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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57 [2025/05/31 20:19] ssio2b-057 [2025/06/03 09:04]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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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ypo ff:'한양해서'; fs:1.2em> <typo ff:'한양해서'; fs:1.2em>
 \_**通德郞喜懼齋黃公行略**\\ \_**通德郞喜懼齋黃公行略**\\
-公諱琛字君玉姓黃氏黃爲其城著姓高麗侍中文節公諱瑞其遠祖也中世有諱汝+公諱琛字君玉姓黃氏黃爲其城著姓高麗侍中文節公諱瑞其遠祖也中世有諱汝
 一號海月\_宣廟射策登第以文章德業著名當世龍蛇之變以朝天書狀官隨白沙月沙\\ 一號海月\_宣廟射策登第以文章德業著名當世龍蛇之變以朝天書狀官隨白沙月沙\\
 上副价卞丁主事應泰之誣及還沉淪於冗散州郡卛官工曹參議歿後以翊戴勳 贈嘉 上副价卞丁主事應泰之誣及還沉淪於冗散州郡卛官工曹參議歿後以翊戴勳 贈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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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爲君王大人也<fc #ff0000>常</fc>所之靈芝有本醴泉有源者不其信然歟盖深服之語也歲戊辰先府 爲君王大人也<fc #ff0000>常</fc>所之靈芝有本醴泉有源者不其信然歟盖深服之語也歲戊辰先府
 君春秋已治滿九十矣君以望七之年侍奉朝夕暫不離側加以衰病浸尋勢難遠役而 君春秋已治滿九十矣君以望七之年侍奉朝夕暫不離側加以衰病浸尋勢難遠役而
-以先府君大陞資而未蒙實典心常慨恨乃於暮春之月扶病强作艱辛赴洛後數日+以先府君大陞資而未蒙實典心常慨恨乃於暮春之月扶病强作艱辛赴洛後數日
  
