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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o ff:'바탕'; fs:1em; lh:1.5em>+<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
 \_**평해황씨세보서(平海黃氏世譜序)**\\ \_**평해황씨세보서(平海黃氏世譜序)**\\
-\_황씨(黃氏)의 동에 나타난 역사는 오랜 옛날이며 그 번영해온 유래는 신라조(新 +\_황씨(黃氏)의 동에 나타난 역사는 오랜 옛날이며 그 번영해온 유래는  
-羅朝)에서 안정박이김최(安鄭朴李金崔)의 성(六姓)을 처음에 세운 후로부터 그 뿌 +신라조(新羅朝)에서 안정박이김최(安鄭朴李金崔)의 6성(六姓)을 처음에 세운 후로부터  
-리와 줄기와 잎이 퍼져서 우리 황씨는 어느덧 대성(大姓)이 되어 파계(派系)가 나누 +그 뿌리와 줄기와 잎이 퍼져서 우리 황씨는 어느덧 대성(大姓)이 되어 파계(派系)가  
-어지고 관향(貫鄕)이 달라서 철원(鐵原) 창원(昌原) 장수(長水) 평해(平海) 등에 가장 +나누어지고 관향(貫鄕)이 달라서 철원(鐵原) 창원(昌原) 장수(長水) 평해(平海) 등에 가장 
-많은 편이며 그 중에도 평해황씨(平海黃氏)가 멀고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많은 편이며 그 중에도 평해황씨(平海黃氏)가 멀고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면 황씨의 시조는 누구였던가? 전설에 의하면 신라상세(新羅上世)에 황장 +
-군(黃將軍)이라는 어른이 구장군(丘將軍)이라는 분과 함께 들어오셨다는 것인데 황 +
-장군은 월송(月松) 북쪽 기슭에 살아계셔서 지금도 황장군의 사신 터가 있으며 구장 +
-군은 구미(丘尾) 북포(北浦)에 배를 대어 상륙하셨다하여 그 지방명을 지금도 구미 +
-진(丘尾津)이라 부르고 있다. 이 모든 말이 다 평해군지(平海郡誌)에 등재되어 있으 +
-나 세대가 황박(荒朴)하고 문적이 소실되어 확실히 증빙(證憑)할 근거는 없다.그러 +
-나 뜻하건데 황성(黃姓)이 처음으로 여기에서 근원을 삼은 것은 틀림없는것 같다. +
-그리고 대개 장수(長水) 창원(昌原)은 평해(平海)에서 나누어졌다 하니 이 三파는 처 +
-음 한 조상에서 갈린것을 짐작할 수 있다. +
-우리 평해황씨는 고려초로부터 대대로 문관과 무관에 재상의 자리를 바라볼만한+
  
-명망높은 분들이 많았고 또 이름난 재상과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한 분들이 많아서 +\_그러면 황씨의 시는 누구였던가? 전설에 의하면 신라상세(新羅上世)에  
-조에 들어와서도 역사에 반반(班班)함을 가히 자랑할만하다. 이것은 진실로 조선 +황장군(黃將軍)이라는 어른이 구장군(丘將軍)이라는 분과 함께 들어오셨다는 것인데  
-(祖先)의 심인후택(深仁厚澤)의 적공(積功)이 아니었던들 어찌 수백년동안을 그같은 +황장군은 월송(月松) 북쪽 기슭에 살아계셔서 지금도 황장군의 사신 터가 으며  
-찬연한 문벌로 가업을 이어내려 올 수 있었겠가? +구장군은 구미(丘尾북포(北浦)에 배를 대어 상셨다하여 그 지방명을 지금도  
-무릇 세상은 심은 바가 있으면 반드시 거두게되고 물은 대면 반드시 흐르는 법임 +구미(丘尾津)이라 부르고 다. 이 모든 말이 다 평해(平海)에 등재되어  
-에 역대의 찬연했던 우리 보(譜史)도 반드시 보첩을 통하여 서로 믿고 전함이 있 +있으나 세대가 황박(荒朴)하고 문적이 소실되어 확실히 증빙(證憑)할 근거는 없다. 
-었던것을 확신하노라. 그런데 고려말에 일본해적떼가 침입하여 죽령(竹嶺이남은 +그러나 뜻건데 황성(黃姓)이 처음으로 여기서 근원을 삼은 은 틀림없는 것 다. 
-거개(擧皆)가 도적게 쑥밭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북으로 피난하게 됨에 가졌던 조 +그리고 대개 장수(長水) 창원(昌原)은 평해(平海)에서 나누어졌다 하니 이 3()는  
-전래의 물건을 모두 병화로 소실고 또 산으로 흩어져 살게됨으로 그 정 +처음 한 조상서 갈린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상은 실로 슬프고 가석할 노릇이었다. 이이 우리 황씨가 북방에 많이 살게된 +
-연유요, 또 처음된 일로 생각된 +
-그다음은 이조초에 병조판서(兵曹判書) 황상(黃象)이 문천군(文川郡)에서 돌아 +
-장사(葬事)함에 그 후손의 일부가 흩져 살게된 것이 두번째였다. 그리고 각읍각처 +
-에 산거하여 번연게 사는 들은 모듀가 간구한 생활로 한 터럭에 견출이나 오 +
-히려 끊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다행한 일이었다. 회고하건데 보첩을 잃고 또 듣 +
-는 바 없이 살아온 로 평해황씨 자손들이 三파로 나누워 그 조상을 각각으로 하 +
-였으니 처음에 한 조상이 누구였음을 알지 못하고 로 혼인을 하여 부끄러움이 없+
  
