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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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39 [2025/05/16 20:35] – 121.166.63.129 | c3-039 [2025/06/04 21:03] (현재) – ssio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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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10: | 줄 10: | ||
변(變)에 극론(極論)을 펴다 왕(王)의 뜻에 거슬린 바 되어 옥천(沃川)으로 귀양 갔었고, 나중에 풀려 | 변(變)에 극론(極論)을 펴다 왕(王)의 뜻에 거슬린 바 되어 옥천(沃川)으로 귀양 갔었고, 나중에 풀려 | ||
벼슬이 보문각(寶文閣) 제학(提學)에 이르렀다. 그리고 휘(諱) 유정(有定)을 낳으니 이조(李朝) 초엽(初葉)에 벼슬을 하여 | 벼슬이 보문각(寶文閣) 제학(提學)에 이르렀다. 그리고 휘(諱) 유정(有定)을 낳으니 이조(李朝) 초엽(初葉)에 벼슬을 하여 | ||
- | 공조전서(工曹典書)가 되었으며, | + | 공조전서(工曹典書)가 되었으며, |
전서(典書)로부터 | 전서(典書)로부터 | ||
- | 현(現) 영주(榮州)에서 우거(寓居)하였더니, | + | 현(現) 영주(榮州)에서 우거(寓居)하였더니, |
\_공(公)의 증조(曾祖)의 휘(諱) 말손(末孫)은 사온서(司醞署) 주부(主簿)요, | \_공(公)의 증조(曾祖)의 휘(諱) 말손(末孫)은 사온서(司醞署) 주부(主簿)요, | ||
줄 54: | 줄 54: | ||
또 전임자(前任者) 때에 백성(百姓)이 내지 못한 세금(稅金)은 공(公)이 실정(實情)을 조사(調査)하여 알맞도록 혹(或) 면제(免除)하고 | 또 전임자(前任者) 때에 백성(百姓)이 내지 못한 세금(稅金)은 공(公)이 실정(實情)을 조사(調査)하여 알맞도록 혹(或) 면제(免除)하고 | ||
혹(或) 줄이고 혹(或) 메워서, 수(數)를 충당(充當)하고 문권(文卷)을 폐기(廢棄)하는 등(等)의 적절(適切)한 처리(處理)를 하였다. | 혹(或) 줄이고 혹(或) 메워서, 수(數)를 충당(充當)하고 문권(文卷)을 폐기(廢棄)하는 등(等)의 적절(適切)한 처리(處理)를 하였다. | ||
- | 그리고 항상(恒常) 백성(百姓) 교육(敎育)에 뜻을 두어, 문묘(文廟)를 증축(増築) 또는 신축(新築)하는데 힘써 권도(勸導)를 | + | 그리고 항상(恒常) 백성(百姓) 교육(敎育)에 뜻을 두어, 문묘(文廟)를 증축(增築) 또는 신축(新築)하는데 힘써 권도(勸導)를 |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 ||
서적(書籍)을 비치(備置)하며 이를 유지토록 전토(田土)를 마련하여, | 서적(書籍)을 비치(備置)하며 이를 유지토록 전토(田土)를 마련하여, | ||
줄 63: | 줄 63: | ||
눈물겹게 상소(上疏)하니 그 극언(極言)한 조목(條目)이 열 가지가 넘었더라.\\ | 눈물겹게 상소(上疏)하니 그 극언(極言)한 조목(條目)이 열 가지가 넘었더라.\\ | ||
