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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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보서(辛亥譜序) (1851년) -돈(墩)=== | ===신해보서(辛亥譜序) (1851년) -돈(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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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辛亥譜序\\ | + | \_**辛亥譜序**\\ |
我東辭大夫家莫不有譜譜者上以究祖宗之所由始下以明子孫之所自出 | 我東辭大夫家莫不有譜譜者上以究祖宗之所由始下以明子孫之所自出 | ||
- | 也是以譜不成則追遠之誠緩矣敦宗之義缺矣此仁人君子之必以是為急 | + | 也是以譜不成則追遠之誠緩矣敦宗之義缺矣此仁人君子之必以是爲急 |
而譜之所以作也惟我平海黃氏肇自學士公桴海而東至于今一千八百二 | 而譜之所以作也惟我平海黃氏肇自學士公桴海而東至于今一千八百二 | ||
十有餘年矣由羅及麗名公巨卿文章德業前後相望輝暎竹帛而系牒不傳 | 十有餘年矣由羅及麗名公巨卿文章德業前後相望輝暎竹帛而系牒不傳 | ||
- | 文獻無徵以錦溪海月兩先生之傳學多知猶未詳焉搜聚輯錄撰成草譜而 | + | 文獻無徵以錦溪海月兩先生之博學多知猶未詳焉搜聚輯錄撰成草譜而 |
惟有望於後人也往在庚寅始成板譜於豐基之錦陽以壽其傳追遠敦睦之 | 惟有望於後人也往在庚寅始成板譜於豐基之錦陽以壽其傳追遠敦睦之 | ||
誠吁可想也其後庚戌之秋乃營修譜三派子孫合譜似難圖矣於是檢校評 | 誠吁可想也其後庚戌之秋乃營修譜三派子孫合譜似難圖矣於是檢校評 | ||
- | 理公兩派設所於豐基大匡公派子孫設廳於清安各祖其祖各派其派而惟 | + | 理公兩派設所於豐基大匡公派子孫設廳於淸安各祖其祖各派其派而惟 |
- | 檢校公支派海月公支派子孫旣漏於豐牒願入於清譜噫自祖宗視之則均 | + | 檢校公支派海月公支派子孫旣漏於豐牒願入於淸譜噫自祖宗視之則均 |
是子孫何必厚於此薄於彼且况海月公宗孫錫吾甫以此派合印之意書札 | 是子孫何必厚於此薄於彼且况海月公宗孫錫吾甫以此派合印之意書札 | ||
- | 勤摯譜廳僉議同歸于一而但譜單晚到未果合錄於原譜付于追編以俟後 | + | 勤摯譜廳僉議同歸于一而但譜單晩到未果合錄於原譜付于追編以俟後 |
- | 人之攷覽焉剞劂告成宗人屬余為序以余居在譜所略知顛末故用付于卷 | + | 人之攷覽焉剞劂告成宗人屬余爲序以余居在譜所略知顚末故用付于卷 |
尾云爾\\ | 尾云爾\\ | ||
\_\_崇禎紀元後四辛亥仲春下澣後裔孫墩謹識 | \_\_崇禎紀元後四辛亥仲春下澣後裔孫墩謹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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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신해보서\\ | + | \_**신해보서**\\ |
- | \_우리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에 사는 사대부(士大夫)집들로서 족보(族譜)없는 집이 없으니 그 족보(族譜)라는 | + | \_우리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에 사는 사대부(士大夫) 집들로서 족보(族譜)없는 집이 없으니 그 족보(族譜)라는 |
것은 위로 조종(祖宗)의 근본(根本)을 연구(硏究)하여 밝히고 아래로 자손(子孫)의 소자출(所自出)을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족보(族譜)를 만들지 못하면 조상(祖上)을 추모(追慕)하는 성의(誠意)가 부족(不足)하고 종족간(宗族間)에 | 것은 위로 조종(祖宗)의 근본(根本)을 연구(硏究)하여 밝히고 아래로 자손(子孫)의 소자출(所自出)을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족보(族譜)를 만들지 못하면 조상(祖上)을 추모(追慕)하는 성의(誠意)가 부족(不足)하고 종족간(宗族間)에 | ||
