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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57 [2025/05/31 19:52] ssio2b-057 [2025/06/03 09:04]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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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ypo ff:'한양해서'; fs:1.2em> <typo ff:'한양해서'; fs:1.2em>
 \_**通德郞喜懼齋黃公行略**\\ \_**通德郞喜懼齋黃公行略**\\
-公諱琛字君玉姓黃氏黃爲其城著姓高麗侍中文節公諱瑞其遠祖也中世有諱汝+公諱琛字君玉姓黃氏黃爲其城著姓高麗侍中文節公諱瑞其遠祖也中世有諱汝
 一號海月\_宣廟射策登第以文章德業著名當世龍蛇之變以朝天書狀官隨白沙月沙\\ 一號海月\_宣廟射策登第以文章德業著名當世龍蛇之變以朝天書狀官隨白沙月沙\\
 上副价卞丁主事應泰之誣及還沉淪於冗散州郡卛官工曹參議歿後以翊戴勳 贈嘉 上副价卞丁主事應泰之誣及還沉淪於冗散州郡卛官工曹參議歿後以翊戴勳 贈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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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爲君王大人也<fc #ff0000>常</fc>所之靈芝有本醴泉有源者不其信然歟盖深服之語也歲戊辰先府 爲君王大人也<fc #ff0000>常</fc>所之靈芝有本醴泉有源者不其信然歟盖深服之語也歲戊辰先府
 君春秋已治滿九十矣君以望七之年侍奉朝夕暫不離側加以衰病浸尋勢難遠役而 君春秋已治滿九十矣君以望七之年侍奉朝夕暫不離側加以衰病浸尋勢難遠役而
-以先府君大陞資而未蒙實典心常慨恨乃於暮春之月扶病强作艱辛赴洛後數日+以先府君大陞資而未蒙實典心常慨恨乃於暮春之月扶病强作艱辛赴洛後數日
  
 往謁西銓金公履翼語及先府君壽職事金公見公儀表之端雅辤情之剴功爽然異之 往謁西銓金公履翼語及先府君壽職事金公見公儀表之端雅辤情之剴功爽然異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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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榮光無邊禍色慘錯於一月之內使慈婦孝子之魂會哀抱寃於九泉之下是何蒼蒼之 榮光無邊禍色慘錯於一月之內使慈婦孝子之魂會哀抱寃於九泉之下是何蒼蒼之
 無神而漠漠之無信也鳴呼痛哉是月九月初七日庚午克襄先府君于郡北三十里梨 無神而漠漠之無信也鳴呼痛哉是月九月初七日庚午克襄先府君于郡北三十里梨
-田洞負亥之原二十日癸未窆公於同洞間一麓員已之原距先府君幽宅數百+田洞負亥之原二十日癸未窆公於同洞間一麓員已之原距先府君幽宅數百
 相望之地也泉臺侍奉之樂無減於人世則公將伸孝於八地之日幽明之間可慰者此 相望之地也泉臺侍奉之樂無減於人世則公將伸孝於八地之日幽明之間可慰者此
 也公前配幸州田氏士人諱弘玉之女先公二十七年而歿葬于周墙\_向之原後配蔚珍\\ 也公前配幸州田氏士人諱弘玉之女先公二十七年而歿葬于周墙\_向之原後配蔚珍\\
