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c3-011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양쪽 이전 판이전 판
다음 판
이전 판
c3-011 [2025/05/10 20:31] ssio2c3-011 [2025/05/22 13:35] (현재) ssio2
줄 1: 줄 1:
-===평해황씨초보서((平海黃氏世譜序)===+===평해황씨초보서(平海黃氏世譜序)===
 <WRAP 33em justify> <WRAP 33em justify>
 <typo ff:'한양해서'> <typo ff:'한양해서'>
 \_**平海黃氏世譜序**\\ \_**平海黃氏世譜序**\\
-\_黃氏의 東國에 나타난 歷史는 오랜 옛날이며 그 繁榮해온 由來는 新羅朝에서 +\_황씨(黃氏)의 동국(東國)에 나타난 역사(歷史)는 오랜 옛날이며 그 번영(繁榮)해온 유래(由來)는 신라조(新羅朝)에서 
-安鄭朴李金崔의 六姓을 처음 세운 後로부터 +안()정()박()이()김()최()의 6성(六姓)을 처음 세운 후()로부터 
-그 뿌리와 줄기와 잎이 퍼서 우리 黃氏는 어느덧 大姓이 되어 派系가 나누어지고 +그 뿌리와 줄기와 잎이 퍼서 우리 황씨(黃氏)는 어느덧 대성(大姓)이 되어 파계(派系)가 나누어지고 
-貫鄕이 달라서 鐵原 昌原 長水 平海 等에 +관향(貫鄕)이 달라서 철원(鐵原) 창원(昌原) 장수(長水) 평해(平海) 등()에 
-가장 많은 편이며 그 中에도 平海黃氏가 멀고 오랜 歷史를 지니고 있다.\\+가장 많은 편이며 그 중()에도 평해황씨(平海黃氏)가 멀고 오랜 역사(歷史)를 지니고 있다.\\
  
-\_그러면 黃氏의 始祖는 누구였던가? 傳說에 依하면 新羅 上世에 黃將軍이라는 +\_그러면 황씨(黃氏)의 시조(始祖)는 누구였던가? 전설(傳說)에 의()하면 신라(新羅) 상세(上世)에 황장군(黃將軍)이라는 
-어른이 丘將軍이라는 분과 함께 들어오셨다는 것인데, 黃將軍은 月松 북쪽 기슭에 +어른이 구장군(丘將軍)이라는 분과 함께 들어오셨다는 것인데, 황장군(黃將軍)은 월송(月松북쪽 기슭에 
-살아계셔서 지금도 黃將軍의 사신 터가 있으며, 丘將軍은 丘尾 北浦에 배를 대어  +살아계셔서 지금도 황장군(黃將軍)의 사신 터가 있으며, 구장군(丘將軍)은 구미(丘尾) 북포(北浦)에 배를 대어  
-上陸하셨다 하여 그 地方名을 只今도 丘尾津이라 부르고 있다. 이 모든 말이 다  +상륙(上陸)하셨다 하여 그 지방명(地方名)을 지금(只今)도 구미진(丘尾津)이라 부르고 있다. 이 모든 말이 다  
-平海郡誌에 登載되어 있으나 世代가 荒朴하고 +평해군지(平海郡誌)에 등재(登載)되어 있으나, 세대(世代)가 황박(荒朴)하고  
-文籍이 燒失되어 確實히 證憑할 根據는 없다. 그러나 뜻하건데 黃姓이 처음으로 여기에서 +문적(文籍)이 소실(燒失)되어 확실(確實)히 증빙(證憑)할 근거(根據)는 없다. 그러나 뜻하건데 황성(黃姓)이 처음으로 여기에서 
-根源을 삼은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리고 대계 長水 昌原은 平海에서 나누어졌다 하니 +근원(根源)을 삼은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리고 대개 장수(長水) 창원(昌原)은 평해(平海)에서 나누어졌다 하니 