- | \_이 상소(上疏)에 대(對)한 임금의 내리신 판비(判批)의 추장(推奬)한 말씀이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 + | \_이 상소(上疏)에 대(對)한 임금의 내리신 판비(判批)의 추장(推奬)한 말씀이,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
백성(百姓)을 사랑치 않음이 없으니 내가 | 백성(百姓)을 사랑치 않음이 없으니 내가 | ||
- | 심(甚)히 가상히 여기노라 하고 특명(特命)으로 조세(租稅)를 면제(免除)함이 10년을 한정(限定)한 조목(條目)이 | + | 심(甚)히 가상히 여기노라 하고, 특명(特命)으로 조세(租稅)를 면제(免除)함이 10년을 한정(限定)한 조목(條目)이 |
무려 20여 조(條)에 달(達)하였으니 공(公)의 유창한 문장(文章)과 정성(精誠)이 하느님을 감동(感動)시키지 아니하였더라면 | 무려 20여 조(條)에 달(達)하였으니 공(公)의 유창한 문장(文章)과 정성(精誠)이 하느님을 감동(感動)시키지 아니하였더라면 | ||
어찌 전일(前日)에 없는 바의 은전(恩典)이 내려졌을 것이겠는가? | 어찌 전일(前日)에 없는 바의 은전(恩典)이 내려졌을 것이겠는가? | ||
유리도망(流離逃亡)하였던 단양(丹陽) 백성(百姓)이 다시 돌아오고 재무족도(才舞足蹈)하는 환희(歡喜)를 가졌다 한다.\\ | 유리도망(流離逃亡)하였던 단양(丹陽) 백성(百姓)이 다시 돌아오고 재무족도(才舞足蹈)하는 환희(歡喜)를 가졌다 한다.\\ | ||
- | \_또 향교(鄉校)가 산(山)개골 물가에 있어 왕왕(往往) 홍수(洪水)로 침몰(沈沒)될 우려(憂慮)가 있으므로 | + | \_또 향교(鄕校)가 산(山)개골 물가에 있어 왕왕(往往) 홍수(洪水)로 침몰(沈沒)될 우려(憂慮)가 있으므로 |
공(公)이 명(命)하여 군치(郡治)의 동(東)쪽에 옮겨 세우되 그 위치(位置)와 장엄(壯嚴)한 모습이 지방(地方)을 넉넉히 교화(敎化)시켜 | 공(公)이 명(命)하여 군치(郡治)의 동(東)쪽에 옮겨 세우되 그 위치(位置)와 장엄(壯嚴)한 모습이 지방(地方)을 넉넉히 교화(敎化)시켜 | ||
풍화(風化)하는 전당(殿堂)으로 삼는데 충분(充分)케 하였다. 또 군(郡)이 낳은 유현(儒賢)과 우제주탁(禹祭酒卓)의 경학(經學) 충절(忠節)은 | 풍화(風化)하는 전당(殿堂)으로 삼는데 충분(充分)케 하였다. 또 군(郡)이 낳은 유현(儒賢)과 우제주탁(禹祭酒卓)의 경학(經學) 충절(忠節)은 | ||
줄 81: | 줄 81: | ||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 아니겠는가? |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 아니겠는가? | ||
- | \_전일(前日)에 노(盧) 목사(牧使) 경린(慶麟)((노경린(盧慶麟): | + | \_전일(前日)에 노(盧) 목사(牧使) 경린(慶麟)((노경린(盧慶麟): |
- | 영봉서원(迎鳳書院)을 벽진(碧珍) 옛 터에 새로 세움이 있었더니 공(公)이 이것을 | + | 영봉서원(迎鳳書院)을 벽진(碧珍) 옛 터에 새로 세움이 있었더니, 공(公)이 이것을 |
규모(規模)를 넓히고 장엄(壯嚴)하고 아름답게 더 꾸몄으며 또 문묘(文廟)를 중수(重修)하여 교화(敎化)의 전당(殿堂)답게 | 규모(規模)를 넓히고 장엄(壯嚴)하고 아름답게 더 꾸몄으며 또 문묘(文廟)를 중수(重修)하여 교화(敎化)의 전당(殿堂)답게 | ||
