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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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명조선승사랑의릉참봉황공묘지명(有明朝鮮承仕郞義陵參奉黃公墓誌銘)=== | + | ===유명조선승사랑의릉참봉황공묘지명(有明朝鮮承仕郞義陵叅奉黃公墓誌銘)=== |
<WRAP 35em justify>< | <WRAP 35em justify>< | ||
<typo ff:' | <typo ff:' | ||
- | \_有明朝鮮承仕郞義陵參奉黃公墓誌銘 < | + | \_有明朝鮮承仕郞義陵叅奉黃公墓誌銘 < |
公諱觶字德器貫平海侍中諱裕中仕顯高麗六代祖諱原老知寧州牧玄祖諱瑾恭愍 | 公諱觶字德器貫平海侍中諱裕中仕顯高麗六代祖諱原老知寧州牧玄祖諱瑾恭愍 | ||
朝寶文閣提學抗疏忤貶史贊其忠鯁高祖諱有定\_本朝漢城判尹工曹判書嘗讀論 | 朝寶文閣提學抗疏忤貶史贊其忠鯁高祖諱有定\_本朝漢城判尹工曹判書嘗讀論 | ||
語曰一部吾師母弟鄭三峯亟稱許之曾祖諱鋋抱屈上庠銓鉉二兄陞夫相明經術見 | 語曰一部吾師母弟鄭三峯亟稱許之曾祖諱鋋抱屈上庠銓鉉二兄陞夫相明經術見 | ||
重師儒士之稱家風者歸焉具輿地志王父諱末孫敎授司醞主簿三十卒皇考\_順陵 | 重師儒士之稱家風者歸焉具輿地志王父諱末孫敎授司醞主簿三十卒皇考\_順陵 | ||
- | 參奉諱孝仝風懷蕭散蓄書畫養花草以自娛妣永定秦氏司憲府掌令浩之孫太造殿 | + | 叅奉諱孝仝風懷蕭散蓄書畫養花草以自娛妣永定秦氏司憲府掌令浩之孫太造殿 |
- | 丞承祖女德著柔嘉克執内儀以壬子四月乙卯生公公生而< | + | 丞承祖女德著柔嘉克執內儀以壬子四月乙卯生公公生而< |
家聲弱冠患風不事擧業性本恬簡不妄言笑正直出天誠孝盡已友兄弟善隣族信朋 | 家聲弱冠患風不事擧業性本恬簡不妄言笑正直出天誠孝盡已友兄弟善隣族信朋 | ||
友交恩僕隸各得其歡常於便避日月之明取與審義利之辨甘旨先老病契活足苟完 | 友交恩僕隸各得其歡常於便避日月之明取與審義利之辨甘旨先老病契活足苟完 | ||
- | 聞善若已見惡如浼平生無過擧累乎身者二歲失慈乳四十違嚴顏終天永慕至誠享 | + | 聞善若已見惡如浼平生無過擧累乎身者二歲失慈乳四十違嚴顔終天永慕至誠享 |
- | 薦移孝母一如< | + | 薦移孝母一如< |
人貽厥晩年軒竹池蓮以寓雅懷不求人知自樂有裕爲\_義陵齋郞亦不屑就善治身 | 人貽厥晩年軒竹池蓮以寓雅懷不求人知自樂有裕爲\_義陵齋郞亦不屑就善治身 | ||
解醫藥調護餘術濟人亦多去秋因舊證兼病店禱藥未效今二月初吉遷外寢沒享年 | 解醫藥調護餘術濟人亦多去秋因舊證兼病店禱藥未效今二月初吉遷外寢沒享年 | ||
五十七聞訂之日鄕鄰慟惜爭致祭賻巷老山髠亦多奔吊曰不復霑急人之惠矣遺令 | 五十七聞訂之日鄕鄰慟惜爭致祭賻巷老山髠亦多奔吊曰不復霑急人之惠矣遺令 | ||
勿床果侈觀美母齋僧邀冥佑喪儀祭式一遵家禮以十一月壬申厝于郡東六里許山 | 勿床果侈觀美母齋僧邀冥佑喪儀祭式一遵家禮以十一月壬申厝于郡東六里許山 | ||
- | 内谷坎坐之原其流爲兌夫人檢山黃氏敎授諱漢弼女敎授公斅誨不倦人多有成公 | + | 內谷坎坐之原其流爲兌夫人檢山黃氏敎授諱漢弼女敎授公斅誨不倦人多有成公 |
亦受業學始知方常事以父師生二男二女女長適忠順衛金砥石泣血閱月而逝有子 | 亦受業學始知方常事以父師生二男二女女長適忠順衛金砥石泣血閱月而逝有子 | ||
- | 女幼男長俊良丁酉司馬登庚子科官工曹佐郞娶參奉李文樑女乃聾巖李相國賢輔 | + | 女幼男長俊良丁酉司馬登庚子科官工曹佐郞娶叅奉李文樑女乃聾巖李相國賢輔 |
之孫次秀良方業儒娶忠義衛鄭師周女東平君種之孫有男幼次二女皆年弱未字銘 | 之孫次秀良方業儒娶忠義衛鄭師周女東平君種之孫有男幼次二女皆年弱未字銘 | ||
