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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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甲子譜序**\\ | \_**甲子譜序**\\ | ||
\_내가 초여름부터 선묘(先墓)에 치석(治石) 역사(役事)가 있어서 문산(文山) 병사(丙舍)에 머무른지가 | \_내가 초여름부터 선묘(先墓)에 치석(治石) 역사(役事)가 있어서 문산(文山) 병사(丙舍)에 머무른지가 | ||
- | 이미 월여(月餘)가 넘은 어느날 황군(黃君) 종흠(鍾欽)이 전위(專委)해서 여중(旅中)에 내방(來訪)하여 | + | 이미 월여(月餘)가 넘은 어느날, 황군(黃君) 종흠(鍾欽)이 전위(專委)해서 여중(旅中)에 내방(來訪)하여 |
- | 대충 양가(兩家)에 세의(世誼)가 있었다는 말을 하고 1책자(一冊子)와 족인(族人) 발(撥)과 옥(玉) 양씨(兩氏)의 | + | 대충 양가(兩家)에 세의(世誼)가 있었다는 말을 하고, 1책자(一冊子)와 족인(族人) 발(墢)과 옥(玉) 양씨(兩氏)의 |
- | 서찰(書札)을 보이면서 오가(吾家)의 신편(新編) 세보(世譜)인 바 권수(卷首)에 서문(序文)이 없을 수 없다 하여 | + | 서찰(書札)을 보이면서, 오가(吾家)의 신편(新編) 세보(世譜)인 바 |
+ | 권수(卷首)에 서문(序文)이 없을 수 없다 하여, | ||
나에게 일언(一言)을 요청(要請)하는데 그 촉탁이 매우 간결하고도 또 원로(遠路)에 | 나에게 일언(一言)을 요청(要請)하는데 그 촉탁이 매우 간결하고도 또 원로(遠路)에 | ||
- | 찾아온 성의(誠意)가 사람을 감동(感動)케 하나 돌아보건데 나의 학문(學文)이 적고 | + | 찾아온 성의(誠意)가 사람을 감동(感動)케 하나, 돌아보건데 나의 학문(學文)이 적고 |
정신(精神)이 혼미(昏迷)한데 이런 처지로 글을 써 과연 높은 안목(眼目)에 합용(合用)될 것인지 | 정신(精神)이 혼미(昏迷)한데 이런 처지로 글을 써 과연 높은 안목(眼目)에 합용(合用)될 것인지 | ||
- | 염려스러워 차라리 굳게 사양하고 말리라 생각했으나 세의(世誼)가 있는 처지요 | + | 염려스러워, 차라리 굳게 사양하고 말리라 생각했으나, 세의(世誼)가 있는 처지요 |
- | 또 나의 무졸(蕪拙)한 말로는 그 청탁을 방색(防塞)할 수 없어 삼가 보첩(譜牒)을 | + | 또 나의 무졸(蕪拙)한 말로는 그 청탁을 방색(防塞)할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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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삼가 보첩(譜牒)을 | ||
상고해보니 평해황씨(平海黃氏)의 시조(始祖)이신 휘(諱) 낙(洛)이라는 어른이 처음 동(東)쪽 나라에 | 상고해보니 평해황씨(平海黃氏)의 시조(始祖)이신 휘(諱) 낙(洛)이라는 어른이 처음 동(東)쪽 나라에 | ||
- | 오셔서 인거(因居) 평해(平海)하시고 후(後)에 그의 아들 형재(兄弟) 3인(三人)이 | + | 오셔서 인거(因居) 평해(平海)하시고, 후(後)에 그의 아들 형제(兄弟) 3인(三人)이 |
- | 각각(各各) 관향(貫鄕)을 봉(封)한 바 평해(平海)가 제일 위라. 그 후(後) 잠조(簪組) 상승(相承) 관작(官爵)이 계속 | + | 각각(各各) 관향(貫鄕)을 봉(封)한 바 평해(平海)가 제일 위라. |
- | 이어졌는데 충경공(忠敬公) 같은 분은 벼슬이 숭질(崇秩) 즉 일인지하(一人之下)에 | + | 그 후(後) 잠조(簪組) 상승(相承) 관작(官爵)이 계속 |
- |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최고(最高) 관직에 이르렀으며 또 수세(數世)를 지나서 양무공(襄武公)이 | + | 이어졌는데, 충경공(忠敬公) 같은 분은 벼슬이 숭질(崇秩) 즉 일인지하(一人之下)에 |
+ |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최고(最高) 관직에 이르렀으며, 또 수세(數世)를 지나서 양무공(襄武公)이 | ||
이태조(李太祖) 건국일(建國日)에 추충협찬(推忠協贊)의 공업(功業)의 뛰어나 작록(爵祿)을 증수(贈受)하고 | 이태조(李太祖) 건국일(建國日)에 추충협찬(推忠協贊)의 공업(功業)의 뛰어나 작록(爵祿)을 증수(贈受)하고 | ||