-張氏士人諱東玉之女先公一月而與公同穴兩碩人俱以貞亮之姿內行純備壺儀 +張氏士人諱東玉之女先公一月而歿與公同穴兩碩人俱以貞亮之姿內行純備壺儀 
-無憾而不幸無子以本生再從兄之第二子致泓爲嗣女三人爲士人李龜妻士人+無憾而不幸無子以本生再從兄之第二子致泓爲嗣女三人爲士人李龜妻士人
  
-張天翼妻者田氏出也士人李相箕妻者張氏出也致泓娶務安朴鎭標女生一男尙 +張天翼妻者田氏出也士人李相箕妻者張氏出也致泓娶務安朴鎭標女生一男尙 
-李龜無育張天翼有三男皆嗚呼公之傳受淵源有自來矣而啓發於復齋李\\+李龜無育張天翼有三男皆嗚呼公之傳受淵源有自來矣而啓發於復齋李\\
 公春龍誘掖之方長而成就於伯父川西翁師夏爐錘之間畢竟樹立如是卓越於哀季 公春龍誘掖之方長而成就於伯父川西翁師夏爐錘之間畢竟樹立如是卓越於哀季
-吾夫子所謂魯無君子斯馬取斯者政謂公發也風度秀常氣宇軒性行高潔持論鄕 +吾夫子所謂魯無君子斯馬取斯者政謂公發也風度秀<fc #ff0000></fc>氣宇軒性行高潔持論鄕 
-黨不肯俯仰於流俗聞人之善若已有之推許闡猶恐不及見人之惡若將일焉嚴加+黨不肯俯仰於流俗聞人之善若已有之推許闡猶恐不及見人之惡若將<fc #ff0000></fc>焉嚴加
 峻斥不少假借故鄕人之善者慕之不善者忌之然其律巳之謹嚴制行之公平賢不肖 峻斥不少假借故鄕人之善者慕之不善者忌之然其律巳之謹嚴制行之公平賢不肖
-之所共歎服者故能處濁世而怨禍不及於身吁亦可尙也已今夫巖草澤之中非無 +之所共歎服者故能處濁世而怨禍不及於身吁亦可尙也已今夫𡾟巖草澤之中非無 
-特立獨行之士而我國家取人專尙科目蒐逸之典不及於遐荒故士之抱負志行名연+特立獨行之士而我國家取人專尙科目蒐逸之典不及於遐荒故士之抱負志行名<fc #ff0000></fc>
 沒無稱者指不勝屈是可數也念昔川西公以孝友文行廉謹醇雅負儒林重望而卒乃 沒無稱者指不勝屈是可數也念昔川西公以孝友文行廉謹醇雅負儒林重望而卒乃
-枯頂黃畢命於蓬蒿之下以公出天之誠高世之行懷寶莫售隱德不顯埋沒窮巷與+枯頂黃畢命於蓬蒿之下以公出天之誠高世之行懷寶莫售隱德不顯埋沒窮巷與
 草木同腐可勝痛哉可勝惜哉廼令致泓圖君志行之不朽於世袖持家狀一通來余請 草木同腐可勝痛哉可勝惜哉廼令致泓圖君志行之不朽於世袖持家狀一通來余請
-記實文字余以育廢一物不自量力草先令公行略已極越矣何敢更構拙語畳托語 +記實文字余以育廢一物不自量力草先令公行略已極越矣何敢更構拙語畳托語 
-傳信之地而第念平日通家之誼便是姓不同兄弟義有所不可終者敢忘其固陋於+傳信之地而第念平日通家之誼便是姓不同兄弟義有所不可終者敢忘其固陋於
 原狀中略加欒括而撰次世係志行如右以備當世秉篳士之裁擇而去就焉\\ 原狀中略加欒括而撰次世係志行如右以備當世秉篳士之裁擇而去就焉\\
 \_\_上之八年戊辰九月日戚記尹東憲謹狀 \_\_上之八年戊辰九月日戚記尹東憲謹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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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ypo ff:'바탕'; fs:1em; lh:1.5em> <typo ff:'바탕'; fs:1em; lh:1.5em>
 \_**통덕랑(通德郞) 희구재(喜懼齋) 황공(黃公) 행략(行略)**\\ \_**통덕랑(通德郞) 희구재(喜懼齋) 황공(黃公) 행략(行略)**\\
-\_공(公)의 휘(諱)는 침(琛)이요 자(字)는 군옥(君玉)이라 성(姓)은 황씨(黃氏)니 황씨(黃氏)가 기성(箕城)에서 제일(第一)가는 성(姓)이라 +\_공(公)의 휘(諱)는 침(琛)이요 자(字)는 군옥(君玉)이라 성(姓)은 황씨(黃氏)니 황씨(黃氏)가 기성(箕城)에서 제일(第一)가는 성(姓)이라. 
