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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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생민(生民)의 소중(所重)함은 성씨(姓氏)를 표시하고 종족(宗族)이 사는 곳을 연결하는 것보다 더 클 것이 | \_생민(生民)의 소중(所重)함은 성씨(姓氏)를 표시하고 종족(宗族)이 사는 곳을 연결하는 것보다 더 클 것이 | ||
없을 것이다. 성(姓)이라는 것은 조종(祖宗)으로부터 | 없을 것이다. 성(姓)이라는 것은 조종(祖宗)으로부터 | ||
- | 이어 받은 것이고 씨(氏)라는 것은 자손(子孫)들이 분파(分派)한데에 말미암은 바로서 그 벌족(閥族)이 사는 | + | 이어 받은 것이고 씨(氏)라는 것은 자손(子孫)들이 분파(分派)한데에 말미암은 바로서, 그 벌족(閥族)이 사는 |
지방(地方)을 관향(貫鄕)으로 삼은 것이다.\\ | 지방(地方)을 관향(貫鄕)으로 삼은 것이다.\\ | ||
\_사족가문(士族家門)에서 수보(修譜)하는 일을 귀(貴)히 여기는 까닭은 그 가문(家門)의 계통(系統)과 내력(來歷)을 밝히고 | \_사족가문(士族家門)에서 수보(修譜)하는 일을 귀(貴)히 여기는 까닭은 그 가문(家門)의 계통(系統)과 내력(來歷)을 밝히고 | ||
친애(親愛)의 정(情)을 유구(悠久)히 이어가게 함에 있는 | 친애(親愛)의 정(情)을 유구(悠久)히 이어가게 함에 있는 | ||
- | 것이다. 성주지제(成周之制)를 보면 사상(司商)을 두어 수성(受姓)을 관장(管掌)케 하고 소사(小吏)을 두어 계세(繫世)를 다루게 하였는데 | + | 것이다. 성주지제(成周之制)를 보면 사상(司商)을 두어 수성(受姓)을 관장(管掌)케 하고 소리(小吏)을 두어 계세(繫世)를 다루게 하였는데, |
씨성(氏性)과 세족(世族)이 방국지치(邦國之治)에 | 씨성(氏性)과 세족(世族)이 방국지치(邦國之治)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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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관계가 있었기로 나라에서 이처럼 직제(職制)를 만들고 관원(官員)까지 두어 이를 담당케 하였을까? | 무슨 관계가 있었기로 나라에서 이처럼 직제(職制)를 만들고 관원(官員)까지 두어 이를 담당케 하였을까? | ||
이것은 오직 일인(一人)의 덕화(德化)를 | 이것은 오직 일인(一人)의 덕화(德化)를 | ||
- | 일가(一家)에 추진(推進)하여 가(家)에서 족(族)으로 족(族)에서 국(國)으로 국(國)에서 천하(天下)를 화성(化成)하는 즉 덕화정치(德化政治)를 | + | 일가(一家)에 추진(推進)하여, 가(家)에서 족(族)으로 족(族)에서 국(國)으로 국(國)에서 천하(天下)를 화성(化成)하는 즉 덕화정치(德化政治)를 |
이룩하려던 것이다. 씨족(氏族)이 성왕(聖王)의 | 이룩하려던 것이다. 씨족(氏族)이 성왕(聖王)의 | ||
정사(政事)에 이처럼 비중(比重)이 클진데 어찌 일인(一人) 일가(一家) 씨족(氏族)의 사사(私事)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 정사(政事)에 이처럼 비중(比重)이 클진데 어찌 일인(一人) 일가(一家) 씨족(氏族)의 사사(私事)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 ||
- | \_옛날 司馬遷과 班固같은 漢나라 때의 史家들이 世紀를 敍述하되 重黎로부터서 | + | \_옛날 |
- | 顓頊에 이르기까지 黃帝의 孫이라 했고 中國의 黃姓이 모두 黃帝軒轅氏의 後孫이라 했으니 | + | 전욱(顓頊)에 이르기까지 |
- | 우리 黃氏의 先代 또한 中國人일진데 黃帝의 後裔가 아니겠는가. | + | 우리 |
- | 諱를 洛이라고 하는 어른이 東方의 平海 越松에 사시다가 後에 三兄弟를 두셨는데 | + | 휘(諱)를 낙(洛)이라고 하는 어른이 |
- | 각각 封爵을 얻어 貫鄕을 | + | 각각 |
- | 分定함에 따라 箕城 長水 昌原으로 갈리게 되어 同根의 誼가 드디어 없어졌으니 | + | 분정(分定)함에 따라 |
- | 蘇氏 즉 蘇軾의 譜引에 曰 처음 一人의 몸이 | + | 소씨(蘇氏) 즉 소식(蘇軾)의 보인(譜引)에 왈(曰) 처음 |
가지를 쳐서 마침내 길가는 사람처럼 서로 무관심하게 되어버렸다 하였으니, | 가지를 쳐서 마침내 길가는 사람처럼 서로 무관심하게 되어버렸다 하였으니, | ||
- | 대저 世代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점점 그 親함이 없어져 가는 것을 歎息한 말이니 | + | 대저 |
