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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11 [2025/05/11 13:26] ssio2c3-011 [2025/05/22 13:35]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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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황씨초보서((平海黃氏世譜序)===+===평해황씨초보서(平海黃氏世譜序)===
 <WRAP 33em justify> <WRAP 33em justify>
 <typo ff:'한양해서'> <typo ff:'한양해서'>
 \_**平海黃氏世譜序**\\ \_**平海黃氏世譜序**\\
- 
-황씨(黃氏) 東國(동국) 
- 
 \_황씨(黃氏)의 동국(東國)에 나타난 역사(歷史)는 오랜 옛날이며 그 번영(繁榮)해온 유래(由來)는 신라조(新羅朝)에서 \_황씨(黃氏)의 동국(東國)에 나타난 역사(歷史)는 오랜 옛날이며 그 번영(繁榮)해온 유래(由來)는 신라조(新羅朝)에서
 안(安)정(鄭)박(朴)이(李)김(金)최(崔)의 6성(六姓)을 처음 세운 후(後)로부터 안(安)정(鄭)박(朴)이(李)김(金)최(崔)의 6성(六姓)을 처음 세운 후(後)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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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계셔서 지금도 황장군(黃將軍)의 사신 터가 있으며, 구장군(丘將軍)은 구미(丘尾) 북포(北浦)에 배를 대어  살아계셔서 지금도 황장군(黃將軍)의 사신 터가 있으며, 구장군(丘將軍)은 구미(丘尾) 북포(北浦)에 배를 대어 
 상륙(上陸)하셨다 하여 그 지방명(地方名)을 지금(只今)도 구미진(丘尾津)이라 부르고 있다. 이 모든 말이 다  상륙(上陸)하셨다 하여 그 지방명(地方名)을 지금(只今)도 구미진(丘尾津)이라 부르고 있다. 이 모든 말이 다 
-평해군지(平海郡誌)에 등재(登載)되어 있으나 세대(世代)가 황박(荒朴)하고 +평해군지(平海郡誌)에 등재(登載)되어 있으나세대(世代)가 황박(荒朴)하고 
 문적(文籍)이 소실(燒失)되어 확실(確實)히 증빙(證憑)할 근거(根據)는 없다. 그러나 뜻하건데 황성(黃姓)이 처음으로 여기에서 문적(文籍)이 소실(燒失)되어 확실(確實)히 증빙(證憑)할 근거(根據)는 없다. 그러나 뜻하건데 황성(黃姓)이 처음으로 여기에서
 근원(根源)을 삼은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리고 대개 장수(長水) 창원(昌原)은 평해(平海)에서 나누어졌다 하니 근원(根源)을 삼은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리고 대개 장수(長水) 창원(昌原)은 평해(平海)에서 나누어졌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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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우리 평해황씨(平海黃氏)는 고려 초(初)로부터 대대(代代)로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에 재상(宰相)의 자리를 바라볼 만한  \_우리 평해황씨(平海黃氏)는 고려 초(初)로부터 대대(代代)로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에 재상(宰相)의 자리를 바라볼 만한 
-명망(名望) 높은 분들이 많았고 또 이름난 재상(宰相)과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한 분들이 많아서+명망(名望) 높은 분들이 많았고또 이름난 재상(宰相)과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한 분들이 많아서,