-고려(高麗) 시중(侍中) 시()는 문절공(文節公)이요 휘(諱)는 서(瑞)니그 원조(遠祖)라 중세(中世)에 휘(諱)는 여일(汝一)이요 호(號)는+고려(高麗) 시중(侍中) 시()는 문절공(文節公)이요 휘(諱)는 서(瑞)니 그 원조(遠祖)라중세(中世)에 휘(諱)는 여일(汝一)이요 호(號)는
 해월(海月)이 있었으니 선조(宣祖) 때 활을 쏴서 과거(科擧)하였고 문장(文章)과 덕망(德望)으로서 이름을 나타냈으니  해월(海月)이 있었으니 선조(宣祖) 때 활을 쏴서 과거(科擧)하였고 문장(文章)과 덕망(德望)으로서 이름을 나타냈으니 
 당세(當世)에 전란(戰亂)으로 인(因)하여 조정(朝庭)에 글을 올려 벼슬이 백사(白沙)와 월사(月沙)에 따랐고 당세(當世)에 전란(戰亂)으로 인(因)하여 조정(朝庭)에 글을 올려 벼슬이 백사(白沙)와 월사(月沙)에 따랐고
-상부개변(上副价卞) 정(丁) 주사(主事) 응태(應泰)((정응태 무고사건: 조선 선조 31년(1598) 명나라 간신 정응태(丁應泰)가 명 황제 만력제에게 조선을 무고한 사건으로 류성룡이 실각하고 북인이 집권하는 계기가 된 사건 중 하나다. 정응태가 양호를 탄핵하였는데 조선은 양호와 가까웠기 때문에 양호를 옹호하였다. 그러자 정응태가 화를 내어 조선을 무고한 것이다. 조선이 해명함으로서 일이 해결되었고 정응태는 파직되고 쫒겨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의 무(誣)와 떠돌아 다니는 벼슬로서 산주군(散州郡) 솔(卛)에 빠져 공조참의(工曹參議)를 하였으니 후(後)에 거룩한 공(功)으로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을 하셨고 사림(士林)들이 명계서원(明溪書院)에 중부(仲父) 대해(大海) 선생(先生)과 같이 병향(並享)하시니 공(公)의 6대조(六代祖)라 5대조(五代祖)에 휘(諱)는 중헌(中憲)이니 +상부개변(上副价卞) 정(丁) 주사(主事) 응태(應泰)((정응태 무고사건: 조선 선조 31년(1598) 명나라 간신 정응태(丁應泰)가 명 황제 만력제에게 조선을 무고한 사건으로 류성룡이 실각하고 북인이 집권하는 계기가 된 사건 중 하나다. 정응태가 양호를 탄핵하였는데 조선은 양호와 가까웠기 때문에 양호를 옹호하였다. 그러자 정응태가 화를 내어 조선을 무고한 것이다. 조선이 해명함으로서 일이 해결되었고 정응태는 파직되고 쫒겨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의 무(誣)와 떠돌아 다니는 벼슬로서 산주군(散州郡) 솔(卛)에 빠져 공조참의(工曹參議)를 하였으니 후(後)에 거룩한 공(功)으로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을 하셨고 사림(士林)들이 명계서원(明溪書院)에 중부(仲父) 대해(大海) 선생(先生)과 같이 병향(並享)하시니 공(公)의 6대조(六代祖)라5대조(五代祖)에 휘(諱)는 중헌(中憲)이니 
-선교랑(宣敎卽)이라 고조(高祖)의 휘(諱)는 석평(石平)이니 증(贈) 통정대부(通政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이다. 증조(曾祖)의 휘(諱)는 숙(塾)이니+선교랑(宣敎卽)이라고조(高祖)의 휘(諱)는 석평(石平)이니 증(贈) 통정대부(通政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이다. 증조(曾祖)의 휘(諱)는 숙(塾)이니
 증(贈)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겸(兼) 경연(經筵) 참찬관(參贊官)이라. 효행(孝行)이 출천(出天)하였고 학식(學識)이 뛰어나서 증(贈)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겸(兼) 경연(經筵) 참찬관(參贊官)이라. 효행(孝行)이 출천(出天)하였고 학식(學識)이 뛰어나서
 띠집을 오봉산(五峯山) 아래 짓고 개미와 돌을 사랑하며 호(號)를 귀대(龜臺)라 하니 당시에 교유(交遊)하는 띠집을 오봉산(五峯山) 아래 짓고 개미와 돌을 사랑하며 호(號)를 귀대(龜臺)라 하니 당시에 교유(交遊)하는
-안참판(安參判)과 황해헌(黃懈軒) 모든 분(分)들이 그 실행(實行)을 기록(記錄) 포상(褒賞)하고、아름다움을 칭찬(稱贊)하더라 +안참판(安參判)과 황해헌(黃懈軒) 모든 분(分)들이 그 실행(實行)을 기록(記錄) 포상(褒賞)하고、아름다움을 칭찬(稱贊)하더라. 
