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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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95 [2025/05/26 20:34] – ssio2 | b-095 [2025/06/04 11:57] (현재) – ssio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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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장운묘갈문(黃章運墓碣銘) | + | ===서암황공장운묘갈문(棲巖黃公章運墓碣銘)=== |
- | + | <WRAP 37em justify>< | |
- | 墓碣銘 | + | <typo ff:' |
+ | \_**棲巖黃公章運墓碣銘**\\ | ||
公諱章運이요 字成中이요 諱棲巖이요 姓黃氏니 上祖漢學士諱洛이 | 公諱章運이요 字成中이요 諱棲巖이요 姓黃氏니 上祖漢學士諱洛이 | ||
- | 航海抵越松하야 因以爲受貫之祖라 高麗時에 裕諱瑞하니 金紫光祿大 | + | 航海抵越松하야 因以爲受貫之祖라 高麗時에 裕諱瑞하니 |
- | 夫門下侍中이요 諡忠節이니 寔分派祖也斗 八李朝에 諱玉崇이 漢城 | + | 金紫光祿大夫門下侍中이요 諡忠節이니 寔分派祖也라 入李朝에 諱玉崇이 |
- | 判尹이요 三傳諱璉이 訓導니 生諱應辟하니 號碧溪라 高祖諱世淸이요 | + | 漢城判尹이요 三傳諱璉이 訓導니 生諱應辟하니 號碧溪라 高祖諱世淸이요 |
曾祖諱璟이요 祖諱致厚요 考諱始九니 皆隱德不仕라 妣春川朴氏니 | 曾祖諱璟이요 祖諱致厚요 考諱始九니 皆隱德不仕라 妣春川朴氏니 | ||
- | 李生考諱에 元九요 之女라 李生妣에 全州崔氏니 衍行之女니 有婦德 | + | 李生考諱에 元九요 之女라 李生妣에 全州崔氏니 衍行之女니 有婦德이라 |
- | 이라 生公干 啓廟壬子하니 自幼로 器局이 超九하고 才藝出眾하야 | + | 生公干 啓廟壬子하니 自幼로 器局이 超九하고 才藝出衆하야 |
- | 旣長就學에 不煩敎督하고 多有所見觧라 甞病世之學者從尙文譽而無 | + | 旣長就學에 不煩敎督하고 多有所見解라 甞病世之學者從尙文譽而無實行故로 |
- | 實行故로 遂尊心於爲己之學하야 有深浩自得之趣하고 先以李悌로 政 | + | 遂尊心於爲己之學하야 有深浩自得之趣하고 先以孝悌로 |
- | 家而事親에 盡志體之養하야 歿以致哀하고 祭以致敬하여 睦御宗堂하 | + | 政家而事親에 盡志體之養하야 歿以致哀하고 祭以致敬하여 睦御宗堂하여 |
- | 여 信義交人하야 日可見之行에 無一事之不致意也라 甞恨世業之零賛 | + | 信義交人하야 日可見之行에 無一事之不致意也라 甞恨世業之零贊하야 |
- | 하야 中歲에 抵干丹邱之美谷하야 理田園에 以誠實勤儉으로 爲日用 | + | 中歲에 抵干丹邱之美谷하야 理田園에 以誠實勤儉으로 爲日用之符하야 |
- | 之符하야 恢亡游刃에 不役意營殖이나 調度有裕하야 通開門戶에 遠 | + | 恢亡游刃에 不役意營殖이나 調度有裕하야 通開門戶에 遠進士友成推與交라 |
- | + | 有遇心訪者면 必待盡情寬洽하다 | |
- | 進士友成推與交라 有遇心訪者면 必待盡情寬洽하다 | + | 以公爲主導하니 公이 整列上下簿吏하고 副決獄訟하니 |
- | 하야 以公爲主導하니 公이 整列上下簿吏하고 副決獄訟하니 | + | 稱之曰若任眞倅며 必爲明官矣라하니 素禀經綸之才皆類此也라 |
