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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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96 [2025/05/26 20:00] – ssio2 | b-096 [2025/06/07 07:20] (현재) – ssio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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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통정대부산월평해황공휘종운묘갈명(贈通政大夫山月平海黃公諱鍾運墓碣銘) | + | ===증통정대부산월평해황공휘종운묘갈명(贈通政大夫山月平海黃公諱鍾運墓碣銘)=== |
- | + | <WRAP 37em justify>< | |
- | 贈通政大夫山月平海黃公諱鍾運墓碣銘 | + | <typo ff:' |
+ | \_**贈通政大夫山月平海黃公諱鍾運墓碣銘**\\ | ||
公諱鍾運號山月姓黃氏始祖學士諱洛自中國始居平海仍貫焉中世有諱 | 公諱鍾運號山月姓黃氏始祖學士諱洛自中國始居平海仍貫焉中世有諱 | ||
- | 瑞仕高麗官至侍中以翊戴功陞縣爲郡謚文節入李朝有諱玉崇判漢城尹 | + | 瑞仕高麗官至侍中以翊戴功陞縣爲郡諡文節入李朝有諱玉崇判漢城尹 |
歷三世有諱道一以學行薦別提是生諱中寔通政是生諱命河號懈軒文章 | 歷三世有諱道一以學行薦別提是生諱中寔通政是生諱命河號懈軒文章 | ||
- | 德行大鳴當世於公六代祖也高祖諱處五早有志行文望爲鄉推重曾祖諱 | + | 德行大鳴當世於公六代祖也高祖諱處五早有志行文望爲鄕推重曾祖諱 |
- | 廷燈祖諱致漢考諱履九天禀愷悌宇量宏大妣眞城李氏宗泰女有婦德庚 | + | 廷𤓎祖諱致漢考諱履九天禀愷悌宇量宏大妣眞城李氏宗泰女有婦德庚 |
寅二月九日生公于溫井里第精金美質秋月精神眼光如電語聲若雷聰敏 | 寅二月九日生公于溫井里第精金美質秋月精神眼光如電語聲若雷聰敏 | ||
好讀書上師先聖下友群賢窺仁義之原探禮樂之緖動導繩規律己誠正言 | 好讀書上師先聖下友群賢窺仁義之原探禮樂之緖動導繩規律己誠正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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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如蒼蒼松林樓千歲之仙鶴巖巖石岡出一色之良玉窮而不自憫約而不 | 淸如蒼蒼松林樓千歲之仙鶴巖巖石岡出一色之良玉窮而不自憫約而不 | ||
自憂游心於霞巖自然之界曠懷於天地無形之外與凡人處其色由由與賢 | 自憂游心於霞巖自然之界曠懷於天地無形之外與凡人處其色由由與賢 | ||
- | 者友其言侃侃其義理之剖判是非之明白一合大道以服人心鄉邦士友仰 | + | 者友其言侃侃其義理之剖判是非之明白一合大道以服人心鄕邦士友仰 |
- | 庇矣以大耋之年優老典蒙除通政而頂玉紆榮盡公之淸福庚戌十月三十 | + | 庇矣以大耊之年優老典蒙除通政而頂玉紆榮盡公之淸福庚戌十月三十 |
日整席而臥恬然而逝是爲君子之終也享年八十一墓仙味前山午坐原配 | 日整席而臥恬然而逝是爲君子之終也享年八十一墓仙味前山午坐原配 | ||
義城金氏禎壽女無育二配全義李氏明圭女墓南阿春井庚坐生二男一女 | 義城金氏禎壽女無育二配全義李氏明圭女墓南阿春井庚坐生二男一女 | ||
- | 男相璋相璡女安明善三配金海金氏生一男相琚相璋男暻驴女南載喆相 | + | 男相璋相璡女安明善三配金海金氏生一男相琚相璋男暻昈女南載喆相 |
- | 璡男星旺女白南璇張懋權相善相琚男光日朋善晤善女姜始萬曝男鶴圭 | + | 璡男星旺女白南璇張懋權相善相琚男光日朋善晤善女姜始萬暻男鶴圭 |
鳳圭女金時無安斗原星男碩圭大圭旺男燦圭聖圭女金盛奎金元燦朴文 | 鳳圭女金時無安斗原星男碩圭大圭旺男燦圭聖圭女金盛奎金元燦朴文 | ||
