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c3-012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양쪽 이전 판이전 판
다음 판
이전 판
c3-012 [2025/05/10 19:03] ssio2c3-012 [2025/05/26 10:28] (현재) ssio2
줄 3: 줄 3:
 <typo ff:'한양해서'> <typo ff:'한양해서'>
 \_**庚寅譜序**\\ \_**庚寅譜序**\\
-\_우리 平海黃氏는 建武 年代로 부터 비롯하여 現在에 이르기까지 一千七百四十餘年의 +\_우리 평해황씨(平海黃氏)는 건무(建武) 연대(年代)로 부터 비롯하여 현재(現在)에 이르기까지 1740여년(一千七百四十餘年)의 
-悠久한 歷史를 지니고 있다.\\+유구(悠久)한 역사(歷史)를 지니고 있다.\\
  
-\_始祖께서 漢나라에서 배를 타시고 우리나라 東海岸의 平海 越松浦에 上陸하셨다는 말과 +\_시조(始祖)께서 한()나라에서 배를 타시고 우리나라 동해안(東海岸)의 평해(平海) 월송포(越松浦)에 상륙(上陸)하셨다는 말과, 
-黃將軍이라는 어른께서 그곳에 +황장군(黃將軍)이라는 어른께서 그곳에 
-松原을 造成하시고 계셨다는 말은 오랜 옛날부터 傳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니 더 말 할 것이 +송원(松原)을 조성(造成)하시고 계셨다는 말은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니 더 말 할 것이 
-없거니와 우리의 祖上들은 저멀리 新羅時代로부터 高麗時代에 이르기까지 나라에 높은 벼슬과 +없거니와우리의 조상(祖上)들은 저멀리 신라시대(新羅時代)로부터 고려시대(高麗時代)에 이르기까지 나라에 높은 벼슬과 
-貴한 所任를 맡으신 어른과 學問과 名望이 높으신 어른들이 代代로 聯綿히 이어 끊이지 않았지만 +귀()한 소임(所任)를 맡으신 어른과 학문(學問)과 명망(名望)이 높으신 어른들이 대대(代代)로 연면(聯綿)히 이어 끊이지 않았지만, 
-遺感스럽게도 그간의 文籍이 없어지고 또 譜牒마저 燒失되어 至今 이를 소상하게 +유감(遺感)스럽게도 그간의 문적(文籍)이 없어지고 또 보첩(譜牒)마저 소실(燒失)되어 지금(至今이를 소상하게 
-考證치는 못하나다만 各者가 흩어져 산 그곳을 貫鄕으로 삼았던 것이다.\\+고증(考證)치는 못하나다만 각자(各者)가 흩어져 산 그곳을 관향(貫鄕)으로 삼았던 것이다.\\
  
-\_箕城에 本貫을 둔 者로 派系를 이은 根源을 찾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 金吾公으로 +\_기성(箕城)에 본관(本貫)을 둔 자()로 계파(派系)를 이은 근원(根源)을 찾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 금오공(金吾公)으로 
-中祖를 삼으셨는데 李朝 中葉에 와서 나의 先祖이신 錦溪 先生께서 처음으로 널리 譜牒을 +중조(中祖)를 삼으셨는데, 이조(李朝) 중엽(中葉)에 와서 나의 선조(先祖)이신 금계(錦溪) 선생(先生)께서 처음으로 널리 보첩(譜牒)을 
-蒐集하여 草譜를 만들었고 그 뒤를 이어 海月 先生과 南塘 先生께서 修譜를 내셨던 것이다. +수집(蒐集)하여 초보(草譜)를 만들었고그 뒤를 이어 해월(海月) 선생(先生)과 남당(南塘) 선생(先生)께서 수보(修譜)를 내셨던 것이다. 