규모(規模)를 개척(開拓)하였다. 이때 마침 오사문건(吳斯文建)((사문(斯文): | 규모(規模)를 개척(開拓)하였다. 이때 마침 오사문건(吳斯文建)((사문(斯文): | ||
같으므로 의논(議論)을 모아 제자(弟子) 몇 사람을 가려 4등급(四等級)으로 나누고 오(吳) 교관(敎官)으로 하여금 | 같으므로 의논(議論)을 모아 제자(弟子) 몇 사람을 가려 4등급(四等級)으로 나누고 오(吳) 교관(敎官)으로 하여금 | ||
- | 책임(責任)을 맡겨 매월(毎月) 한 차례씩 모여 강(講)을 하되 검독(檢督)하고 시험(試驗)하며 이해(理解)키 곤란(困難)한 태문(台文)은 풀어주고 | + | 책임(責任)을 맡겨, 매월(毎月) 한 차례씩 모여 강(講)을 하되 검독(檢督)하고 시험(試驗)하며 이해(理解)키 곤란(困難)한 태문(台文)은 풀어주고 |
그 성적(成績)에 따라 상벌(賞罰)을 주니 성주(星州) 1군(一郡)의 교화(敎化)가 크게 진작(振作)됨을 넉넉히 느낄너라. | 그 성적(成績)에 따라 상벌(賞罰)을 주니 성주(星州) 1군(一郡)의 교화(敎化)가 크게 진작(振作)됨을 넉넉히 느낄너라. | ||
또 성주(星州) 동(東)쪽에 공곡(孔谷)이라는 곳이 있어 이곳 모든 유생(儒生)들이 서당(書堂)짖기를 원(願)함으로 | 또 성주(星州) 동(東)쪽에 공곡(孔谷)이라는 곳이 있어 이곳 모든 유생(儒生)들이 서당(書堂)짖기를 원(願)함으로 | ||
줄 93: | 줄 93: | ||
자질(資質)에 따라 크게 성취(成就)하는 사람들이 많이 배출(輩出)되었다.\\ | 자질(資質)에 따라 크게 성취(成就)하는 사람들이 많이 배출(輩出)되었다.\\ | ||
- | \_일찍이 공(公)의 고향(故鄉)인 풍기군수(豊基郡守)로 취임(就任)한 | + | \_일찍이 공(公)의 고향(故鄕)인 풍기군수(豊基郡守)로 취임(就任)한 |
상산(商山) 주후(周侯) 세붕(世鵬)((주세붕(周世鵬): | 상산(商山) 주후(周侯) 세붕(世鵬)((주세붕(周世鵬): | ||
신서(信書)로 왕복(往復)할제 그 뜻과 학문(學問)에 미급(未及)한 점(点)을 | 신서(信書)로 왕복(往復)할제 그 뜻과 학문(學問)에 미급(未及)한 점(点)을 | ||
잘 알면서도 계속(繼續) 친교(親交)를 하는 중(中) 다른 사람들이 이미 그의 견식(見識)이 밝아지고 있었다 하였다. | 잘 알면서도 계속(繼續) 친교(親交)를 하는 중(中) 다른 사람들이 이미 그의 견식(見識)이 밝아지고 있었다 하였다. | ||
그러나 그가 전(前)에 조정(朝廷)에 있을 때 | 그러나 그가 전(前)에 조정(朝廷)에 있을 때 | ||
- | 오직 문사(文辭)로만 세상(世上)에 이름이 높았는데 공(公)과 점점(漸漸) 사우(師友)로 종유(從遊)하는 사이에 성리연원설(性理淵源說)을 | + | 오직 문사(文辭)로만 세상(世上)에 이름이 높았는데, 공(公)과 점점(漸漸) 사우(師友)로 종유(從遊)하는 사이에 성리연원설(性理淵源說)을 |
듣고 비로소 학문(學問)이란 것은 알아 | 듣고 비로소 학문(學問)이란 것은 알아 | ||
- | 자랑삼고 남에게 칭찬(稱讚)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繼續) 지행일치(知行一致)하는데 있음을 깨닫고 | + | 자랑삼고, 남에게 칭찬(稱讚)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繼續) 지행일치(知行一致)하는데 있음을 깨닫고 |
차학(此學)에 뜻을 두어 심경사록(心經思錄) 등(等)의 모든 | 차학(此學)에 뜻을 두어 심경사록(心經思錄) 등(等)의 모든 | ||
