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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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42 [2025/05/17 00:01] – 121.166.63.129 | c3-042 [2025/05/22 13:30] (현재) – ssio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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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24: | 줄 24: | ||
\_공(公)이 선조(宣祖) 2년(二年) 기사(己巳) 11월(十一月) 20일(二十日)에 | \_공(公)이 선조(宣祖) 2년(二年) 기사(己巳) 11월(十一月) 20일(二十日)에 | ||
- | 한성(漢城) 이현(梨峴) 경제(京弟)에서 생(生)하니 | + | 한성(漢城) 이현(梨峴) 경제(京第)에서 생(生)하니 |
자질(資質)이 청아(淸雅)하고 총명(聰明)이 과인(過人)하여 | 자질(資質)이 청아(淸雅)하고 총명(聰明)이 과인(過人)하여 | ||
나이 겨우 12세(十二歲)에 사서삼경(四書三經) 달통(達通)하며 | 나이 겨우 12세(十二歲)에 사서삼경(四書三經) 달통(達通)하며 | ||
한번 들으면 곧 외우고 글을 지으면 사람들을 놀라게 하니 장차 | 한번 들으면 곧 외우고 글을 지으면 사람들을 놀라게 하니 장차 | ||
- | 이백(李白)과 낙천(樂天)을 압도할 사람이 될 | + | 이백(李白)과 |
것이라고 모두 칭찬(稱讚)하였다. 또 장성(長成)하매 | 것이라고 모두 칭찬(稱讚)하였다. 또 장성(長成)하매 | ||
기품(氣稟)이 돈후(敦厚)하여 화평(和平)하고 관유(寬裕)한 | 기품(氣稟)이 돈후(敦厚)하여 화평(和平)하고 관유(寬裕)한 | ||
줄 34: | 줄 34: | ||
감지봉양(甘旨奉養)하는 정성(精誠)이 시종(始終) 게을리 함이 없어 | 감지봉양(甘旨奉養)하는 정성(精誠)이 시종(始終) 게을리 함이 없어 | ||
가(可)히 문증(文曾)에 비유하겠고 친족간(親族間)에는 화목(和睦)하기에 | 가(可)히 문증(文曾)에 비유하겠고 친족간(親族間)에는 화목(和睦)하기에 | ||
- | 힘쓰고 현인(賢人) 달사(達士)로 더불어 교유(交遊)하기를 | + | 힘쓰고, 현인(賢人) 달사(達士)로 더불어 교유(交遊)하기를 |
즐기며 또 명승지(名勝地) 산수(山水) 등(等)을 관념(觀念)하는 | 즐기며 또 명승지(名勝地) 산수(山水) 등(等)을 관념(觀念)하는 | ||
일념(一念)이 철저(徹底)하였다.\\ | 일념(一念)이 철저(徹底)하였다.\\ | ||
줄 44: | 줄 44: | ||
감추고 벼슬을 마다하니 뜻을 펴지 못하고 가족(家族)과 행장(行裝)을 | 감추고 벼슬을 마다하니 뜻을 펴지 못하고 가족(家族)과 행장(行裝)을 | ||
거두어 청천(靑川) 무릉동(武陵洞)에 | 거두어 청천(靑川) 무릉동(武陵洞)에 | ||
- | 들어가 도원강(桃源江) 상(上)에 정자(亭子)를 짓고 정자(亭子) 이름을 | + | 들어가 도원(桃源) |
침류정(枕流亭)이라 하였다. 그래서 이(李) 서계(西溪) 득윤(得胤)과 | 침류정(枕流亭)이라 하였다. 그래서 이(李) 서계(西溪) 득윤(得胤)과 | ||
- | 기지상합(氣志相合)하야 성리학(性理學)을 강마(講磨)하며 | + | 기지상합(氣志相合)하여 성리학(性理學)을 강마(講磨)하며 |
우애(友愛)가 더욱 두터워서 옛날 사마(司馬) 백강(伯康) 간의 우애(友愛)에 | 우애(友愛)가 더욱 두터워서 옛날 사마(司馬) 백강(伯康) 간의 우애(友愛)에 | ||
비길만하더라. 또 사람을 접(接)하고 대(對)하는 데는 항상 화열(和悅)과 | 비길만하더라. 또 사람을 접(接)하고 대(對)하는 데는 항상 화열(和悅)과 | ||
줄 61: | 줄 61: | ||
대략(大略)이 위와 같으며 효종(孝宗) 원년(元年) 경인(庚寅)에 | 대략(大略)이 위와 같으며 효종(孝宗) 원년(元年) 경인(庚寅)에 | ||
정침(正寢)에서 고종(考終)하니 향년(享年)이 83세(八十三歲)라. | 정침(正寢)에서 고종(考終)하니 향년(享年)이 83세(八十三歲)라. | ||
- | 효묘(孝廟) 2년(二年) 신묘(辛卯)에 증(贈) 통훈대부(通訓大夫) | + | 효묘(孝廟) 2년(二年) 신묘(辛卯)에 증(贈) 통훈대부(通,訓大夫) |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僉知) 중추부사(中樞府事)하니 이는 |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僉知) 중추부사(中樞府事)하니 이는 | ||
특별(特別) 증첩(贈帖)이었다.\\ | 특별(特別) 증첩(贈帖)이었다.\\ | ||
줄 70: | 줄 70: | ||
정직(正直)한 행실(行實)로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하고 형제간(兄弟間)에 | 정직(正直)한 행실(行實)로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하고 형제간(兄弟間)에 | ||
우애(友愛)하며 인후관대(仁厚寬大)한 성품(性品)으로 남과 다툼이 없으니 | 우애(友愛)하며 인후관대(仁厚寬大)한 성품(性品)으로 남과 다툼이 없으니 | ||
- | 원근(遠近) 향리(鄉里) 사람들의 칭찬(稱讚)이 자자(藉藉)하더라.\\ | + | 원근(遠近) 향리(鄕里) 사람들의 칭찬(稱讚)이 자자(藉藉)하더라.\\ |
\_공(公)이 강변(江邊)에 정자(亭子)를 짓고 호(號)를 침류정(枕流亭)이라하며 | \_공(公)이 강변(江邊)에 정자(亭子)를 짓고 호(號)를 침류정(枕流亭)이라하며 | ||
- | 인망(人望)과 실존(實存)이 융숭(隆崇)하니 일향(一鄉)의 | + | 인망(人望)과 실존(實存)이 융숭(隆崇)하니 일향(一鄕)의 |
의절(儀節)이 되었다 하더라. 나머지는 다 기록(記錄)하지 못하노라.\\ | 의절(儀節)이 되었다 하더라. 나머지는 다 기록(記錄)하지 못하노라.\\ | ||
\_\_은진(恩津) 송환기(宋煥箕) 근찬(謹撰) | \_\_은진(恩津) 송환기(宋煥箕) 근찬(謹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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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42.1747407672.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7 00:01 저자 121.166.63.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