-조(祖)의 휘(諱)는 세원(世元)이니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 겸(兼)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관(五衛都摠管)이시고 고(考)의+조(祖)의 휘(諱)는 세원(世元)이니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 겸(兼)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관(五衛都摠管)이시고고(考)의
 휘(諱)는 수하(受夏)니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라. 선비(先妣) 정부인(貞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니 사인(士人) 휘(諱)는 만제(萬濟)의 휘(諱)는 수하(受夏)니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라. 선비(先妣) 정부인(貞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니 사인(士人) 휘(諱)는 만제(萬濟)의
 여(女)라 무후(無后)하고, 계비(繼妣) 정부인(貞夫人) 파평윤씨(坡平尹氏)니 사인(士人) 휘(諱)는 징삼(徵三)의 여(女)라. 공(公)은 영묘(英廟) 정묘(丁卯) 8월(八月) 2일(二日) 사동(沙銅)에서 출생(出生)하셨다.  여(女)라 무후(無后)하고, 계비(繼妣) 정부인(貞夫人) 파평윤씨(坡平尹氏)니 사인(士人) 휘(諱)는 징삼(徵三)의 여(女)라. 공(公)은 영묘(英廟) 정묘(丁卯) 8월(八月) 2일(二日) 사동(沙銅)에서 출생(出生)하셨다. 
줄 92: 줄 92:
 추울 때에는 반드시 손수 나무를 하여 자제(子弟)나 노비(奴婢)의 손을 빌리지 아니하고 그 추울 때에는 반드시 손수 나무를 하여 자제(子弟)나 노비(奴婢)의 손을 빌리지 아니하고 그
 음식(飮食)과 육(肉)과 생선(生鮮)을 다루는 방법(方法)이 또한 직접(直接) 자기(自己)의 손으로 하고 그 뜨시고、찬 음식(飮食)과 육(肉)과 생선(生鮮)을 다루는 방법(方法)이 또한 직접(直接) 자기(自己)의 손으로 하고 그 뜨시고、찬
-절차(節次)와 그 더러운 것을 무려 60년(六十年)을 하루같이 하여 매양(每樣) 휘(諱)((여기에서는 '제삿날'로 쓰임.)) 전(前)날 밤에는 슬퍼하고+절차(節次)와 그 더러운 것을 무려 60년(六十年)을 하루같이 하여매양(每樣) 휘(諱)((여기에서는 '제삿날'로 쓰임.)) 전(前)날 밤에는 슬퍼하고
 공경(恭敬)하기를 생존(生存)해 계실 때와 같이하며 선부인(先夫人) 묘소(墓所)가 10리(十里)밖에 있어도 매일(每日) 반드시 공경(恭敬)하기를 생존(生存)해 계실 때와 같이하며 선부인(先夫人) 묘소(墓所)가 10리(十里)밖에 있어도 매일(每日) 반드시
 주과(酒果)를 갖추어 묘소(墓所)를 정결히 쓸고 항상 춥고 덥고 한 것을 늘 염려하여 정성을 주과(酒果)를 갖추어 묘소(墓所)를 정결히 쓸고 항상 춥고 덥고 한 것을 늘 염려하여 정성을
