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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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헌대부삼도관찰사잠재공묘갈명(資憲大夫三道觀察使潛齋公墓碣銘)=== | ===자헌대부삼도관찰사잠재공묘갈명(資憲大夫三道觀察使潛齋公墓碣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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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헌대부삼도관찰사잠재공묘갈명(資憲大夫三道觀察使潛齋公墓碣銘) | + | \_**자헌대부삼도관찰사잠재공묘갈명(資憲大夫三道觀察使潛齋公墓碣銘)**\\ |
- | 안동부(安東府) 서쪽 四十리 풍산(豊山) 시우동(時雨洞) 화전산등(花 | + | \_안동부(安東府) 서쪽 |
- | 관찰사황공(故觀察使黃公)의 분묘가 있으나 묘갈이 매몰되어 사적을 고증할 수없 | + | 관찰사(觀察使) 황공(黃公)의 분묘가 있으나 묘갈이 매몰되어 사적을 고증할 수 없어 |
- | 어 후손제씨가 민망하게 생각하던중 다시 비문을 써서 표석을 세우고자 논의한 후 | + | 후손 제씨가 민망하게 생각하던 중 다시 비문을 써서 표석을 세우고자 논의한 후 |
- | 환덕병기(煥德昞琪)를 내게 보내어 비문을 지어주기를 청하거늘 돌아보건대 내가 | + | 환덕(煥德) |
- | 늙고 병들어 감내하기 어렵고 또 공의 세대가 이미 五百여년이 지나 고징할 문헌이 | + | 늙고 병들어 감내하기 어렵고 또 공의 세대가 이미 |
- | 없으니 어찌 추상(推想)과 억칙으로 망령되게 스스로 허물을 부르리요.그러나 굳이 | + | 없으니 어찌 추상(推想)과 억측으로 망령되게 스스로 허물을 부르리요. 그러나 굳이 |
- | 사퇴할 수 없어 삼가 그 보첩에 기재된것에 의거하여 짓노라。 | + | 사퇴할 수 없어 삼가 그 보첩에 기재된 것에 의거하여 짓노라.\\ |
- | 살피건대 공의 휘는 천계(天繼)요 자는 성극(聖極)이며 잠재(潛齋)는 호라。황씨(黃 | + | |
- | 氏)의 선대에 학사휘락(學士諱洛)이라는 어른이 중국으로부터 동국에 오셔서 평해 | + | |
- | (平海)에 사셨으므로 관향을 평해로 삼고 시조가 되셨다. | + | |
- | 그 후 고려조에 와서 태자검교휘온인(太子檢校諱溫仁) 군기소윤휘우정(軍器少尹 | + | |
- | 諱佑精) 문하시중휘유증(門下侍中諱裕中)의 삼대를 지나서 삼중대광보극시충경공휘 | + | |
- | 용(三重大匡輔國諡忠敬公諱墉)이라는 분이 바로 공의 증조이시다. | + | |
- | 조의 휘는 태백(太白)이니 형조전서(刑曹典書)요 이조(李朝)에서 증우의정(贈右議 | + | |
- | 政)이요 고의 휘는 우(祐)이니 병조전서(兵曹典書)요 이조에서 증좌의정(贈左議政)이 | + | |
- | 라비위(妣位)는 실전되었으며 처음에 좌상공(左相公)이 사현자(四賢子)를 두셨는데 | + | |
- | 장(長)은 휘천록(諱天祿)이니 판도판서(版圖判書)요 이조에서 증영의정(贈領議政)이 | + | |
- | 요 차(次)는 휘천상(諱天祥)이니 문하시중(門下侍中)이요 三차는 휘천복(諱天福)이니 | + | |
- | 밀직부사(密直副使)이요 공이 그 四자로 공민왕조(恭愍王朝)에 등과하였으나 려조에 | + | \_살피건대 공의 휘는 천계(天繼)요 자는 성극(聖極)이며 잠재(潛齋)는 호라. |
+ | 황씨(黃氏)의 선대에 학사(學士) 휘(諱) 낙(洛)이라는 어른이 중국으로부터 동국에 오셔서 | ||
+ | 평해(平海)에 사셨으므로 관향을 평해로 삼고 시조가 되셨다.\\ | ||
+ | |||
+ | \_그 후 고려조에 와서 태자검교(太子檢校) 휘(諱) 온인(溫仁), | ||
+ | 우정(佑精), | ||
+ | 시(諡) 충경(忠敬) 휘(諱) 용(𤨭)이라는 분이 바로 공의 증조이시다.\\ | ||
+ | |||
+ | \_조의 휘는 태백(太白)이니 형조전서(刑曹典書)요 이조(李朝)에서 증(贈) | ||
+ | 우의정(右議政)이요, | ||