- | 其明하야 稱之曰若任眞倅며 必爲明官矣라하니 素禀經綸之才皆類此 | + | 蔀而不章하니 雖若可憾이나 然而行修衿身하고 敎成於宗하야 |
- | 也라 蔀而不章하니 雖若可憾이나 然而行修衿身하고 敎成於宗하야 | + | 勸課胤房에 培出名士하고 丁債塵寰에 內外孫裔繁衍盈庭하고 壽躋八<fc # |
- | 勸課胤房에 培出名士하고 丁債塵寰에 內外孫裔繁衍盈庭하고 壽躋八 | + | 備享淸福이라 |
- | 老至에 備享淸福이라 | + | 可謂全德於衰季矣라 卒于丙寅三月二十四日하니 墓末才甲坐라 配坡平尹氏니 |
- | 可謂全德於衰季矣라 卒于丙寅三月二十四日하니 墓末才甲坐라 配坡 | + | 弘仁之女라 墓寧海鳳頂辰坐라 配安城李氏니 仁秀之女니 |
- | 平尹氏니 弘仁之女斗 墓寧海鳳頂辰坐斗 配安城李氏니 仁秀之女니 | + | 墓美谷新坪子坐라 配務安朴氏니 燦之女니 滄洲后라 婦道甚備라 |
- | 墓美谷新坪子坐라 配務安朴氏니 燦之女니 滄洲后라 婦道甚備라 | + | 墓未方子坐라 生三子이니 長에 相龍이요 次相麟이요 次相鳳이요 |
- | 未方子坐라 生三子에니 長에 相龍이요 次相麟이 次相鳳이요 女에 | + | 女에 李鉉河李能萬鄭佑永李秉仁이라 相龍의 子에 曜 次에 晨出 次에 昇이요 |
- | 李鉉河李能萬鄭佑永李秉仁이라 相龍의 子에 曜次에 晨出次에 昇이요 | + | |
女에 李翊來라 相麟의 子晨이요 相鳳의 子晋오 次暎이라 李鉉河干에 | 女에 李翊來라 相麟의 子晨이요 相鳳의 子晋오 次暎이라 李鉉河干에 | ||
- | 義浩라 曜子長에 英坤이요 次에 | + | 義浩라 曜子長에 英坤이요 次에 |
- | 晨子에 五坤文坤龍坤이요 晋子에 靖坤謚坤이요 暎子에 完坤이라 餘은 | + | 晨子에 五坤文坤龍坤이요 晋子에 靖坤諡坤이요 暎子에 完坤이라 餘은 |
- | 多不錄이라 日에 黃君晨이 袖棲巖遺蹟하고 造余而謂曰 王考之世己 | + | 多不錄이라 日에 黃君晨이 袖棲巖遺蹟하고 造余而謂曰 王考之世己逾周甲하야 |
- | 逾周甲하야 墓木이 己拱호대 尙闕顯刻하야 當日事行이 懼夫湮泯無 | + | 墓木이 己拱호대 尙闕顯刻하야 當日事行이 懼夫湮泯無傳하니 |
- | 傳하니 願吾子는 | + | 願吾子는 |
- | 이 烏敢當之哉아 固辭不獲하고 畧記顚末而繼之銘曰 海山이 毓精에 | + | 烏敢當之哉아 固辭不獲하고 畧記顚末而繼之銘曰 海山이 毓精에 |
- | 篤生遺逸이라 文節名裔오 兩海薰烈이라也播淸芬에 公襲其閥이라 | + | 篤生遺逸이라 文節名裔오 兩海薰烈이라 也播淸芬에 公襲其閥이라 |
- | 省之本이요 五敎之目이라 是服是踏詔後涵沐이라 積厚而發에 餘蔭이 | + | 三省之本이요 五敎之目이라 是服是踏詔後涵沐이라 積厚而發에 餘蔭이 |
- | 薄馥이라 新碣矻然에 末方之麓이라 君子攸歲에 過者必式이라 | + | 薄馥이라 新碣矻然에 末方之麓이라 君子攸歲에 過者必式이라.\\ |
- | 廣州李福來謹撰 | + | \_\_廣州李福來謹撰 |
- | 서암황공(棲巖黃公)의 묘갈명(墓碣銘) | + | </ |
- | 공(公)의 휘(諱)는 장(章運)이요 자(字)는 성증(成中)이며 호는 서암(棲巖) | + | </ |
- | 이요 성(姓)은 황씨(黃氏)이니 상세(上世)의 조상(祖上)은 한(漢)나라 때에 | + | \\ |
- | 슬이 학사(學士)였던 휘(諱) | + | <typo ff:' |
- | 살았기 때문에 평해(平海)를 관향(貫鄕)으로 받은 시조(始祖)가 되었다. | + | \_**서암황공(棲巖黃公)의 묘갈명(墓碣銘)**\\ |
- | 고려 때에 있었던 휘(諱) 서(瑞)는 벼슬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문하 | + | \_공(公)의 휘(諱)는 장운(章運)이요 자(字)는 성중(成中)이며 호는 |
