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022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다음 판 | 이전 판 | ||
c3-022 [2025/05/11 07:40] – created ssio2 | c3-022 [2025/05/29 18:26] (현재) – ssio2 | ||
---|---|---|---|
줄 1: | 줄 1: | ||
- | ==갑자보서== | + | ==갑자보서(甲子譜序)== |
+ | <WRAP 33em justify> | ||
+ | <typo ff:' | ||
+ | \_**甲子譜序**\\ | ||
+ | \_내가 초여름부터 선묘(先墓)에 치석(治石) 역사(役事)가 있어서 문산(文山) 병사(丙舍)에 머무른지가 | ||
+ | 이미 월여(月餘)가 넘은 어느날, 황군(黃君) 종흠(鍾欽)이 전위(專委)해서 여중(旅中)에 내방(來訪)하여 | ||
+ | 대충 양가(兩家)에 세의(世誼)가 있었다는 말을 하고, 1책자(一冊子)와 족인(族人) 발(墢)과 옥(玉) 양씨(兩氏)의 | ||
+ | 서찰(書札)을 보이면서, | ||
+ | 권수(卷首)에 서문(序文)이 없을 수 없다 하여, | ||
+ | 나에게 일언(一言)을 요청(要請)하는데 그 촉탁이 매우 간결하고도 또 원로(遠路)에 | ||
+ | 찾아온 성의(誠意)가 사람을 감동(感動)케 하나, 돌아보건데 나의 학문(學文)이 적고 | ||
+ | 정신(精神)이 혼미(昏迷)한데 이런 처지로 글을 써 과연 높은 안목(眼目)에 합용(合用)될 것인지 | ||
+ | 염려스러워, | ||
+ | 또 나의 무졸(蕪拙)한 말로는 그 청탁을 방색(防塞)할 수 없었다.\\ | ||
- | 내가초여름부터先墓에治石役事가있어서文山丙舍에머무른지가이미月餘가넘은어느날黄君鍾欽이專委해서旅中 | + | \_삼가 보첩(譜牒)을 |
- | 에來訪하여대충兩家에世誼가있었든말을하고一冊子와族人撥과玉兩氏의書札을보이면서吾家의新編世譜인바卷 | + | 상고해보니 |
- | 首에序文이없을수없다하여나에게一름을要請하는데그촉탁이매우간결하고도또遠路에찾아온誠意가사람을感動 | + | 오셔서 |
- | 케하나돌아보건데나의學文이적고精神이昏迷한데이런처지로글을써과연높은眼目에合用될것인지염려스러워차 | + | 각각(各各) 관향(貫鄕)을 봉(封)한 바 평해(平海)가 제일 위라. |
- | 라리굳게사양하고말리라생각했으나世誼가있는처지요또나의蕪拙한말로는 그청탁을防塞할수없어삼가譜牒을상 | + | 그 후(後) 잠조(簪組) 상승(相承) 관작(官爵)이 계속 |
- | 고해보니平海黃氏의始祖이신諱洛이라는어른이처음東쪽나라에오셔서因居平海하시고後에그의아들兄弟三人이 | + | 이어졌는데, 충경공(忠敬公) 같은 분은 벼슬이 |
- | 各各貫鄕을封한바平海가제일위라그後簪組相承官爵이계속이어졌는데忠敬公같은분은벼슬이崇秩즉一人之下에 | + |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최고(最高) 관직에 이르렀으며, 또 수세(數世)를 지나서 |
- | 萬人之上인最高관직에이르렀으며또數世를지나서襄武公이李太祖建國日에推忠協贊의功業의뛰어나爵祿을贈受 | + | 이태조(李太祖) 건국일(建國日)에 추충협찬(推忠協贊)의 공업(功業)의 뛰어나 |
- | 하고封君의榮寵이있었으니아-隆盛하도다또監司公은經學에밝고行義가높았으며養閒公은壬辰倭亂때에義兵을 | + | 봉군(封君)의 영총(榮寵)이 있었으니, 아! 융성(隆盛)하도다. 또 감사공(監司公)은 경학(經學)에 밝고 |
- | 일으켜忠義를다함과忠烈公의殉國大節이며八警公은我先祖尤庵門下에서學業을닦아性理書를힘써배움으로써士 | + | 행의(行義)가 높았으며, 양한당(養閒公)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
- | 友間에重望이있었음은더욱可賞할것이다생각컨데이같은名門閥族이오늘東方의大族으로서修譜하는舉事가어찌 | + | 일으켜 |
- | 重大치않겠는가? | + | 우암(尤庵) 문하(門下)에서 |
- | 대저氏族의親疏遠近을論할것없이本貫이同貫일때는同譜로歸一하느것이人家의떳떳한規則이기는하나世代가멀 | + | 중망(重望)이 있었음은 더욱 |
- | 어질수록子姓즉後孫이더욱많아져서一譜에合同하기가어려운것은事勢가그렇게만들어지는것이다 | + | 오늘 |
- | 오직여기黃氏가宗會한지一年만에한派의譜系를考證하고訂正하여忠敬公의先代世系및子孫올詳審하여遺漏함이 | + | 중대(重大)치 않겠는가? |
- | 19p 까지 | + | \_대저 씨족(氏族)의 친소(親疏) 원근(遠近)을 논(論)할 것 없이 본관(本貫)이 동관(同貫)일 때는 동보(同譜)로 |
+ | 귀일(歸一)하는 것이 인가(人家)의 떳떳한 규칙(規則)이기는 하나 세대(世代)가 멀어질수록 | ||
+ | 자성(子姓) 즉 후손(後孫)이 더욱 많아져서 1보(一譜)에 합동(合同)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세(事勢)가 | ||
+ |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 ||
+ | |||
+ | \_오직 여기 황씨(黃氏)가 종회(宗會)한지 1년(一年)만에 한 파(派)의 보계(譜系)를 고증(考證)하고 | ||
+ | 정정(訂正)하여 충경공(忠敬公)의 선대(先代) 세계(世系) 및 자손(子孫)을 상심(詳審)하여 유루(遺漏)함이 | ||
+ | 없고 자람(孜覽)하기 편리하도록 편집하기를 수십번(數十番)하여 장차 인판(印版)에 | ||
+ | 붙이게 되었으니, | ||
+ | 알만하다. 참으로 감탄하여 마지않는다. 충경공(忠敬公)의 하계(下系)가 | ||
+ | 이미 려대(麗代)에 이르러 파분지렬(派分枝列)이 각처(各處)에 산거(散居)하니 | ||
+ | 왕왕(往往) 명자(名字)나 안면을 모르고 행인(行人)과 같이 지낸다면 | ||
+ | 이것이 어찌 조상(祖上)의 뜻이겠는가? | ||
+ | 종족(宗族)이 한자리에 모인 것 같고 또 친애(親愛)하는 마음이 자연히 | ||
+ | 그 가운데 흐를 것이다. 충경공(忠敬公)의 후예(後裔)되는 자 각각 힘쓰기 | ||
+ | 바란다. 충경공(忠敬公) 백중(伯仲) 양파(兩派)도 각위(各爲) 수보(修譜)한다는 말이 있다.\\ | ||
+ | \_\_소양(昭陽) 대연헌(大淵獻)(=계해(癸亥)) 복지(復之) 상한(上澣) 덕은(德隱) 송술헌(宋述憲) 근서(謹序) | ||
+ | </ | ||
+ | </ |
c3-022.1746916856.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1 07:40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