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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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류정황경신행장(沈流亭黃敬身行狀)=== | ===침류정황경신행장(沈流亭黃敬身行狀)=== | ||
- | 公의諱는敬身이요字는直夫라號는枕流亭이니平海人이라有諱希碩하니太祖建國初에推忠協贊하여開國元勳으로 | + | <WRAP 33em justify> |
- | 封平海君贈右議政諡襄武라이분이公의七代祖가되고六代祖諱象은太宗駙馬兵曹判書兼八道都摠制贈領議政이요 | + | <typo ff:' |
- | 五代祖諱繼祖는通訓大夫修義副尉佐軍蔭司直이요高祖의諱自中은通訓大夫司僕寺正大護軍이요會祖의諱詮은保 | + | \_沈流亭黃敬身行狀\\ |
- | 功將軍行宣傳官贈通政大夫刑曹參議요祖의諱世通은禦侮將軍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요考의諱瑁은 | + | \_공(公)의 휘(諱)는 경신(敬身)이요 |
- | 宣樂將軍行尙州特使라비淑夫人은河陰奉氏樑의女라 | + | 호(號)는 침류정(枕流亭)이니 |
- | 公이宣祖二年己巳十一月二十日에漢城梨峴京弟에서生하니資質이清雅하고聰明이過人하여나이겨우十二歲에四 | + | 유휘(有諱) 희석(希碩)하니 |
- | 書三經達通하며한번들으면곧외우고글을지으면사람들을 놀라게하니미히장차주과압도할사람이 될 | + | 추충협찬(推忠協贊)하여 |
- | 고모두하였다玉長氣凜이敦厚하여和平하고寬裕한天性으로孝誠이出天하여昏定省과甘旨奉 | + | 봉(封) 평해군(平海君) 증(贈) 우의정(右議政) 시(諡) 양무(襄武)라. |
+ | 이 분이 | ||
+ | 휘(諱) 상(象)은 태종(太宗) 부마(駙馬) 병조판서(兵曹判書) | ||
+ | 겸(兼) 팔도도총제(八道都摠制) 증(贈) 영의정(領議政)이요, | ||
+ | 5대조(五代祖) 휘(諱) 계조(繼祖)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수의(修義) | ||
+ | 부위(副尉) 좌군(佐軍) 음사직(蔭司直)이요, 고조(高祖)의 | ||
+ | 휘(諱) 자중(自中)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 | ||
+ | 대호군(大護軍)이요, 증조(曾祖)의 휘(諱) 전(詮)은 | ||
+ | 보공장군(保功將軍) 행(行) 선전관(宣傳官) 증(贈) 통정대부(通政大夫) | ||
+ | 형조참판(刑曹參議)요, 조(祖)의 휘(諱) 세통(世通)은 | ||
+ | 어모장군(禦侮將軍)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 ||
+ | 호조참판(戶曹參判) 겸(兼) 의금부(義禁府) 동지사(同知事)요, | ||
+ | 고(考)의 휘(諱) 창(琩)은 | ||
+ | 선락장군(宣樂將軍) 행(行) 상주목사(尙州牧使)라. | ||
+ | 비(妣) 숙부인(淑夫人)은 하음(河陰) 봉씨(奉氏) 양(樑)의 여(女)라.\\ | ||
+ | |||
+ | \_공(公)이 선조(宣祖) 2년(二年) 기사(己巳) 11월(十一月) 20일(二十日)에 | ||
+ | 한성(漢城) 이현(梨峴) 경제(京第)에서 | ||
+ | 자질(資質)이 청아(淸雅)하고 | ||
+ | 나이 겨우 | ||
+ | 한번 들으면 곧 외우고 글을 지으면 사람들을 놀라게 하니 장차 | ||
+ | 이백(李白)과 백낙천(白樂天)을 | ||
+ | 것이라고 모두 | ||
+ | 기품(氣稟)이 돈후(敦厚)하여 | ||
+ | 천성(天性)으로 | ||
+ | 감지봉양(甘旨奉養)하는 정성(精誠)이 시종(始終) 게을리 함이 없어 | ||
+ | 가(可)히 문증(文曾)에 비유하겠고 친족간(親族間)에는 화목(和睦)하기에 | ||
+ | 힘쓰고, 현인(賢人) 달사(達士)로 더불어 교유(交遊)하기를 | ||
+ | 즐기며 또 명승지(名勝地) 산수(山水) 등(等)을 관념(觀念)하는 | ||