弘光日男熙坤東坤益坤女金武功權東忠鄭南石朋善男春吉在德貞洙女 | 弘光日男熙坤東坤益坤女金武功權東忠鄭南石朋善男春吉在德貞洙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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鎭碩女南重七權燦日碩圭男鎭菊鎭樂國發大圭男光星燦圭男鎬春鎬正 | 鎭碩女南重七權燦日碩圭男鎭菊鎭樂國發大圭男光星燦圭男鎬春鎬正 | ||
聖圭男鎭寅熙坤男鎭達鎭鉉震虎鎭撤鎭元東坤男鎭興鎭根鎭洙益坤男 | 聖圭男鎭寅熙坤男鎭達鎭鉉震虎鎭撤鎭元東坤男鎭興鎭根鎭洙益坤男 | ||
- | 載舜春吉男慶眞雲坤男鎭熱鎭鶴男愿淳義淳東淳女禹奉成鎭明男正淳 | + | 載舜春吉男慶眞雲坤男鎭勳鎭鶴男愿淳義淳東淳女禹奉成鎭明男正淳 |
孝淳鎭碩男載淳義淳男暎植餘不錄曰公嗣孫鎭鶴甫請銘于余余以不文 | 孝淳鎭碩男載淳義淳男暎植餘不錄曰公嗣孫鎭鶴甫請銘于余余以不文 | ||
者何敢述大賢君子德行之萬一哉固辭不獲遂爲之銘曰其氣豪英其學文 | 者何敢述大賢君子德行之萬一哉固辭不獲遂爲之銘曰其氣豪英其學文 | ||
- | 章淸風明月玉色金聲矩方規圓準眞繩平賢聖之訓君子之行大耋高齡優 | + | 章淸風明月玉色金聲矩方規圓準眞繩平賢聖之訓君子之行大耊高齡優 |
- | 老典蒙刻之玉石千古芳名 | + | 老典蒙刻之玉石千古芳名\\ |
- | 辛未十二月冬節金寧金炳翊謹撰 | + | \_\_辛未十二月冬節金寧金炳翊謹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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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ypo ff:' | ||
+ | \_**증통정대부(贈通政大夫) 호(號) 월산(月山) 평해황공(平海黃公) | ||
+ | 휘(諱) 종운(鐘運)의 묘갈명(墓碣銘)**\\ | ||
+ | \_공(公)의 휘(諱)는 종운(鐘運)이요 호(號)는 월산(月山)이며 성(姓)은 | ||
+ | 황씨(黃氏)이니 시조(始祖)이신 학사(學士)벼슬을 한 휘(諱) 락(洛)께서 | ||
+ | 중국(中國)으로부터 처음 평해(平海)에 와서 살았기 때문에 거기를 관향(貫鄕)으로 했다. | ||
+ | 증세(中世)에 휘(諱) 서(瑞)가 있으니 고려(高麗)에 출사(出仕)하여 벼슬이 | ||
+ | 시중(侍中)에 이르러 익대공신(翊戴功臣)으로서 평해현(平海縣)을 군(郡)으로 | ||
+ | 승격(昇格)시켰으며 시호(諡號)를 문절(文節)이라 했다.\\ | ||
- | 증통정대부(贈通政大夫)호(號) 산월(山月) 평해황공(平海黃公) | + | \_조선조(朝鮮朝)에 들어와서 휘(諱) 옥숭(玉崇)은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냈으며 |
- | 휘(諱) 종운(鐘運)의 묘갈명(墓碣銘) | + | 삼대(三代)를 지나서 휘(諱) 도일(道一)은 학행(學行)이 높은 때문에 별제(別提) |
- | 공(公)의 휘(諱)는 종운(鐘運)이요 호(號)는 월산(月山)이며 성(姓)은 황씨(黃 | + | 벼슬에 천거(薦擧)되었고 아들의 휘(諱)는 중식(中寔)이니 통정대부(通政大夫)에 |
- | 氏)이니 시조(始祖)이신 학사(學士)벼슬을 한 휘(諱) 락(洛)께서 중국(中國) | + | 올랐고 아들의 휘(諱)는 명하(命河)이며 호(號)는 해헌(懈軒)이니 |
- | 으로부터 처음 평해(平海)에 와서 살았기 때문에 거기를 관향(貫鄕)으로 했다. | + | 문장(文章)과 덕행(德行)이 당세(當世)를 울렸으며 공(公)에게는 |
- | 증세(中世)에 휘(諱) 서(瑞)가 있으니 고려(高麗)에 출사(出仕)하여 벼슬이 시 | + | 되신다.\\ |
- | 중(侍中)에 이르러 익대공신(翊戴功臣)으로서 평해현(平海縣)을 군(郡)으로 승 | + | |
