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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75 [2025/05/26 12:13] ssio2b-075 [2025/06/07 07:20]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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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현령보강황공묘갈명(文義縣令寶岡黃公墓碣銘) +===문의현령보강황공묘갈명(文義縣令寶岡黃公墓碣銘)=== 
- +<WRAP 37em justify><hidden \_한문 원문 보기> 
-文義縣令寶岡黃公墓碣銘 +<typo ff:'한양해서'; fs:1.2em> 
-公姓黃氏諱永河初諱河字聖運號寶岡其先羅時漢學士公洛始來平海+\_**文義縣令寶岡黃公墓碣銘**\\ 
 +公姓黃氏諱永河初諱河字聖運號寶岡其先羅時漢學士公洛始來平海
 仍貫焉至高麗太子檢校金吾將軍諱溫仁爲起世祖也諱佑精軍器少尹諱 仍貫焉至高麗太子檢校金吾將軍諱溫仁爲起世祖也諱佑精軍器少尹諱
-裕中門下侍中自後偉功碩德代不書入 國朝高祖應淸號大海進士以 +裕中門下侍中自後偉功碩德代不書入\_國朝高祖應淸號大海進士以 
-孝旌閭 除眞寶縣監享明溪書院曾祖居一號明溪 贈工曹參議祖中信 +孝旌閭\_除眞寶縣監享明溪書院曾祖居一號明溪\_贈工曹參議祖中信 
-號魯庵生員遊旅軒張顯光門丙子倡義事載永陽四難錄及邑志考號竹 +號魯庵生員遊旅軒張顯光門丙子倡義事載永陽四難錄及邑志考𨬔號竹 
-覽仁祖丙子生員除順陵參奉庚辰別試文科司諫 廟庚申特贈 +\_仁祖丙子生員\_除順陵參奉庚辰別試文科司諫\_肅廟庚申特\_贈 
-資憲大夫吏曹判書妣 贈貞夫人全州崔氏 贈禮曹參判慶九女生考鏸 +資憲大夫吏曹判書妣\_贈貞夫人全州崔氏\_贈禮曹參判慶九女生考鏸 
-丁卯倡義生庭妣月城李氏公生于光海辛酉嗣伯考后進士丙戌別試文 +丁卯倡義生庭妣月城李氏公生于光海辛酉嗣伯考𨬔后進士丙戌別試文 
-科修撰通訓大夫文義縣令卒宗丙寅三月初七日享年六十六墓華北竹 +科修撰通訓大夫文義縣令卒宗丙寅三月初七日享年六十六墓華北竹 
-立洞木口郞谷左便中峯庚坐配淑人淸風金氏 贈右議政溝女生己未卒 +立洞木口郞谷左便中峯庚坐配淑人淸風金氏\_贈右議政溝女生己未卒 
-甲子十二月十三日享年六十六墓下男壽吉號淸齋進士 除淸州牧使+甲子十二月十三日享年六十六墓下男壽吉號淸齋進士\_除淸州牧使
 孫仁默通德郞曾孫運東號竹林通訓大夫永陵令運南運成運東男致萬致 孫仁默通德郞曾孫運東號竹林通訓大夫永陵令運南運成運東男致萬致
 寬致發運南男致述字錫允號丹谷通德郞明陵參奉運成男致進以下不錄 寬致發運南男致述字錫允號丹谷通德郞明陵參奉運成男致進以下不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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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孫之懇誠觀於譜牒所載世系及官階他不敢撰述而箕庵金公獻周撰竹覽 孫之懇誠觀於譜牒所載世系及官階他不敢撰述而箕庵金公獻周撰竹覽
 公行狀證信爲之以銘曰平海長江大河日瀧惟忠以孝詩禮文窓羅歷鮮及 公行狀證信爲之以銘曰平海長江大河日瀧惟忠以孝詩禮文窓羅歷鮮及
-簪纓旭邦慈孫盛都慕祖誠腔刻石于墓芳香陟降 +簪纓旭邦慈孫盛都慕祖誠腔刻石于墓芳香陟降\\ 
-乙酉光復後己未十月晦成均館典學光州盧漢容謹撰 +\_\_乙酉光復後己未十月晦成均館典學光州盧漢容謹撰 
-문의현령(文義縣令) 보강(寶岡) 황공(黃公)의 묘갈명(墓碣銘) +</typo> 
-공(公)의 성(姓)은 황씨(黃氏)요 휘(諱)는 영하(永河)이나 처음 휘(諱)는 계 +</hidden> 
-하(河)였으며 자(字)는 성운(聖運)이요 호(號)는 보강(寶岡)이니 그이 선대 +\\ 
-(先代)는 신라때에 중국(中國) 한(漢)나라의 학사공(學士公)인 휘(諱) 락 +<typo ff:'바탕'; fs:1em; lh:1.5em> 
-(洛)이 처음 평해(平海)에 왔기 때문에 평해(平海)를 관향(貫鄕)으로 하였다.+\_**문의현령(文義縣令) 보강(寶岡) 황공(黃公)의 묘갈명(墓碣銘)**\\ 
 +\_공(公)의 성(姓)은 황씨(黃氏)요 휘(諱)는 영하(永河)이나 처음 휘(諱)는 계하(河)였으며  
 +자(字)는 성운(聖運)이요 호(號)는 보강(寶岡)이니 그의 선대(先代)는  
 +신라 때에 중국(中國) 한(漢)나라의 학사공(學士公)인 휘(諱) (洛)이  
 +처음 평해(平海)에 왔기 때문에 평해(平海)를 관향(貫鄕)으로 하였다.
