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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90 [2025/06/02 20:35] ssio2b-090 [2025/06/03 08:58]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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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덕랑희구재황공묘갈략(通德郞喜懼齋黃公墓碣銘) 통덕랑희구재황공묘갈략(通德郞喜懼齋黃公墓碣銘)
-<WRAP 37em justify><hidden \_한문 원문 보기> +<WRAP 38em justify><hidden \_한문 원문 보기> 
-<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typo ff:'한양해서'; fs:1.1em; lh:1.5em>
 \_**通德郞喜懼齋黃公墓碣銘**\\ \_**通德郞喜懼齋黃公墓碣銘**\\
-余過箕城之溫泉竊歎夫黃孝子吮痰斷指事訪喜懼齋於沙洞有二老然在堂六十+余過箕城之溫泉竊歎夫黃孝子吮痰斷指事訪喜懼齋於沙洞有二老然在堂六十
 翁爲九十翁從傍附耳語每事輒白以聞而娛戲若嬰兒狀余服其獨全父子之樂且以 翁爲九十翁從傍附耳語每事輒白以聞而娛戲若嬰兒狀余服其獨全父子之樂且以
-爲黃氏之門多篤行人也今其孤致泓氏欲公幽隧示余以事狀一通大畧是前所見+爲黃氏之門多篤行人也今其孤致泓氏欲公幽隧示余以事狀一通大畧是前所見
 聞者其可敬而可書也已謹按狀公諱琛字君玉後改諱有仁幼而風貌端潔天資穎敏 聞者其可敬而可書也已謹按狀公諱琛字君玉後改諱有仁幼而風貌端潔天資穎敏
-愛親之心發乎天性及長做功今屢占解額常應擧赴京有一官八以利若與某人+愛親之心發乎天性及長做功今屢占解額常應擧赴京有一官八<fc #ff0000>啗</fc>以利若與某人
 同場高科必得公却之曰窮達在天吾不爲也又常赴試作戴星行終身廢學養親之外 同場高科必得公却之曰窮達在天吾不爲也又常赴試作戴星行終身廢學養親之外
-了不遑他事父同樞公晩享期頤之壽而便身適口無不畢給粥熟鮮黔突籍席不使+了不遑他事父同樞公晩享期頤之壽而便身適口無不畢給粥熟鮮黔突籍席不使
 子弟婢僕代之先妣墓所在十里外遂月具酒饌執灑掃以爲常雖風雨不避也今上戊 子弟婢僕代之先妣墓所在十里外遂月具酒饌執灑掃以爲常雖風雨不避也今上戊
 辰同樞公蒙者壽恩公力疾入都下奉出樞御三世貤恩皆公誠力所及也不幸壽觴未 辰同樞公蒙者壽恩公力疾入都下奉出樞御三世貤恩皆公誠力所及也不幸壽觴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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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道無親常與善八如公可謂善人者非耶俄頃之間一榮一悴何其倚伏之無門也距其 道無親常與善八如公可謂善人者非耶俄頃之間一榮一悴何其倚伏之無門也距其
 生元陵丁卯八月二日享年六十二葬于細柄洞直巳原前配幸州田氏弘玉女端莊貞 生元陵丁卯八月二日享年六十二葬于細柄洞直巳原前配幸州田氏弘玉女端莊貞
-淑先公二十八年而歿葬于郡北池下向巽之原繼配蔚珍張氏東玉女君子協尊章 +淑先公二十八年而歿葬于郡北池下向巽之原繼配蔚珍張氏東玉女<fc #ff0000>𣝳</fc>君子協尊章 
-無違德墓與公同原臺擴公有嗣子致泓即乞銘者三女長適李龜次適張天翼田氏+無違德墓與公同原<fc #ff0000></fc>擴公有嗣子致泓即乞銘者三女長適李龜次適張天翼田氏