 +\_우리 평해황씨는 고려초로부터 대대로 문관과 무관에 재상의 자리를 바라볼만한
 +
 +명망높은 분들이 많았고 또 이름난 재상과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한 분들이 많아서
 +이조에 들어와서도 역사에 반반(班班)함을 가히 자랑할만하다. 이것은 진실로 
 +조선(祖先)의 심인후택(深仁厚澤)의 적공(積功)이 아니었던들 어찌 수백년동안을 그같은
 +찬연한 문벌로 가업을 이어내려 올 수 있었겠는가?\\
  
 +\_무릇 세상은 심은 바가 있으면 반드시 거두게 되고 물은 대면 반드시 흐르는 
 +법임에 역대의 찬연했던 우리 보사(譜史)도 반드시 보첩을 통하여 서로 믿고 전함이 
 +있었던 것을 확신하노라. 그런데 고려말에 일본 해적떼가 침입하여 죽령(竹嶺) 이남은
 +거개(擧皆)가 도적에게 쑥밭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북으로 피난하게 됨에 가졌던 
 +조상전래의 물건을 모두 병화로 소실하고 또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살게됨으로 그 
 +정상은 진실로 슬프고 가석할 노릇이었다. 이것이 우리 황씨가 북방에 많이 살게된
 +연유요, 또 처음된 일로 생각된다.\\
  
-이 지냈으니 이어찌 대행중대불행(大幸中大不幸)이 아니였으랴!\\+\_그 다음은 조 초에 병조판서(兵曹判書) 황상(黃象)이 문천군(文川郡)에서 돌아가 
 +장사(葬事)함에 그 후손의 일부가 흩어져 살게된 것이 두번째였다. 그리고 각읍각처에  
 +산거하여 번연하게 사는 이들은 모두가 간구한 생활로 한 터럭에 견줄 것이나 오히려  
 +끊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다행한 일이었다. 회고하건데 보첩을 잃고 또 듣는 바 없이  
 +살아온 고로 평해황씨 자손들이 3(三)파로 나뉘어 그 조상을 각각으로 하였으니  
 +처음에 한 조상이 누구였음을 알지 못하고 서로 혼인을 하여 부끄러움이 없이  
 +지냈으니 이 어찌 대행중대불행(大幸中大不幸)이 아니였으랴!\\
  
-\_황서(黃瑞)께서는 익대원훈(翊戴元勳)으로써 승군(陞郡) 즉 기성현(箕城縣)을 평해 +\_황서(黃瑞)께서는 익대원훈(翊戴元勳)으로써 승군(陞郡) 즉 기성현(箕城縣)을  
-군(平海郡)으로 올리시고 황현(黃鉉)은 경명행수(經明行修)로써 세상에 이름이 높고 +평해군(平海郡)으로 올리시고 황현(黃鉉)은 경명행수(經明行修)로써 세상에 이름이 높고 
-근대에 와서 또 황서(黃瑞)와 황준량(黃俊良) 두분의 박흡다문(博洽多聞)으로서도  +근대에 와서 또 황서(黃瑞)와 황준량(黃俊良) 두분의 박흡다문(博洽多聞)으로서도  
-두 종사(宗史)에 상심치 못한바 있어 한 조상으로 그 동종인 것이 드러남이 없으니 +두 종사(宗史)에 상심치 못한바 있어 한 조상으로 그 동종인 것이 드러남이 없으니 
-드디어 우리 자손의 무궁한 슬픔이라 하겠다.오호라 우리 고을은 벽향(僻鄉)이며 +드디어 우리 자손의 무궁한 슬픔이라 하겠다. 오호라 우리 고을은 벽향(僻鄉)이며 
-우리들은 잔약한 자손이라 이들의 흐름을 살펴볼때 가난하고 천한 상민으로 기울어 +우리들은 잔약한 자손이라 이들의 흐름을 살펴볼 때 가난하고 천한 상민으로  
-짐이 많으니 진실로 후손들의 장래가 크게 통탄케 되는도다. 과연 이 일이 장차 어 +기울어짐이 많으니 진실로 후손들의 장래가 크게 통탄케 되는도다.  
-떻게 되어갈까?\\+과연 이 일이 장차 어떻게 되어갈까?\\
  