- | 격(昇格)시켰으며 시호(諡號)를 문절(文節)이라 했다. | + | |
- |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와서 휘(諱) 옥승(玉崇)은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냈 | + | |
- | 으며 삼대(三代)를 지내서 휘(諱) 도일(道一)은 학행(學行)이 높은 때문에 별 | + | |
- | 제(別提)벼슬에 천거(薦擧)되었고 아들의 휘(諱)는 중식(中寔)이니 통정대부 | + | |
- | (通政大夫)에 올랐고 아들의 휘(諱)는 명하(命河)이며 호(號)는 해헌(懈軒)이니 | + | |
- | 문장(文章)과 덕행(德行)이 당세(當世)를 울렸으며 공(公)에게는 | + | |
- | 祖)가 되신다. | + | |
- | 고조(高祖)의 휘(諱)는 처오(處五)이며 지행(志行)과 문장(文章)으로 명망(名 | + | |
- | 望)이 있어서 향증(鄉中)에서 추증(推重)되었으며 증조(曾祖)의 휘(諱)는 정 | + | |
- | 찬(廷燈)이요 조부(祖父)의 휘(諱)는 치한(致漢)이며 아버지의 휘(諱)는 이구 | + | |
- | (履九)이니 천품과 덕(德)이 많고 기구(器局)과 도량(度量)이 크고 넓었다. | + | \_고조(高祖)의 휘(諱)는 처오(處五)이며 지행(志行)과 문장(文章)으로 명망(名望)이 |
- |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이니 종태(宗泰)의 따님으로서 부덕(婦德)이 있 | + | 있어서 향중(鄕中)에서 추중(推重)되었으며 증조(曾祖)의 휘(諱)는 정찬(廷燈)이요 |
- | 었다. | + | 조부(祖父)의 휘(諱)는 치한(致漢)이며 아버지의 휘(諱)는 이구(履九)이니 |
- | 경인년(庚寅年) 二월 九일에 공(公)을 온정리(溫井里)의 집에서 낳으니 정제 | + | 천품과 덕(德)이 많고 기국(器局)과 도량(度量)이 크고 넓었다. |
- | (精製)한 금과같이 아름다운 자질이었고 가을 달과 같은 맑은 정신(精神)이었으며 | + |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이니 종태(宗泰)의 따님으로서 부덕(婦德)이 있었다.\\ |
- | 눈빛이 번개같고 말소리가 우뢰같이 웅장했다. | + | |
- | 총명하고 민첩하며 독서(讀書)를 좋아 하여 위로는 공자(孔子)를 스승으로 하고 | + | |
- | 아래로는 여러 현인(賢人)들을 벗으로 하여 인의(仁義)의 근원을 살피고 예악 | + | |
- | (禮樂)의 단서(端緖)를 탐구(探究)하여 법도(法度)에 따라 행동하고 정성스럽고 | + | |
- | 정직한 것으로 자신(自身)을 바로잡으며 언론(言論)이 바르고 무그우니 군자 | + | |
- | (君子)들은 믿는 바가 있게 되어 두려워 하지 않고 소인(小人)들은 두려워 하는 | + | |
- | 바가 있어서 악(惡)을 행하지 않게 되었다. | + | |
- | 천품이 뛰어나고 덕행(德行)이 어질고 곧았으며 깨끗한 외모(外貌)에 맑은 기 | + | |
- | 상(氣像)으로 마치 푸른 소나무 숲에 천년을 서식(棲息)하는 선학(仙鶴)에서 | + | |
- | 나온 한 빛깔의 좋은 옥과 같았다. | + | |
- | 생활이 궁해도 스스로 괴로워하지 않고 빈곤해도 스스로 근심하지 않았으며 마 | + | |
- | 음은 노을과 바위가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世界)에서 놀았고 회포(懷抱)는 | + | |
- | 천 | + | |
- | 지(天地) 밖 무형계(無形界)에서 넓었다. | + | \_경인년(庚寅年) 2(二)월 9(九)일에 공(公)을 온정리(溫井里)의 집에서 낳으니 |
