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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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17 [2025/05/12 12:27] – 121.166.63.129 | c3-017 [2025/05/18 18:03] (현재) – 121.166.63.1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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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대동지환(大同之患)에 있음직한 일이나 오종(吾宗)의 불행(不幸)한 일이라 하지 | 이는 대동지환(大同之患)에 있음직한 일이나 오종(吾宗)의 불행(不幸)한 일이라 하지 | ||
않을 수 없다. 이로 말미암아 금(錦) 해(海) 양선생(兩先生)의 박식다문(博識多聞)으로 이루어진 | 않을 수 없다. 이로 말미암아 금(錦) 해(海) 양선생(兩先生)의 박식다문(博識多聞)으로 이루어진 | ||
- | 초집(草輯)마저 자세(仔細)하지 못하여 의문(疑問)으로 전(傳)하였으며 이어 남당공(南塘公) 초보(草譜)도 | + | 초집(草輯)마저 자세(仔細)하지 못하여 의문(疑問)으로 전(傳)하였으며 이어 |
+ | 남당공(南塘公)((남당(南塘) 황중연(黃中衍) )) 초보(草譜)도 | ||
발간(發刊)하지 못함이 오래더니 지난 경인년(庚寅年)에 금계공(錦溪公)의 주손(胄孫) 산오(山梧) 백중(伯仲) 공(公)이 | 발간(發刊)하지 못함이 오래더니 지난 경인년(庚寅年)에 금계공(錦溪公)의 주손(胄孫) 산오(山梧) 백중(伯仲) 공(公)이 | ||
나의 증대부(曾大父) 모고와(慕古窩)와 함께 | 나의 증대부(曾大父) 모고와(慕古窩)와 함께 | ||
줄 23: | 줄 24: | ||
변증(辨證)하고 의심(疑心)나는 곳을 질문(質問)하여 오래도록 이 보책(譜冊)이 전(傳)해지기를 | 변증(辨證)하고 의심(疑心)나는 곳을 질문(質問)하여 오래도록 이 보책(譜冊)이 전(傳)해지기를 | ||
기원(祈願)하면서 완공(完功)을 이루어 두 권(卷)을 새겨 출판(出版)한 것인 즉 그 선대(先代)의 | 기원(祈願)하면서 완공(完功)을 이루어 두 권(卷)을 새겨 출판(出版)한 것인 즉 그 선대(先代)의 | ||
- | 뜻을 받아 이었고 후세(後世)에 물려주는 공(功)이 과연(果然) 무엇으로 비할고? | + | 뜻을 받아 이었고 후세(後世)에 물려주는 공(功)이 과연(果然) 무엇으로 비할고?\\ |
- | 그 후(後) 신묘년(辛卯年)에 춘천(春川) 종승지(宗承旨) 도(燾)씨가 서울 화장사(華藏寺)에 보청(譜廳)을 설치(設置)하고 | + | |
+ | \_그 후(後) 신묘년(辛卯年)에 춘천(春川) 종승지(宗承旨) 도(燾)씨가 서울 화장사(華藏寺)에 보청(譜廳)을 설치(設置)하고 | ||
수보(修譜)하여 6권(六卷)을 활판(活版)으로 인쇄(印刷)하였으나 장파(長派) 풍기(豊基)의 불응(不應)이 흠이였었다. | 수보(修譜)하여 6권(六卷)을 활판(活版)으로 인쇄(印刷)하였으나 장파(長派) 풍기(豊基)의 불응(不應)이 흠이였었다. | ||
그리고 지난 경술년(庚戌年) 가을에 산남(山南)의 사손(嗣孫) 헌주(憲周)씨가 먼저 각읍(各邑)에 통고(通告)하고 | 그리고 지난 경술년(庚戌年) 가을에 산남(山南)의 사손(嗣孫) 헌주(憲周)씨가 먼저 각읍(各邑)에 통고(通告)하고 | ||
- | 원근(遠近) 제종(諸宗)들과 합모(合謀) 병력(竝力)하여 그 빠진 곳을 깁고 그 그릇된 곳을 바로잡아 | + | 원근(遠近) 제종(諸宗)들과 합모(合謀) 병력(竝力)하여 그 빠진 곳을 깁고 그 그릇된 곳을 바로잡아, |
옛날 한학사(漢學士)를 신적(信蹟)에 의거(依據)하여 당(唐) 나라로 고친 것인 즉 | 옛날 한학사(漢學士)를 신적(信蹟)에 의거(依據)하여 당(唐) 나라로 고친 것인 즉 | ||