-다 하며 나이 많을수록 소거(所居)한 재(齋)를 갈 때 희구(喜懼)라 하니 대개 눈에 보고 생각하는+다 하며나이 많을수록 소거(所居)한 재(齋)를 갈 때 희구(喜懼)라 하니 대개 눈에 보고 생각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 종신(終身)토록 추모(追慕)하는 뜻이 지극(至極)함이라 평시(平時) 옆에서 모실 때 평안(平安)하게  것이 우연이 아니라. 종신(終身)토록 추모(追慕)하는 뜻이 지극(至極)함이라 평시(平時) 옆에서 모실 때 평안(平安)하게 
 해드리고 화순(和順)한 얼굴을 하여 백세하(百世下)에 다시 노자(老子)께서 70(七十)에 희채(戲彩)의 상(像)을 해드리고 화순(和順)한 얼굴을 하여 백세하(百世下)에 다시 노자(老子)께서 70(七十)에 희채(戲彩)의 상(像)을
 보게 하였다. 슬프고 슬프다. 처음에 증왕고(曾王考)께서 증(贈) 승지(丞旨)하시고 귀대공(龜臺公)이 동년(童年)에 보게 하였다. 슬프고 슬프다. 처음에 증왕고(曾王考)께서 증(贈) 승지(丞旨)하시고 귀대공(龜臺公)이 동년(童年)에
 철천지효(徹天之孝)로서 여러 번 향천(鄕薦)을 올렸으나 한번도 도계(棹禊)외 전(典)을 입지 못하여 향인(鄕人)들이 철천지효(徹天之孝)로서 여러 번 향천(鄕薦)을 올렸으나 한번도 도계(棹禊)외 전(典)을 입지 못하여 향인(鄕人)들이
-슬퍼하고 아쉬워 한지 우금(于今) 백년(百年)이라 뒤에 탁월(卓越)한 기위(奇偉)의 행(行)이 현증손(玄曾孫)에게 울리니 +슬퍼하고 아쉬워 한지 우금(于今) 백년(百年)이라뒤에 탁월(卓越)한 기위(奇偉)의 행(行)이 현증손(玄曾孫)에게 울리니 
-그 적루(積累)한 점이 멀리 와 비춘 것이다. 이것이 어찌 우연(偶然)한 일일것인가. 권학사(權學士) 준(晙)이+그 적루(積累)한 점이 멀리 와 비춘 것이다. 이것이 어찌 우연(偶然)한 일일 것인가. 권학사(權學士) 준(晙)이
 사림(士林) 중망(重望)이 본군(本郡)에 재(宰)하실 때에 여러번 그 집을 고치고 깊이 근귀(勤貴)을 가(加)하여 그 재(齋)를 사림(士林) 중망(重望)이 본군(本郡)에 재(宰)하실 때에 여러번 그 집을 고치고 깊이 근귀(勤貴)을 가(加)하여 그 재(齋)를
 기(記)하고 아름답게 권장(勸奬)하고 약(略)해 가로대 모(某)를 보고 효자(孝子)라 아니할 자(者) 있으랴, 또 기(記)하고 아름답게 권장(勸奬)하고 약(略)해 가로대 모(某)를 보고 효자(孝子)라 아니할 자(者) 있으랴, 또
 군(郡) 중(中)의 인사(人士)들이 장(狀)이 이어갈 때 모효(某孝)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진실로 군옥(君玉) 대인(大人)을 군(郡) 중(中)의 인사(人士)들이 장(狀)이 이어갈 때 모효(某孝)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진실로 군옥(君玉) 대인(大人)을
-위한 것이다. 소(倘所)에 운(云)하되 영지(靈芝)는 근본(根本)이 있고 예천(醴泉)은 근원(根源)이 있다는 것은 믿어+위한 것이다. 소(倘所)에 운(云)하되 영지(靈芝)는 근본(根本)이 있고 예천(醴泉)은 근원(根源)이 있다는 것은 믿어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은 깊이 심복(心服)한 말이다. 해가 무진(戊辰)에 선부군(先府君)의 춘추(春秋)가 이미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은 깊이 심복(心服)한 말이다. 해가 무진(戊辰)에 선부군(先府君)의 춘추(春秋)가 이미