- | 성리서(性理書)를 얻어 읽어 이에 깊이 감발(感發)하였다 하더니 성주(星州)에서 또 이와 같은 사람이 있어 | + | 성리서(性理書)를 얻어 읽어 이에 깊이 감발(感發)하였다 하더니, 성주(星州)에서 또 이와 같은 사람이 있어 |
- | 학우(學友)로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도움이 되었으니 그 교화(敎化)로서 치민(治民)하는 뜻이 더욱 힘차고 | + | 학우(學友)로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도움이 되었으니, 그 교화(敎化)로서 치민(治民)하는 뜻이 더욱 힘차고 |
그 공(功)이 더욱 깊었었다.\\ | 그 공(功)이 더욱 깊었었다.\\ | ||
- | \_매양(每樣) 공사(公事)의 여가(餘暇)에 오(吳) 교수(敎授)와 함께 책상(冊床)을 맞대고 강독(講讀)하는 동안에 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 + | \_매양(每樣) 공사(公事)의 여가(餘暇)에 오(吳) 교수(敎授)와 함께 책상(冊床)을 맞대고 강독(講讀)하는 동안에, 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
침식(寢食)을 잊고 열심(熱心)함으로 사람들이 과로(過勞)로 병(病)날 것을 근심하여 말리는 이가 많았다. | 침식(寢食)을 잊고 열심(熱心)함으로 사람들이 과로(過勞)로 병(病)날 것을 근심하여 말리는 이가 많았다. | ||
그러나 항상(恒常) 이에 대답(對答)이 독서(讀書)는 학문(學問)의 근본(根本)이 되는 것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기운(氣運)을 | 그러나 항상(恒常) 이에 대답(對答)이 독서(讀書)는 학문(學問)의 근본(根本)이 되는 것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기운(氣運)을 | ||
- | 기르는 것인데 어찌 독서(讀書)로 인(因)하여 병(病)이 날 이치(理致)가 있겠는가? | + | 기르는 것인데, 어찌 독서(讀書)로 인(因)하여 병(病)이 날 이치(理致)가 있겠는가? |
\_그 혹시 반대(反對)되는 것은 명(命)일 것이요 글의 허물은 아닐 것이라 하고 그가 거처(居處)하는 | \_그 혹시 반대(反對)되는 것은 명(命)일 것이요 글의 허물은 아닐 것이라 하고 그가 거처(居處)하는 | ||
- | 곳을 깨끗하고 조용하고 홀로 하였으며 고요한 온 방안에 성현(聖賢)의 요훈(要訓)을 4벽(四壁)에 | + | 곳을 깨끗하고 조용하고 홀로 하였으며, 고요한 온 방안에 성현(聖賢)의 요훈(要訓)을 4벽(四壁)에 |
써 붙이고 스스로 보아 경계(警誡)하며 깨우치고 근엄(謹嚴)하고 공손(恭遜)한 생활(生活)로 지내왔으나, | 써 붙이고 스스로 보아 경계(警誡)하며 깨우치고 근엄(謹嚴)하고 공손(恭遜)한 생활(生活)로 지내왔으나, | ||
그러나 매양 사환(仕宦)으로써 격무에 시달리고 관청(官廳) 일에 흔들리어 깊은 병(病)이 되었음을 | 그러나 매양 사환(仕宦)으로써 격무에 시달리고 관청(官廳) 일에 흔들리어 깊은 병(病)이 되었음을 | ||
- | 깨닫고 하루 아침에 벼슬을 가볍게 벗어 버리고 돌아와서 죽령(竹嶺) 아래 금계(錦溪) 위에 | + | 깨닫고, 하루 아침에 벼슬을 가볍게 벗어 버리고 돌아와서 죽령(竹嶺) 아래 금계(錦溪) 위에 |