- | 墓碣銘 | + | 정제(精製)한 금과 같이 아름다운 자질이었고 가을 달과 같은 맑은 정신(精神)이었으며 |
- | 보통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그 안색(顏色)은 스스로 만족하고 현자(賢者)들과 | + | 눈빛이 번개같고 말소리가 우뢰같이 웅장했다.\\ |
- | 더불어 벗할 때에도 그의 말은 강직했으며 그가 의리(義理)를 판단함과 시비 | + | |
- | (是非)를 명백(明白)히 함도 한결같이 대도(大道)에 맞게 하여 사람들을 마음으로 | + | \_총명하고 민첩하며 독서(讀書)를 좋아 하여 위로는 공자(孔子)를 스승으로 하고 |
- | 복종(服從)케 하니 향방(鄕邦)의 사우(士友)들은 비호(庇護)를 받기를 바랬었 | + | 아래로는 여러 현인(賢人)들을 벗으로 하여 인의(仁義)의 근원을 살피고 예악(禮樂)의 |
- | 다. | + | 단서(端緖)를 탐구(探究)하여 법도(法度)에 따라 행동하고 정성스럽고 |
- | 대로(大老)의 나이 때문에 늙은 이를 우대하는 은전(恩典)을 입어 통정대부(通 | + | 정직한 것으로 자신(自身)을 바로잡으며 언론(言論)이 바르고 무거우니 군자(君子)들은 |
- | 政大夫)의 수직(壽職)이 제수(除授)되어 관(冠)의 꼭대기에 달린 정옥(頂玉)이 | + | 믿는 바가 있게 되어 두려워 하지 않고 소인(小人)들은 두려워 하는 |
- | 영광(榮光)을 수놓았으니 대체로 공의 청복(淸福)이었다. 경술년(庚戌年) 十월 | + | 바가 있어서 악(惡)을 행하지 않게 되었다.\\ |
- | 三十일에 자리를 정제(整齊)한 뒤에 누워 편안히 서거(逝去)했으니 이것이 | + | |
- | 자(君子)의 마지막인 것이다. | + | \_천품이 뛰어나고 덕행(德行)이 어질고 곧았으며 깨끗한 외모(外貌)에 맑은 |
- | 八十一세를 향수(享壽)하여 선미(仙味)의 앞산 오좌(午坐)의 둔덕에 묘를 썼으며 | + | 기상(氣像)으로 마치 푸른 소나무 숲에 천년을 서식(棲息)하는 선학(仙鶴)에서 |
+ | 나온 한 빛깔의 좋은 옥과 같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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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생활이 궁해도 스스로 괴로워하지 않고 빈곤해도 스스로 근심하지 않았으며 | ||
+ | 마음은 노을과 바위가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世界)에서 놀았고 회포(懷抱)는 | ||
+ | 천지(天地) 밖 무형계(無形界)에서 넓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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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보통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그 안색(顔色)은 스스로 만족하고 현자(賢者)들과 | ||
+ | 더불어 벗할 때에도 그의 말은 강직했으며 그가 의리(義理)를 판단함과 시비(是非)를 | ||
+ | 명백(明白)히 함도 한결같이 대도(大道)에 맞게 하여 사람들을 마음으로 | ||
+ | 복종(服從)케 하니 향방(鄕邦)의 사우(士友)들은 비호(庇護)를 받기를 바랬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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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대로(大老)의 나이 때문에 늙은 이를 우대하는 은전(恩典)을 입어 | ||