 고려조(高麗朝)에 이르러 벼슬이 태자검교(太子檢校) 금오장군(金吾將軍)이었던 고려조(高麗朝)에 이르러 벼슬이 태자검교(太子檢校) 금오장군(金吾將軍)이었던
-휘(諱) 온인(溫仁)이 세대(世代)를 기산(起算)하는 선조(先祖)이다. +휘(諱) 온인(溫仁)이 세대(世代)를 기산(起算)하는 선조(先祖)이다.\\ 
-휘(諱) 우정(友情)의 벼슬이 군기소윤(軍器少尹)이고 휘(諱) 유(裕中)은 벼+ 
 +\_휘(諱) 우정(友情)의 벼슬이 군기소윤(軍器少尹)이고 휘(諱) 유(裕中)은 벼
 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이며 이 후로는 위대한 공훈(功勳)과 높은 덕망(德望)이 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이며 이 후로는 위대한 공훈(功勳)과 높은 덕망(德望)이
  
-있는 분이 대대로 끊이지 않았으며 이씨조선(李氏朝鮮)에 들어와서 고조부(高 +있는 분이 대대로 끊이지 않았으며 이씨조선(李氏朝鮮)에 들어와서 고조부(高祖父)인  
-祖父)인 응청(應淸)은 호가 대해(大海)이며 진사(進士)로서 효행(孝行) 때문에 +응청(應淸)은 호가 대해(大海)이며 진사(進士)로서 효행(孝行) 때문에 
-정려(旌閭)가 내려지고 진보현감(眞寶縣監)이 제수되었으며 명계서원(明溪書 +정려(旌閭)가 내려지고 진보현감(眞寶縣監)이 제수되었으며 명계서원(明溪書院)에  
-院)에 제향되고 있다. 증조(曾祖)의 휘는 거일(居一)이니 호(號)는 명계(明 +제향되고 있다. 증조(曾祖)의 휘는 거일(居一)이니 호(號)는 명계(明溪)이며  
-溪)이며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직(贈職)되었고 조부(祖父)의 휘(諱)는 중신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직(贈職)되었고 조부(祖父)의 휘(諱)는 중신(中信)이니  
-(中信)이니 호(號)는 노암(魯庵)이며 생원(生員)으로서 여헌(旅軒) 장현광(張 +호(號)는 노암(魯庵)이며 생원(生員)으로서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  
-顯光)의 문하에 유학하였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 의병(義兵)을 일으킨 사 +유학하였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 의병(義兵)을 일으킨 사실은  
-실은 영양사난록(永陽四難錄)과 군지(郡誌)에 실려 있다. +영양사난록(永陽四難錄)과 군지(郡誌)에 실려 있다.\\ 
-아버지의 휘(諱)는 ()이며 호는 죽(竹覽)이니 인조(仁祖) 十四년 병자 + 
-(一六三六)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순릉참봉(順陵參奉)에 제수(除授)되 +\_아버지의 휘(諱)는 (𨬔)이며 호는 죽(竹覽)이니 인조(仁祖) 14(十四)년  
-었으며 경진년(一六四○)에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사간(司諫)벼 +병자(1636(一六三六))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순릉참봉(順陵參奉)에  
-슬에 올으고 숙종(肅宗) 六년 경신(一六八〇)에 특별히 자헌대부(資憲大夫)의 +제수(除授)되었으며 경진년(1640(一六四○))에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품계(品階)로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되었다. +사간(司諫) 벼슬에 오르고 숙종(肅宗) 6()년 경신(1680(一六八〇))에 특별히 자헌대부(資憲大夫)의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에 증직(贈職)된 전주최씨(全州崔氏)이니 예조참판(禮 +품계(品階)로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되었다.\\ 
-曹參判)에 증직(贈職)된 경구(慶九)의 따님이며 생부(生父)인 혜()는 정묘 + 
-재란(丁卯再亂) 때에 의병(義兵)을 일으켰고 생가(生家)의 어머니는 월성이씨 +\_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에 증직(贈職)된 전주최씨(全州崔氏)이니  
-(月城李氏)이다. 공(公)이 광해(光海) 十三년 신유(辛酉)(一六二一)에 출생+예조참판(禮曹參判)에 증직(贈職)된 경구(慶九)의 따님이며 생부(生父)인 혜()는  
 +정묘재란(丁卯再亂) 때에 의병(義兵)을 일으켰고 생가(生家)의 어머니는 월성이씨(月城李氏)이다.  