- | 몸을 늙고져 하여 이미 그곳에 묘지(墓地)를 점(占)하고 수간(數間)의 집을 짓고 명명(命名)하기를 금양정사(錦陽精舎)라 지었다. | + | 몸을 늙고져 하여, 이미 그곳에 묘지(墓地)를 점(占)하고 수간(數間)의 집을 짓고 명명(命名)하기를 금양정사(錦陽精舍)라 지었다. |
- | 그리고 그곳에 장서(藏書)를 하고 경학(經學)을 강도(講道)하는 곳으로 삼았으니 대저(大抵) 독호(篤好)하는 뜻으로써 | + | 그리고 그곳에 장서(藏書)를 하고 경학(經學)을 강도(講道)하는 곳으로 삼았으니, 대저(大抵) 독호(篤好)하는 뜻으로써 |
- | 정양(靜養)하는 공(功)을 더하게 되었던들 그 뜻한 바의 진취(進就)가 있어 그 얻음이 이에 끝나지 않고 | + | 정양(靜養)하는 공(功)을 더하게 되었던들, 그 뜻한 바의 진취(進就)가 있어 그 얻음이 이에 끝나지 않고 |
- | 더 큰 것이 있었을 것인데 애석(哀惜)하게도 그 뜻을 다 이룩하지 못한 채 | + | 더 큰 것이 있었을 것인데, 애석(哀惜)하게도 그 뜻을 다 이룩하지 못한 채 |
문득 병(病)을 얻어 승화(乘化)하였으니 진실(眞實)로 가석(可惜)하도다.\\ | 문득 병(病)을 얻어 승화(乘化)하였으니 진실(眞實)로 가석(可惜)하도다.\\ | ||
\_비록 그러하나 공(公)의 이름이 홍문관(弘文館) 양재(養才)에 선발(選拔)되어 무오년(戊午年) 봄에 공(公)이 단양(丹陽)으로 | \_비록 그러하나 공(公)의 이름이 홍문관(弘文館) 양재(養才)에 선발(選拔)되어 무오년(戊午年) 봄에 공(公)이 단양(丹陽)으로 | ||
- | 부임(赴任)한 것을 보고 조정(朝廷)의 신하(臣下)들이 의논(議論)하고 장계(狀啓)로 공(公)을 불러 문한(文翰)의 직위(職位)에 두려하여 | + | 부임(赴任)한 것을 보고, 조정(朝廷)의 신하(臣下)들이 의논(議論)하고 장계(狀啓)로 공(公)을 불러 문한(文翰)의 직위(職位)에 두려하여 |
- | 주선(周旋)을 하였으나 동진자(同進者)들과의 뜻이 맞지 않아 나아가는 것을 중지(中止)하였다. | + | 주선(周旋)을 하였으나, 동진자(同進者)들과의 뜻이 맞지 않아 나아가는 것을 중지(中止)하였다. |
그러므로 조정(朝廷) 제공(諸公)들이 공(公)의 가상한 식견(識見)을 잘 알게 되었다. 공(公)인즉 그 능(能)한 재조(才操)에도 | 그러므로 조정(朝廷) 제공(諸公)들이 공(公)의 가상한 식견(識見)을 잘 알게 되었다. 공(公)인즉 그 능(能)한 재조(才操)에도 | ||
- | 뜻을 더하여 영진(榮進)의 명리(名利)를 급급(汲汲)히 취(取)하려 하지않고 도리어 생각(生覺)을 달리하고 노력(努力)을 | + | 뜻을 더하여 영진(榮進)의 명리(名利)를 급급(汲汲)히 취(取)하려 하지 않고, 도리어 생각(生覺)을 달리하고 노력(努力)을 |
- | 거듭하여 인생(人生) 일생(一生)에 구(求)하지 못한 바를 구(求)하며 범인(凡人)들이 맛보지 못한 바를 맛보아 | + | 거듭하여 인생(人生) 일생(一生)에 구(求)하지 못한 바를 구(求)하며 범인(凡人)들이 맛보지 못한 바를 맛보아, |
웃지 아니할 것을 하여 웃지 아니함을 알지 못하고 화복(禍福)이 화복(禍福)이 되는 것도 알지 못하는 | 웃지 아니할 것을 하여 웃지 아니함을 알지 못하고 화복(禍福)이 화복(禍福)이 되는 것도 알지 못하는 | ||
무아상태(無我狀態)에 잠입(潛入)하여 날로 부지런히 힘쓰고 있었다. 이러한 일은 인생(人生)이 죽은 후(後)에는 | 무아상태(無我狀態)에 잠입(潛入)하여 날로 부지런히 힘쓰고 있었다. 이러한 일은 인생(人生)이 죽은 후(後)에는 | ||
