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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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대동보서(庚戌大同譜序) (1850년)=== | ===경술대동보서(庚戌大同譜序) (1850년)=== | ||
- | + | <WRAP 37em justify>< | |
- | 吾姓之著箕鄉古矣譜板之在豐城久矣世代寢遠系牒無傳則派分而支流 | + | <typo ff:' |
+ | \_**庚戌大同譜序**\\ | ||
+ | 吾姓之著箕鄕古矣譜板之在豊城久矣世代寢遠系牒無傳則派分而支流 | ||
者殆未免汾陽錯認之患後孫之責寧有甚於此時者哉奧在辛卯春川宗承 | 者殆未免汾陽錯認之患後孫之責寧有甚於此時者哉奧在辛卯春川宗承 | ||
- | 旨燾氏設新譜于京城之華藏寺而舊譜諸宗之多不入以其豐兩派之俱不 | + | 旨燾氏設新譜于京城之華藏寺而舊譜諸宗之多不入以其豊兩派之俱不 |
與也噫當日支吾者安知復有今日者乎廼於戊申秋錦陽宗人發書示意是 | 與也噫當日支吾者安知復有今日者乎廼於戊申秋錦陽宗人發書示意是 | ||
- | 益不謀而合者遂設譜于豐取仍舊也維我箕黃之盛際美續己備於前人之 | + | 葢不謀而合者遂設譜于豊取仍舊也維我箕黃之盛際美續己備於前人之 |
述今不必加屋疊床而學士公桴海錄出於東漢時事凡貫箕而族黃者至今 | 述今不必加屋疊床而學士公桴海錄出於東漢時事凡貫箕而族黃者至今 | ||
- | 為疑信古蹟近見旌善宗大中家籍牒中唐朝學士八世配位墓所不啻昭著 | + | 爲疑信古蹟近見旌善宗大中家籍牒中唐朝學士八世配位墓所不啻昭著 |
- | 今依此改正是則先世所未發之事似不免率爾之責然既有信籍烏可己也 | + | 今依此改正是則先世所未發之事似不免率爾之責然旣有信籍烏可己也 |
- | 遂錄干世譜中以為傳後辨破之蹟未知後世雲仍庶或賴此而益詳於數千 | + | 遂錄干世譜中以爲傳後辨破之蹟未知後世雲仍庶或賴此而益詳於數千 |
- | 載之下乎蓋譜冊合為三卷而始春終夏僉君子幹敏之功此可想矣今其主 | + | 載之下乎蓋譜冊合爲三卷而始春終夏僉君子幹敏之功此可想矣今其主 |
- | 幹宗憲周甫即錦翁胃孫而號農隱者也精於譜學又能繼述先志著重刊記 | + | 幹宗憲周甫即錦翁胄孫而號農隱者也精於譜學又能繼述先志著重刊記 |
- | 文事未就身先逝吾宗不幸抑何如也不侫居在姓貫之鄉當躬助讐校之役 | + | 文事未就身先逝吾宗不幸抑何如也不侫居在姓貫之鄕當躬助讐校之役 |
- | 老不能自力於越重嶺到岸遂因其所感之懷而略叙顛末且道我貫鄉不 | + | 老不能自力於越重嶺到岝㠋遂因其所感之懷而略敍顚末且道我貫鄕不 |
- | 可無一語云爾 | + | 可無一語云爾\\ |
- | 歲上草閣茂流頭月日裔孫龍九謹序 | + | \_\_歲上章閹茂流頭月日裔孫龍九謹序 |
- | 우리 姓이 平海를 本貫으로 定한 歷史는 오랜 옛날이며 譜板을 豊基錦陽에 두게 | + | </ |
- | 된것도 百數十年의 歲月이 흘렀다. 世代가 멀어지고 系牒이 傳함이 없으면 派가 | + | </ |
- | 나누이고 그 나누인 | + | \\ |
- | 甚한 때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에 對한 後孫의 責任이 또한 적다 할 수 없지 | + | <typo ff:' |
- | 않겠는가? | + | \_경술대동보서\\ |
- | 지난 辛卯年에 春川宗氏인 承旨燾氏가 新譜廳을 京城의 華藏寺에 設置하고 舊 | + | \_우리 |
- | 譜諸宗에게 入譜를 권유하였으나 平海豊基兩派의 不參으로 많은 人譜가 이루 | + | 나뉘고 그 나뉜 지파간(支派間)에 항열에 |
- | 어지지 못하였다. 鳴呼라 그날에 支孫된 우리로서 어찌 다시 오늘과 같음이 | + | 심(甚)한 때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에 |
- | 있을 줄 알았으리요? | + | 않겠는가? |
- | 이므로 다시 會議없이도 合意된 것으로 默認 드디어 豊基에 譜廳을 設置한 것은 | + | |
- | 前日의 例를 따른 것이다. | + | \_지난 |
- | 우리 平海黃氏의 旺盛할 즈음에 그 아름다운 자취는 이미 옛날 先祖들의 著述에 | + | 있을 줄 알았으리요? |