 +공(公)이 광해(光海) 13(十三)년 신유(辛酉)(1621(一六二一))에 출생하여  
 +백부(伯父)인 연(𨬔)의 후사(後嗣)로 입계(入系)했으며 진사(進士)로서 
 +병술년(丙戌年)(1675(一六七五))에 별시(別試)의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수찬(修撰)에 올랐다가 통훈대부(通訓大夫)의 품계로 문의현령(文義縣令)이  
 +제수되었다. 숙종(肅宗) 12(十二)년 갑인(甲寅)(1686(一六八六)) 3(三)월 7(七)일에  
 +향년 66(六十六)세로 졸(卒)했으며 묘는 화북(華北) 죽립동(竹立洞)의 목구랑곡(木口郞谷)의 
 +왼편 중봉(中峯)의 경좌(庚坐)에 있다.\\
  
-하여 백부(伯父)인 윤(鋼)의 후사(後嗣)로 입계(入系)했으며 진사(進士)로서 +\_배위(配位)는 숙부인(淑夫人)인 청풍김씨(淸風金氏)로서 우의정(右議政)에  
-병술년(丙戌年)(一六七五)에 별시(別試)의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수 +직(贈職)된 구(溝)의 따님이며 기미년에 출생하고 갑자년 12(十二)月 13(十三)일에  
-찬(修撰)에 올랐다가 통훈대부(通訓大夫)의 품계로 문의현령(文義縣令)이 제 +(卒)하니 향년이 66(六十六)세였으며 묘는 공(公)의 묘 아래에 부장(葬)되었다. 
-수되었다. 숙종(肅宗) 十二년 갑인(甲寅)(一六八六) 三월 七일에 향년 六十 +아들 수길(壽吉)은 호(號)가 청재(淸齋)이며 진사(進士)로서 청주목사(淸州牧使)에  
-六세로 졸(卒)했으며 묘는 화북(華北) 죽립동(竹立洞)의 목구랑곡(木口郞谷)의 +제수되었고 손자 인묵(仁默)은 통덕랑(通德郞)이며 증손(曾孫)인 운동(運東)은  
-왼편 중봉(中峯)의 경좌(庚坐)에 있다. +호가 죽림(竹林)이니 통훈대부(通訓大夫)의 품계(品階)로 영릉현령(永陵縣令)이었으며  
-배위(配位)는 숙부인(淑夫人)인 청풍김씨(淸風金氏)로서 우의정(右議政)에  +다음은 운남(運南)과 운성(運成)이다. 운동(運東)의 아들은 치만(致萬)과  
-직(贈職)된 구(溝)의 따님이며 기미년에 출생하고 갑자년 十二月 十三일에  +치관(致寬)과 치발(致發)이며 운남(運南)의 아들은 치술(致述)이고 자(字)는  
-(卒)하니 향년이 六十六세였으며 묘는 공(公)의 묘 아래에 부장(葬)되었다. +석윤(錫允)이며 호(號)는 단곡(丹谷)이다 통덕랑(通德)의
-아들 수길(壽吉)은 호(號)가 청재(淸齋)이며 진사(進士)로서 청주목사(淸州牧 +
-使)에 제수되었고 손자 인묵(仁默)은 통덕랑(通德郞)이며 증손(曾孫)인 운동 +
-(運東)은 호가 죽림(竹林)이니 통훈대부(通訓大夫)의 품계(品階)로 영릉현령 +
-(永陵縣令)이었으며 다음은 운남(運南)과 운성(運成)이다. 운동(運東)의 아 +
-들은 치만(致萬)과 치관(致寬)과 치발(致發)이며 운남(運南)의 아들은 치술(致 +
-述)이고 자(字)는 석윤(錫允)이며 호(號)는 단곡(丹谷)이다 통덕랑(通德)의+
 품계(品階)로 명릉참봉(明陵參奉)에 제수(除授)되었다. 운성(運成)의 아들은 품계(品階)로 명릉참봉(明陵參奉)에 제수(除授)되었다. 운성(運成)의 아들은
-치진(致進)이며 그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치진(致進)이며 그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공(公)의 떳떳했던 행적(行蹟)은 마땅히 후세에 전해져야 될 것인데 병화(兵火)를+\_공(公)의 떳떳했던 행적(行蹟)은 마땅히 후세에 전해져야 될 것인데 병화(兵火)를
 여러번 겪어서 한 글자도 구(救)해 내지 못했으니 어찌 기송(杞宋)의 탄식이 여러번 겪어서 한 글자도 구(救)해 내지 못했으니 어찌 기송(杞宋)의 탄식이