- | 봉군(封君)의 영총(榮寵)이 있었으니 아! 융성(隆盛)하도다. 또 감사공(監司公)은 경학(經學)에 밝고 | + | 봉군(封君)의 영총(榮寵)이 있었으니, 아! 융성(隆盛)하도다. 또 감사공(監司公)은 경학(經學)에 밝고 |
- | 행의(行義)가 높았으며 양한당(養閒公)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의병(義兵)을 | + | 행의(行義)가 높았으며, 양한당(養閒公)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의병(義兵)을 |
- | 일으켜 충의(忠義)를 다함과 충렬공(忠烈公)의 순국대절(殉國大節)이며 팔경공(八警公)은 아(我) 선조(先祖) | + | 일으켜 충의(忠義)를 다함과, 충렬공(忠烈公)의 순국대절(殉國大節)이며, 팔경공(八警公)은 아(我) 선조(先祖) |
우암(尤庵) 문하(門下)에서 학업(學業)을 닦아 성리서(性理書)를 힘써 배움으로써 사우(士友) 간(間)에 | 우암(尤庵) 문하(門下)에서 학업(學業)을 닦아 성리서(性理書)를 힘써 배움으로써 사우(士友) 간(間)에 | ||
- | 중망(重望)이 있었음은 더욱 가상(可賞)할 것이다. 생각컨데 이같은 | + | 중망(重望)이 있었음은 더욱 가상(可賞)할 것이다. 생각컨데 이같은 |
오늘 동방(東方)의 대족(大族)으로서 수보(修譜)하는 거사(擧事)가 어찌 | 오늘 동방(東方)의 대족(大族)으로서 수보(修譜)하는 거사(擧事)가 어찌 | ||
- | 重大치 않겠는가? | + | 중대(重大)치 않겠는가? |
- | \_대저 氏族의 親疏 遠近을 論할 것 없이 本貫이 同貫일 때는 同譜로 | + | \_대저 |
- | 歸一하는 것이 人家의 떳떳한 規則이기는 하나 世代가 멀어질수록 | + | 귀일(歸一)하는 것이 |
- | 子姓 즉 後孫이 더욱 많아져서 一譜에 合同하기가 어려운 것은 事勢가 | + | 자성(子姓) 즉 후손(後孫)이 더욱 많아져서 |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 ||
- | \_오직 여기 黃氏가 宗會한지 一年만에 한 派의 譜系를 考證하고 | + | \_오직 여기 |
- | 訂正하여 忠敬公의 先代 世系 및 子孫올 詳審하여 遺漏함이 | + | 정정(訂正)하여 |
- | 없고 孜覽하기 편리하도록 편집하기를 數十番하여 장차 印版에 | + | 없고 |
- | 붙이게 되었으니 가히 誠力있는 바요, 또 保族의 성사(盛事)임을 | + | 붙이게 되었으니, 가히 |
알만하다. 참으로 감탄하여 마지않는다. 충경공(忠敬公)의 하계(下系)가 | 알만하다. 참으로 감탄하여 마지않는다. 충경공(忠敬公)의 하계(下系)가 | ||
이미 려대(麗代)에 이르러 파분지렬(派分枝列)이 각처(各處)에 산거(散居)하니 | 이미 려대(麗代)에 이르러 파분지렬(派分枝列)이 각처(各處)에 산거(散居)하니 | ||
- | 往往 名字나 안면을 모르고 行人과 같이 지낸다면 | + | 왕왕(往往) 명자(名字)나 안면을 모르고 |
- | 이것이 어찌 조상(祖上)의 뜻이겠는가? | + | 이것이 어찌 조상(祖上)의 뜻이겠는가? |
종족(宗族)이 한자리에 모인 것 같고 또 친애(親愛)하는 마음이 자연히 | 종족(宗族)이 한자리에 모인 것 같고 또 친애(親愛)하는 마음이 자연히 | ||
그 가운데 흐를 것이다. 충경공(忠敬公)의 후예(後裔)되는 자 각각 힘쓰기 | 그 가운데 흐를 것이다. 충경공(忠敬公)의 후예(後裔)되는 자 각각 힘쓰기 | ||
바란다. 충경공(忠敬公) 백중(伯仲) 양파(兩派)도 각위(各爲) 수보(修譜)한다는 말이 있다.\\ | 바란다. 충경공(忠敬公) 백중(伯仲) 양파(兩派)도 각위(各爲) 수보(修譜)한다는 말이 있다.\\ | ||
- | \_\_소양(昭陽)(=계(癸)) 대연헌(大淵獻)(=해(亥)) 복지(復之) 상한(上澣) 덕은(德隱) 송술헌(宋述憲) 근서(謹序) | + | \_\_소양(昭陽) 대연헌(大淵獻)(=계해(癸亥)) 복지(復之) 상한(上澣) 덕은(德隱) 송술헌(宋述憲) 근서(謹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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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22.1747093914.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3 08:51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