-만90(九十)이나 군(君)이 7년(七年) 전(前)부터 조석(朝夕)으로 시봉(侍奉)하여 잠깐도 옆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만90(滿九十)이나 군(君)이 7년(七年) 전(前)부터 조석(朝夕)으로 시봉(侍奉)하여 잠깐도 옆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노병(老病)이 점점 더하여 멀리 떠나려 했으나 선부군(先府君)의 노병(老病)이 많이 위독(危篤)하지 아니함으로 노병(老病)이 점점 더하여 멀리 떠나려 했으나 선부군(先府君)의 노병(老病)이 많이 위독(危篤)하지 아니함으로
 마음에 항상(恒常) 개한(慨恨)하고 있다가 모(暮) 춘월(春月)에 병(病)이 조금 낳은 기색(氣色)이 있기로 서울에  마음에 항상(恒常) 개한(慨恨)하고 있다가 모(暮) 춘월(春月)에 병(病)이 조금 낳은 기색(氣色)이 있기로 서울에 
줄 123: 줄 123:
 선부군(先府君)께서 음식(食飮)을 전폐(全閉)하고 침연(沈然)히 병(病)을 얻어 이달 25일(二十五日)에 계부(繼父)를 이어  선부군(先府君)께서 음식(食飮)을 전폐(全閉)하고 침연(沈然)히 병(病)을 얻어 이달 25일(二十五日)에 계부(繼父)를 이어 
 돌아가시니 슬프고 슬프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이것이 무슨 정계(情界)야 세상이 영광(榮光)이 돌아가시니 슬프고 슬프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이것이 무슨 정계(情界)야 세상이 영광(榮光)이
-없고 또 화(禍)가 끝이 없이 참착(慘錯)한 일이 1(一)개월 내(內)에 자부효자(慈婦孝子) 외 혼(魂)이 슬픔을 머금고+없고 또 화(禍)가 끝이 없이 참착(慘錯)한 일이 1(一)개월 내(內)에 자부효자(慈婦孝子)의 혼(魂)이 슬픔을 머금고
 원병(冤病)함을 구천(九泉)앞에 끝나니 이 어찌 창창(蒼蒼)히 귀신(鬼神)이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있나. 원병(冤病)함을 구천(九泉)앞에 끝나니 이 어찌 창창(蒼蒼)히 귀신(鬼神)이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있나.
-슬프고 아프다 이날 9월(九月) 즉(即) 7월(七月) 경오(庚午)에 선부군(先府君)을 군북(郡北) 30리(三十里) 이전동(梨田洞) 부해(負亥)의 원(原)에+슬프고 아프다이날 9월(九月) 즉(即) 7월(七月) 경오(庚午)에 선부군(先府君)을 군북(郡北) 30리(三十里) 이전동(梨田洞) 부해(負亥)의 원(原)에
 양례(襄禮)를 지내고 20일(二十日) 계미(癸未)에 공(公)을 같은 동간일록(洞間一麓) 사이 사(巳)의 원(原)에 합폄(合窆)을 하니 양례(襄禮)를 지내고 20일(二十日) 계미(癸未)에 공(公)을 같은 동간일록(洞間一麓) 사이 사(巳)의 원(原)에 합폄(合窆)을 하니
