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b-019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양쪽 이전 판이전 판
다음 판
이전 판
b-019 [2025/05/29 18:28] ssio2b-019 [2025/06/01 23:31] (현재) ssio2
줄 1: 줄 1:
 ===기해평리공파보서(己亥平理公派譜序) (1959년) - 재우(載宇)=== ===기해평리공파보서(己亥平理公派譜序) (1959년) - 재우(載宇)===
 <WRAP 37em justify> <WRAP 37em justify>
-<typo ff:'한양해서'; fs:1.2em>+<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
 \_**기해평리공파보서(己亥平理公派譜序)**\\ \_**기해평리공파보서(己亥平理公派譜序)**\\
 \_우리나라는 기자(箕子) 성군(聖君)께서 세운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그래서 옛날부터 백성(百姓)을  \_우리나라는 기자(箕子) 성군(聖君)께서 세운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그래서 옛날부터 백성(百姓)을 
줄 29: 줄 29:
 대동보(大同譜) 사무조례(事務條例)를 결의(決議)하고 성문(成文) 포고(布告)한 뒤에 본인(本人)과 세원(世元) 두성(斗星) 두 족인(族人)과 함께 풍기(豊基)와 청안(淸安) 두 종택(宗宅)을 방문(訪問)하여 결의(決議)된 경위(經緯)의 전말을 대강(大綱) 말하고 수의(酬議)한 결과(結果) 대동보(大同譜) 사무조례(事務條例)를 결의(決議)하고 성문(成文) 포고(布告)한 뒤에 본인(本人)과 세원(世元) 두성(斗星) 두 족인(族人)과 함께 풍기(豊基)와 청안(淸安) 두 종택(宗宅)을 방문(訪問)하여 결의(決議)된 경위(經緯)의 전말을 대강(大綱) 말하고 수의(酬議)한 결과(結果)
 세태(世態)의 연고와 경제(經濟)의 어려움으로 막중대사(莫重大事)를 치루기 지난(至難)하다는 뜻을 앞세워 세태(世態)의 연고와 경제(經濟)의 어려움으로 막중대사(莫重大事)를 치루기 지난(至難)하다는 뜻을 앞세워
-환영치 않음으로 부득이(不得) 결렬(決裂)되고 파보(派譜)를 결행(決行)키로 마음을 힌 후(後) 족종((族宗) 재원(載元)과+환영치 않음으로 부득이(不得) 결렬(決裂)되고 파보(派譜)를 결행(決行)키로 마음을 힌 후(後) 족종(族宗) 재원(載元)과
 함께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남부지방(南部地方)을 다녀 7개월(七個月)만에 수단(收單)을 마치고 돌아와 중초(中抄)한 함께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남부지방(南部地方)을 다녀 7개월(七個月)만에 수단(收單)을 마치고 돌아와 중초(中抄)한
 것을 정서(正書)를 해서 다음해 3월(三月)에 완성(完成)하였다. 그러나 나의 마음 가운데 느끼는 바는 이 수보(修譜)하는 대의(大義)가 선대(先代)를 추모(追慕)하고 종족(宗族)을 호위(護衛)하며 동종간(同宗間) 돈목(敦睦)을 것을 정서(正書)를 해서 다음해 3월(三月)에 완성(完成)하였다. 그러나 나의 마음 가운데 느끼는 바는 이 수보(修譜)하는 대의(大義)가 선대(先代)를 추모(追慕)하고 종족(宗族)을 호위(護衛)하며 동종간(同宗間) 돈목(敦睦)을
줄 37: 줄 37:
 \_대저 사족지가(士族之家)에 보첩(譜牒)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한 집안에 아름다운 일에만 그치는 \_대저 사족지가(士族之家)에 보첩(譜牒)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한 집안에 아름다운 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도인심(世道人心)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는 점(点)에도 유의(留意)하여야 한다. 것이 아니라 세도인심(世道人心)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는 점(点)에도 유의(留意)하여야 한다.
-이러한 설(說)은 정장부자(程張夫子)((정ㆍ장(程張): 송나라 때의 학자인 정호(程顥)와 장재(張載).))서 이미 說罷하여 널리 전(傳)해온 사실(事實)이니 다시 부언(附言)치 않기로 하노라.\\+이러한 설(說)은 정장부자(程張夫子)((정ㆍ장(程張): 송나라 때의 학자인 정호(程顥)와 장재(張載).))서 이미 설파(說罷)하여 널리 전(傳)해온 사실(事實)이니 다시 부언(附言)치 않기로 하노라.\\
  
 \_가만히 생각(生覺)하니 족조(族祖) 극영(極英)씨(氏)와 족제(族弟) 재원(載元)군(君)이 함께 침식을 잊고 범백사(凡百事)를 담당하여 선계9先系)를 밝히고 세덕(世德)을 지었으나 대동수보(大同修譜)를 이루지 못하고 파보(派譜)에 그쳤음을 심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나는 원래(元來) 부족(不足)한 사람으로 아는 바 없이 어찌 감히 무사(無辭)로써 선부로(先父老)의 기술(記述) 밑에 서문(序文)을 둘 수 있으리오마는 다만 느끼는 바에 \_가만히 생각(生覺)하니 족조(族祖) 극영(極英)씨(氏)와 족제(族弟) 재원(載元)군(君)이 함께 침식을 잊고 범백사(凡百事)를 담당하여 선계9先系)를 밝히고 세덕(世德)을 지었으나 대동수보(大同修譜)를 이루지 못하고 파보(派譜)에 그쳤음을 심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나는 원래(元來) 부족(不足)한 사람으로 아는 바 없이 어찌 감히 무사(無辭)로써 선부로(先父老)의 기술(記述) 밑에 서문(序文)을 둘 수 있으리오마는 다만 느끼는 바에
b-019.1748510892.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9 18:28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