+ | 서암(棲巖)이요 성(姓)은 황씨(黃氏)이니 상세(上世)의 조상(祖上)은 한(漢)나라 때에 | ||
+ | 벼슬이 학사(學士)였던 휘(諱) | ||
+ | 살았기 때문에 평해(平海)를 관향(貫鄕)으로 받은 시조(始祖)가 되었다.\\ | ||
- | 이다. | + | \_고려 때에 있었던 휘(諱) 서(瑞)는 벼슬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
- | 시중(門下侍中)이며 시호(諡號)는 문절(文節)이니 이 어른이 분파조(分派祖) | + | 문하시중(門下侍中)이며 시호(諡號)는 문절(文節)이니 이 어른이 분파조(分派祖)이다.\\ |
- | 이씨조선(李氏朝鮮)에 들어와서 휘(諱) 옥승(玉崇)은 한성판윤(漢城判尹)이요 | + | |
- | 三대(代)를 전해 내려 휘(諱) 연(璉)은 벼슬이 훈도(訓導)이고 아들 휘(諱)응 | + | |
- | 벽(應辟)을 낳으니 호(號)는 벽계(碧溪)이라。 | + | |
- | 고조(高祖)의 휘(諱)는 세청(世淸)이요 증조(曾祖)의 휘(諱)는 경(璟)이며 조 | + | |
- | 부(祖父)의 휘(諱)는 치후(致厚)이고 아버지의 휘(諱)는 시구(始九)이니 모두 | + | |
- | 덕행(德行)을 숨기고 벼슬하지 않았다. | + | |
- | 어머니는 춘천박씨(春川朴氏)이니 빵의 따님이며 생부(生父)의 휘(諱)는 원구 | + | |
- | (元九)요 생모(生母)는 전주최씨(全州崔氏)이니 간행(빵行)의 따님으로서 부 | + | |
- | 덕(婦德)이 있었다. | + | |
- | 공(公)이 철종(哲宗) 三년(一八五二) 임자(壬子)에 출생하시니 어릴 때부터 재 | + | |
- | 능과 도량(度量)이 특출하고 재주가 뛰어났으며 이윽고 자라서 배움에 나아가서는 | + | |
- | 가르치고 보살피는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도 보고 이해(理解)하는 곳이 많이 있 | + | |
- | 었다. | + | |
- | 일찍이 세상의 학자(學者)들이 다만 글을 잘한다는 명성(名聲)을 숭상하고 실 | + | |
- | 행(實行)하는 학문이 없는 것을 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드디어 자기의 | + | |
- | 학 | + | |
- | 문세계를 넓히는 학문(學問)을 하여 스스로 터득하는 취미에 깊은 조예(造詣)가 | + | \_이씨조선(李氏朝鮮)에 들어와서 휘(諱) 옥숭(玉崇)은 한성판윤(漢城判尹)이요 |
+ | 3대(三代)를 전해 내려 휘(諱) 연(璉)은 벼슬이 훈도(訓導)이고 아들 휘(諱) | ||
+ | 응벽(應辟)을 낳으니 호(號)는 벽계(碧溪)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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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고조(高祖)의 휘(諱)는 세청(世淸)이요 증조(曾祖)의 휘(諱)는 경(璟)이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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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어머니는 춘천박씨(春川朴氏)이니 <fc # | ||
