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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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03 [2025/06/06 22:59] – 만듦 ssio2 | c32-003 [2025/06/08 10:33] (현재) – ssio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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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진보서문(丙辰譜序文) | + | <WRAP 37em justify> |
- | 원래 뿌리없는 나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며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그뒤 | + | <typo ff:' |
- | 가 존속할 수 없음은 천지생성의 이치요' | + | \_**병진보서문(丙辰譜序文)**\\ |
- | 있음은 과거에 뿌리가 있었던 탓인것이나 자고로 사람은 오늘이 있는줄은 알되 | + | \_원래 뿌리없는 나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며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그 뒤가 |
- | 랜 옛뿌리가 금일을 형성하게 된 것을 자성하고 자기를 닦기는 힘드는 바이다. | + | 존속할 수 없음은 천지생성의 이치요, 마찬가지로 우리 인류의 역사도 오늘이 |
- | 대저 국가가 있음은 생민이 있는바를 뿌리로 한 것이요, 생민은 과거 조상이 있음 | + | 있음은 과거에 뿌리가 있었던 탓인 것이나 자고로 사람은 오늘이 있는 줄은 알되 |
- | 으로써 금일의 뿌리가 이루어진 바이라하여 크게는 영원히 생성하는 인류역사를 이 | + | 오랜 옛 뿌리가 금일을 형성하게 된 것을 자성하고 자기를 닦기는 힘드는 바이다.\\ |
- | 루게 되는 것임을 자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의미로 볼때 우리들이 선조를 스스로 | + | |
- | 상고하고 금일을 닦아 나감이 생성의 도리에 합치되는 바이라고 생각한다. | + | |
- | 이에 본가의 계통과 내력을 고금에 밝게하며 친애의 정을 유구히 존케하며 선조 | + | |
- | 의 의덕현벌(懿德顯閥)과 후승(後承)의 분류파계(分流派系)를 후래에 전하고 一人의 | + | |
- | 덕화를 일가에 추진함은 물논 아이족족이극극(家而族族而國國)에서 천하를 화성(化 | + | |
- | 成)하는데 사족지가(私族之家)의 수보하는 참뜻이 있다. 할것이다.(小豆源 | + | |
- | 우리 평해황씨는 동한(東漢)의 건무년대(建武年代)로부터 현재까지 一천九백五십 | + | |
- | 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치니고 있다. 시조이신 휘락(諱洛)이 한(漢)나라에서 배를 타 | + | |
- | 시고 우리나라 동해안의 평해(平海) 월성포(月松浦)에 상륙하셨다는 말과 황장군(黃 | + | |
- | 將軍)께서 그곳에 산성(山城)을 쌓고 | + | \_대저 국가가 있음은 생민이 있는 바를 뿌리로 한 것이요, 생민은 과거 조상이 |
- | 공을 세워 국가로부터 봉작(封爵)을 받았는데 장자 | + | 있음으로써 금일의 뿌리가 이루어진 바이라 하여 크게는 영원히 생성하는 인류역사를 |
