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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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o ff:' | <typo ff:' | ||
\_**병진보서문(丙辰譜序文)**\\ | \_**병진보서문(丙辰譜序文)**\\ | ||
- | \_원래 뿌리없는 나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며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그뒤가 | + | \_원래 뿌리없는 나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며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그 뒤가 |
존속할 수 없음은 천지생성의 이치요, 마찬가지로 우리 인류의 역사도 오늘이 | 존속할 수 없음은 천지생성의 이치요, 마찬가지로 우리 인류의 역사도 오늘이 | ||
있음은 과거에 뿌리가 있었던 탓인 것이나 자고로 사람은 오늘이 있는 줄은 알되 | 있음은 과거에 뿌리가 있었던 탓인 것이나 자고로 사람은 오늘이 있는 줄은 알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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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이에 본가의 계통과 내력을 고금에 밝게하며 친애의 정을 유구히 존케하며 선조의 | \_이에 본가의 계통과 내력을 고금에 밝게하며 친애의 정을 유구히 존케하며 선조의 | ||
의덕현벌(懿德顯閥)과 후승(後承)의 분류파계(分流派系)를 후래에 전하고 1인(一人_의 | 의덕현벌(懿德顯閥)과 후승(後承)의 분류파계(分流派系)를 후래에 전하고 1인(一人_의 | ||
- | 덕화를 | + | 덕화를 |
- | 사족지가(私族之家)의 수보하는 참뜻이 있다. 할것이다.\\ | + | 사족지가(私族之家)의 수보하는 참뜻이 있다 할 것이다.\\ |
\_우리 평해황씨는 동한(東漢)의 건무년대(建武年代)로부터 현재까지 1950(一千九百五十) | \_우리 평해황씨는 동한(東漢)의 건무년대(建武年代)로부터 현재까지 1950(一千九百五十) | ||
- | 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 + | 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
타시고 우리나라 동해안의 평해(平海) 월성포(月松浦)에 상륙하셨다는 말과 | 타시고 우리나라 동해안의 평해(平海) 월성포(月松浦)에 상륙하셨다는 말과 | ||
황장군(黃將軍)께서 그곳에 산성(山城)을 쌓고 사시다가 후에 삼형제를 두신 바 | 황장군(黃將軍)께서 그곳에 산성(山城)을 쌓고 사시다가 후에 삼형제를 두신 바 | ||
- | 이분들이 큰 공을 세워 국가로부터 봉작(封爵)을 받았는데 장자 | + | 이분들이 큰 공을 세워 국가로부터 봉작(封爵)을 받았는데 장자 |
기성군(箕城君), | 기성군(箕城君), | ||
창원백(昌原伯)이었으며 그 후에 봉작에 따라 관향을 정하게 되어 금일의 | 창원백(昌原伯)이었으며 그 후에 봉작에 따라 관향을 정하게 되어 금일의 | ||
평해황씨(平海黃氏)[기성(箕城)은 평해의 | 평해황씨(平海黃氏)[기성(箕城)은 평해의 | ||
구읍호(舊邑號)] 장수황씨(長水黃氏) 창원황씨(昌原黃氏)로 갈리게 되었다는 말은 | 구읍호(舊邑號)] 장수황씨(長水黃氏) 창원황씨(昌原黃氏)로 갈리게 되었다는 말은 | ||
- | 오랜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인데 금일에 와서는 이 삼파가 한 초상의 후손이면서 | + | 오랜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인데 금일에 와서는 이 삼파가 한 조상의 후손이면서도 |
- | 도 거의 동근의 의(誼)가 없다시피 되어버렸다.\\ | + | 거의 동근의 의(誼)가 없다시피 되어버렸다.\\ |
- | \_소식(蘇軾)의 보인(譜引)에 말했드시 한 사람의 몸이 가치를 | + | \_소식(蘇軾)의 보인(譜引)에 말했드시 한 사람의 몸이 가치를 |
사람들처럼 서로가 무관심하게 된 것이니 이는 세대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점점 | 사람들처럼 서로가 무관심하게 된 것이니 이는 세대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점점 | ||
