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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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단증축기사(先壇增築記事) | + | ===선단증축기사(先壇增築記事)=== |
- | + | <WRAP 37em justify>< | |
- | 先壇增築記事 | + | <typo ff:' |
- | 尙論國之載籍이 莫盛於夏殷周三代而我東國에 自羅麗至鮮으로 從周 | + | \_**先壇增築記事**\\ |
- | 之風이 漸至休明하야 於家乘國史에 傳疑傳信하야 殆難更僕하야 | + | 尙論國之載籍이 莫盛於夏殷周三代而我東國에 自羅麗至鮮으로 從周之風이 |
- | 究歸則實不得吾夫子褒貶之致也라 謹按萬姓氏族攷及青邱譜實錄則黃 | + | 漸至休明하야 於家乘國史에 傳疑傳信하야 殆難更僕하야 |
- | 帝氏以下로 黃氏籍一百八十四貫이 系出中國江夏라하야 一云顓頊高 | + | 而究歸則實不得吾夫子褒貶之致也라 謹按萬姓氏族攷及靑邱譜實錄則黃帝氏以下로 |
- | 陽氏之后陸終이 封黃하야 因以為氏라하고 諱洛은 官學士라 漢光武 | + | 黃氏籍一百八十四貫이 系出中國江夏라하야 一云顓頊高陽氏之后陸終이 |
- | 建武年間에 與漢尙書丘大林으로 始到東國越松里하니 新羅南海王時라 | + | 封黃하야 因以爲氏라하고 諱洛은 官學士라 漢光武建武年間에 |
+ | 與漢尙書丘大林으로 始到東國越松里하니 新羅南海王時라 | ||
云하니 雖先世未發之事나 無非後日益考辨破之籍也하니 莫信莫疑를 | 云하니 雖先世未發之事나 無非後日益考辨破之籍也하니 莫信莫疑를 | ||
- | 不無杞宋無徵之歎者是也라 噫라 史蹟이 不明하고 墓所無傳하니 | + | 不無杞宋無徵之歎者是也라 噫라 史蹟이 不明하고 墓所無傳하니 |
- | 難堪風泉之慟이라 曾是設壇奉香에 且年代久遠하야 頹墻苔石하니 | + | 尤難堪風泉之慟이라 曾是設壇奉香에 且年代久遠하야 頹墻苔石하니 |
- | 後之道에 悚懼莫極이라 今玆歲之乙卯에 宗議循同하야 重理刻珉에 | + | 爲後之道에 悚懼莫極이라 今玆歲之乙卯에 宗議循同하야 重理刻珉에 |
- | 配奉立碑干箕城君諱甲古太子檢校公諱溫仁軍器少尹公諱佑精門下侍 | + | 配奉立碑干箕城君諱甲古太子檢校公諱溫仁軍器少尹公諱佑精門下侍中公諱裕中位하야 |
- | 中公諱裕中位하야 列序奉香하고 構齋而保衛設壇焉하니 寔月松壇也라 | + | 列序奉香하고 構齋而保衛設壇焉하니 寔月松壇也라 |
舊蹟이 增光하고 苾芬이 維新하니 維嶽精華가 有儼陟降이라 松柏이 | 舊蹟이 增光하고 苾芬이 維新하니 維嶽精華가 有儼陟降이라 松柏이 | ||
- | 森羅에 遠映三條之路하고 滄月이 映輝에 照林八角之墟하니 周道如 | + | 森羅에 遠映三條之路하고 滄月이 映輝에 照林八角之墟하니 周道如砥에 |
- | 砥에 其直如失라 立於禮하고 成於樂하니 永世進修之誠은 百世不忘 | + | 其直如失라 立於禮하고 成於樂하니 永世進修之誠은 百世不忘키로 |
- | 키로 | + | \_\_檀紀四三〇九年丙辰小春節裔孫潤範盥手謹敍 |
- | 檀紀四三〇九年丙辰小春節裔孫潤範盥手謹叙 | + | </ |
- | 선단(先壇)을 증축(増築)한 기사(記事) | + | </ |
- | 고인(古人)의 언행(言行)과 행적을 논(論)함에 있었서는 나라의 전적(典籍)이 | + | \\ |
+ | <typo ff:' | ||
+ | \_**선단(先壇)을 증축(增築)한 기사(記事)**\\ | ||
+ | \_고인(古人)의 언행(言行)과 행적을 논(論)함에 있었서는 나라의 전적(典籍)이 | ||
중국의 하(夏) 은(殷) 주(周) 삼대(三代)보다 더 성(盛)한 나라가 없지만 우리 | 중국의 하(夏) 은(殷) 주(周) 삼대(三代)보다 더 성(盛)한 나라가 없지만 우리 | ||
동국(東國)은 신라(新羅)와 고려(高麗)로부터 조선(朝鮮)에 이르기까지 주(周) | 동국(東國)은 신라(新羅)와 고려(高麗)로부터 조선(朝鮮)에 이르기까지 주(周) | ||