그 옳은 것이라도 밝아지고 안 밝아지는 것은 또 한 때가 있는 법(法)이니라. | 그 옳은 것이라도 밝아지고 안 밝아지는 것은 또 한 때가 있는 법(法)이니라. | ||
줄 39: | 줄 41: | ||
각도(各道) 원읍(遠邑)에 두루 통고(通告)하고 또 평해(平海)에는 사람을 보내어 부지런히 | 각도(各道) 원읍(遠邑)에 두루 통고(通告)하고 또 평해(平海)에는 사람을 보내어 부지런히 | ||
독려(督勵)하였으나 수년간(數年間)을 요(要)하였다. 이것은 지방(地方)에 흉년(凶年)이 들어 모든 일이 | 독려(督勵)하였으나 수년간(數年間)을 요(要)하였다. 이것은 지방(地方)에 흉년(凶年)이 들어 모든 일이 | ||
- | 뜻과 같이 이루어지지 못함이었다. 비로소 금년(今年) 여름 처음으로 족(族) | + | 뜻과 같이 이루어지지 못함이었다. 비로소 금년(今年) 여름 처음으로 족종(族從) 도(濤)와 |
- | 정(瀞)으로 더불어 함께 금양(錦陽)에 이르른 즉 장단(長湍)의 예활(禮活), | + | 정(瀞)으로 더불어 함께 금양(錦陽)에 이르른 즉, 장단(長湍)의 예활(禮活), |
- | 평해(平海)의 재연(在淵), | + | 평해(平海)의 재연(在淵), |
- | 하고 있는지라 | + | 하고 있는지라, |
함께 수개월(數個月)을 더 겪은 후(後)에 서로 감검(勘檢)하여 드디어 몇 권(卷)을 완성(完成)하고 | 함께 수개월(數個月)을 더 겪은 후(後)에 서로 감검(勘檢)하여 드디어 몇 권(卷)을 완성(完成)하고 | ||
약간(若干) 질(帙)을 인쇄(印刷)하였으니 옛날의 상세(詳細)치 못한 것을 이제 | 약간(若干) 질(帙)을 인쇄(印刷)하였으니 옛날의 상세(詳細)치 못한 것을 이제 | ||
줄 57: | 줄 58: | ||
상호돈후(相互敦厚)한 정(情)이 생기는 것 같도다. 이러니 어찌 소씨(蘇氏)와 정씨(程氏)의 족보(族譜)에 | 상호돈후(相互敦厚)한 정(情)이 생기는 것 같도다. 이러니 어찌 소씨(蘇氏)와 정씨(程氏)의 족보(族譜)에 | ||
사양하겠는가. 무릇 | 사양하겠는가. 무릇 | ||
- | 제종(諸宗)은 오늘날 수족작보(收族作譜)의 뜻을 저버리지 말도록 효제충신지도(孝悌忠信之道)를 힘 쓸지로다. | + | 제종(諸宗)은 오늘날 수족(收族) 작보(作譜)의 뜻을 저버리지 말도록 효제충신지도(孝悌忠信之道)를 힘 쓸지로다. |
보사(譜事)를 종료(終了)하는 밤에 보청(譜廳)에 모인 종친(宗親)들이 우리 해월(海月) 선생(先祖) 서문(序文)도 | 보사(譜事)를 종료(終了)하는 밤에 보청(譜廳)에 모인 종친(宗親)들이 우리 해월(海月) 선생(先祖) 서문(序文)도 | ||
권두(卷頭)에 있고 또한 장간(掌幹)의 소임(所任)도 맡은 사람이니 일언(一言)이 없어서는 | 권두(卷頭)에 있고 또한 장간(掌幹)의 소임(所任)도 맡은 사람이니 일언(一言)이 없어서는 | ||
- | 안되지 않겠느냐 하므로 무사(蕪辭)를 무릅쓰고 두어 줄 전말(顛末)을 기록(記錄)하여 | + | 안되지 않겠느냐 하므로 무사(蕪辭)를 무릅쓰고 두어 줄 전말(顚末)을 기록(記錄)하여 |
보책(譜冊) 말미에 붙이노라.\\ | 보책(譜冊) 말미에 붙이노라.\\ | ||
\_\_숭정(崇禎) 후(後) 5(五) 경진(庚辰) 단양절(端陽節) 후예손(後裔孫) 면구(冕九) 근서(謹序) | \_\_숭정(崇禎) 후(後) 5(五) 경진(庚辰) 단양절(端陽節) 후예손(後裔孫) 면구(冕九) 근서(謹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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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17.1747020443.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2 12:27 저자 121.166.63.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