- | 자을고(乙古)는 장수군(長水君)、삼자 병고(丙古)는 창원백(昌原伯)이었으며 그 후에 | + | 이루게 되는 것임을 자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의미로 볼 때 우리들이 선조를 스스로 |
- | 봉작에 따라 관향을 정하게 되어 금일의 평해황씨(平海黃氏)(기성(箕城)은 평해의 | + | 상고하고 금일을 닦아 나감이 생성의 도리에 합치되는 바이라고 생각한다.\\ |
- | 구읍호(舊邑號)] 장수황씨(長水黃氏) 창원황씨(昌原黃氏)로 갈리게 되었다는 말은 | + | |
- | 랜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인데 금일에 와서는 이 삼파가 한 초상의 후손이면서 | + | \_이에 본가의 계통과 내력을 고금에 밝게하며 친애의 정을 유구히 존케하며 선조의 |
- | 도 거의 동근의 의(誼)가 없다시피 되어버렸다. | + | 의덕현벌(懿德顯閥)과 후승(後承)의 분류파계(分流派系)를 후래에 전하고 1인(一人_의 |
- | 소식(蘇軾)의 보인(譜引)에 말했듯이 | + | 덕화를 1(一)가에 추진함은 물론 가이족족이국(家而族族而國)에서 천하를 화성(化成)하는데 |
+ | 사족지가(私族之家)의 수보하는 참뜻이 있다 할 것이다.\\ | ||
+ | |||
+ | \_우리 평해황씨는 동한(東漢)의 건무년대(建武年代)로부터 현재까지 1950(一千九百五十) | ||
+ | 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조이신 휘(諱) 낙(洛)이 한(漢)나라에서 배를 | ||
+ | 타시고 우리나라 동해안의 평해(平海) 월성포(月松浦)에 상륙하셨다는 말과 | ||
+ | 황장군(黃將軍)께서 그곳에 산성(山城)을 쌓고 | ||
+ | 이분들이 큰 공을 세워 국가로부터 봉작(封爵)을 받았는데 장자 | ||
+ | 기성군(箕城君), 차자 을고(乙古)는 장수군(長水君), 삼자 병고(丙古)는 | ||
+ | 창원백(昌原伯)이었으며 그 후에 봉작에 따라 관향을 정하게 되어 금일의 | ||
+ | 평해황씨(平海黃氏)[기성(箕城)은 평해의 | ||
+ | 구읍호(舊邑號)] 장수황씨(長水黃氏) 창원황씨(昌原黃氏)로 갈리게 되었다는 말은 | ||
+ | 오랜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인데 금일에 와서는 이 삼파가 한 조상의 후손이면서도 | ||
+ | 거의 동근의 의(誼)가 없다시피 되어버렸다.\\ | ||
+ | |||
+ | \_소식(蘇軾)의 보인(譜引)에 말했드시 | ||
사람들처럼 서로가 무관심하게 된 것이니 이는 세대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점점 | 사람들처럼 서로가 무관심하게 된 것이니 이는 세대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점점 | ||
- | 친애함이 없어져가는 것을 탄식한 말이다. 참으로 우리 황씨(黃氏)들의 금일의 심정 | + | 친애함이 없어져가는 것을 탄식한 말이다. 참으로 우리 황씨(黃氏)들의 금일의 |
- | 을 잘 나타낸 말이라 하겠다. | + | 심정을 잘 나타낸 말이라 하겠다.\\ |
- | 자랑스러운 우리의 조상들은 저멀리 신라시대(新羅時代)로부터 고려시대(高麗時 | + | |
- | 代)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높은 벼슬과 귀한 소임을 받으신 어른과 학문과 덕망이 | + | \_자랑스러운 우리의 조상들은 저멀리 신라시대(新羅時代)로부터 고려시대(高麗時代)에 |
+ | 이르기까지 나라의 높은 벼슬과 귀한 소임을 받으신 어른과 학문과 덕망이 | ||
높으신 어른들이 대대로 연면(連綿)히 이어 끊이지 않았지만 유감스럽게도 누차의 | 높으신 어른들이 대대로 연면(連綿)히 이어 끊이지 않았지만 유감스럽게도 누차의 | ||