나라의 문풍(文風)을 따라 점점 훌륭하고 명백해졌으나 한 집안의 계보(系譜)와 | 나라의 문풍(文風)을 따라 점점 훌륭하고 명백해졌으나 한 집안의 계보(系譜)와 | ||
나라의 사기(史記)에 있어서는 전해지는 것이 의심스러운 것도 있고 믿을 만한 | 나라의 사기(史記)에 있어서는 전해지는 것이 의심스러운 것도 있고 믿을 만한 | ||
- | 것도 있으나 그 귀결(歸結)을 궁구(窮究)해 보면 실로 공자님이 필삭(筆削)을 | + | 것도 있으나 그 귀결(歸結)을 궁구(窮究)해 보면 실로 공자님의 필삭(筆削)< |
- | 거치지 못한 소치이라。 | + | 거치지 못한 소치이라.\\ |
- | 삼가 만성씨족고(萬姓氏族考)와 청구보실록(青邱譜實錄)을 상고해 보면 황제 | + | |
- | 헌원씨(黃帝軒轅氏)이하로 황씨(黃氏)의 관적(貫籍)이 이백팔십사관(二百八十 | + | |
- | 四貫)이며 중국(中國)의 강하(江夏)에서 세게(世系)가 나왔다 하고 또 일설(一 | + | |
- | 說)에는 전우고양씨(顓頊高陽氏)의 후예인 육종(陸終)이 황씨(黃氏)를 봉했기 | + | \_삼가 만성씨족고(萬姓氏族考)와 청구보실록(靑邱譜實錄)을 상고해 보면 |
- | 때문에 이로 인하여 씨족(氏族)이 되었다고 한다. | + | 황제헌원(黃帝軒轅)< |
- | 휘(諱) 락(洛)은 벼슬이 학사(學士)였는데 한(漢)나라 광무황제(光武皇帝)와 | + | 284관(二百八十四貫)이며 중국(中國)의 강하(江夏)에서 세계(世系)가 나왔다 |
- | 건무황제(建武皇帝) 때에 한(漢)나라의 상서(尙書)벼슬에 있던 구대림(丘大林)과 | + | 하고 또 일설(一說)에는 전욱고양(顓頊高陽)< |
- | 더불어 처음 우리나리의 월송리(越松里)에 도착했으니 그 때가 신라(新羅) | + | 때문에 이로 인하여 씨족(氏族)이 되었다고 한다.\\ |
- | 해왕(南海王) BC4~23때라 하니 비록 선대(先代)에서는 밝혀 내지 못한 | + | |
- | 실이지만 후일(後日)에 더욱 상고(詳考)하여 판단해야될 문적(文籍)이 아닐 수 | + | \_휘(諱) 락(洛)은 벼슬이 학사(學士)였는데 한(漢)나라 광무황제(光武皇帝)와 |
+ | 건무(建武) 때에 한(漢)나라의 상서(尙書)벼슬에 있던 구대림(丘大林)과 | ||
+ | 더불어 처음 우리나라의 월송리(越松里)에 도착했으니 그 때가 신라(新羅) | ||
+ | 남해왕(南海王) BC4~23 때라 하니 비록 선대(先代)에서는 밝혀 내지 못한 | ||
+ | 사실이지만 후일(後日)에 더욱 상고(詳考)하여 판단해야 될 문적(文籍)이 아닐 수 | ||
없다. 믿을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니 기(杞)나라와 송(宋)나라의 | 없다. 믿을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니 기(杞)나라와 송(宋)나라의 | ||
문헌이 없기 때문에 징신(微信)할 수 없다는 탄식이 없지 않다는 말이 이것이다. | 문헌이 없기 때문에 징신(微信)할 수 없다는 탄식이 없지 않다는 말이 이것이다. | ||
- | 아! 역사의 사적(事蹟)이 명백하지 않고 묘소(墓所)도 전하지 않으니 풍천(風 | + | 아! 역사의 사적(事蹟)이 명백하지 않고 묘소(墓所)도 전하지 않으니 |
- | 泉)의 절통한 마음을 더욱 참아내기 어렵다. | + | 풍천(風泉)의 절통한 마음을 더욱 참아내기 어렵다.\\ |
- | 일찍이 여기에 제단(祭壇)을 설치하여 향화(香火)를 받들어 왔으나 또한 연대 | + | |
- | (年代)가 오래되니 담장은 무너지고 단비(壇碑)에는 이끼가 끼어서 후손들이 | + | \_일찍이 여기에 제단(祭壇)을 설치하여 향화(香火)를 받들어 왔으나 또한 |
- | 하여야 할 도리로 보면 송구한 마음이 막심한지라. 지금 을묘년(乙卯年)에 | + | 연대(年代)가 오래되니 담장은 무너지고 단비(壇碑)에는 이끼가 끼어서 후손들이 |
- | 중(宗中)의 의론이 동일(同一)하여 단비(壇碑)를 다시 다듬고 새겼으며 기성 | + | 하여야 할 도리로 보면 송구한 마음이 막심한지라. 지금 을묘년(乙卯年)에 |