 이조(李朝)에 들어와서도 역사(歷史)에 반반(班班)함을 가히 자랑할 만하다. 이것은 진실로 조선(祖先)의 이조(李朝)에 들어와서도 역사(歷史)에 반반(班班)함을 가히 자랑할 만하다. 이것은 진실로 조선(祖先)의
 심인후택(深仁厚澤)의 적공(積功)이 아니였던들 어찌 수백년(數百年) 동안을 그같은 찬연(燦然)한 문벌(門閥)로 가업(家業)을 심인후택(深仁厚澤)의 적공(積功)이 아니였던들 어찌 수백년(數百年) 동안을 그같은 찬연(燦然)한 문벌(門閥)로 가업(家業)을
 이어 내려올 수 있었겠는가?\\ 이어 내려올 수 있었겠는가?\\
  
-\_무릇 세상(世上)은 심은 바가 있으면 반드시 거두게 되고 물은 대면 반드시 흐르는 법(法)임에+\_무릇 세상(世上)은 심은 바가 있으면 반드시 거두게 되고 물은 대면 반드시 흐르는 법(法)임에,
 역대(歷代)의 찬연(燦然)했던 우리 보사(譜史)도 반드시 보첩(譜牒)을 통(通)하여 서로 믿고 전(傳)함이 있었던 것을 역대(歷代)의 찬연(燦然)했던 우리 보사(譜史)도 반드시 보첩(譜牒)을 통(通)하여 서로 믿고 전(傳)함이 있었던 것을
 확신(確信)하노라. 그런데 고려(高麗) 말(末)에 일본(日本) 해적(海賊) 떼가 침입(侵入)하여 죽령(竹嶺) 이남(以南)은 거개(擧皆)가 확신(確信)하노라. 그런데 고려(高麗) 말(末)에 일본(日本) 해적(海賊) 떼가 침입(侵入)하여 죽령(竹嶺) 이남(以南)은 거개(擧皆)가
-도적(盜賊)에게 쑥밭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북(北)으로 피란(避亂)하게 됨에 가졌던 조상(祖上) 전래(傳來)의 물건을+도적(盜賊)에게 쑥밭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북(北)으로 피란(避亂)하게 됨에가졌던 조상(祖上) 전래(傳來)의 물건을
 모두 병화(兵火)로 소실(燒失)하고 또 산지사방(散之四方)으로 모두 병화(兵火)로 소실(燒失)하고 또 산지사방(散之四方)으로
 흩어져 살게 됨으로 그 정상(情狀)은 진실로 슬프고 가석(可惜)할 노릇이었다. 이것이 우리 황씨(黃氏)가 북방(北方)에 흩어져 살게 됨으로 그 정상(情狀)은 진실로 슬프고 가석(可惜)할 노릇이었다. 이것이 우리 황씨(黃氏)가 북방(北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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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명행수(經明行修)((經明行修(경명행수): 경서(經書)에 밝고 행실(行實)이 바름))로써 경명행수(經明行修)((經明行修(경명행수): 경서(經書)에 밝고 행실(行實)이 바름))로써
 세상(世上)에 이름이 높고, 근대(近代)에 와서 또 황서(黃瑞)와 황준량(黃俊良) 두분의 박흡다문(博洽多聞)으로서도 모두 세상(世上)에 이름이 높고, 근대(近代)에 와서 또 황서(黃瑞)와 황준량(黃俊良) 두분의 박흡다문(博洽多聞)으로서도 모두
-종사(宗史)에 상심(詳審)치 못한 바 있어 한 조상(祖上)으로 그 동종(同宗)인 것이 드러남이 없으니 +종사(宗史)에 상심(詳審)치 못한 바 있어 한 조상(祖上)으로 그 동종(同宗)인 것이 드러남이 없으니, 
-드디어 우리 자손(子孫)의 무궁(無窮)한 슬픔이라 하겠다. 오호(嗚呼)라 우리 고을은 벽향(僻)이며 우리들은 +드디어 우리 자손(子孫)의 무궁(無窮)한 슬픔이라 하겠다. \\ 
 + 
 +\_오호(嗚呼)라 우리 고을은 벽향(僻)이며 우리들은 
 잔약한 자손(子孫)이라. 이들의 흐름을 살펴 볼 때 가난하고 천(賤)한 상민(常民)으로 기울어짐이 많으니 잔약한 자손(子孫)이라. 이들의 흐름을 살펴 볼 때 가난하고 천(賤)한 상민(常民)으로 기울어짐이 많으니
 진실로 후손(後孫)들의 장래(將來)가 크게 통탄(痛嘆)케 되는도다. 과연(果然) 이 일이 장차(將次) 어떻게 되어갈까? 진실로 후손(後孫)들의 장래(將來)가 크게 통탄(痛嘆)케 되는도다. 과연(果然) 이 일이 장차(將次) 어떻게 되어갈까?