+ | 일념(一念)이 철저(徹底)하였다.\\ | ||
+ | |||
+ | \_일찍이 경향(京鄕)에 많이 유람(遊覽)하였으나 이름을 알리고 | ||
+ | 명예(名譽)를 얻기 위(爲)한 행동(行動)은 일절(一切) 없었다. | ||
+ | 무릇 군자(君子)의 덕(德)을 심고 공(功)을 닦는 것은 | ||
+ | 장차(將次) 후래(後來)에 남김을 위(爲)함이라 하고 덕(德)을 | ||
+ | 감추고 벼슬을 마다하니 뜻을 펴지 못하고 가족(家族)과 행장(行裝)을 | ||
+ | 거두어 청천(靑川) 무릉동(武陵洞)에 | ||
+ | 들어가 도원(桃源) 강상(江上)에 정자(亭子)를 짓고 정자(亭子) 이름을 | ||
+ | 침류정(枕流亭)이라 하였다. 그래서 이(李) 서계(西溪) 득윤(得胤)과 | ||
+ | 기지상합(氣志相合)하여 성리학(性理學)을 강마(講磨)하며 | ||
+ | 우애(友愛)가 더욱 두터워서 옛날 사마(司馬) 백강(伯康) 간의 우애(友愛)에 | ||
+ | 비길만하더라. 또 사람을 접(接)하고 대(對)하는 데는 항상 화열(和悅)과 | ||
+ | 겸손으로 일관(一貫)함으로 친(親)치 않은 사람이 없으며 그 성품(性品)이 | ||
+ | 쾌활(快闊)하여 수시로 시주(詩酒)의 흥취(興趣)에 잠기는 등의 | ||
+ | 고상(高尙)한 생활(生活)을 즐겼다. 또 숭조목친(崇祖陸親)하는 성의(誠意)는 | ||
+ | 평생(平生)을 두고 초지(初志)를 일관(一貫)함으로 족인(族人)의 | ||
+ | 수단(收單)을 촉구(促求)하며 각군(各郡) 각파(各派)에 통고(通告)하고 | ||
+ | 대광공(大匡公) 자손(子孫)의 초보(草譜)를 집성(輯成)한 | ||
+ | 것이 침류정(枕流亭)의 내인외화(內仁外和)한 목족지성(睦族之誠)의 | ||
+ | 결실(結實)이라 하겠다.\\ | ||
+ | |||
+ | \_공(公)의 일생(一生)을 걸어 온 자취와 자기(自己) 수행(修行)의 | ||
+ | 대략(大略)이 위와 같으며 효종(孝宗) 원년(元年) 경인(庚寅)에 | ||
+ | 정침(正寢)에서 고종(考終)하니 향년(享年)이 83세(八十三歲)라. | ||
+ | 효묘(孝廟) 2년(二年) 신묘(辛卯)에 증(贈) 통훈대부(通, | ||
+ |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僉知) 중추부사(中樞府事)하니 이는 | ||
+ | 특별(特別) 증첩(贈帖)이었다.\\ | ||
+ | |||
+ | \_배(配)는 숙부인(淑夫人) 성주(星州) 이씨(李氏) 첨정(僉正) 원배(元培)의 여(女)라. | ||
+ | 3남(三男)을 생(生)하였으니 장왈(長曰) 일(逸)이니 충의위(忠義衛) 행(行) 사과(司果)요, | ||
+ | 차왈(次日) 건(建)이요, | ||
+ | 정직(正直)한 행실(行實)로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하고 형제간(兄弟間)에 | ||
+ | 우애(友愛)하며 인후관대(仁厚寬大)한 성품(性品)으로 남과 다툼이 없으니 | ||
+ | 원근(遠近) 향리(鄕里) 사람들의 칭찬(稱讚)이 자자(藉藉)하더라.\\ | ||
+ | |||
+ | \_공(公)이 강변(江邊)에 정자(亭子)를 짓고 호(號)를 침류정(枕流亭)이라하며 | ||
+ | 인망(人望)과 실존(實存)이 융숭(隆崇)하니 일향(一鄕)의 | ||
+ | 의절(儀節)이 되었다 하더라. 나머지는 다 기록(記錄)하지 못하노라.\\ | ||
+ | \_\_은진(恩津) 송환기(宋煥箕) 근찬(謹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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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42.1746967067.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1 21:37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