+ |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수직(壽職)이 제수(除授)되어 관(冠)의 꼭대기에 달린 정옥(頂玉)이 | ||
+ | 영광(榮光)을 수놓았으니 대체로 공의 청복(淸福)이었다. 경술년(庚戌年) | ||
+ | 30(三十)일에 자리를 정제(整齊)한 뒤에 누워 편안히 서거(逝去)했으니 이것이 | ||
+ | 군자(君子)의 마지막인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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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81(八十一)세를 향수(享壽)하여 선미(仙味)의 앞산 오좌(午坐)의 둔덕에 묘를 썼으며 | ||
배위(配位)는 의성김씨(義城金氏)이니 정수(禎壽)의 따님이었는데 자식을 두지 | 배위(配位)는 의성김씨(義城金氏)이니 정수(禎壽)의 따님이었는데 자식을 두지 | ||
- | 못했다. | + | 못했다. 둘째 배위(配位)는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니 명규(明圭)의 따님이며 묘는 남아(南阿)의 |
- | 둘째 배위(配位)는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니 명규(明圭)의 따님이며 묘는 남아 | + | 춘정(春井) 경좌(庚坐)에 있다.\\ |
- | (南阿)의 춘정(春井) 경좌(庚坐)에 있다. | + | |
- |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었으니 아들은 상장(相璋)과 상진(相璡)이며 딸은 안 | + | \_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었으니 아들은 상장(相璋)과 상진(相璡)이며 딸은 |
+ | 안명선(安明善)에게 출가했고 셋째 배위(配位)는 김해김씨(金海金氏)로서 아들 | ||
+ | 하나를 두었으니 상거(相琚)이다.\\ | ||
- | 명선(安明善)에게 출가했고 셋째 배위(配位)는 김해김씨(金海金氏)로서 아들 | + | \_상장(相璋)의 아들은 경(暻)과 호(昈)이며 딸은 남재철(南載哲)에게 시집갔고 |
- | 하나를 두었으니 상거(相琚)이다. | + | |
- | 상장(相璋)의 아들은 경(暻)과 호(卵)이며 딸은 남재철(南載哲)에게 시집갔고 | + | |
상진(相璡)의 아들은 성(星)과 왕(旺)이며 딸은 백남선(白南璇)과 장무(張懋)와 | 상진(相璡)의 아들은 성(星)과 왕(旺)이며 딸은 백남선(白南璇)과 장무(張懋)와 | ||
권상성(權相善)에게 출가했고 상거(相琚)의 아들은 광일(光日)과 붕선(朋善)과 | 권상성(權相善)에게 출가했고 상거(相琚)의 아들은 광일(光日)과 붕선(朋善)과 | ||
- | 오선(晤善)이요 딸은 강시만(姜始萬)에게 출가했으며 경(暻)의 아들은 학규(鶴 | + | 오선(晤善)이요 딸은 강시만(姜始萬)에게 출가했으며 경(暻)의 아들은 학규(鶴圭)와 |
- | 圭)와 봉규(鳳圭)이고 딸은 김시무(金時無)와 안두원(安斗源)에게 출가했으며 | + | 봉규(鳳圭)이고 딸은 김시무(金時無)와 안두원(安斗源)에게 출가했으며 |
- | 성(星)의 아들은 석규(碩圭)와 대규(大圭)이다. | + | 성(星)의 아들은 석규(碩圭)와 대규(大圭)이다.\\ |
- | 왕(旺)의 아들은 찬규(燦圭)와 성규(聖圭)이며 딸은 김성규(金盛奎)와 김원찬 | + | |
- | (金元燦)과 박문흥(朴文弘)에게 출가했고 광일(光日)의 아들은 희곤(熙坤)과 | + | |