 出季適李相器張氏出也致泓有一男錫九三女長適權世銓次適朴鎭奎季適白熹運 出季適李相器張氏出也致泓有一男錫九三女長適權世銓次適朴鎭奎季適白熹運
-李龜無子張天翼有三男一女男錫維錫紀錫絃女適黃厚淵李相器二男一女男學+李龜無子張天翼有三男一女男錫維錫紀錫絃女適黃厚淵李相器二男一女男學
 榮餘幼黃氏貫平海其鼻祖洛以中朝學士泛海而東因居海上高麗時有諱瑞官侍中 榮餘幼黃氏貫平海其鼻祖洛以中朝學士泛海而東因居海上高麗時有諱瑞官侍中
-諡文節我朝七代祖諱應澄判決事號滄洲六代祖諱汝一號海月官至參議以翊戴+諡文節我朝七代祖諱應澄判決事號滄洲六代祖諱汝一號海月官至參議以翊戴
 勳贈小宰與叔父大海先生享于明溪院五代祖諱中憲宣敎郞高祖諱石平贈司僕寺 勳贈小宰與叔父大海先生享于明溪院五代祖諱中憲宣敎郞高祖諱石平贈司僕寺
-正曾祖諱塾贈左承旨號龜臺高祖諱世元贈參判考有諱受夏孝友行以大受同樞+正曾祖諱塾贈左承旨號龜臺高祖諱世元贈參判考有諱受夏孝友行以大受同樞
 以上追榮咸以公壽典也妣安東權氏萬濟女繼妣野城尹氏徵三女俱贈貞夫人公繼 以上追榮咸以公壽典也妣安東權氏萬濟女繼妣野城尹氏徵三女俱贈貞夫人公繼
-妣出也公生于海邦交家儀表之秀詞翰之膽不以蓬累而行而據義守正屏絶徼臨+妣出也公生于海邦交家儀表之秀詞翰之膽不以蓬累而行而據義守正屏絶徼臨
 試丁憂早廢科目進取不苟竟老一布衣又能圖壽牒於榮親而恩未宣於生前亦足悲 試丁憂早廢科目進取不苟竟老一布衣又能圖壽牒於榮親而恩未宣於生前亦足悲
 夫雖然行著于鄕搢紳大夫之佩郡符者一見而多愛慕焉洪尙書秀輔知郡時累致禮 夫雖然行著于鄕搢紳大夫之佩郡符者一見而多愛慕焉洪尙書秀輔知郡時累致禮
-款若陳之待孺子齋名喜懼公之晩年所扁而出於愛日之意也權學士嘉其志而+款若陳<fc #ff0000>𦐇</fc>之待孺子齋名喜懼公之晩年所扁而出於愛日之意也權學士嘉其志而
 爲之記云銘曰\\ 爲之記云銘曰\\
 敏於文而不逐逐於得喪敦於行而恒層層於孝養嗟哉黃公其董生老菜子出倫乎然 敏於文而不逐逐於得喪敦於行而恒層層於孝養嗟哉黃公其董生老菜子出倫乎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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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ypo ff:'바탕'; fs:1em; lh:1.5em> <typo ff:'바탕'; fs:1em; lh:1.5em>
 \_**통덕랑(通德郞) 희구재(喜懼齋) 황공(黃公) 묘갈명(墓碣銘)**\\ \_**통덕랑(通德郞) 희구재(喜懼齋) 황공(黃公) 묘갈명(墓碣銘)**\\
-\_내가 기성(箕城)의 온천(溫泉)을 지낼 적에 간절히 황효자(黃孝子)가 헐미를 빨고 단지(斷指)했다는 +\_내가 기성(箕城)의 온천(溫泉)을 지나갈 적에 간절히 황효자(黃孝子)가 가래를 빨고 단지(斷指)했다는 
-말을 들고 희구재(喜懼齋)를 찾아 사동(沙銅)에 2로(二老)가 然히 마루에 있는 60옹(六十翁)이 90옹(九十翁)을 +말을 들고 희구재(喜懼齋)를 찾았더니, 사동(沙銅)에 2로(二老)가 번연(畨)히 마루에 있는 60옹(六十翁)이 90옹(九十翁)을 
-종방(從傍)하여 귀에 대여서 말하고 매사(每事)를 사주고 들이여 오희(娛戲)를 구아장(瞿兒狀)과 같이 함으로 +종방(從傍)하여 귀에 대고 말하고 매사(每事)를 사주고 들이여 오희(娛戲)를 구아장(瞿兒狀)과 같이 함으로 
-내가 그 독전(獨全)하는 부자(父子)의 낙(樂)에 복종(服從)하고또 황씨(黃氏)의 문(門)으로서 독행(篤行)한 사람이+내가 그 독전(獨全)하는 부자(父子)의 낙(樂)에 복종(服從)하고또 황씨(黃氏)의 문(門)으로서 독행(篤行)한 사람이