-이 三派는 처음 한 祖上에서 갈린 것을 짐작할 수 있다.\\+이 3파(三派)는 처음 한 조상(祖上)에서 갈린 것을 짐작할 수 있다.\\
  
-\_우리 平海黃氏는 고려 初로부터 代代로 文官과 武官에 宰相의 자리를 바라볼 만한  +\_우리 평해황씨(平海黃氏)는 고려 초()로부터 대대(代代)로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에 재상(宰相)의 자리를 바라볼 만한  
-名望 높은 분들이 많았고 또 이름난 宰相과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한 분들이 많아서 +명망(名望높은 분들이 많았고또 이름난 재상(宰相)과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한 분들이 많아서, 
-李朝에 들어와서도 歷史에 班班함을 가히 자랑할 만하다. 이것은 진실로 祖先의 +이조(李朝)에 들어와서도 역사(歷史)에 반반(班班)함을 가히 자랑할 만하다. 이것은 진실로 조선(祖先)의 
-深仁厚澤의 積功이 아니였던들 어찌 數百年 동안을 그같은 燦然한 門閥로 家業을+심인후택(深仁厚澤)의 적공(積功)이 아니였던들 어찌 수백년(數百年동안을 그같은 찬연(燦然)한 문벌(門閥)로 가업(家業)
 이어 내려올 수 있었겠는가?\\ 이어 내려올 수 있었겠는가?\\
  
-\_무릇 世上은 심은 바가 있으면 반드시 거두게 되고 물은 대면 반드시 흐르는 法임에 +\_무릇 세상(世上)은 심은 바가 있으면 반드시 거두게 되고 물은 대면 반드시 흐르는 법()임에, 
-歷代의 燦然했던 우리 譜史도 반드시 譜牒을 通하여 서로 믿고 傳함이 있었던 것을 +역대(歷代)의 찬연(燦然)했던 우리 보사(譜史)도 반드시 보첩(譜牒)을 통()하여 서로 믿고 전()함이 있었던 것을 
-確信하노라. 그런데 高麗 末에 日本 海賊 떼가 侵入하여 竹嶺 以南은 皆가 +확신(確信)하노라. 그런데 고려(高麗) 말()에 일본(日本) 해적(海賊떼가 침입(侵入)하여 죽령(竹嶺) 이남(以南)은 거개(擧)가 
-盜賊에게 쑥밭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北으로 避亂하게 됨에 가졌던 祖上 傳來의 물건을 +도적(盜賊)에게 쑥밭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북()으로 피란(避亂)하게 됨에가졌던 조상(祖上) 전래(傳來)의 물건을 
-모두 兵火로 燒失하고 또 散之四方으로 +모두 병화(兵火)로 소실(燒失)하고 또 산지사방(散之四方)으로 
-흩어져 살게 됨으로 그 情狀은 진실로 슬프고 可惜할 노릇이다. 이것이 우리 黃氏가 北方에+흩어져 살게 됨으로 그 정상(情狀)은 진실로 슬프고 가석(可惜)할 노릇이다. 이것이 우리 황씨(黃氏)가 북방(北方)
 많이 살게된 연유요 또 처음된 일로 생각한다.\\ 많이 살게된 연유요 또 처음된 일로 생각한다.\\
  