-근자에 와서는 또 나의 從曾祖 處正 어른의 收錄과 三從叔 尙鍾 어른이 手寫한 기록은 +근자에 와서는 또 나의 종증조(從曾祖) 처정(處正어른의 수록(收錄)과 삼종숙(三從叔) 상종(尙鍾어른이 수사(手寫)한 기록은 
-勿論이고 史實을 證明할만한 證據를 널리 蒐集하여 完全한 譜冊을 이룩했으나 그를 +물론(勿論)이고 사실(史實)을 증명(證明)할만한 증거(證據)를 널리 수집(蒐集)하여 완전(完全)한 보책(譜冊)을 이룩했으나 그를 
-刊行치 못하고 있던 中 長湍에 사는 일가 사람 燮이라는 분과 黃氏의 外孫이 되는 +간행(刊行)치 못하고 있던 중(), 장단(長湍)에 사는 일가 사람 섭()이라는 분과 황씨(黃氏)의 외손(外孫)이 되는 
-金汝綱이 合議하여 襄武公派譜 一卷을 印刷하여 가지고 千里를 멀다 않고 이 사람을 +김여강(金汝綱)이 합의(合議)하여 양무공파보(襄武公派譜) 1권(一卷)을 인쇄(印刷)하여 가지고 천리(千里)를 멀다 않고 이 사람을 
-찾아와 그 譜冊을 提示했었다. 그 誠意와 勞苦는 참으로 대단했으나 그 記錄한 內容을 보니 +찾아와 그 보책(譜冊)을 제시(提示)했었다. 그 성의(誠意)와 노고(勞苦)는 참으로 대단했으나 그 기록(記錄)한 내용(內容)을 보니 
-派系와 順序가 그릇된 것이 적지 않기에 이것을 +파계(派系)와 순서(順序)가 그릇된 것이 적지 않기에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한 考證資料를 蒐集하느라고 二년이나 걸렸고 譜所를 豊基의 錦陽으로 옮긴 +바로 잡기 위한 고증자료(考證資料)를 수집(蒐集)하느라고 2()년이나 걸렸고,  
-다음해 가을에 燮이 喪服을 입은 +보소(譜所)를 풍기(豊基)의 금양(錦陽)으로 옮긴 
-채로 泰山峻嶺을 넘어 豊基로 찾아와서 일가 되는 鎰에게 그 譜事를 맡겨 主幹케 하고 +다음해 가을에 섭()이 상복(喪服)을 입은 
-各有司를 定하여 各地方各派系의 收單을 모아드리게하였다. 그 後 六年이 지난 庚寅年  +채로 태산준령(泰山峻嶺)을 넘어 풍기(豊基)로 찾아와서 일가 되는 일()에게 그 보사(譜事)를 맡겨 주간(主幹)케 하고 
-孟春에 譜冊을 印刷에 붙이니 비로소 譜事가 이루어진 것이다. 참으로 宗中의 慶事이며 多幸이+각() 유사(有司)를 정()하여 각() 지방(地方) 각() 파계(派系)의 수단(收單)을 모아 들이게 하였다. 그 후() 6년(六年)이 지난 경인년(庚寅年 
 +맹춘(孟春)에 보책(譜冊)을 인쇄(印刷)에 붙이니 비로소 보사(譜事)가 이루어진 것이다. 참으로 종중(宗中)의 경사(慶事)이며 다행(多幸)
 아닐 수 없다.\\ 아닐 수 없다.\\
  
-\_昔日에 海月 先生이 草譜를 만드실 때 評理公이 金吾公의 後孫이 되는 줄을 미 처알지 못하고 +\_석일(昔日)(=지난 날)에 해월(海月) 선생(先生)이 초보(草譜)를 만드실 때 평리공(評理公)이 금오공(金吾公)의 후손(後孫)이 되는 줄을 미처 알지 못하고 
-그 序文에 徒發未詳 一祖之歎이라고 하여 누가 과연 한 할아버지의 子孫인지 자세히 알 수 없음을 +그 서문(序文)에 '도발미상일조지탄(徒發未詳一祖之歎)'이라고 하여 누가 과연 한 할아버지의 자손(子孫)인지 자세히 알 수 없음을 
-歎息한 것이나 지난번 長湍에서 譜冊이 新成되었으되 +탄식(歎息)한 것이나지난번 장단(長湍)에서 보책(譜冊)이 신성(新成)되었으되 
-이 또한 大匡公의 倫序를 不察하여 당시 博識하고 뜻있는 선비들이 그 位次와 世系에 疑心을 +이 또한 대광공(大匡公)의 윤서(倫序)를 불찰(不察)하여 당시 박식(博識)하고 뜻있는 선비들이 그 위차(位次)와 세계(世系)에 의심(疑心)을 
-품고 말해 왔었는데 이제야 서로 參考하고 究明하여 分明히 밝혀졌으니 즉 評理公이 金吾公의  +품고 말해 왔었는데이제야 서로 참고(參考)하고 구명(究明)하여 분명(分明)히 밝혀졌으니 즉 평리공(評理公)이 금오공(金吾公)의  
