 6(六)리쯤 되는 산악의 감좌(坎坐)의 언덕에 임시 장사를 지냈으니 그 흐름은 태방(方)이었다.\\
 \_부인은 회산황씨(檜山黃氏)인 교수(敎授) 한필(漢弼)의 따님이었다. 교수공은 가르치기를 \_부인은 회산황씨(檜山黃氏)인 교수(敎授) 한필(漢弼)의 따님이었다. 교수공은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서 그 제자들 중에는 성공한 사람이 많았다. 공 역시 장인인 그에게 수업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 그 제자들 중에는 성공한 사람이 많았다. 공 역시 장인인 그에게 수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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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_통정대부(通政大夫) 행(行) 봉화현감(奉化懸監) 밀양 박필(密陽朴苾)이 쓰다.\\ \_\_통정대부(通政大夫) 행(行) 봉화현감(奉化懸監) 밀양 박필(密陽朴苾)이 쓰다.\\
 \_\_명나라 때인 가정무신(嘉靖戊申)(1548(一五四八)년 11(十一)월 임신일(壬申日)일 \_\_명나라 때인 가정무신(嘉靖戊申)(1548(一五四八)년 11(十一)월 임신일(壬申日)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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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10.1747888331.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2 13:32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