 많다. 이제 그 고(孤) 치홍(致泓)씨가 공(公)의 유덕(幽德)의 빛난 것을 나에게 보이고 그 사장(事狀) 1통(一通)을 많다. 이제 그 고(孤) 치홍(致泓)씨가 공(公)의 유덕(幽德)의 빛난 것을 나에게 보이고 그 사장(事狀) 1통(一通)을
 대략(大略) 말하니 이것이 다 앞에서 들은 바다. 그 가(可)히 공경(恭敬)하고 가(可)히 쓴 바라. 삼가히 대략(大略) 말하니 이것이 다 앞에서 들은 바다. 그 가(可)히 공경(恭敬)하고 가(可)히 쓴 바라. 삼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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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하고, 또 선비(先妣)의 묘소(墓所)가 10리(十里) 밖에 있으나 월(月)에 한번씩 주찬(酒饌)을 갖추어 항상 아니하고, 또 선비(先妣)의 묘소(墓所)가 10리(十里) 밖에 있으나 월(月)에 한번씩 주찬(酒饌)을 갖추어 항상
  
-묘소(墓所)를 쇄(灑)하는 데는 풍(風)를 불피(不避)하더라. 금상(今上)(: 지금 임금) 무진(戊辰)에 동추공(同樞公)이 질수(壽)(: 80세)를 당(當)하여+묘소(墓所)를 쇄(灑)하는 데는 풍(風)를 불피(不避)하더라. 금상(今上)(: 지금 임금) 무진(戊辰)에 동추공(同樞公)이 질수(壽)(: 80세)를 당(當)하여
 공(公)의 힘으로 도하(都下)가 추어삼세(樞御三世)를 봉출(奉出)하니 은혜(恩惠)가 다 공(公)의 성력(誠力)에 미친 바다. 공(公)의 힘으로 도하(都下)가 추어삼세(樞御三世)를 봉출(奉出)하니 은혜(恩惠)가 다 공(公)의 성력(誠力)에 미친 바다.
 불행(不幸)이도 수상(壽觴)을 들지 못하고, 이해 5월(五月) 장공인(張恭人)이 병(病)으로서 일어나지 못하고 불행(不幸)이도 수상(壽觴)을 들지 못하고, 이해 5월(五月) 장공인(張恭人)이 병(病)으로서 일어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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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친(無親)에 항상 선인(善人)을 공(公)과 같이하니 가(可)히 선인(善人)이 아닐순가. 적은듯한 사이에 무친(無親)에 항상 선인(善人)을 공(公)과 같이하니 가(可)히 선인(善人)이 아닐순가. 적은듯한 사이에
 1영(一榮)하고 1췌(一悴)한 것이 가(可)히 믿어 할 바 못 되는구나. 그 생(生)이 원릉(元陵) 정묘(丁卯)  1영(一榮)하고 1췌(一悴)한 것이 가(可)히 믿어 할 바 못 되는구나. 그 생(生)이 원릉(元陵) 정묘(丁卯) 
-8월(八月) 2일(二日)이시고 향년(享年)이 62(六十二)라. 세병동(細柄洞) 사원(直巳原)에 장사(葬事)하다.+8월(八月) 2일(二日)이시고 향년(享年)이 62(六十二)라. 세병동(細柄洞) 사원(直巳原)에 장사(葬事)하다.
 전배(前配)는 행주전씨(幸州田氏)니 홍옥(弘玉)의 전배(前配)는 행주전씨(幸州田氏)니 홍옥(弘玉)의
 여(女)라, 단장정숙(端莊貞淑)하다. 선공(先公) 28년(二十八年)에 몰(歿)하셔서 군북지(郡北池) 하향(下向) 손좌(巽坐)의 원(原)에 장사(葬事)하다. 여(女)라, 단장정숙(端莊貞淑)하다. 선공(先公) 28년(二十八年)에 몰(歿)하셔서 군북지(郡北池) 하향(下向) 손좌(巽坐)의 원(原)에 장사(葬事)하다.