-後가 되고 大匡公이 評理公의 弟가 되는 것이다. 이로서 三派 序次와 昭穆行列의 秩序가 +후()가 되고 대광공(大匡公)이 평리공(評理公)의 제()가 되는 것이다. 이로서 3파(三派) 서차(序次)와 소목항렬(昭穆行列)의 질서(秩序)가 
-分明해졌으니 後世 子孫들의 유감이 없게 되었다. 이야말로 宗中의 多幸이 아닐 수 없다. +분명(分明)해졌으니 후세(後世) 자손(子孫)들의 유감이 없게 되었다. 이야말로 종중(宗中)의 다행(多幸)이 아닐 수 없다.\\
-其他 附錄에 있는 諸派는 帳籍에 根據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既往의 舊譜에 빠진 것을 구태어 +
-今番에 編入할 수 없기로 이는 +
-後日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_譜事가 다 이루어짐에 諸宗들이 潤九가 錦溪公의 宗孫이며 또 譜事에 參輿하여 始終을  +\_기타(其他) 부록(附錄)에 있는 제파(諸派)는 장적(帳籍)에 근거(根據)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旣往)의 구보(舊譜)에 빠진 것을 구태여 
-들은 바 있으리라 하여 몇줄의 序文을 쓰라하니 宗事에 關한 일임에 敢히 不肯한 핑계로 +금번(今番)에 편입(編入)할 수 없기로 이는 
-辭退할 수 없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嗚呼라 우리 黃氏의 由가 오랜 歷史를 가진 +후일(後日)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宗族으로서 譜冊 중에 실려있는 先祖들 중에는 많은 분들이 勳業과 功德이 뛰어나 + 
-世人의 稱頌이 자자하니 宗族 +\_보사(譜事)가 다 이루어짐에 제종(諸宗)들이 윤구(潤九)가 금계공(錦溪公)의 종손(宗孫)이며 또 보사(譜事)에 참여(參輿)하여 시종(始終)을  
-後孫들은 이를 본 떠 따라야 할 것이다. 凡我諸宗과 後嗣들은 譜牒을 봄에 있어서 +들은 바 있으리라 하여 몇줄의 서문(序文)을 쓰라하니, 종사(宗事)에 관()한 일임에 감()히 불초(不肯)한 핑계로 
-마땅히 서로 勉勵하여 祖上의 遺德을 욕되게 하지말 것이며 또 이렇게 하는 것이 +사퇴(辭退)할 수 없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오호(嗚呼)라 우리 황씨(黃氏)의 유서(緖)가 오랜 역사(歷史)를 가진 
-譜牒을 完成한 同宗들의 힘쓴 功德에 보답하는 길일 것이니 각자 노력하기 바란다.그+종족(宗族)으로서 보책(譜冊중에 실려있는 선조(先祖)들 중에는 많은 분들이 훈업(勳業)과 공덕(功德)이 뛰어나 
 +세인(世人)의 칭송(稱頌)이 자자하니 종족(宗族) 
 +후손(後孫)들은 이를 본 떠 따라야 할 것이다. 범아(凡我) 제종(諸宗)과 후사(後嗣)들은 보첩(譜牒)을 봄에 있어서 
 +마땅히 서로 면려(勉勵)하여 조상(祖上)의 유덕(遺德)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또 이렇게 하는 것이 
 +보첩(譜牒)을 완성(完成)한 동종(同宗)들의 힘쓴 공덕(功德)에 보답하는 길일 것이니 각자 노력하기 바란다. 
 +리고 보사(譜事) 진행(進行)과 경비(經費)의 다과(多寡) 등에 대하여는 나의 아우가 기록한 바를 권말(卷末)에 첨부하였으니 
 +다시 부언(附言)치 않겠다.\\ 
 +\_\_영조(上之) 46년(四十六年) 경인(庚寅)(=1770) 맹춘(孟春) 후예손(後裔孫) 윤구(潤九) 경서(敬序)
 </typo> </typo>
 </WRAP> </WRAP>
c3-012.1746871400.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0 19:03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