- | 병란으로 기간의 문적이 없어진데다가 또 보첩마저 소화(燒火)되어 지금 이를 소상 | + | 병란으로 기간의 문적이 없어진데다가 또 보첩마저 소화(燒火)되어 지금 이를 소상하게 |
- | 하게 고증할 길이 없음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 + | 고증할 길이 없음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
- | 평해(平海)에 본관을 둔 자로 파계를 이은 근원을 찾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 | + | |
- | 금오공(金吾公)으로 중조(中祖)를 삼으셨는데 이조중엽(李朝中葉)에 와서 금계선생 | + | \_평해(平海)에 본관을 둔 자로 파계를 이은 근원을 찾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 |
+ | |||
+ | 금오공(金吾公)으로 중조(中祖)를 삼으셨는데 이조(李朝) 중엽(中葉)에 와서 금계선생 | ||
(錦溪先生)께서 처음으로 널리 보첩(譜牒)을 수집하여 초보(草譜)를 만드셨고 그 후 | (錦溪先生)께서 처음으로 널리 보첩(譜牒)을 수집하여 초보(草譜)를 만드셨고 그 후 | ||
- | 해월선생(海月先生)과 남당선생(南塘先生)께서 수보를 내셨던 것이다. 그 조상을 | + | 해월선생(海月先生)과 남당선생(南塘先生)께서 수보를 내셨던 것이다. 그 조상을 |
- | 모하고 종족을 수합한 거룩한 뜻을 우리 후대들은 마음깊이 새겨 감사해야만 한다. | + | 추모하고 종족을 수합한 거룩한 뜻을 우리 후대들은 마음 깊이 새겨 감사해야만 한다. |
- | 그러나 그 중에는 상심(詳審)치 못한데가 없지 않아서 후인들이 모르던 것들을 애써 | + | 그러나 그 중에는 상심(詳審)치 못한 데가 없지 않아서 후인들이 모르던 것들을 애써 |
- | 찾아내어 믿을만한 것은 추리고 의심나는 것은 버려서 더욱 신중하게 정리하여 | + | 찾아내어 믿을만한 것은 추리고 의심나는 것은 버려서 더욱 신중하게 정리하여 |
- | 인(庚寅)년에 이르러 인판(印版)하니 비로소 평해황씨세보(平海黃氏世譜)가 성취헤 | + | 경인(庚寅)년에 이르러 인판(印版)하니 비로소 평해황씨세보(平海黃氏世譜)가 성취케 |
- |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 + |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
- | 譜)를 수보하였는데 그 중 종인(宗人)의 참가범위가 전극적이며 또 가장 많은 문중 | + | 대동보(大同譜)를 수보하였는데 그 중 종인(宗人)의 참가범위가 전국적이며 또 가장 많은 |
- | 이 망라된 것은 갑술보(甲戌譜)였다. | + | 문중이 망라된 것은 갑술보(甲戌譜)였다.\\ |
- | 생각컨대 이것은 갑술(甲戌)당시는 전四차때보다 교통과 통신사정이 비교적 좋았 | + | |
- | 던 관계도 있었겠지만 무었보다도 그 당시 보사(譜事)를 맡으신 분들이 학식과 덕망 | + | \_생각컨대 이것은 갑술(甲戌)당시는 전 4(四)차 때보다 교통과 통신사정이 비교적 |
- | 이 높은 三파 종군(宗君)들이었고 또한 한결같이 합심협력하였으며 아울러 그 휘하 | + | 좋았던 관계도 있었겠지만 무었보다도 그 당시 보사(譜事)를 맡으신 분들이 학식과 |
- | 에서 실무에 종사한 여러 집사들의 지극한 열성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경인 | + | 덕망이 높은 |
- | 보(庚寅譜) 이후의 신묘(辛卯) 경술(庚戌) 경진(庚辰) 신축(辛丑) 등 네차례의 대동보 | + | 그 휘하에서 실무에 종사한 여러 집사들의 지극한 열성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