그만이지마는 그가 택(擇)한 도(道)가 희망(希望)이 넘치는 새로운 인생(人生)을 개조(改造)하는 데는 | 그만이지마는 그가 택(擇)한 도(道)가 희망(希望)이 넘치는 새로운 인생(人生)을 개조(改造)하는 데는 | ||
- | 바른 방법(方法)이요 또 이 도(道)를 열심(熱心)히 향도(嚮導)함은 가상할 노릇이다.\\ | + | 바른 방법(方法)이요, 또 이 도(道)를 열심(熱心)히 향도(嚮導)함은 가상할 노릇이다.\\ |
\_또 공(公)은 우애독실(友愛篤實)하여 좋은 물질(物質)은 먼저 자당(慈堂)을 받들고 다음에 자매제질(姉妹弟姪)에게 나누어주며 | \_또 공(公)은 우애독실(友愛篤實)하여 좋은 물질(物質)은 먼저 자당(慈堂)을 받들고 다음에 자매제질(姉妹弟姪)에게 나누어주며 | ||
- | 자기(自己)가 갖는 것은 적게 하였다. 향당고우(鄕黨故舊)에게는 궁(窮)한데 | + | 자기(自己)가 갖는 것은 적게 하였다. 향당고우(鄕黨故舊)에게는 궁(窮)한데 |
혹(或) 미치지 못할 때는 항상(恒常) 마음에 섭섭함을 금(禁)치 못하였다.\\ | 혹(或) 미치지 못할 때는 항상(恒常) 마음에 섭섭함을 금(禁)치 못하였다.\\ | ||
줄 141: | 줄 141: | ||
보고서 남들이 또 그 청빈(淸貧)함과 교만(嬌慢)하고 외식(外飾)함이 없이 스스로 세상(世上)에 들어나게 된 것을 알았다. | 보고서 남들이 또 그 청빈(淸貧)함과 교만(嬌慢)하고 외식(外飾)함이 없이 스스로 세상(世上)에 들어나게 된 것을 알았다. | ||
또 아름다운 산수(山水)의 맑고 푸르름을 좋아해서 여행(旅行)할 때나 고을살이하는 곳에 명산적수(名山滴水)가 | 또 아름다운 산수(山水)의 맑고 푸르름을 좋아해서 여행(旅行)할 때나 고을살이하는 곳에 명산적수(名山滴水)가 | ||
- | 있으면 반드시 친우(親友)들과 함께 놀며 시(詩)를 읊고 토론(討論)하며 혹(或) 몸을 빼처 홀로 배회소영(徘徊嘯詠)하고 | + | 있으면, 반드시 친우(親友)들과 함께 놀며 시(詩)를 읊고 토론(討論)하며 혹(或) 몸을 빼처 홀로 배회소영(徘徊嘯詠)하고 |
즐겨 집에 돌아오는 것조차 잊을 때가 적지 않았다.\\ | 즐겨 집에 돌아오는 것조차 잊을 때가 적지 않았다.\\ | ||
\_단양(丹陽)의 도담(島潭)과 구담(龜潭)을 말할 것 같으면 그 주인(主人)되는 이(李) 은사(隱士)의 | \_단양(丹陽)의 도담(島潭)과 구담(龜潭)을 말할 것 같으면 그 주인(主人)되는 이(李) 은사(隱士)의 | ||
번병(藩屛)((번병(藩屛): | 번병(藩屛)((번병(藩屛): | ||
- | 놀고 구경(求景)하던 것을 자못 기이(奇異)하고 호남아(好男兒)의 일이라 하여 더욱 숭상(崇尙)하였으며 또 태백산(太白山) 계곡(溪谷)에 | + | 놀고 구경(求景)하던 것을 자못 기이(奇異)하고 호남아(好男兒)의 일이라 하여 더욱 숭상(崇尙)하였으며, 또 태백산(太白山) 계곡(溪谷)에 |
많이 내린 눈 위와 북한강(北漢江) 상(上)에 백옥(白玉)같이 희고 굳게 결정(結晶)된 얼음 위에 | 많이 내린 눈 위와 북한강(北漢江) 상(上)에 백옥(白玉)같이 희고 굳게 결정(結晶)된 얼음 위에 | ||
영강설마(永江雪馬)의 놀음을 한껏 즐겨 때로는 이(李) 은사(隱士)의 집을 지나 고을 끝까지 달리는 것을 | 영강설마(永江雪馬)의 놀음을 한껏 즐겨 때로는 이(李) 은사(隱士)의 집을 지나 고을 끝까지 달리는 것을 | ||
줄 152: | 줄 152: | ||