 이에 거듭한 임진(壬辰) 계사(癸巳)의 재난(災難)이 려말(麗末)의 해구(海寇)의 재난(災難)보다 더욱 심(甚)하니 이제까지의 이에 거듭한 임진(壬辰) 계사(癸巳)의 재난(災難)이 려말(麗末)의 해구(海寇)의 재난(災難)보다 더욱 심(甚)하니 이제까지의
 증빙(證憑)을 후일(後日)에 제시(提示)치 못할 것이 오늘보다 더 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며 또 동족(同族)의 천(賤)해짐과 증빙(證憑)을 후일(後日)에 제시(提示)치 못할 것이 오늘보다 더 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며 또 동족(同族)의 천(賤)해짐과
-그 장래(將來)의 탄식(嘆息)됨이 오늘의 자손(子孫)이 오늘보다 응당 더 할 것이므로 이에 크게 두려움이 +그 장래(將來)의 탄식(嘆息)됨이 오늘의 자손(子孫)이 오늘보다 응당 더 할 것이므로이에 크게 두려움이 
-있어 종족(宗族)의 보사(譜史)를 수집(蒐集)코져 하였으나 질병(疾病)이 잦고 이목(耳目)이 넓지 못하여 숙부(叔父) 응청(應淸) 어른의+있어 종족(宗族)의 보사(譜史)를 수집(蒐集)코져 하였으나 질병(疾病)이 잦고 이목(耳目)이 넓지 못하여숙부(叔父) 응청(應淸) 어른의
 평일(平日) 수기(手記)한 것을 토대(土台)로 나의 교유(交遊) 간(間)에 듣고 본 바를 보입(補入)하여 일가(一家)의 사사(私私)로히 전하는 평일(平日) 수기(手記)한 것을 토대(土台)로 나의 교유(交遊) 간(間)에 듣고 본 바를 보입(補入)하여 일가(一家)의 사사(私私)로히 전하는
 편람(便覽)으로 하였으니 그 간(間)에 혹 자세(仔細)함과 혹 편람(便覽)으로 하였으니 그 간(間)에 혹 자세(仔細)함과 혹
-간략(簡略)함과 혹 빠진 것을 쓰지 않음은 전지(前誌)에 따른 것이며 혹 동명(同名)으로서 파(派)가 같지 않고+간략(簡略)함과 혹 빠진 것을 쓰지 않음은 전지(前誌)에 따른 것이며혹 동명(同名)으로서 파(派)가 같지 않고
 혹 동생(同生)으로서 이름이 가지런하지 않아 의심(疑心)으로 전하고 믿음으로 전하여  혹 동생(同生)으로서 이름이 가지런하지 않아 의심(疑心)으로 전하고 믿음으로 전하여 
-그대로 두고 깍지 않음은 선대(先代)를 높인 것이오 외손(外孫)의 외파(外派)와 구친(舅親)의 구족(舅族)을 계속(繼續) 기록(記錄)한 것은+그대로 두고 깍지 않음은 선대(先代)를 높인 것이오외손(外孫)의 외파(外派)와 구친(舅親)의 구족(舅族)을 계속(繼續) 기록(記錄)한 것은
 사족(士族)의 근원(根源)을 밝힌 것이오 상민(常民) 아전 서자(庶子) 천민(賤民)이 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빼지 않은 것은  사족(士族)의 근원(根源)을 밝힌 것이오 상민(常民) 아전 서자(庶子) 천민(賤民)이 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빼지 않은 것은 
-동종(同宗)을 중(重)하게 여김이라. +동종(同宗)을 중(重)하게 여김이라.\\ 
-오호(嗚呼)라 과거(過去) 수백년간(數百年間)의 조상(祖上)이 어찌 이로 힘입어 혹 후세(後世)에 전(傳)할 줄 알았겠으며+ 
 +\_오호(嗚呼)라 과거(過去) 수백년간(數百年間)의 조상(祖上)이 어찌 이로 힘입어 혹 후세(後世)에 전(傳)할 줄 알았겠으며
 또 장차(將次) 수백년간(數百年間)에 자손(子孫)들이 어찌 이로 이어서 더욱 자세할 줄 누가 알 일이겠는가? 또 장차(將次) 수백년간(數百年間)에 자손(子孫)들이 어찌 이로 이어서 더욱 자세할 줄 누가 알 일이겠는가?
 만든 바 계획(計劃)대로 족보(族譜)가 완성(完成)되었으니 이에 가(可)히 유감이 없을지니라.\\ 만든 바 계획(計劃)대로 족보(族譜)가 완성(完成)되었으니 이에 가(可)히 유감이 없을지니라.\\
-\_\_선조(宣祖 ) 갑진(甲辰=1604) 상완(上浣((上浣(상완): 한 달 가운데 1일에서 10일까지의 동안))) 통훈대부(通訓大夫) 행(行) 예천군수(醴泉郡守) 여일(汝一) 근서(謹序)+\_\_선조(宣祖 ) 갑진(甲辰)(=1604) 상완(上浣)((上浣(상완): 한 달 가운데 1일에서 10일까지의 동안) )) 통훈대부(通訓大夫) 행(行) 예천군수(醴泉郡守) 여일(汝一) 근서(謹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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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11.1746937583.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1 13:26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