- | 는 여러 지파간(支派間)의 많은 문제점을 안고있어 분쟁이 계속되었으나 이를 전혀 | + | 경인보(庚寅譜) 이후의 신묘(辛卯) 경술(庚戌) 경진(庚辰) 신축(辛丑) 등 4차례의 |
- | 조정치 못했었다. | + | 대동보는 여러 지파간(支派間)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분쟁이 계속되었으나 이를 전혀 |
+ | 조정치 못했었다.\\ | ||
+ | |||
+ | \_그러나 오직 갑술보(甲戌譜)에서는 수보의 큰 목적의 하나가 동종간의 친목인데 | ||
+ | 계속 그대로 분쟁의 요소를 남겨둔다는 것은 화목을 저해할 뿐더러 나아가서는 | ||
+ | 자손대대로 서로 원수를 맺게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없지 않다는 생각에서 | ||
+ | 분쟁을 해결할만한 고증자료를 광범하게 수집하고 신중하게 검토하여 이를 해결지워 | ||
+ | 질서정연한 세계도(世系圖)를 작성하여 보책권두(譜冊卷頭)에 붙임으로서 수백년간의 | ||
+ | 지파문중(支派門中) 분쟁을 종결시켰으니 보사(譜事)를 계속 발전시키고 동종간의 | ||
+ | 친목을 도모하는데 큰 장애를 제거한 일대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
+ | |||
+ | \_지난 을묘(乙卯) 9월 중정(中丁)에 학사공(學士公) 전사(奠祀)와 아울러 | ||
+ | 기성군(箕城君) 금오공(金吾公) 소윤공(少尹公) 시중공(侍中公)의 제단고유제(祭壇告由祭)를 | ||
+ | 모시는 자리에 참석했던 3(三)파 제손(諸孫)들이 갑술대동보(甲戌大同譜) 후 벌써 | ||
+ | 40(四十) 여년의 세월이 흘러 그 때 일을 아는 사람은 지금 몇 분 없고 또 출생한 사람은 | ||
+ | 나날이 번성해가니 후인들에게 보계(譜系)를 올바르게 전하기 위해서 다시 대동보를 | ||
+ | 수보키로 결의하고 각 문중에 통고하였던 바 다음해 병진(丙辰) 8(八)월 15(十五)일 각 문중 | ||
+ | 수단유사들이 평해(平海) 월송(月松) 추원재(追遠齋)에 모여서 병진수보규약(丙辰修譜規約)을 | ||
+ | 제정하고 그 규약에 따라서 대동보청을 평해 월송 추원재에 설치키로 했으며 | ||
+ | 모든 임원을 선정하여 그 소임을 맡겼는데 이들 임원이 각파명단을 수합하고 | ||
+ | 차서편질(次序編帙)을 동년 11(十一)월 일에 끝냈으니 그 초인적 능률을 감탄하며 | ||
+ | 애족하는 정성에 고마움을 금치 못한다.\\ | ||
- | 그러나 오직 갑술보(甲戌譜)에서는 수보의 큰 목적의 하나가 동종간의 친목인데 | + | \_또 병진수보(丙辰修譜)에 |
- | 계속 그대로 분쟁의 요소를 남겨둔다는 것은 화목을 저해할 뿐더러 나아가서는 자 | + | 보청 책임자들의 성의있는 권유와 문중 대표들의 넓은 화동정신(和同精神) 발휘로 |
- | 손대대로 서로 원수를 맺게하는 결과를 | + | 흔연합보(欣然合譜)함이라 이 또한 종중(宗中)의 일대쾌사로 |
- | 을 해결할만한 고증자료를 광범하게 수집하고 신중하게 검토하여 이를 해결지워 질 | + | 하지 않을 수 없다. |
- | 서정연한 세계도(世系圖)를 작성하여 | + | 효제충신지도(孝弟忠信之道)를 면려하고 성(姓)이 사람을 귀하게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
- | 지파문증(支派門中) 분쟁을 종결시켰으니 | + | 사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
- | 친목을 도모하는데 큰 장애를 제거한 일대 쾌거라 | + | 존조경종(尊祖敬宗)의 본의가 바로 |
- | 지난 을묘(乙卯) 구월 중정(中丁)에 학사공(學士公) 전사(奠祀)와 아울러 | + | |