\_그리고 어느날 공(公)의 병세(病勢) 오래도록 쾌(快)하지 못하고 자리에 누웠을 때 나와 함께 글로써 | \_그리고 어느날 공(公)의 병세(病勢) 오래도록 쾌(快)하지 못하고 자리에 누웠을 때 나와 함께 글로써 | ||
- | 고결(告訣)하던 말 뜻이 맑고 새로워 평상시(平常時)와 다름이 없더니 그 죽음에 임하였다는 것을 듣고 | + | 고결(告訣)하던 말 뜻이 맑고 새로워 평상시(平常時)와 다름이 없더니, 그 죽음에 임하였다는 것을 듣고 |
- | 다시 서신(書信)을 살펴보니 바로 그 글이 죽기 전날에 쓴 것인데 그 정신(情神)이 죽을 | + | 다시 서신(書信)을 살펴보니 바로 그 글이 죽기 전날에 쓴 것인데, 그 정신(情神)이 죽을 |
때까지 똑똑하고 흩어짐이 없었다는 것을 잘 알았노라.\\ | 때까지 똑똑하고 흩어짐이 없었다는 것을 잘 알았노라.\\ | ||
줄 160: | 줄 160: | ||
\_찰방(察訪)은 곧 농암(聾巖) 선생(先生)의 아들이다. 처음 공(公)을 선생(先生)의 문하(門下)에서 알게 되어 서로 함께 | \_찰방(察訪)은 곧 농암(聾巖) 선생(先生)의 아들이다. 처음 공(公)을 선생(先生)의 문하(門下)에서 알게 되어 서로 함께 | ||
- | 종유(從遊)한지가 가장 오래이며 또한 밀접(密接)하였으나 우루(愚陋)(퇴계(退溪) 선생(先生) 자신(自身)은 낮추어 말하는 것)는 | + | 종유(從遊)한지가 가장 오래이며 또한 밀접(密接)하였으나, 우루(愚陋)(퇴계(退溪) 선생(先生) 자신(自身)은 낮추어 말하는 것)는 |
들은 바가 없었더니 공(公)을 얻어 깨우친 것이 많았다. 공(公)이 선생(先生)의 문(門)을 물러가 돌아가서는 | 들은 바가 없었더니 공(公)을 얻어 깨우친 것이 많았다. 공(公)이 선생(先生)의 문(門)을 물러가 돌아가서는 | ||
- | 실(實)로 왕래(往來)가 많았고 옛날의 언약(言約)을 닦으며 공(公)이 항상(恒常) 나를 늙고 병(病)들어 오랫동안 보전치 | + | 실(實)로 왕래(往來)가 많았고, 옛날의 언약(言約)을 닦으며 공(公)이 항상(恒常) 나를 늙고 병(病)들어 오랫동안 보전치 |
못할까 근심을 했던 | 못할까 근심을 했던 | ||
- | 것이 어찌하여 늙고 병(病)든 사람은 세상(世上)에 살아있어 도리어 그대의 튼튼하고 꿋꿋한 나이에 | + | 것이, 어찌하여 늙고 병(病)든 사람은 세상(世上)에 살아있어 도리어 그대의 튼튼하고 꿋꿋한 나이에 |
울게 될 줄을 알았으리요. 공(公)의 언행(言行)을 가히 기록(記錄)할제 정중(鄭重)해서 감(敢)히 다 하지 못하고 | 울게 될 줄을 알았으리요. 공(公)의 언행(言行)을 가히 기록(記錄)할제 정중(鄭重)해서 감(敢)히 다 하지 못하고 | ||
- | 다만 그 큰 것만을 잡았음이 위와 같으니 바라건데 혹시 다음날에 붓대를 | + | 다만 그 큰 것만을 잡았음이 위와 같으니, 바라건데 혹시 다음날에 붓대를 |
잡을 사람의 상고(詳考)함이 있게 된다면 졸눌(拙訥)한 글이 피여 밝힐 바 없으리라. | 잡을 사람의 상고(詳考)함이 있게 된다면 졸눌(拙訥)한 글이 피여 밝힐 바 없으리라. | ||
오호(嗚呼)라! 슬프도다! 공(公)의 저술(著述)한 바의 문집(文集) 2권(二卷)과 시집(詩集) | 오호(嗚呼)라! 슬프도다! 공(公)의 저술(著述)한 바의 문집(文集) 2권(二卷)과 시집(詩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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