 계배(繼配)는 울진장씨(蔚珍張氏)니 동옥(東玉)의 여(女)라. 군자(君子)의 협존(協尊)과 미덕(美德)이 있었다. 묘(墓)는 공(公)과 계배(繼配)는 울진장씨(蔚珍張氏)니 동옥(東玉)의 여(女)라. 군자(君子)의 협존(協尊)과 미덕(美德)이 있었다. 묘(墓)는 공(公)과
-원(原) 이광(異壙)이시다. 사자(嗣子) 치홍(致泓)은 곧 명(銘)을 걸(乞)한 자(者)라. 3녀(三女)로 장(長)에 적(適) 이귀소(李龜)하고 차(次)는 적(適) 장천익(張天翼)으로 전씨(田氏) 소생이고, 계(季)는 적(適) 이병기(李柄器)로 장씨(張氏) 소생이다. 치홍(致泓)이 1남(一男) 석구(錫九)와 3녀(三女)로 장녀(長女)는 적(適) 권세전(權世銓),  +원(原) 이광(異壙)이시다. \\ 
-차(次) 적(適) 박진규(朴鎭奎), 계(季) 적(適) 백희운(白憙運)이다. 이귀소(李龜)은 무자(無子)하고 장천익(張天翼)은 3남1녀(三男一女)가 있으니 남(男)에+ 
 +\_사자(嗣子) 치홍(致泓)은 곧 명(銘)을 걸(乞)한 자(者)라. 3녀(三女)로 장(長)에 적(適) 이귀소(李龜)하고 차(次)는 적(適) 장천익(張天翼)으로 전씨(田氏) 소생이고, 계(季)는 적(適) 이병기(李柄器)로 장씨(張氏) 소생이다. 치홍(致泓)이 1남(一男) 석구(錫九)와 3녀(三女)로 장녀(長女)는 적(適) 권세전(權世銓),  
 +차(次) 적(適) 박진규(朴鎭奎), 계(季) 적(適) 백희운(白憙運)이다. 이귀소(李龜)은 무자(無子)하고 장천익(張天翼)은 3남1녀(三男一女)가 있으니 남(男)에
 석유(錫維), 석기(錫紀), 석현(錫絃)이요 여(女) 적(適) 황후연(黃厚淵)이고, 이상기(李相器)는 2남1녀(二男一女)가 있으니 남(男)에 학영(學榮)이고, 나머지는 석유(錫維), 석기(錫紀), 석현(錫絃)이요 여(女) 적(適) 황후연(黃厚淵)이고, 이상기(李相器)는 2남1녀(二男一女)가 있으니 남(男)에 학영(學榮)이고, 나머지는
-유(幼)라. 황씨(黃氏)의 관(貫)은 평해(平海)니 그 비조(鼻祖) 낙(洛)이니 중조(中朝)에 학사공(學士公)이 바다에 떠서 동(東)쪽 바다로 +유(幼)라. \\ 
-오셔서 거(居)하였다. 고려(高麗) 때 휘(諱)는 서(瑞)가 있어 벼슬이 시중(侍中)이고 시(諡)은 문절(文節)이라 아조(我朝)에+ 
 +\_황씨(黃氏)의 관(貫)은 평해(平海)니 그 비조(鼻祖) 낙(洛)이니 중조(中朝)에 학사공(學士公)이 바다에 떠서 동(東)쪽 바다로 
 +오셔서 거(居)하였다. 고려(高麗) 때 휘(諱) 서(瑞)가 있어 벼슬이 시중(侍中)이고 시(諡)은 문절(文節)이라아조(我朝)에
 입(入)한지 7대조(七代祖) 휘(諱)는 응징(應澄)이니 판결사(判決事)라 호(號)는 해창(海滄)이다. 6대조(六代祖) 휘(諱)는 여일(汝一)이요 호(號)는 입(入)한지 7대조(七代祖) 휘(諱)는 응징(應澄)이니 판결사(判決事)라 호(號)는 해창(海滄)이다. 6대조(六代祖) 휘(諱)는 여일(汝一)이요 호(號)는
-해월(海月)이니 벼슬이 참의(參議)에 이르렀고 뒤에 공훈(功勳)을 증(贈) 소재(小宰) 숙부(叔父) 대해선생(大海先生)과 같이+해월(海月)이니 벼슬이 참의(參議)에 이르렀고 뒤에 공훈(功勳)으로 증(贈) 소재(小宰)이고 숙부(叔父) 대해선생(大海先生)과 같이
  
 명계서원(明溪書院)에 향(享)하다. 5대조(五代祖) 휘(諱)는 중헌(中憲)이니 선교랑(宣敎郞)이시다. 고조(高祖)의 휘(諱) 석평(石平)이니 명계서원(明溪書院)에 향(享)하다. 5대조(五代祖) 휘(諱)는 중헌(中憲)이니 선교랑(宣敎郞)이시다. 고조(高祖)의 휘(諱) 석평(石平)이니