- | 城君) 금오공(金吾公) 소윤공(少尹公) 시중공(侍中公)의 제단고유제(祭壇告由祭)를 | + | |
- | 모시는 자리에 참석했던 三파 제손(諸孫)들이 갑술대동보(甲戌大同譜) 후 벌써 四십 | + | |
- | 여년의 세월이 흘러 그때일을 아는 사람은 지금 몇분 없고 또 출생한 사람은 나날 | + | |
- | 이 번성해가니 흑인들에게 보계(譜系)를 올바르게 전하기 | + | |
- | 보키로 결의하고 각 문중에 통고하였던바 다음해 병진(丙辰) 八월 十五일 각 문중 | + | |
- | 수단유사들이 평해(于海) 월송(月松) 추측원채(追遠齋)에 모여서 병진주보규약얄(丙辰修 | + | |
- | 譜規約)을 제정하고 그 규약에 따라서 대동보청을 평해 월송 추원재에 설치키로 했 | + | |
- | 으며 모든 임원을 선정하여 그 소임을 맡겼는데 이들 임원이 각파명단을 수합하고 | + | |
- | 차서편질(次序編帙)을 동덜 나월일에 끝냈으니 그 뿐인적 능률을 감탄하며 애 | + | |
- | 족하는 정성에 고마움을 금치 못한다. | + | \_만약 조상의 근원을 상고하고 파계(派系)를 분변하는 것이 없다면 금일의 수보가 |
- | 또 병진수보(丙辰修譜)에 특기치 못할 점은 과거 이의를 가졌던 지파문중에서 보 | + | 어찌 그 뜻이 있겠으며 또 어찌 |
- | 청 책임자들의 성의있는 권유와 문중대표들의 넓은 화동정신(和同精神) 발휘로 흔 | + | 천하가 덕화함에 이른다 말할 수 있겠는가. 보책의 원고를 인(印)판에 붙이려할 때 |
- | 연합보(欣然合譜)함이라 이 또한 종중(宗中)의 일대쾌사로 보사(譜史)에 큰 발전이라 | + | 종인들이 나에게 서문을 위촉함으로 사피치 못하여 신보속간(新譜續刊)의 전말을 |
- | 하지않을 수 없다. 무릇 이 보책에 함께 열기된 모든 종인들은 각자가 모두 효제충 | + | 약술하여 구서(舊序)아래에 붙이는 바이다.\\ |
- | 신지도(孝弟忠信之道)를 면려하고 성(姓)이 사람을 귀하게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사 | + | \_\_서기(西紀) 1976년(一九七六年) 병진(丙辰) 11월(十一月) 일(日)\\ |
- | 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성이 귀하게 되는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존조경종(尊祖 | + | \_\_예손(裔孫) 내무부(内務部) 차관(次官) 내무부(内務部) 장관서리(長官署理) |
- | 敬宗)의 본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 | 제헌(制憲) 4대(四代) 6대(六代) 국회의원(國會議員) 감리교(監理敎) 정동제일교회(貞洞第一敎會) 장로(長老) 호현(虎鉉) 근서(謹識)\\ |
- | 만약 조상의 근원을 상고하고 파계(派系)를 분변하는 것이 없다면 금일의 수보가 | + | </ |
- | 어찌 그 뜻이 있겠으며 또 어찌 一人의 덕화가 온 종족에 추진되고 나아가서 온 천 | + | </ |
- | 하가 덕화함에 이른다 말할 수 있겠는가.보책의 원고를 인(印)판에 붙이려할때 | + | |
- | 인들이 나에게 서문을 위촉함으로 사피치 못하여 신보속간(新譜續刊)의 전말을 | + | |
- | 술하여 구서(舊序)아래에 붙이는 바이다. | + | |
- | 西紀一九七六年丙辰十一月日裔孫内務部次官 内務部長官署理 | + | |
- | 制憲四代六代國會議員監理教貞洞第一教會長老虎鉉謹識 | + | |
c32-003.1749218359.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6 22:59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