- | 참으로 吾宗의 오늘날의 心情을 그대로 나타 낸말이라 하겠다.\\ | + | 참으로 吾宗의 오늘날의 |
- | \_우리 平海黃氏의 系譜와 典籍이 兵火를 겪는 가운데 타고 흩어져 保存된 記錄이 | + | \_우리 |
- | 僅小하더니 錦溪 海月 兩先生께서 諸家 遺籍을 널리 蒐集하고 詳考하셔서 빠진 | + | 근소(僅小)하더니 |
- | 家系와 文籍을 찾아내어 처음으로 草譜를 만드셨으니 그 遠祖를 追慕하고 宗族을 | + | 가계(家系)와 문적(文籍)을 찾아내어, 처음으로 |
- | 收合한 意義가 자못 前人의 發想치 못한 것을 이루었다 하겠으나 | + | 수합(收合)한 의의(意義)가 자못 |
- | 없지 않아 後人들이 모르던 것들을 튀겨내어 文字間에 나타난 것을 追加로 모아 | + | 없지 않아 |
- | 믿을만한 것은 추리고 疑心나는 것은 버려서 더욱 | + | 믿을만한 것은 추리고 |
- | 印版에 붙여 비로소 箕城世譜가 成就케 되었던 것이다.\\ | + | 인판(印版)에 붙여 비로소 |
- | \_이렇게 처음 譜事가 이루어짐에 畿湖 宗人들은 모두 大匡公派 後孫들과 한가지로 | + | \_이렇게 처음 |
- | 同譜하기로 하고 또 壽春 興城의 同宗들도 모두 襄武公 第二子의 後裔로서 家譜를 | + | 동보(同譜)하기로 하고 또 수춘(壽春)((수춘(壽春): |
- | 함께하기로 하여 異論이 없었더니 近日에 翊贊 宗氏 胤錫이 한낫 墓의 誌石을 | + | 흥성(興城)의 동종(同宗)들도 모두 |
- | 自家 興城 墓所에서 발굴하고 十四世祖의 諱와 官號의 의문을 일으키고 드디어 따로히 | + | 함께 하기로 하여 |
- | 그를 記載하여 俱不入譜 즉 이번 譜牒에 들어가는 것을 願치 않으며 또 墓碣이 비록 믿을만하나 | + | 자가(自家) 흥성(興城) 묘소(墓所)에서 발굴하고, 14세조(十四世祖)의 휘(諱)와 관호(官號)의 의문을 일으키고, 드디어 따로이 |
- | 當位의 誌石이 이미 保存되어 있어 파멸될 염려도 없는 것인데 先代로부터 傳해오는 | + | 그를 |
- | 譜牒을 버리고 後世에 의심을 낳는 物議를 좇는다는 것은 너무 輕率하다는 조롱이 없을는지? | + | 당위(當位)의 지석(誌石)이 이미 |
- | 眞實로 | + | 보첩(譜牒)을 버리고 |
- | 兩者가 다 決定키는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族譜를 위하는 소위가 中世 先祖의 懿德顯閥과 | + | 진실(眞實)로 |
- | 後承의 分流 派系를 後代에게 傳치 못함을 생각지 못하는가? | + | 양자(兩者)가 다 결정(決定)키는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
- | 그래서 나는 兩諱를 要存하여 一譜에 同合한다. 興城 宗人들은 나의 | + | 후승(後承)의 분류(分流) 파계(派系)를 후대(後代)에게 |
- | 이러한 苦心을 諒解하기 바란다.\\ | + | 그래서 나는 |
+ | 이러한 | ||
- | \_家庭所聞에 어그러짐을 무겁게 여겨 歸一함을 肯定하지 않는다면 一祖之孫으로 或者는 | + | \_가정(家庭) 소문(所聞)에 어그러짐을 무겁게 여겨 |
- | 漏落되고 或者는 入譜하는 것이 | + | 누락(漏落)되고 |
- | 어찌 크게 상심되고 歎息할 일이 아니겠는가? | + | 어찌 크게 상심되고 |
- | \_가만히 생각해보니 舊譜가 刊行된지 벌써 一周甲이 넘었으니 그때 일을 아는 사람은 | + | \_가만히 생각해보니 |
- | 살아있는 이가 몇 분 없고 그 後 새로 出生한 사람들은 나날이 繁盛해 가니 이 譜系를 | + | 살아있는 이가 몇 분 없고 그 후(後) 새로 |
- | 넓히고 傳하기를 오래하도록 後人에게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燾는 외람함을 | + | 넓히고 |
- | 헤아리지 않고 일찌기 | + | 헤아리지 않고 일찍이 병술년(丙戌年)에 글을 보내서 |
- | 乙丑年 겨울에 뜻을 같이하는 宗人 平海의 奎○琯, 長湍의 周老, 豊基의 獻周, 江陵의 之濬, | + | 을축년(乙丑年) 겨울에 뜻을 같이하는 |
- | 春川의 默○炅, 永興의 升厚, 杆城의 瓚, 北靑의 昇鍾 등이 서울 北쪽 長湍에 | + | 춘천(春川)의 묵(默)·경(炅), 영흥(永興)의 승후(升厚), 간성(杆城)의 찬(瓚), 북청(北靑)의 승종(昇鍾) 등이 서울 |
- | 모여 各派 名單을 收合하고 次序編帙을 정리하여 三年만에 끝내었으며 | + | 모여 |
- | 그 내용의 상세한 記載例는 일체 派譜牒에 있는 대로 하였고 | + | 그 내용의 상세한 |
- | 中間의 절충 같은 것은 許容치 않았다.\\ | + | 중간(中間)의 절충 같은 것은 |