- | 가추어 있음으로 다시 지붕위에 마루를 거듭할 必要가 없으나 學士公의 桴海 | + | 전일(前日)의 예(例)를 따른 것이다.\\ |
- | 錄이 東漢時事나 平海로 本貫을 삼고 姓을 黃氏로 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 + | |
- | 近者에 와서 旌善宗人의 大中家籍牒가운데 唐學士 및 八世配位와 墓所뿐아니라 | + | \_우리 |
+ | 갖추어 있음으로 다시 지붕 위에 마루를 거듭할 | ||
+ | 근자(近者)에 와서 | ||
+ | |||
+ | 기타(其他) 소상(昭詳)하게 나타난 바 있음으로 이제 이에 의(依)하여 이를 바로 고친 것이니 이는 | ||
+ | 곧 선세(先世)가 발견(發見)치 못한 일을 새로 발견(發見)한 것이다. 그러나 이 처사(處事)가 경솔(輕率)하다는 | ||
+ | 책임(責任)을 면(免)치 못할 것 같은 느낌이 없는 바는 아니다. 이미 믿을 수 있는 문적(文籍)이 | ||
+ | 있음으로 어찌 가(可)히 이이(貳異)가 있으리요? | ||
+ | 변증(辨證)의 깨트린 자취를 삼고져 함이 다 알지 못한 일이나 후세(後世) 자손(子孫)은 혹 이에 의뢰(依賴)하여 | ||
+ | 수천년(數千年) 후(後)에라도 더욱 자세하게 될 것일까!\\ | ||
+ | \_이에 보책(譜冊)을 합(合)하여 세권을 만들었는데 봄에 합작(合作)하여 여름에 마쳤으니 모든 | ||
+ | 간사(幹事)들의 민첩한 공로(功勞)는 이것으로 가(可)히 짐작하리로다. 주간(主幹)한 종인(宗人) 헌주(憲周)는 금계(綿溪) 선생(先生)의 주종(胄宗)으로 호(號)를 농은(農隱)이라하는 사람인데 보학(譜學)에 정통(精通)하고 또 선세(先世)의 뜻을 | ||
+ | 이어 저술(著述)하는데 적절(適切)한 분으로 이 중간(中刊) 기문(記文)을 쓸 계획이였었다. 그러나 아깝게도 일에 나아가지 못하고 몸이 먼저 갔으니 오종(吾宗)의 불행(不幸)이라 하지 않을 수 | ||
+ | 없다.\\ | ||
- | 其他昭詳하게 나타난 바 있음으로 이제 이에 依하여 이를 바로 고친것이니 이는 | + | \_불초(不肖)는 마땅히 몸소 |
- | 곧 先世가 發見치 목한 일을 새로 發見한 것이다. 그러나 이 處事가 輕率하다는 | + | 대략(大略)의 전말(顚末)을 펴며 또 거지(居地)가 관향(貫鄕)인 평해(平海)인지라 |
- | 責任을 免치 목할 것같은 느낌이 벗는 바는 아니다. 이미 믿을 수 있는 文籍이 | + | \_\_세(歲) 상장(上章) 엄무(閣茂) 경술(庚戌) 유두월(流頭月) 일(日) 예손(裔孫) 용구(龍九) 근서(謹序) |
- | 있음으로 어찌 可히 貳異가 있으리요? | + | </ |
- | 證의 깨트린 자취를 삼고져 함이 다 알지 목한 일이나 後世子孫은 속 이에 依賴하여 | + | </ |
- | 數千年後에라도 더욱 자세하게 될것일가 | + | |
- | 이에 譜冊을 슴하여 세권을 만드렀는데 봄에 合作하여 여름에 마쳤으니 모든 | + | |
- | 幹事들의 민첩한 功勞는 이것으로 可히 짐작하리로다 主幹한 宗人憲周는 綿溪 | + | |
- | 先生의 胃宗으로 虢를 農隱이라하는 사람인데 譜學에 精通하고 또 先世의 뜻을 | + | |
- | 이어 著述하는데 適切한 분으로 이 中刊記文을 쓸 계획이 였었다. 그러나 아 | + | |
- | 깝게도 일에 나아가지 목하고 몸이 먼저 갔으니 吾宗의 不幸이라 하지 않을 수 | + | |
- | 없다. | + | |
- | 不肖는 마땅히 몸소 校正의 役轄을 도와야 할 處地임에 不拘하고 몸이 늙어 泰 | + | |
- | 山峻嶺을 넘나들 수 없어 所任을 다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所感의 一端으로 | + | |
- | 大略의 | + | |
- | 돌보지 않고 아울러 두어줄 記述하노라。 | + | |
- | 歲上章閣茂庚戌流頭月日裔孫龍九謹序 | + |
b-005.1748062390.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4 13:53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