돈목(敦睦)하는 의의(義意)가 없게 될 것임으로 인인군자(仁人君子)가 반드시 이것을 급선무(急先務)로 하여 | 돈목(敦睦)하는 의의(義意)가 없게 될 것임으로 인인군자(仁人君子)가 반드시 이것을 급선무(急先務)로 하여 | ||
- | 족보(族譜)를 작성(作成)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컨대 우리 평해황씨(平海黃氏)는 처음 학사공(學士公)이 바다를 건너 동방(東方) 평해(平海)의 월송(月松)에 상륙(上陸)하신 후(後)로 1천8백여년(一千八百餘年)의 세월(歲月)이 지났고 신라(新羅) | + | 족보(族譜)를 작성(作成)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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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생각컨대 우리 평해황씨(平海黃氏)는 처음 학사공(學士公)이 바다를 건너 동방(東方) 평해(平海)의 월송(月松)에 상륙(上陸)하신 후(後)로 1천8백여년(一千八百餘年)의 세월(歲月)이 지났고 신라(新羅) | ||
\_그러나 세계(世系)와 족첩(族牒)이 전(傳)해 오지 못하고 문헌(文獻)의 빙거(憑據)가 없어서 금계(錦溪) 해월(海月) 양(兩) 선생(先生)의 박학다문(博學多聞)한 지식(知識)으로도 오히려 상심(詳審)치 못하여 찾고 거두고 모아서 겨우 초보(草譜)만 찬성(撰成)하고 오직 후인(後人)에게 바라는 바 있더니 지난 경인년(庚寅年)에 처음으로 판각(板刻)한 족보(族譜)를 풍기(豊基) 금양(錦陽)에서 편성(編成)하여 길이 전승(傳承)하게 하였음은 그 추원돈종지성(追遠敦宗之誠)을 | \_그러나 세계(世系)와 족첩(族牒)이 전(傳)해 오지 못하고 문헌(文獻)의 빙거(憑據)가 없어서 금계(錦溪) 해월(海月) 양(兩) 선생(先生)의 박학다문(博學多聞)한 지식(知識)으로도 오히려 상심(詳審)치 못하여 찾고 거두고 모아서 겨우 초보(草譜)만 찬성(撰成)하고 오직 후인(後人)에게 바라는 바 있더니 지난 경인년(庚寅年)에 처음으로 판각(板刻)한 족보(族譜)를 풍기(豊基) 금양(錦陽)에서 편성(編成)하여 길이 전승(傳承)하게 하였음은 그 추원돈종지성(追遠敦宗之誠)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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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원고(原稿) 인판(印版)에 붙이고져 윗사람에게 보고(報告)할 때 종인(宗人)들이 나에게 서문(序文)을 부탁함에 | \_원고(原稿) 인판(印版)에 붙이고져 윗사람에게 보고(報告)할 때 종인(宗人)들이 나에게 서문(序文)을 부탁함에 | ||
- | 내가 보소(譜所)에 오래 있어 대략 그 전말(顛末)을 아는 고로 이것을 권말(卷末)에 붙여두는 바 | + | 내가 보소(譜所)에 오래 있어 대략 그 전말(顚末)을 아는 고로 이것을 권말(卷末)에 붙여두는 바 |
이다.\\ | 이다.\\ | ||
\_\_숭정(崇禎) 기원후(紀元後) 4(四) 신해(辛亥) 중춘(仲春) 하한(下澣) 예손(裔孫) 돈(墩) 근지(謹識) | \_\_숭정(崇禎) 기원후(紀元後) 4(四) 신해(辛亥) 중춘(仲春) 하한(下澣) 예손(裔孫) 돈(墩) 근지(謹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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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06.1748219123.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6 09:25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