 거리(距里)가 선부군(先府君) 유택(幽宅)과 겨우 수백보(數百步) 서로 망견(望見)한 땅이다. 천당(泉堂)에서 시봉(侍奉)한 낙(樂)이 사람이 사는 세상(世上)과 같음이 없는 즉 공(公)은 장차(將次) 효도(孝道)를 땅에 입지(入地)한 날까지 유명간(幽明間)에 거리(距里)가 선부군(先府君) 유택(幽宅)과 겨우 수백보(數百步) 서로 망견(望見)한 땅이다. 천당(泉堂)에서 시봉(侍奉)한 낙(樂)이 사람이 사는 세상(世上)과 같음이 없는 즉 공(公)은 장차(將次) 효도(孝道)를 땅에 입지(入地)한 날까지 유명간(幽明間)에
-가(可)히 위로(慰勞)한 자(者)이라. 공(公)의 전배(前配)는 행주전씨(幸州田氏)니 사인(士人) 휘(諱)는 홍옥(弘玉)의 여(女)니 선공(先公) 27년(二十七年)에 돌아가셔서 은장(恩墻)에 향(向)의 원(原)에 장(葬)하고 후배(後配) 울진장씨(蔚珍張氏)니 사인(士人) 휘(諱)는 동옥(東玉)의 여(女)니+가(可)히 위로(慰勞)한 자(者)이라. 공(公)의 전배(前配)는 행주전씨(幸州田氏)니 사인(士人) 휘(諱)는 홍옥(弘玉)의 여(女)니 선공(先公) 27년(二十七年)에 돌아가셔서 은장(恩墻)에 향(向)의 원(原)에 장(葬)하고후배(後配) 울진장씨(蔚珍張氏)니 사인(士人) 휘(諱)는 동옥(東玉)의 여(女)니
 선공(先公) 1월(一月)에 몰(歿)하여 공(公)과 더불어 동혈내(同穴內)에 같이 합장(合葬)을 하여 정량(貞亮)의 자태(姿態)가 서로 선공(先公) 1월(一月)에 몰(歿)하여 공(公)과 더불어 동혈내(同穴內)에 같이 합장(合葬)을 하여 정량(貞亮)의 자태(姿態)가 서로
  
-순비(純備)하고 곤의(𠆊儀)가 무감(無憾)하나 불행(不幸)히 무자(無子)하여 본생(本生) 재종형(再從兄) 상(瑺)의 제2자(第二子) 치홍(致弘)으로 사(嗣)하고 여(女)로 사인(士人) 이귀(李龜) 사인(士人) 장천익(張天翼)의 처(妻)는 전씨(田氏)에게 출(出)하다. 사인(士人) 이상기(李相箕) 처(妻)는 장씨(張氏)에게 출(出)하다. 치홍(致弘)은 무안(務安) 박진표(朴鎭標)의 여(女)에게 장가가서 1남(一男) 상유(尙幼)를 낳으셨고 이귀(李龜)는+순비(純備)하고 곤의(𠆊儀)가 무감(無憾)하나 불행(不幸)히 무자(無子)하여 본생(本生) 재종형(再從兄) 상(瑺)의 제2자(第二子) 치홍(致弘)으로 사(嗣)하고 여(女)로 사인(士人) 이귀(李龜) 사인(士人) 장천익(張天翼)의 처(妻)로 전씨(田氏)의 소생이다. 사인(士人) 이상기(李相箕) 처(妻)로 장씨(張氏)의 소생이다. 치홍(致弘)은 무안(務安) 박진표(朴鎭標)의 여(女)에게 장가가서 1남(一男)<fc #008080>인데 아직 어리</fc> 이귀(李龜)는
 무육(無育)하고 장천익(張天翼)은 3남(三男)이 있으나 다 어리다.\\ 무육(無育)하고 장천익(張天翼)은 3남(三男)이 있으나 다 어리다.\\
  
 \_슬프다 공(公)의 전(傳)하고 받는 일이 다 연원(淵源)이 있다. 어려서는 복재(復齋) 이공(李公) 춘룡(春龍)의 가르침을 받았고 성장(成長)해서는 백부(伯父) 천서옹(川西翁) 사하(師夏)공(公)의 도움을 받아 필경(畢境)에 이와 같이 \_슬프다 공(公)의 전(傳)하고 받는 일이 다 연원(淵源)이 있다. 어려서는 복재(復齋) 이공(李公) 춘룡(春龍)의 가르침을 받았고 성장(成長)해서는 백부(伯父) 천서옹(川西翁) 사하(師夏)공(公)의 도움을 받아 필경(畢境)에 이와 같이