+ | 원구(元九)요 생모(生母)는 전주최씨(全州崔氏)이니 <fc # | ||
+ | 부덕(婦德)이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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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공(公)이 철종(哲宗) 3(三)년(1852(一八五二)) 임자(壬子)에 출생하시니 어릴 때부터 | ||
+ | 재능과 도량(度量)이 특출하고 재주가 뛰어났으며 이윽고 자라서 배움에 나아가서는 | ||
+ | 가르치고 보살피는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도 보고 이해(理解)하는 것이 많이 있었다.\\ | ||
+ | |||
+ | \_일찍이 세상의 학자(學者)들이 다만 글을 잘한다는 명성(名聲)을 숭상하고 | ||
+ | 실행(實行)하는 학문이 없는 것을 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드디어 자기의 | ||
+ | 학문세계를 넓히는 학문(學問)을 하여 스스로 터득하는 취미에 깊은 조예(造詣)가 | ||
있었으며 먼저 효도(孝道)하고 공경함으로써 가정을 다스려서 어버이를 섬김에는 | 있었으며 먼저 효도(孝道)하고 공경함으로써 가정을 다스려서 어버이를 섬김에는 | ||
뜻과 몸을 봉양함에 극진하여 부모가 돌아가시면 슬퍼하는 마음을 다하고 제사를 | 뜻과 몸을 봉양함에 극진하여 부모가 돌아가시면 슬퍼하는 마음을 다하고 제사를 | ||
- | 지낼때에는 공경하는 마음을 다하며 종친(宗親)들을 화목하게 이끌면서 신의 | + | 지낼 때에는 공경하는 마음을 다하며 종친(宗親)들을 화목하게 이끌면서 |
- | (信義)로서 사람을 사귀었기 때문에 날마다 볼 수 있는 행위에 한 가지 일도 | + | 신의(信義)로서 사람을 사귀었기 때문에 날마다 볼 수 있는 행위에 한 가지 일도 |
- | 뜻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 + | 뜻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
- | 일찍이 세업(世業)이 보잘것 없게 됨을 한(恨)스럽게 여겨 중년(中年)에 단구 | + | |
- | (丹邱)의 미곡(美谷)에 이르러 전원(田園)을 다스려 나감에 성실하고 근검(勤 | + | \_일찍이 세업(世業)이 보잘 것 없게 됨을 한(恨)스럽게 여겨 중년(中年)에 |
- | 儉)한 것을 일상생활(日常生活)의 신조(信條)로 삼아 전원(田園)을 넓혀 나감에 | + | 단구(丹邱)의 미곡(美谷)에 이르러 전원(田園)을 다스려 나감에 성실하고 |
- | 있어서 재산을 늘이는 데는 뜻을 두지 않았으나 생각하여 헤아림이 여유(餘裕)가 | + | 근검(勤儉)한 것을 일상생활(日常生活)의 신조(信條)로 삼아 전원(田園)을 넓혀 나감에 |
+ | 있어서 재산을 늘리는 데는 뜻을 두지 않았으나 생각하여 헤아림이 여유(餘裕)가 | ||
있어서 문호(門戶)를 열어 통하게 하니 원근(遠近)에 사는 선비와 벗들이 모두 | 있어서 문호(門戶)를 열어 통하게 하니 원근(遠近)에 사는 선비와 벗들이 모두 | ||
- | 그를 추대(推戴)하여 더불어 교분(交分)을 맺으려했으며 마음으로 사귀고자 | + | 그를 추대(推戴)하여 더불어 교분(交分)을 맺으려 했으며 마음으로 사귀고자 |