친애함이 없어져가는 것을 탄식한 말이다. 참으로 우리 황씨(黃氏)들의 금일의 | 친애함이 없어져가는 것을 탄식한 말이다. 참으로 우리 황씨(黃氏)들의 금일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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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庚寅)년에 이르러 인판(印版)하니 비로소 평해황씨세보(平海黃氏世譜)가 성취케 | 경인(庚寅)년에 이르러 인판(印版)하니 비로소 평해황씨세보(平海黃氏世譜)가 성취케 | ||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처음 보사(譜事)가 이루어진 이래 그간 5(五)차나 |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처음 보사(譜事)가 이루어진 이래 그간 5(五)차나 | ||
- | 대동보(大同譜)를 수보하였는데 그 중 종인(宗人)의 참가범위가 전극적이며 또 가장 많은 문중 | + | 대동보(大同譜)를 수보하였는데 그 중 종인(宗人)의 참가범위가 전국적이며 또 가장 많은 |
- | 이 망라된 것은 갑술보(甲戌譜)였다.\\ | + | 문중이 망라된 것은 갑술보(甲戌譜)였다.\\ |
\_생각컨대 이것은 갑술(甲戌)당시는 전 4(四)차 때보다 교통과 통신사정이 비교적 | \_생각컨대 이것은 갑술(甲戌)당시는 전 4(四)차 때보다 교통과 통신사정이 비교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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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손대대로 서로 원수를 맺게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없지 않다는 생각에서 | 자손대대로 서로 원수를 맺게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없지 않다는 생각에서 | ||
분쟁을 해결할만한 고증자료를 광범하게 수집하고 신중하게 검토하여 이를 해결지워 | 분쟁을 해결할만한 고증자료를 광범하게 수집하고 신중하게 검토하여 이를 해결지워 | ||
- | 질서정연한 세계도(世系圖)를 작성하여 보책권두(譜冊卷頭)에 | + | 질서정연한 세계도(世系圖)를 작성하여 보책권두(譜冊卷頭)에 |
- | 지파문증(支派門中) 분쟁을 종결시켰으니 보사(譜事)를 계속 발전시키고 동종간의 | + | 지파문중(支派門中) 분쟁을 종결시켰으니 보사(譜事)를 계속 발전시키고 동종간의 |
친목을 도모하는데 큰 장애를 제거한 일대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친목을 도모하는데 큰 장애를 제거한 일대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
줄 72: | 줄 72: | ||
기성군(箕城君) 금오공(金吾公) 소윤공(少尹公) 시중공(侍中公)의 제단고유제(祭壇告由祭)를 | 기성군(箕城君) 금오공(金吾公) 소윤공(少尹公) 시중공(侍中公)의 제단고유제(祭壇告由祭)를 | ||
모시는 자리에 참석했던 3(三)파 제손(諸孫)들이 갑술대동보(甲戌大同譜) 후 벌써 | 모시는 자리에 참석했던 3(三)파 제손(諸孫)들이 갑술대동보(甲戌大同譜) 후 벌써 | ||
- | 40(四十) 여년의 세월이 흘러 그때 일을 아는 사람은 지금 몇 분 없고 또 출생한 사람은 | + | 40(四十) 여년의 세월이 흘러 그 때 일을 아는 사람은 지금 몇 분 없고 또 출생한 사람은 |
- | 나날이 번성해가니 | + | 나날이 번성해가니 |
수보키로 결의하고 각 문중에 통고하였던 바 다음해 병진(丙辰) 8(八)월 15(十五)일 각 문중 | 수보키로 결의하고 각 문중에 통고하였던 바 다음해 병진(丙辰) 8(八)월 15(十五)일 각 문중 | ||
- | 수단유사들이 평해(于海) 월송(月松) 추원재(追遠齋)에 모여서 병진수보규약(丙辰修譜規約)을 | + | 수단유사들이 평해(平海) 월송(月松) 추원재(追遠齋)에 모여서 병진수보규약(丙辰修譜規約)을 |
제정하고 그 규약에 따라서 대동보청을 평해 월송 추원재에 설치키로 했으며 | 제정하고 그 규약에 따라서 대동보청을 평해 월송 추원재에 설치키로 했으며 | ||
모든 임원을 선정하여 그 소임을 맡겼는데 이들 임원이 각파명단을 수합하고 | 모든 임원을 선정하여 그 소임을 맡겼는데 이들 임원이 각파명단을 수합하고 |
c32-003.1749251435.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7 08:10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