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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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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18 [2025/05/10 21:09] – created ssio2c3-018 [2025/05/18 18:03] (현재) 121.166.6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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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보서+===경진보서(庚辰譜序)=== 
 +<WRAP 33em justify> 
 +<typo ff:'한양해서'> 
 +\_**庚辰譜序**\\ 
 +\_보서(譜序)는 원래 중국(中國)의 학자(學者) 구양수(歐陽修)와 소식(蘇軾)으로 부터 시작된 것이다. 
 +유족(有族=족이 있으면)이면 유보(有譜=족보가 있고)요 유보(有譜=족보가 있으면)면 유서(有序=서문이 있으)니 곧 서(序)는 보(譜)의 전말(顚末)을 서술한 것이다. 
 +우리 황씨(黃氏)가 동방(東方)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먼 역사(歷史)를 가진 저명(著名)한  
 +씨족(氏族)인데도 홀로 보(譜)와 서(序)가 없어서 종인(宗人)들이 몇 대(代)를 두고 이것을  
 +크게 한탄(恨歎)해 왔었다. 따라서 금계(錦溪) 해월(海月) 두분 선생(先生)의 박학다문(博學多聞)으로서도 
 +미상전의지탄(未詳傳疑之歎)이라고 하여 우리 황씨(黃氏)의 세계(世系)와 사적(事蹟)이 미상(未詳)함을 
 +다같이 탄식(歎息)하시면서 다만 초보(草譜)와 유서(遺序)를 남겨 놓았을 뿐이었다.\\
  
-譜序는원래中國의學者歐陽修와蘇軾으로부터시작된것이다有族이면有譜요有譜면有序니곧序는譜의顛末을서술 +\_각파(各派)의 파계(派系)와 각가(各家)의 보첩(譜牒)이 많은 와전(訛傳)과 오차(誤差)가 있었던 것은
-한것이다우리黃氏가東方에서가장오래되고또먼歷史를가진著名한氏族인데도홀로譜와序가없어서宗人들이몇代 +여러 차례의 병란(兵亂)과 화재(火災)를 겪은 까닭이며 우리 3파(三派)가 각처(各處)에 흩어져 있었기 
-를두고이것을 크게恨歎해왔었다따라서錦溪海月두분先生의博學多聞으로서도未詳傳疑之歎이라고하여우리黃氏 +때문이다또 문적(文籍)의 도회현발(韜晦顯發)은 비단 기수소관(氣數所關)일 뿐만 아니라 시운(時運) 
-의世系와事蹟이未詳함을다같이歎息하시면서다만草譜와遺序를남겨놓았을뿐이었다 +도래(到來)에도 연유(緣由)하는 것이다이로써 
-各派의派系와各家의譜牒이많은訛傳과誤差가있었던것은여러차례의兵亂과火災를겪은까닭이며우리三派가各處 +영묘(英廟) 경인(庚寅)에 이르러 대보(大譜)가 이루어졌으니 진실로 윗 대()의 오랜 숙원(宿願) 
-에흩어져있었기때문이다또文籍의韜晦顯發은비단氣數所關일뿐만아니라時運의到來에도緣由하는것이다이로써 +성취(成就)시킨 거창한 사업(事業)이었다그 당시(當時) 선부로(先父老)의 고심(苦心)과 근간(勤幹) 
-英廟庚寅에이르러大譜가이루어졌으니진실로윗代의오랜宿願을成就시킨거창한事業이었다그當時先父老의苦心 +비록 이 보책(譜冊)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종족(宗族) 자성(子姓)의 가()히 의법(儀法)이 될만한 것이었다.\\
-과勤幹이비록이譜冊에는나타나지않았으나宗族子姓의可히儀法이될만한것이었다 +
-嗚呼라百餘年이지난後라도마땅히勿替之訓을지킬일이어늘後世사람들이古法을지키지아니하고各派의派譜는問 +
-間있다고는하나三派合譜는이루어지지못하였으니이어찌先人들의遺志를받들어모시고宗族들에게두터운사랑을 +
-베풀었다고할수있겠는가?그래서때때로舊譜를받들어보고크게感歎함을마지않았더니乙亥年봄에豊基錦陽에서+
  