曰生稱善人卒表處士之墓種德旣深竟未豊於食祿吾誰尤乎彼茫茫之蒼昊\\ | 曰生稱善人卒表處士之墓種德旣深竟未豊於食祿吾誰尤乎彼茫茫之蒼昊\\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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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서로 경술(經術)을 밝혀서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에게 중요시함을 얻었고 선비들 | 이리하여 서로 경술(經術)을 밝혀서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에게 중요시함을 얻었고 선비들 | ||
중에 가풍의 칭찬을 받았으니 이는 대동여지승람(大東輿地勝覽)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 중에 가풍의 칭찬을 받았으니 이는 대동여지승람(大東輿地勝覽)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 ||
- | \_할아버지의 휘(諱)는 말손(末孫)이니 교수(敎授)와 사온주부(司醞主簿)로 30(三十)세에 작고하고 아버지는 순릉(順陵)의 참봉(參奉)으로 휘(諱)가 효동(孝仝)이니 풍모와 회포가 | + | \_할아버지의 휘(諱)는 말손(末孫)이니 교수(敎授)와 사온주부(司醞主簿)로 30(三十)세에 작고하고 아버지는 순릉(順陵)의 참봉(叅奉)으로 휘(諱)가 효동(孝仝)이니 풍모와 회포가 |
자연스러워서 구속을 받지 않고 서화 작품을 모으고 화초를 길러 스스로 즐겼다.\\ | 자연스러워서 구속을 받지 않고 서화 작품을 모으고 화초를 길러 스스로 즐겼다.\\ | ||
\_어머니는 영정진씨(永定秦氏)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 호(浩)의 손녀이고 태조전승 | \_어머니는 영정진씨(永定秦氏)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 호(浩)의 손녀이고 태조전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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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름다운 지혜를 주신 것을 훼손시키지 말라고 했다.\\ | 그 아름다운 지혜를 주신 것을 훼손시키지 말라고 했다.\\ | ||
\_만년에는 집에 대나무를 심고 못에는 연꽃을 심어서 그 전아한 회포를 표현했다.\\ | \_만년에는 집에 대나무를 심고 못에는 연꽃을 심어서 그 전아한 회포를 표현했다.\\ | ||
- | \_남이 알아주는 것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즐김이 여유가 있었다. 의릉참봉(義陵參奉)이 | + | \_남이 알아주는 것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즐김이 여유가 있었다. 의릉참봉(義陵叅奉)이 |
되었는데 역시 기꺼이 취임하지 않았다. 몸 다스리는 것을 잘하고 의약을 잘 이해하여 | 되었는데 역시 기꺼이 취임하지 않았다. 몸 다스리는 것을 잘하고 의약을 잘 이해하여 | ||
자기의 건강을 조정하고 보호하고 또 나머지로는 남을 구제하는 것이 많았다.\\ | 자기의 건강을 조정하고 보호하고 또 나머지로는 남을 구제하는 것이 많았다.\\ |
a-110.1747967086.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3 11:24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