 \_이에 거듭한 임진(壬辰) 계사(癸巳)의 재난이 여말(麗末)의 해구(海寇)의 재난보다 \_이에 거듭한 임진(壬辰) 계사(癸巳)의 재난이 여말(麗末)의 해구(海寇)의 재난보다
-더욱 심하니 이제까지의 증빙(證憑)을 후일에 제시치 못할것이 오늘보다 더할것이+더욱 심하니 이제까지의 증빙(證憑)을 후일에 제시치 못할것이 오늘보다 더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며 또 동족의 천(賤)해짐과 그 장래의 탄식됨이 오늘의 자손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며 또 동족의 천(賤)해짐과 그 장래의 탄식됨이 오늘의 자손이
-오늘보다 응당 더할것이므로 이에 크게 두려움이 있어 종족의 보사를 수집코져  +오늘보다 응당 더할 것이므로 이에 크게 두려움이 있어 종족의 보사를 수집코져  
-였으나 질병이 잦고 이목이 넓지 못하여 숙부 응청(應)어른의 평일 수기한 것을+였으나 질병이 잦고 이목이 넓지 못하여 숙부 응청(應) 어른의 평일 수기한 것을
 토대로 나의 교유(交遊)간에 듣고 본 바를 보입(補入)하여 일가의 사사로이 전하는 토대로 나의 교유(交遊)간에 듣고 본 바를 보입(補入)하여 일가의 사사로이 전하는
-편람으로 하였으니 그간에 혹 자세함과 혹 간략함과 혹 빠진것을 쓰지않음은 전지 +편람으로 하였으니 그간에 혹 자세함과 혹 간략함과 혹 빠진 것을 쓰지 않음은  
-에 따른것이며 혹 동명으로서 파가 같지 않고 혹 동생으로서 이름이 가지런하지 않+전지에 따른 것이며 혹 동명으로서 파가 같지 않고 혹 동생으로서 이름이 가지런하지  
 +아 의심으로 전하고 믿음으로 전하여 그대로 두고 깍지 않음은 선대를 높인 것이오. 
 +외손(外孫)의 외파(外派)와 구친(舅親)의 구족(舅族)을 계속 기록(記錄)한 것은 
 +사족의 근원을 밝힌 것이오, 상민 아전 서자 천민이 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빼지 
 +않은 것은 동종(同宗)을 중하게 여김이라.\\
  
-아 의심으로 전하고 믿음으로 전하여 그대로 두고 깍지 않음은 선대를 높인 것이오. +\_오호라 과거 수백년 간의 조상이 어찌 이로 힘입어 혹 후세에 전할 줄 알았겠으며 
-오' 외손(外孫)의 외파(外派)와 근친(舅親)의 구족(舅族)을 계속 기록(記錄)한 것은 +또 장차 수백년 간에 자손들이 어찌 이로 이어서 더욱 자할 줄 누가 알 일이겠는가?  
-사족의 근원을 밝힌 것이오' 상민 아전 서자 천민이 된 차에 이르기까지 모두 빼지 +만든 바 계획대로 족보가 완성되었으니 이에 가히 유감이 없을지니라.\\ 
-않은 것은 동종(同宗)을 충하게 여깊이라. +\_\_선조(宣祖) 갑진(甲辰) 상완(上浣) 통훈대부(通訓大夫) 행() 예천군수(醴泉郡守) 여일(汝一) 근서(謹序)
-오호라 과거 수백년간의 조상이 어찌 이로 힘입어 혹 후세에 전할 줄 알았겠으며 +
-또 장착 수백년간에 자손들이 어찌 이로 이어서 더욱 자할 줄 누가 알 일이겠는 +
-가? 만든바 계획대로 족보가 완성되었으니 이에 가히 유감이 없을지니라. +
-宣祖甲辰上浣通訓大夫行 醴泉郡守 汝一 謹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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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02.1749217617.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6 22:46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