-뜻을 양계(襄季)에 수립(樹立)하였으니 부자(夫子)가 이른바 노(魯)나라에 군자(君子)가 없다는 것이이며 +뜻을 양계(襄季)에 수립(樹立)하였으니 부자(夫子)가 이른바 노(魯)나라에 군자(君子)가 없다는 것이 곧 이것이며 
 이를 취(取)한 자(者) 정(政)이라 하셨으니 이는 공(公)을 두고 말한 것이다. 풍체(風体)가 수위(秀偉)하고 이를 취(取)한 자(者) 정(政)이라 하셨으니 이는 공(公)을 두고 말한 것이다. 풍체(風体)가 수위(秀偉)하고
 기력(氣力)이 건장(健壯)하며 또 성행(性行)이 고결(高潔)하여 향당(鄕黨)에서 논의(論議)하실 적에 남에게 질타하지 기력(氣力)이 건장(健壯)하며 또 성행(性行)이 고결(高潔)하여 향당(鄕黨)에서 논의(論議)하실 적에 남에게 질타하지
줄 145: 줄 145:
 특(特)히 독행(獨行)한 선비가 우리 국가(國家)의 사람들을 취(取)하고 모든 과목(科目)과 모든 법전(法典)을 수일(蒐逸)한 특(特)히 독행(獨行)한 선비가 우리 국가(國家)의 사람들을 취(取)하고 모든 과목(科目)과 모든 법전(法典)을 수일(蒐逸)한
 것이 멀리 보지 못함으로 선비들의 포부와 지행(志行)과 명예(名譽)가 매몰(埋沒)해서 무칭자(無稱者)가 손을 것이 멀리 보지 못함으로 선비들의 포부와 지행(志行)과 명예(名譽)가 매몰(埋沒)해서 무칭자(無稱者)가 손을
-헤아릴 수 없으니 이것에 가(可)히 탄식(嘆息)할 일이라 옛날에 천서공(川西公)의 효우(孝友)와 교행(交行)에 염근(廉謹)하고 순아(醇雅)한 것이 유림(儒林)의 중망(重望)으로서 졸연(卒然)히 이에 황(黃)의 명(命)을 봉호(蓬蒿)아래이다 +헤아릴 수 없으니 이것에 가(可)히 탄식(嘆息)할 일이라 옛날에 천서공(川西公)의 효우(孝友)와 교행(交行)에 염근(廉謹)하고 순아(醇雅)한 것이 유림(儒林)의 중망(重望)으로서 졸연(卒然)히 이에 황(黃)의 명(命)을 봉호(蓬蒿)아래이다 
 하였으니 공(公)의 출천지효성(出天之孝誠)과 고세(高世)의 행(行)과 회보(懷寶)와 은덕(隱德)을 매몰(埋沒)에 나타내지 아니하여 하였으니 공(公)의 출천지효성(出天之孝誠)과 고세(高世)의 행(行)과 회보(懷寶)와 은덕(隱德)을 매몰(埋沒)에 나타내지 아니하여
-초목(草木)을 더불어 같이 썩으니 가(可)히 아프고 가(可)히 아프다. 이제 치홍(致弘)의 소매에 감춘+초목(草木)을 더불어 같이 썩으니 가(可)히 아프고 가(可)히 아프다. \\ 
 + 
 +\_이제 치홍(致弘)의 소매에 감춘
 가장(家狀) 1통(一通)이 나에게 실기문자(實記文字)를 부탁(付託)함으로 나의 역량(力量)으로서는 감(敢)히 얻지 못하고 가장(家狀) 1통(一通)이 나에게 실기문자(實記文字)를 부탁(付託)함으로 나의 역량(力量)으로서는 감(敢)히 얻지 못하고
 원장(原狀)을 생각(生覺)하여 중략(中略) 그대로 적고 다음 세(世)에 지행(志行)을 위와 같이 당세(當世) 병필지사(秉筆之士)가 원장(原狀)을 생각(生覺)하여 중략(中略) 그대로 적고 다음 세(世)에 지행(志行)을 위와 같이 당세(當世) 병필지사(秉筆之士)가
b-057.1748688775.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31 19:52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