- | 문한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정(情)을 다해 너그럽고 흡족하게 대접했다. | + | 방문한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정(情)을 다해 너그럽고 흡족하게 대접했다.\\ |
- | 향증(鄉中)에서 마침 원님놀이가 있었는데 공에게 그 원님 가장행렬(假裝行列)의 | + | |
+ | \_향중(鄕中)에서 마침 원님놀이가 있었는데 공에게 그 원님 가장행렬(假裝行列)의 | ||
원님이 되게하니 공이 상하(上下)의 아전들을 정렬(整列)하고 옥사(獄事)와 | 원님이 되게하니 공이 상하(上下)의 아전들을 정렬(整列)하고 옥사(獄事)와 | ||
- | 소송(訴訟)을 처결하니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그의 명석(明哲)한 처리에 탄복하고 | + | 소송(訴訟)을 처결하니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그의 명석(明晳)한 처리에 탄복하고 |
- | 칭찬하여 말하기를 만약 참 고을 원님이면 반드시 명관(明官)이 되었으리라 했 | + | 칭찬하여 말하기를 만약 참 고을 원님이면 반드시 명관(明官)이 되었으리라 했으니 |
+ | 본시 타고난 경륜(經綸)의 재주가 모두 이와 같았다.\\ | ||
- | 으니 본시 타고난 경륜(經綸)의 재주가 모두 이와 같았다. | + | \_산촌(山村)에 살면서 빛을 보지 못한 것이 비록 유감(遺憾)이 되지만 그러나 |
- | 산촌(山村)에 살면서 빛을 보지 못한 것이 비록 유감(遺憾)이 되지만 그러나 | + | 행의(行義)로서 자신을 수양(修養)하고 가정에는 교화(敎化)를 이루어 |
- | 행의(行義)로서 자신을 수양(修養)하고 가정에는 교화(敎化)를 이루어 자질(子 | + | 자질(子姪)들을 배우도록 권하여 명사(名士)들을 배출(輩出)하고 남혼여가(男婚女嫁)를 |
- | 姪)들을 배우도록 권하여 명사(名士)들을 배출(輩出)하고 남혼여가(男婚女嫁)를 | + | 실기(失期)하지 않아 내외(內外)의 후손이 번성해 뜰에 가득하고 |
- | 실기(失期)하지 않아 내외(內外)의 후손이 번성해 뜰에 가득하고 八十수(壽)를 | + | 넘겨 청복(淸福)을 고루 누렸으며 만년(晩年)에 고향에 돌아가서 종친들과 집을 |
- | 넘겨 청복(淸福)을 고루 누렸으며 만년(晚年)에 고향에 돌아가서 종친들과 집을 | + | |
나란히 살면서 돈목(敦睦)의 풍(風)을 흡족히 보였으니 말세(末世)에 살면서 | 나란히 살면서 돈목(敦睦)의 풍(風)을 흡족히 보였으니 말세(末世)에 살면서 | ||
- | 덕(德)을 온전히 누렸다고 할 수 있다. | + | 덕(德)을 온전히 누렸다고 할 수 있다.\\ |
- | 병인년(서기 一九二六)三월 二十四일에 졸(卒)하니 묘는 말방(末方) 갑좌(甲 | + | |
- | 坐)이며 배위(配位)는 파평윤씨(坡平尹氏)이니 홍인(弘仁)의 따님이며 묘는 영 | + | |
- | 해(寧海)의 봉정(鳳頂) 진좌(辰坐)에 있다. 또 배위(配位)인 안성이씨(安城 | + | |
- | 李氏)는 인수(仁秀)의 따님이며 묘는 미곡(美谷)의 신평(新坪) 자좌(子坐)이고 | + | |
- | 또 배위(配位)인 무안박씨(務安朴氏)는 찬(燦)의 따님이니 창주(滄州)의 후예 | + | |
- | 로서 부덕(婦德)을 잘 갖추고 있었으며 묘는 말방(末方)의 자좌(子坐)에 있다. | + | |