-\_그 다음은 李朝 初에 兵曹判書 黃象이 文川郡에서 돌아가 葬事함에 그 後孫의 +\_그 다음은 이조(李朝) 초()에 병조판서(兵曹判書) 황상(黃象)이 문천군(文川郡)에서 돌아가 장사(葬事)함에 그 후손(後孫)의 
-一部가 흩어져살 게된 것이 두번째였다.\\+일부(一部)가 흩어져 살게 된 것이 두번째였다.\\
  
-\_그리고 各邑 各處에 散居하여 繁衍하게 사는 이들은 모두가 간구한 生活로 한터럭에 견줄+\_그리고 각읍(各邑) 각처(各處)에 산거(散居)하여 번연(繁衍)하게 사는 이들은 모두가 간구한 생활(生活)로 한 터럭에 견줄
 것이나 오히려 끊이지 않고 살아 것이나 오히려 끊이지 않고 살아
-가는 것이 多幸한 일이다. 回顧하건데 譜諜을 읽고 또 듣는 바 없이 살아온 고로 +가는 것이 다행(多幸)한 일이다. 회고(回顧)하건데 보첩(譜諜)을 읽고 또 듣는 바 없이 살아온 고로 
-平海黃氏 子孫들이 三派로 나누어 그 祖上을 各各으로 하였으니 처음에 한 祖上이  +평해황씨(平海黃氏) 자손(子孫)들이 3파(三派)로 나누어 그 조상(祖上)을 각각(各各)으로 하였으니 처음에 한 조상(祖上)이  
-누구였음을 알지 못하고 서로 婚姻을 하여 부끄러움이 없이 지냈으니 이 어찌 大幸 +누구였음을 알지 못하고 서로 혼인(婚姻)을 하여 부끄러움이 없이 지냈으니 이 어찌 대행(大幸) 
-中 大不幸이 아니였느랴!\\+중() 대불행(大不幸)이 아니었으랴!\\
  
-\_黃瑞께서는 翊戴元勳으로써 陞郡 즉 箕城縣을 平海郡으로 올리시고 黃鉉 은經明行修로써 +\_황서(黃瑞)께서는 익대원훈(翊戴元勳)으로써 승군(陞郡즉 기성현(箕城縣)을 평해군(平海郡)으로 올리시고 황현(黃鉉)은  
-世上에 이름이 높고 近代에 와서 또 黃瑞와 黃俊良 두분의 博洽多聞으로서도 모두 +경명행수(經明行修)((經明行修(경명행수): 경서(經書)에 밝고 행실(行實)이 바름))로써 
-宗史에 詳審치 못한 바 있어 한 祖上으로 그 同宗인 것이 드러남이 없으니 +세상(世上)에 이름이 높고, 근대(近代)에 와서 또 황서(黃瑞)와 황준량(黃俊良두분의 박흡다문(博洽多聞)으로서도 모두 
-드디어 우리 子孫의 無窮한 슬픔이라 하겠다. 嗚呼라 우리 고을은 僻이며 우리들은  +종사(宗史)에 상심(詳審)치 못한 바 있어 한 조상(祖上)으로 그 동종(同宗)인 것이 드러남이 없으니, 
-잔약한 子孫이라. 이들의 흐름을 살펴 볼 때 가난하고 賤한 常民으로 기우러짐이 많으니 +드디어 우리 자손(子孫)의 무궁(無窮)한 슬픔이라 하겠다. \\ 
-진실로 後孫들의 將來가 크게 痛嘆케 되는도다. 果然 이 일이 將次 어떻게 되어갈까? + 
-이에 거듭한 壬辰癸巳의 災難이 麗末의 海寇의 災難보다 더욱 甚하니 이제까지의 +\_오호(嗚呼)라 우리 고을은 벽향(鄕)이며 우리들은  
-證憑을 後日에 提示치 못할 것이 오늘보다 더 할 것이 明若觀火하며 또 同族의 賤해짐과 +잔약한 자손(子孫)이라. 이들의 흐름을 살펴 볼 때 가난하고 천()한 상민(常民)으로 기울어짐이 많으니 
-그 將來의 嘆息됨이 오늘의 子孫이 오늘보다 응당 더 할 것이므로 이에 크게 두려움이 +진실로 후손(後孫)들의 장래(將來)가 크게 통탄(痛嘆)케 되는도다. 과연(果然이 일이 장차(將次어떻게 되어갈까? 