- | 동곤(東坤)과 익곤(益坤)이며 딸은 김무공(金武功)과 권동층(權東忠)과 정남 | + | |
- | 석(鄭南石)에게 출가했고 붕선(朋善)의 아들은 춘길(春吉)과 재덕(在德)과 정 | + | |
- | 수(貞洙)이며 딸은 윤연식(尹年植)에게 출가했다. | + | |
- | 오선(晤善)의 아들은 운곤(雲坤)과 학곤(鶴坤)과 인곤(仁坤)이며 학규(鶴圭)의 | + | |
- | 아들은 진학(鎭鶴)과 진명(鎭明)과 진호(鎭浩)와 진운(鎭雲)이며 딸은 박남철 | + | |
- | (朴南喆)에게 출가했다. | + | |
- | 봉규(鳳圭)의 아들은 진석(鎭碩)이며 딸은 남중칠(南重七)과 권찬일(權燦日) | + | |
- | 에게 출가했고 석규(碩圭)의 아들은 진국(鎭國)과 진낙(鎭樂)과 | + | \_왕(旺)의 아들은 찬규(燦圭)와 성규(聖圭)이며 딸은 김성규(金盛奎)와 |
- | 대규(大圭)의 아들은 광성(光星)이요 찬규(燦圭)의 아들은 호춘(鎬春)과 호정 | + | 김원찬(金元燦)과 박문홍(朴文弘)에게 |
- | (鎬正)이며 성규(聖圭)의 아들은 진인(鎭寅)이요 희곤(熙坤)의 아들은 진달(鎭達)과 | + | 동곤(東坤)과 익곤(益坤)이며 딸은 김무공(金武功)과 권동충(權東忠)과 |
+ | 정남석(鄭南石)에게 출가했고 붕선(朋善)의 아들은 춘길(春吉)과 재덕(在德)과 | ||
+ | 정수(貞洙)이며 딸은 윤연식(尹年植)에게 출가했다.\\ | ||
+ | |||
+ | \_오선(晤善)의 아들은 운곤(雲坤)과 학곤(鶴坤)과 인곤(仁坤)이며 학규(鶴圭)의 | ||
+ | 아들은 진학(鎭鶴)과 진명(鎭明)과 진호(鎭浩)와 진운(鎭雲)이며 딸은 | ||
+ | 박남철(朴南喆)에게 출가했다.\\ | ||
+ | |||
+ | \_봉규(鳳圭)의 아들은 진석(鎭碩)이며 딸은 남중칠(南重七)과 권찬일(權燦日)에게 | ||
+ | 출가했고 석규(碩圭)의 아들은 진국(鎭國)과 진낙(鎭樂)과 | ||
+ | 대규(大圭)의 아들은 광성(光星)이요 찬규(燦圭)의 아들은 호춘(鎬春)과 | ||
+ | 호정(鎬正)이며 성규(聖圭)의 아들은 진인(鎭寅)이요 희곤(熙坤)의 아들은 진달(鎭達)과 | ||
진현(鎭鉉)과 진호(震虎)와 진철(鎭撤)과 진원(鎭元)이며 동곤(東坤)의 | 진현(鎭鉉)과 진호(震虎)와 진철(鎭撤)과 진원(鎭元)이며 동곤(東坤)의 | ||
- | 아들은 진흥(鎭興)과 진근(鎭根)과 진수(鎭洙)이고 익곤(益坤)의 아들은 재순 | + | 아들은 진흥(鎭興)과 진근(鎭根)과 진수(鎭洙)이고 익곤(益坤)의 아들은 |
- | (載舜)이며 춘길(春吉)의 아들은 경진(慶真)이요 운곤(雲坤)의 아들은 진훈(鎭 | + | 재순(載舜)이며 춘길(春吉)의 아들은 경진(慶眞)이요 운곤(雲坤)의 아들은 |
- | 勳)이며 진학(鎭鶴)의 아들은 원순(愿淳)과 의순(義淳)과 동순(東淳)이요 딸은 | + | 진훈(鎭勳)이며 진학(鎭鶴)의 아들은 원순(愿淳)과 의순(義淳)과 동순(東淳)이요 딸은 |
- | 우봉성(禹奉成)에게 출가했다. | + | 우봉성(禹奉成)에게 출가했다.\\ |
- | 진명(鎭明)의 아들은 정순(正淳)과 효순(孝淳)이요 진석(鎭碩)의 아들은 재순 | + | |
- | (載淳)이고 의순(義淳)의 아들은 영식(映植)이며 나머지는 기록하지 않는다. | + | \_진명(鎭明)의 아들은 정순(正淳)과 효순(孝淳)이요 진석(鎭碩)의 아들은 |
- | 어느날 공이 사손(嗣孫)인 진학(鎭鶴)씨가 나에게 묘갈명(墓碣銘)을 지어달라고 | + | 재순(載淳)이고 의순(義淳)의 아들은 영식(映植)이며 나머지는 기록하지 않는다. |
- | 청하는지라 나같은 글이 짧은 사람이 어떻게 감히 대현군자(大賢君子)의 덕행 | + | 어느날 공의 사손(嗣孫)인 진학(鎭鶴)씨가 나에게 묘갈명(墓碣銘)을 지어 달라고 |