- | 아들 셋을 두었으니 맏이는 상룡(相龍)이요 다음은 상린(相麟)이며 다음은 상 | + | |
- | 봉(相鳳)이요 딸은 이현하(李鉉河)와 이능만(李能萬)과 정우영(鄭佑永)과 이 | + | |
- | 병인(李秉仁)에게 출가(出嫁)했다. | + | |
- | 상룡(相龍)의 아들은 맏이는 요(曜)이고 다음은 성(晟)인데 출계(出系)했고 | + | \_병인년(서기 1926(一九二六_) 3(三)월 24(二十四)일에 졸(卒)하니 묘는 말방(末方) |
- | 음은 승(承)이며 딸은 이익래(李翊來)에게 출가했다. | + | 갑좌(甲坐)이며 배위(配位)는 파평윤씨(坡平尹氏)이니 홍인(弘仁)의 따님이며 묘는 |
- | 상린(相麟)의 아들은 성(晟)이요 상봉(相鳳)의 아들은 보(普)요 둘째는 영(映) | + | 영해(寧海)의 봉정(鳳頂) 진좌(辰坐)에 있다. 또 배위(配位)인 안성이씨(安城李氏)는 |
- | 이며 이현하(李鉉河)의 아들은 의호(義浩)요 요(曜)의 아들에 맏이는 영곤(英 | + | 인수(仁秀)의 따님이며 묘는 미곡(美谷)의 신평(新坪) 자좌(子坐)이고 |
- | 坤)이요 다음은 신곤(慎坤)과 량곤(亮坤)과 일곤(逸坤)이며 승(昇)의 아들은 | + | 또 배위(配位)인 무안박씨(務安朴氏)는 찬(燦)의 따님이니 창주(滄州)의 후예로서 |
- | 배곤(培坤)이요 성(晟의 아들은 오곤(五坤)과 문곤(文坤)과 용곤(龍坤)이며 | + | 부덕(婦德)을 잘 갖추고 있었으며 묘는 말방(末方)의 자좌(子坐)에 있다.\\ |
- | (普)의 아들은 정곤(靖坤)과 익곤(빵坤)이요 영(映)의 아들은 완곤(完坤)이며 | + | |
- | 남은 후손이 많으나 모두 기록하지 않는다. | + | \_아들 셋을 두었으니 맏이는 상룡(相龍)이요 다음은 상린(相麟)이며 다음은 |
- | 어느날 황군(黃君) 성(晟)이 서암공(棲巖公)의 유사(遺事)를 나에게 가지고 와서 | + | 상봉(相鳳)이요 딸은 이현하(李鉉河)와 이능만(李能萬)과 정우영(鄭佑永)과 |
- | 말하기를 조부(祖父)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벌써 六十년이 넘어서 무덤 가에 서 | + | 이병인(李秉仁)에게 출가(出嫁)했다.\\ |
- | 있는 나무가 이미 아름드리가 되었지만 아직도 행적(行蹟)을 새긴 비(碑)를 | + | |
- | 우지 못하여 당일의 사행(事行)이 없어져서 후세에 전해지지 않을까 두려우니 | + | \_상룡(相龍)의 아들은 맏이는 요(曜)이고 다음은 성(晟)인데 출계(出系)했고 |
+ | 다음은 승(昇)이며 딸은 이익래(李翊來)에게 출가했다.\\ | ||
+ | |||
+ | \_상린(相麟)의 아들은 성(晟)이요 상봉(相鳳)의 아들은 보(普)요 둘째는 | ||
+ | <fc #ff0000>영(映)</fc>이며 이현하(李鉉河)의 아들은 의호(義浩)요 | ||
+ | 요(曜)의 아들에 맏이는 영곤(英坤)이요 다음은 신곤(愼坤)과 량곤(亮坤)과 | ||
+ | 일곤(逸坤)이며 승(昇)의 아들은 | ||
+ | 배곤(培坤)이요 성(晟의 아들은 오곤(五坤)과 문곤(文坤)과 용곤(龍坤)이며 | ||
+ | 보(普)의 아들은 정곤(靖坤)과 익곤(謚坤)이요 영(映)의 아들은 완곤(完坤)이며 | ||
+ | 남은 후손이 많으나 모두 기록하지 않는다.\\ | ||
+ | |||
+ | \_어느날 황군(黃君) 성(晟)이 서암공(棲巖公)의 유사(遺事)를 나에게 가지고 와서 | ||
+ | 말하기를 조부(祖父)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벌써 | ||