-있어 宗族의 譜史를 蒐集코져 하였으나 疾病 이잦고 耳目이 넓지 못하여 叔父 應淸 어른의 +이에 거듭한 임진(壬辰) 계사(癸巳)의 재난(災難)이 려말(麗末)의 해구(海寇)의 재난(災難)보다 더욱 심()하니 이제까지의 
-平日 手記한 것을 土台로 나의 交遊間에 듣고 본 바를 補入하여 一家의 私私로히 전하는 +증빙(證憑)을 후일(後日)에 제시(提示)치 못할 것이 오늘보다 더 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며 또 동족(同族)의 천()해짐과 
-便覽으로 하였으니 그間에 혹 仔細함과 혹 +그 장래(將來)의 탄식(嘆息)됨이 오늘의 자손(子孫)이 오늘보다 응당 더 할 것이므로이에 크게 두려움이 
-簡略함과 혹 빠진 것을 쓰지 않음은 前誌에 따른 것이며 혹 同名으로서 派가 같지않고 +있어 종족(宗族)의 보사(譜史)를 수집(蒐集)코져 하였으나 질병(疾病)이 잦고 이목(耳目)이 넓지 못하여, 숙부(叔父) 응청(應淸어른의 
-혹 同生으로서 이름이 가지런하지 않아 疑心으로 전하고 믿음으로 전하여  +평일(平日) 수기(手記)한 것을 토대(土台)로 나의 교유(交遊) 간()에 듣고 본 바를 보입(補入)하여 일가(一家)의 사사(私私)로히 전하는 
-그대로 두고 깍지 않음은 先代를 높인 것이오 外孫의 外派와 舅親의 舅族을 繼續記錄한 것은 +편람(便覽)으로 하였으니 그 간()에 혹 자세(仔細)함과 혹 
-士族의 根源을 밝힌 것이오 常民 아전 庶子 賤民이 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빼지 않은 것은  +간략(簡略)함과 혹 빠진 것을 쓰지 않음은 전지(前誌)에 따른 것이며혹 동명(同名)으로서 파()가 같지 않고 
-同宗을 重하게 여김이라 +혹 동생(同生)으로서 이름이 가지런하지 않아 의심(疑心)으로 전하고 믿음으로 전하여  
-嗚呼라 過去 數百年間의 祖上이 어찌 이로 힘입어 혹 後世에 傳할 줄 알았겠으며 +그대로 두고 깍지 않음은 선대(先代)를 높인 것이오, 외손(外孫)의 외파(外派)와 구친(舅親)의 구족(舅族)을 계속(繼續) 기록(記錄)한 것은 
-또 將次 數百年間에 子孫들이 어찌 이로 이어서 더욱 자세할 줄 누가 알일이겠는가? +사족(士族)의 근원(根源)을 밝힌 것이오 상민(常民아전 서자(庶子) 천민(賤民)이 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빼지 않은 것은  
-만든 바 計劃대로 族譜가 完成되었으니 이에 可히 유감이 없을지니라.\\ +동종(同宗)을 중()하게 여김이라.\\ 
-\_\_宣祖 甲辰 上浣 通訓大夫 行 醴泉郡守 汝一 謹序+ 
 +\_오호(嗚呼)라 과거(過去) 수백년간(數百年間)의 조상(祖上)이 어찌 이로 힘입어 혹 후세(後世)에 전()할 줄 알았겠으며 
 +또 장차(將次) 수백년간(數百年間)에 자손(子孫)들이 어찌 이로 이어서 더욱 자세할 줄 누가 알 일이겠는가? 
 +만든 바 계획(計劃)대로 족보(族譜)가 완성(完成)되었으니 이에 가()히 유감이 없을지니라.\\ 
 +\_\_선조(宣祖 ) 갑진(甲辰)(=1604) 상완(上浣)((上浣(상완): 한 달 가운데 1일에서 10일까지의 동안) )) 통훈대부(通訓大夫) 행() 예천군수(醴泉郡守) 여일(汝一) 근서(謹序)
 </typo> </typo>
 </WRAP> </WRAP>
c3-011.1746876696.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0 20:31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