- | \_嗚呼라 庚寅之譜는 실로 錦溪 海月 두분 先生의 勞心과 精究에서 | + | \_오호(嗚呼)라! 경인지보(庚寅之譜)는 실로 |
- | 비롯되어 兩邑 諸宗의 協力과 합작으로 이룩된 것인즉 | + | 비롯되어 |
- | 先祖의 遺業을 욕되게 아니하기 위해서 此譜에 들어오는 것이 마땅할 것이어늘 | + | 선조(先祖)의 유업(遺業)을 욕되게 아니하기 위해서 |
- | 豊基宗所에서는 始初에는 한가지로 論議하다가 나중에 貳意를 提起하여 | + | 풍기(豊基) 종소(宗所)에서는 |
- | 물러가버리니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마음이 果然 편할 것인지? | + | 물러가 버리니,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마음이 |
- | 참으로 알 수없는 일이 다시금 萬若議論이 갈라졌다 하여 이미 前譜 中에 | + |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 다시금 |
- | 실려있는 것을 빼내 버린다면 情誼로 헤아려 볼 때 차마 못할 일이므로 | + | 실려있는 것을 빼내 버린다면 |
- | 舊譜에 따라 印刷에 붙이기로 하는 것이니 나머지는 뒷사람들의 責任에 | + | 구보(舊譜)에 따라 |
- | 맡기겠다. 그리고 생각컨데 厚意를 存守하는 일단에 거슬리지 않는다고 | + | 맡기겠다. 그리고 생각컨데 |
- | 스스로 믿는 바이기는 하나 兩宗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 + | 스스로 믿는 바이기는 하나, 양종(兩宗)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
- | \_古人이 말하기를 祿位가 없더라도 君子가 있으면 氏族이 비록 衰하는 것 | + | \_고인(古人)이 말하기를, 녹위(祿位)가 없더라도 |
- | 같으나 오히려 繁盛하게 되어 祿位가 빛날 것이며 | + | 같으나 오히려 |
- | 君子가 없으면 비록 氏族이 繁盛하는 것 같아도 오히려 衰한다고 했다. | + | 군자(君子)가 없으면 비록 |
- | 眞實로 옳은 말이다. 무릇 함께 이 譜冊에 列記된 모든 | + | 진실(眞實)로 옳은 말이다. 무릇 함께 이 보책(譜冊)에 열기(列記)된 모든 |
- | 宗人들은 各自가 모두 孝悌忠信之道를 勉勵하고 姓이 사람을 貴하게한다 하지 | + | 종인(宗人)들은 |
- | 말고 반드시 사람으로 말미암아 姓이 貴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 + | 말고 반드시 사람으로 말미암아 |
- | 生覺하기 바란다. 尊祖敬宗의 本意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 | 생각(生覺)하기 바란다. |
- | 萬若 祖上의 根源을 詳考하고 派系를 分辨하는 것이 없다면 어찌 오늘의 | + | 만약(萬若) 조상(祖上)의 근원(根源)을 상고(詳考)하고 |
- | 修譜가 그 뜻이 있겠으며 또 어찌 一人의 德化가 온 宗族에 추진되고 | + | 수보(修譜)가 그 뜻이 있겠으며 또 어찌 |
- | 나아가서 온 天下가 德化함에 이른다 말할 수 있겠는가? | + | 나아가서 온 천하(天下)가 덕화(德化)함에 이른다 말할 수 있겠는가? |
- | \_譜冊의 原稿를 印版에 붙이려고 윗사람들에게 報告를 할 때 宗人이 | + | \_보책(譜冊)의 원고(原稿)를 인판(印版)에 붙이려고 윗사람들에게 |
- | 나에게 序文짓는 것을 위촉함으로 이를 辭避치 못하여 | + | 나에게 |
- | 新譜 績刊의 | + | 신보(新譜) 속간(績刊)의 전말(顚末)을 약술(略述)하여 |
- | \_\_崇禎 紀元後 四 辛卯 臨月 下瀚 裔孫 通政大夫 承政院 右副承旨 | + | \_\_숭정(崇禎) 기원후(紀元後) 4(四) 신묘(辛卯) 임월(臨月) 하한(下瀚) 예손(裔孫)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우부승지(右副承旨) 겸(兼) 경연(經筵) 참찬관(參贊官) 춘추관(春秋官) 수찬관(修撰官) 도(燾) 근지(謹識) |
- | 兼 經筵 參贊官 春秋官 修撰官 燾 謹識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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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14.1746917362.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1 07:49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