+ | 있는 나무가 이미 아름드리가 되었지만 아직도 행적(行蹟)을 새긴 비(碑)를 | ||
+ | 세우지 못하여 당일의 사행(事行)이 없어져서 후세에 전해지지 않을까 두려우니 | ||
원하옵건대 당신께서 묘갈명(墓碣銘)을 지어 주십시요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 원하옵건대 당신께서 묘갈명(墓碣銘)을 지어 주십시요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 ||
그대의 선조(先祖) 덕행(德行)을 밝힘에 있어서 나와 같이 늙고 옹졸한 사람이 | 그대의 선조(先祖) 덕행(德行)을 밝힘에 있어서 나와 같이 늙고 옹졸한 사람이 | ||
어떻게 감히 감당하겠는가 하고 고집스레 사양했으나 받아주지 않아서 행적의 | 어떻게 감히 감당하겠는가 하고 고집스레 사양했으나 받아주지 않아서 행적의 | ||
- | 전말(顚末)을 간략히 기록하고 이어서 명(銘)을 말하노니바다와 산의 정기를 | + | 전말(顚末)을 간략히 기록하고 이어서 명(銘)을 말하노니\\ |
- | 받아 독실한 유일(遺逸)의 선비를 나게 하였다. | + | \\ |
- | + | 海山毓精에\_ | |
- | 받았다. | + | 篤生遺逸이라 |
- | 문절공(文節公)의 이름난 후예이고 대해(大海) 해월(海月) 두 선생의 가르침을 | + | 文節名裔오\_ |
- | 대대(代代)로 맑고 향기로운 덕행(德行)을 뿌렸으니 공(公)이 그 세습(世襲)을 | + | 兩海薰烈이라 |
- | 받은 문벌(門閥)이다. | + | 也播淸芬에\_ |
- | 하루에 세 번 자신을 반성하라는 가르침을 근본으로 했고 오륜(五倫)의 덕목을 | + | 公襲其閥이라 |
- | 지켜나갔다. | + | 三省之本이요 |
- | 이렇게 복종하고 이렇게 실천(實踐)하며 후생들에게 적셔지도록 가르치었다. | + | 五敎之目이라 |
- | 덕(德)을 두텁게 쌓아 후손들에게 발복되게 하니 남기신 그늘에 향기가 가득 | + | 是服是踏이니 |
- | 하다. | + | 詔後涵沐이라 |
- | 세롭게 비석(碑石)을 높이 세우니 말방(末方)이 있는 산록(山麓)이로다. | + | 積厚而發에\_ |
- | 군자(君子)를 거기에 안장(安葬)했으니 지나는 사람들아 반드시 본받아라。 | + | 餘蔭薄馥이라 |
- | 廣州 李福來 삼가 짓다. | + | 新碣矻然에\_ 새롭게 비석(碑石)을 높이 세우니 |
+ | 末方之麓이라 | ||
+ | 君子攸歲에\_ | ||
+ | 過者必式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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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_광주(廣州) 이복래(李福來) 삼가 짓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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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95.1748259250.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6 20:34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