 往謁西銓金公履翼語及先府君壽職事金公見公儀表之端雅辤情之剴功爽然異之 往謁西銓金公履翼語及先府君壽職事金公見公儀表之端雅辤情之剴功爽然異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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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통덕랑(通德郞) 희구재(喜懼齋) 황공(黃公) 행략(行略)**\\ \_**통덕랑(通德郞) 희구재(喜懼齋) 황공(黃公) 행략(行略)**\\
 \_공(公)의 휘(諱)는 침(琛)이요 자(字)는 군옥(君玉)이라 성(姓)은 황씨(黃氏)니 황씨(黃氏)가 기성(箕城)에서 제일(第一)가는 성(姓)이라. \_공(公)의 휘(諱)는 침(琛)이요 자(字)는 군옥(君玉)이라 성(姓)은 황씨(黃氏)니 황씨(黃氏)가 기성(箕城)에서 제일(第一)가는 성(姓)이라.
-고려(高麗) 시중(侍中) 시()는 문절공(文節公)이요 휘(諱)는 서(瑞)니 그 원조(遠祖)라. 중세(中世)에 휘(諱)는 여일(汝一)이요 호(號)는+고려(高麗) 시중(侍中) 시()는 문절공(文節公)이요 휘(諱)는 서(瑞)니 그 원조(遠祖)라. 중세(中世)에 휘(諱)는 여일(汝一)이요 호(號)는
 해월(海月)이 있었으니 선조(宣祖) 때 활을 쏴서 과거(科擧)하였고 문장(文章)과 덕망(德望)으로서 이름을 나타냈으니  해월(海月)이 있었으니 선조(宣祖) 때 활을 쏴서 과거(科擧)하였고 문장(文章)과 덕망(德望)으로서 이름을 나타냈으니 
 당세(當世)에 전란(戰亂)으로 인(因)하여 조정(朝庭)에 글을 올려 벼슬이 백사(白沙)와 월사(月沙)에 따랐고 당세(當世)에 전란(戰亂)으로 인(因)하여 조정(朝庭)에 글을 올려 벼슬이 백사(白沙)와 월사(月沙)에 따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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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記)하고 아름답게 권장(勸奬)하고 약(略)해 가로대 모(某)를 보고 효자(孝子)라 아니할 자(者) 있으랴, 또 기(記)하고 아름답게 권장(勸奬)하고 약(略)해 가로대 모(某)를 보고 효자(孝子)라 아니할 자(者) 있으랴, 또
 군(郡) 중(中)의 인사(人士)들이 장(狀)이 이어갈 때 모효(某孝)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진실로 군옥(君玉) 대인(大人)을 군(郡) 중(中)의 인사(人士)들이 장(狀)이 이어갈 때 모효(某孝)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진실로 군옥(君玉) 대인(大人)을
-위한 것이다. 소(倘所)에 운(云)하되 영지(靈芝)는 근본(根本)이 있고 예천(醴泉)은 근원(根源)이 있다는 것은 믿어+위한 것이다. 소(倘所)에 운(云)하되 영지(靈芝)는 근본(根本)이 있고 예천(醴泉)은 근원(根源)이 있다는 것은 믿어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은 깊이 심복(心服)한 말이다. 해가 무진(戊辰)에 선부군(先府君)의 춘추(春秋)가 이미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은 깊이 심복(心服)한 말이다. 해가 무진(戊辰)에 선부군(先府君)의 춘추(春秋)가 이미
 만90(滿九十)이나 군(君)이 7년(七年) 전(前)부터 조석(朝夕)으로 시봉(侍奉)하여 잠깐도 옆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만90(滿九十)이나 군(君)이 7년(七年) 전(前)부터 조석(朝夕)으로 시봉(侍奉)하여 잠깐도 옆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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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공(先公) 1월(一月)에 몰(歿)하여 공(公)과 더불어 동혈내(同穴內)에 같이 합장(合葬)을 하여 정량(貞亮)의 자태(姿態)가 서로 선공(先公) 1월(一月)에 몰(歿)하여 공(公)과 더불어 동혈내(同穴內)에 같이 합장(合葬)을 하여 정량(貞亮)의 자태(姿態)가 서로
  
-순비(純備)하고 곤의(𠆊儀)가 무감(無憾)하나 불행(不幸)히 무자(無子)하여 본생(本生) 재종형(再從兄) 상(瑺)의 제2자(第二子) 치홍(致弘)으로 사(嗣)하고 여(女)로 사인(士人) 이귀(李龜熽) 사인(士人) 장천익(張天翼)의 처(妻)는 전씨(田氏)의 소생이다. 사인(士人) 이상기(李相箕) 처(妻)는 장씨(張氏)의 소생이다. 치홍(致弘)은 무안(務安) 박진표(朴鎭標)의 여(女)에게 장가가서 1남(一男) 상유(尙幼)를 낳으셨고 이귀(李龜熽)는+순비(純備)하고 곤의(𠆊儀)가 무감(無憾)하나 불행(不幸)히 무자(無子)하여 본생(本生) 재종형(再從兄) 상(瑺)의 제2자(第二子) 치홍(致弘)으로 사(嗣)하고 여(女)로 사인(士人) 이귀(李龜熽) 사인(士人) 장천익(張天翼)의 처(妻)로 전씨(田氏)의 소생이다. 사인(士人) 이상기(李相箕) 처(妻)로 장씨(張氏)의 소생이다. 치홍(致弘)은 무안(務安) 박진표(朴鎭標)의 여(女)에게 장가가서 1남(一男)<fc #008080>인데 아직 어리</fc> 이귀(李龜熽)는
 무육(無育)하고 장천익(張天翼)은 3남(三男)이 있으나 다 어리다.\\ 무육(無育)하고 장천익(張天翼)은 3남(三男)이 있으나 다 어리다.\\
  
b-057.1748690363.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31 20:19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