-아니겠는가 후손(後孫)만수(萬洙)씨와 두환(斗煥)씨와 세대(世代)가 더 멀어 +아니겠는가후손(後孫) 만수(萬洙)씨와 두환(斗煥)씨와 세대(世代)가 더  
-지면 증거를 밝히기 어려울까 두려워서 비석(碑石)을 세우기로 합의하고 문중의+멀어지면 증거를 밝히기 어려울까 두려워서 비석(碑石)을 세우기로 합의하고 문중의
 공의(公議)에 따라 나를 찾아와서 묘갈명(墓碣銘)을 부탁하는데 내가 말이 가볍고 공의(公議)에 따라 나를 찾아와서 묘갈명(墓碣銘)을 부탁하는데 내가 말이 가볍고
 글이 짧아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지만 그 어진 후손의 간곡한 정성에 감동되어 글이 짧아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지만 그 어진 후손의 간곡한 정성에 감동되어
-보첩(譜牒)에 실려 있는 세계(世系)와 벼슬의 품계(品階)를 보고 감히 찬술(撰 +보첩(譜牒)에 실려 있는 세계(世系)와 벼슬의 품계(品階)를 보고 감히  
-述)은 못되지만 기암김공(箕庵金公)헌주(獻周)가 지은 죽공(竹覽公)의  +찬술(撰述)은 못되지만 기암(箕庵) 김공(金公) 헌주(獻周)가 지은 죽공(竹覽公)의  
-장(行狀)을 증거로 믿어 명(銘)을 말하노니 평해(平海)의 긴 강(江)이 대하(大 +장(行狀)을 증거로 믿어 명(銘)을 말하노니 \\ 
-河)가 되어 날로 여울져 흐른다. +平海長江 평해(平海)의 긴 강(江)이 \\ 
-오직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니 시례(詩禮)의 글을 하는 가문이로다. +大河日瀧 대하(大河)가 되어 날로 여울져 흐른다.\\ 
-신라(新羅)를 비롯하여 조선조에 이르도록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나라를 빛내 +惟忠以孝 오직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니 \\ 
-었다. 자애(慈愛)로운 후손이 번성하여서 선조를 빛내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詩禮文窓 시례(詩禮)의 글을 하는 가문이로다.\\ 
-묘도(墓道)에 비(碑)를 새겨 세우니 꽃다운 향기에 혼령이 오르내리리라 +羅歷鮮及 신라(新羅)를 비롯하여 조선조에 이르도록 \\ 
-을유(乙酉)년(一九四五) 광복된 뒤 기미년(己未年)(一九七九)十月 그믐날 +簪纓旭邦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나라를 빛내었다. \\ 
-성균관(成均館)의 전학(典學) 광주(光州) 노한용(盧漢容) 삼가 짓다. +慈孫盛都 자애(慈愛)로운 후손이 번성하여서 \\ 
-註一。杞宋: 文獻이 없어서 밝히기 어렵다는 뜻.+慕祖誠腔 선조를 빛내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刻石于墓 묘도(墓道)에 비(碑)를 새겨 세우니 \\ 
 +芳香陟降 꽃다운 향기에 혼령이 오르내리리라.\\ 
 +\\ 
 +\_\_을유(乙酉)년(1945(一九四五)) 광복된 뒤 기미년(己未年)(1979(一九七九)) 10월(十月그믐날 
 +성균관(成均館)의 전학(典學) 광주(光州) 노한용(盧漢容) 삼가 짓다.\\ 
 +\\ 
 +<WRAP subnote> 
 +주1. 기송(杞宋)문헌(文獻)이 없어서 밝히기 어렵다는 뜻. 
 +</WRAP> 
 +</typo> 
 +</WRAP>
b-075.1748229190.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6 12:13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