 +\_오호(嗚呼)라! 백여년(百餘年)이 지난 후(後)라도 마땅히 물체지훈(勿替之訓)을 지킬 일이어늘 
 +후세(後世) 사람들이 고법(古法)을 지키지 아니하고 각파(各派)의 파보(派譜)는 간간(間間) 있다고는 하나
 +3파(三派) 합보(合譜)는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니 이 어찌 선인(先人)들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모시고 종족(宗族)들에게 두터운 사랑을
 +베풀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때때로 구보(舊譜)를 받들어 보고
 +크게 감탄(感歎)함을 마지 않았더니 을해년(乙亥年) 봄에 풍기(豊基) 금양(錦陽)에서
 +통문(通文)이 와 합동(合同) 족보(族譜)를 하자하니 풍기(豊基) 종인(宗人)은 3파(三派) 중(中)의 장파(長派)이요 
 +금사(錦舍=금양정사)는 최초(最初)의 보소(譜所)이니 이곳에서 발론(發論)하고 이곳에 보소(譜所)를 설치(設置)함이 
 +마땅한 일이나 즉각 찬의(贊意)를 회답(回答)하지 못하였음은 나의 생계(生計)가 곤궁(困窮)한데다가
 +늙고 외로운 형편(形便)에 거리(距離)가 3백여리(三百餘里)나 됨으로 추신지계(推身之計)가 어려웠고
 +또 보사(譜事)를 주간(主幹)할 만한 재목이 못 되는데다 공교롭게도 병자년(丙子年)은 
 +큰 흉년(凶年)을 만났음으로 수년간(數年間)을 망서리고 있던 중 끝내는 보청(譜廳)에서의
 +부름이 재삼재사(再三再四)라. \\
  
 +\_더 이상(以上) 중의(衆意)를 외면(外面)할 수 없어 무인년(戊寅年)에 족질(族姪) 내원(來源)과
 +함께 보소(譜所)에 이르니 각처(各處) 제종(諸宗)이 다 모여서 근로(勤勞) 주선(周旋)했는데 훌륭한 분들이
 +참으로 많았었다. 나는 잠시 피로한 다리를 쉬고
 +보소(譜所)의 누각(樓閣)을 우러러 보매 구보(舊譜)의 판목(版木)이 보존(保存)되어 있어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어루만져보니 백년간(百年前) 선부로(先父老)의 조선(祖先)을 위한 마음씨와 후손(後孫)들을
 +보호(保護)하는 뜻이 혁혁(赫赫)하여 어젯날 같이 느꼈었다. 나는 그로부터 해마다
 +한번씩 여기에 와서 시종(始終) 참여(參與)하고
 +모사도성(謀事圖成)하였으나 비록 큰 잘못은 없었더라도 별로 크게 한 일도 없었다.\\
  
-通文이와合同族譜를하자하니豊基宗人은三派中의長派이요錦舍는最初의譜所이니이곳에서發論하고이곳에譜所 +\_드디어 경진년(庚辰年가을에 보사(譜事)가 끝나게 됨에 서문(序文이나 발문(跋文) 기록(記錄) 
-를設置함이마땅한일이나즉각贊意를回答하지못하였음은나의生計가困窮한데다가늙고외로운形便에距離가三百 +종중(宗中)의 고수(高手)들이 많으니 나 같은 천견비재(淺見非才) 감()히 용훼(容喙)가 할 바 못되나
-餘里나됨으로推身之計가어려웠고또譜事를主幹할만한재목이못되는데다공교롭게도丙子年은큰凶年을만났음으 +종중(宗中)의 공론(公論)이 우리 3파(三派) 자손(子孫)이 각각(各各분담한 임무(任務)가 다 있었는데  
-로數年間을망서리고있던중끝내는譜廳에서의부름이再三再四라더以上衆意를外面할수없어戊寅年에族姪來源과 +그대만이 유독히 그대로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기에 내가 이 서문(序文) 
-함께譜所에이르니各處諸宗이다모여서勤勞周旋했는데훌륭한분들이참으로많았았었다나는잠시피로한다리를쉬고 +지어 두어줄 글로써 많은 사람들의 책망을 덜고저 한다
-譜所의樓閣을우러러보매舊譜의版木이保存되어있어敬虔한마음으로어루만져보니百年前先父老의祖先을위한마 +세보(世譜)의 속간(續刊)을 중단(中斷)하는 일이 없도록 다만 물체(勿替두 글자로써 제종(諸宗)에게 
-음씨와後孫들을保護하는뜻이赫赫하여어젯날같이느꼈었다나는 그로부터해마다한번씩여기에와서始終參與하고 +권면(勸勉)할 따름이다.\\ 
-謀事圖成하였으나비록큰잘못은없었더라도별로 크게한일도없었다드디어庚辰年가을에譜事가끝나게됨에序文이 +\_\_경진(庚辰) 9월(九月) 추() 후예손(後裔孫) 필흠(弼欽) 근서(謹序
-나跋文記錄은宗中의高手들이많으니나같은淺見非才敢히容喙가바못되나宗中의公論이우리三派子孫이各各분 +</typo> 
-담한任務가다있었는데 그대만이유독히 그대로 있을수있겠느냐는것이기에내가이序文을지어두어줄글로써많은사 +</WRAP>
-람들의책망을덜고저한다世譜의續刊을中斷하는일이없도록다만勿替두글자로써諸宗에게勸勉할따름이다 +
-庚辰九月秋後裔孫弼欽謹序+
c3-018.1746878959.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0 21:09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