- | 군(箕城君)이신 휘 잡고(甲古)와 태자검교공(大子檢校公)이신 휘(諱) 온인(温 | + | 종중(宗中)의 의논이 동일(同一)하여 단비(壇碑)를 다시 다듬고 새겼으며 |
- | 仁)과 군기소윤공(軍器少尹公)이신 휘 우정(佑精)과 문하시중공(門下侍中公) | + | 기성군(箕城君)이신 휘 갑고(甲古)와 태자검교공(大子檢校公)이신 휘(諱) |
+ | 온인(溫仁)과 군기소윤공(軍器少尹公)이신 휘 우정(佑精)과 | ||
+ | 문하시중공(門下侍中公)이신 휘(諱) 유중(裕中)의 위차(位次)도 | ||
+ | 단비(壇碑)를 세워 배봉(配奉)하여 차례로 봉향(奉香)하며 재사(齋舍)를 지어 | ||
+ | 설단(設壇)을 보호토록 했으니 이곳이 | ||
+ | 월송단(月松壇)이다.\\ | ||
- | 이신 휘(諱) 유증(裕中)의 위차(位次)도 단비(壇碑)를 세워 배봉(配奉)하여 차 | + | \_옛날 유적(遺蹟)이 빛을 더하고 향기가 세로우니 산악(山嶽)의 정화(精華)가 |
- | 례로 봉향(奉香)하며 재사(齋舎)를 지어 설단(設壇)을 보호토록 했으니 이곳이 | + | |
- | 월송단(月松壇)이다. | + | |
- | 옛날 유적(遺蹟)이 빛을 더하고 향기가 세로우니 산악(山嶽)의 정화(精華)가 | + | |
엄연히 혼령(魂靈)이 오르내림이라 송백(松柏)이 우거져 늘어서니 멀리 세 갈래의 | 엄연히 혼령(魂靈)이 오르내림이라 송백(松柏)이 우거져 늘어서니 멀리 세 갈래의 | ||
길이 비쳐오고 창해(滄海)의 달이 밝게 비치어 오니 숲속의 팔각(八角)의 옛터를 | 길이 비쳐오고 창해(滄海)의 달이 밝게 비치어 오니 숲속의 팔각(八角)의 옛터를 | ||
- | 조명(照明)한다. 주위의 도로(道路)가 숫돌같이 평평하니 그 공기가 화살같으며 | + | 조명(照明)한다. 주위의 도로(道路)가 숫돌같이 평평하니 그 공기가 화살 같으며 |
- | 예(禮)로서 행동의 규칙을 세우고 음악(音樂)으로 인간성정(人間性情)의 조화 | + | 예(禮)로서 행동의 규칙을 세우고 음악(音樂)으로 인간성정(人間性情)의 |
- | (調和)를 이룩하나니 영세(永世)토록 다시 한 발 나아가 자신을 수양(修養)하는 | + | 조화(調和)를 이룩하나니 영세(永世)토록 다시 한 발 나아가 자신을 수양(修養)하는 |
- | 정성으로 백세(百世)토록 조선(祖先)의 은덕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 + | 정성으로 백세(百世)토록 조선(祖先)의 은덕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
- | 말(顛末)을 기재(記載)하는 바이다. | + | 전말(顚末)을 기재(記載)하는 바이다.\\ |
- | 단기(檀紀) 四三〇九년 병진十월에 | + | \_\_단기(檀紀) |
- | 후손 윤범(潤範)은 손을 씻고 삼가 짓다. | + | 후손 윤범(潤範)은 손을 씻고 삼가 짓다.\\ |
- | 註一。筆 削: | + | \\ |
- | 二。黃帝軒轅氏: | + | <WRAP subnote> |
- | 三。顓頊高陽氏: | + | 주1. 필삭(筆削): 가필(加筆)과 삭제(削除).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필삭(筆削)한 사실을 말함.\\ |
+ | 주2. 황제헌원(黃帝軒轅): | ||
+ | 주3. 전욱고양(顓頊高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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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31.1748160111.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5 17:01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