-증(贈) 사복시정(司僕寺正)을 하시고 증조(曾祖)의 휘(諱) 숙(塾)이니 증(贈) 좌승지(左丞旨)요 호(號)는 구대(龜臺)라. 조(祖)의 휘(諱)는 세원(世元)이니 증(贈) 참판(參判)이시고 고(考)의 휘(諱)는 수하(受夏)니 효우행(孝友行)서 동추(同樞)를 받아 이상(以上) 추영(榮)을+증(贈) 사복시정(司僕寺正)을 하시고 증조(曾祖)의 휘(諱) 숙(塾)이니 증(贈) 좌승지(左丞旨)요 호(號)는 구대(龜臺)라. 조(祖)의 휘(諱)는 세원(世元)이니 증(贈) 참판(參判)이시고 고(考)의 휘(諱)는 수하(受夏)니 효우행(孝友行)과 대질(大耋)로 동추(同樞)를 받고 이상(以上) 추영(榮)을
 받았으니 이는 다 공(公)의 수전(壽典)이라. 비(妣)는 안동권씨(安東權氏)니 만제(萬濟)의 여(女)라. 계비(繼妣)는 야성윤씨(野城尹氏)니 받았으니 이는 다 공(公)의 수전(壽典)이라. 비(妣)는 안동권씨(安東權氏)니 만제(萬濟)의 여(女)라. 계비(繼妣)는 야성윤씨(野城尹氏)니
-징삼(徵三)의 여(女)라. 함께 증(贈) 정부인(貞夫人)하니 다 공(公)의 계비(繼妣)이다. 공(公)은 해방문헌가(海邦文獻家)에 나서 의표(儀表)의+징삼(徵三)의 여(女)라. 함께 증(贈) 정부인(貞夫人)하시고, 공(公)은 계비(繼妣) 소생이다. \\ 
 + 
 +\_공(公)은 해방문헌가(海邦文獻家)에 나서 의표(儀表)의
 수(秀)와 사륜(詞輪)의 몸이 막되게 큰 사람과 달라 의(義)를 앞세우며 바른 것을 지켜 과거(科擧)에 수(秀)와 사륜(詞輪)의 몸이 막되게 큰 사람과 달라 의(義)를 앞세우며 바른 것을 지켜 과거(科擧)에
 임시(臨試)하였으나 일찍이 과목(科目)이 폐지(廢止)되어 진취(進取)가 불구(不苟)함으로 마침내 일포의(一布衣)로서 임시(臨試)하였으나 일찍이 과목(科目)이 폐지(廢止)되어 진취(進取)가 불구(不苟)함으로 마침내 일포의(一布衣)로서
-도서(圖書)에 능(能)하여 영친(榮親)하는데 힘써서 은혜(恩惠)가 생전(生前)에는 믿지 못하였으니 이 역시(亦是) +도서(圖書)에 능(能)하여 영친(榮親)하는데 힘써서 은혜(恩惠)가 생전(生前)에는 지 못하였으니 이 역시(亦是) 
-슬프다. 그러나 행실(行實)이 향당(鄕黨)에 빛나서 신대부(紳大夫)들이 군(郡)을 주도(主導)한 자(者)들이 많이+슬프다. 그러나 행실(行實)이 향당(鄕黨)에 빛나서 신대부(紳大夫)들로 군(郡)을 주도(主導)한 자(者)들이 많이
 애모(愛慕)하더라. 홍상서(洪尙書) 수보(秀輔)가 군(郡)으로 갈 때에 여러번 예의(禮儀)을 갖추고 자리를 배품에 애모(愛慕)하더라. 홍상서(洪尙書) 수보(秀輔)가 군(郡)으로 갈 때에 여러번 예의(禮儀)을 갖추고 자리를 배품에
-유자(孺子)의 접(待接)을 하고 재명(齋名)을 희구(喜懼)라 하니 공(公)이 만년(晩年)에 에, 나가 애일(愛日)하라는 +유자(孺子)의 접(待接)을 하였더. 재명(齋名)을 희구(喜懼)라 하고 공(公)이 만년(晩年)에 거소에 편액을 하였으니이는 늘 애일(愛日)하라는 
-뜻이라. 권학사(權學士) 준()이 그 뜻을 아름답게 여기어 기(記)하고 명(銘)해 가로대,\\+뜻이라. 권학사(權學士) 준()이 그 뜻을 아름답게 여기어 기(記)하고 명(銘)해 가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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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之小學嗟 소학(小學)에 기록(記錄)하였으니 \\ 之小學嗟 소학(小學)에 기록(記錄)하였으니 \\
 哉黃公沒 슬프다 황공(黃公)은 몰(沒)하였으나 \\ 哉黃公沒 슬프다 황공(黃公)은 몰(沒)하였으나 \\
-柰世而名 이름은 내가 가(可)히 알 것이다. +柰世而名 이름은 내가 가(可)히 알 것이다. \\
 湮事實尙 \\ 湮事實尙 \\
 觀於喜懼 \\ 觀於喜懼 \\
b-090.1748864116.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2 20:35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