- | (德行)을 만분일(萬分一)이라도 서술하겠는가 하고 고집스레 사양했으나 되지 | + | 청하는지라 나 같은 글이 짧은 사람이 어떻게 감히 대현군자(大賢君子)의 |
- | 않아서 드디어 명(銘)을 말하노니그의 기개(氣概)는 호탕하고 영걸(英傑)했으 | + | 덕행(德行)을 만분일(萬分一)이라도 서술하겠는가 하고 고집스레 사양했으나 되지 |
- | 며그의 학문(學問)은 큰 문장(文章)이었다. | + | 않아서 드디어 명(銘)을 말하노니\\ |
- | 청풍명월(淸風明月)같은 풍모(風貌)이었고 구슬같이 깨끗했고 쇠소리같이 쟁 | + | \\ |
- | 쟁했다. | + | 其氣豪英 |
+ | 其學文章 | ||
+ | 淸風明月 | ||
+ | 玉色金聲 | ||
+ | 矩方規圓 규구(規矩)< | ||
+ | 準眞繩平 준승(準繩)< | ||
+ | 賢聖之訓 성현(聖賢)의 훈계를 배우고 따르니 \\ | ||
+ | 君子之行 군자(君子)가 지켜나갈 행의(行義)이었다.\\ | ||
+ | 大耊高齡 80(八十)세를 넘기는 높은 나이로 \\ | ||
+ | 優老典蒙 수직(壽職)의 은전(恩典)으로 통정(通政)에 올랐다.\\ | ||
+ | 刻之玉石 구슬같은 비석(碑石)에 행적(行蹟)을 새기니 \\ | ||
+ | 千古芳名 꽃다운 이름은 천추(千秋)에 전해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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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_신미(辛未)년 12(十二)월 겨울에 김녕(金寧) 김병익(金炳翊) 삼가 짓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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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AP subnote> | ||
+ | 주1. 규구(規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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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2. 준승(準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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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註一。規 | ||
- | 二。準 | ||
- | 규구(規矩)를 법도(法度)로 처신(處身)하였고 준승(準繩)같이 바른 행동이었 | ||
- | 다. | ||
- | 성현(聖賢)의 훈계를 배우고 따르니 군자(君子)가 지켜나갈 행의(行義)이었다. | ||
- | 八十세를 넘기는 높은 나이로 수직(壽職)의 은전(恩典)으로 통정(通政)에 올 | ||
- | 랐다. | ||
- | 구슬같은 비석(碑石)에 행적(行蹟)을 새기니 꽃다운 이름은 천추(千秋)에 전 | ||
- | 해지리。 | ||
- | 신미(辛未)년 十二월 겨울에 김녕(金寧) 김병익(金炳翊) 삼가 짓다. | ||
- | 矩: | ||
- | 繩: 수평을 헤아리는 水平과 直線을 定하는 먹줄(一定한 법) |
b-096.1748257202.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6 20:00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