+ | 좌의정(左議政)이라. 비위(妣位)는 실전되었으며 처음에 좌상공(左相公)이 사현자(四賢子)를 두셨는데 | ||
+ | 장(長)은 휘(諱) 천록(天祿)이니 판도판서(版圖判書)요 이조에서 증(贈) 영의정(領議政)이요 | ||
+ | 차(次)는 휘(諱) 천상(天祥)이니 문하시중(門下侍中)이요 3(三)자는 휘(諱) 천복(天福)이니 | ||
+ | |||
+ | 밀직부사(密直副使)이요. 공이 그 4(四)자로 공민왕조(恭愍王朝)에 등과하였으나 려조에 | ||
국운이 다함으로 이태조(李太祖)를 도와 창업에 협찬한 공신으로 경기(京畿) 전라 | 국운이 다함으로 이태조(李太祖)를 도와 창업에 협찬한 공신으로 경기(京畿) 전라 | ||
- | (全羅) 경상(慶尙) 三도 관찰사(觀察使)의 중직(重職)에 등용(登用)되었으나 만년에 | + | (全羅) 경상(慶尙) |
- | 벼슬을 버리고 경기(京畿) 포천(抱川)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안동(安東) 풍산현(豊山 | + | 벼슬을 버리고 경기(京畿) 포천(抱川)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안동(安東) 풍산현(豊山縣)에 |
- | 縣)에 거지(居地)를 정하였다. | + | 거지(居地)를 정하였다.\\ |
- | 장하시도다. 때는 이조초창기(李朝草創期)라 성조(聖朝)의 기세는 흡사 용이 하늘 | + | |
- | 로 날아올라가는듯 하였고 국내의 많은 일대영현(一代英賢)들은 가진 재조(才操)를 | + | \_장하시도다. 때는 이조(李朝) |
- | 역량껏 뽐낼무렵인데 공이 그 틈에 참여하였음은 그 문무재덕(文武才德)이 겸비하 | + | 하늘로 날아올라 가는듯 하였고 국내의 많은 일대영현(一代英賢)들은 가진 재조(才操)를 |
- | 였음을 가히 우러러 생각할만 하도다. 당시 조정(朝廷)에서는 덕화(德化)로 국내민 | + | 역량껏 뽐낼 무렵인데 공이 그 틈에 참여하였음은 그 문무재덕(文武才德)이 겸비하였음을 |
- | 심을 수습하고 백성을 안돈시킴에 시급한 때이므로 특히 관찰사(觀察使)같은 요직 | + | 가히 우러러 생각할만 하도다. 당시 조정(朝廷)에서는 덕화(德化)로 국내민심을 |
- | (要職)은 문무겸전하고 또 인격과 덕망이 높은분이라야 하였을 터인데 공이 三차나 | + | 수습하고 백성을 안돈시킴에 시급한 때이므로 특히 관찰사(觀察使)같은 요직(要職)은 |
- | 발탁되어 세번 방백(方伯)의 인수(印綬)를 차게했으니 은위(恩威)가 병행되어 족히 | + | 문무겸전하고 또 인격과 덕망이 높은 분이라야 하였을 터인데 공이 |
- | 써 민심을 수습하였음을 넉넉히 우러러 짐작할 수 있다. | + | 발탁되어 세번 방백(方伯)의 인수(印綬)를 차게 했으니 은위(恩威)가 병행되어 족히 |
- | 그러나 후세에 홀로 한스러운 병화의 피해를 몹시 치뤄 사적(史蹟)이 없어지고 | + | 써 민심을 수습하였음을 넉넉히 우러러 짐작할 수 있다.\\ |
- | 전한것이 없으니 관직의 품계와 조정에 익찬(翼贊)한 공적이 고징할 길이 없음을 | + | |
- | 감스러운 일이라 하지않을 수 없었다.연이나 태산의 높음을 우러러보고 가히 | + | \_그러나 후세에 홀로 한스러운 병화의 피해를 몹시 치뤄 사적(史蹟)이 없어지고 |
- | 언덕의 높이를 헤아릴 수 있으며 또 창해의 큰것을 보고 작은 시내물의 흐르는 도 | + | 유전한 것이 없으니 관직의 품계와 조정에 익찬(翼贊)한 공적이 고징할 길이 없음을 |
+ |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이나 태산의 높음을 우러러보고 가히 | ||
+ | 언덕의 높이를 헤아릴 수 있으며 또 창해의 큰 것을 보고 작은 시내 물의 흐르는 도수를 | ||
+ |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공의 큰 덕의 저명한 것으로 소덕을 가히 추측할만하다.\\ | ||
- | 수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와같이 공의 큰 덕의 저명한 것으로 소덕을 가히 추측 | + | \_배(配)는 정부인(貞夫人) |
- | 할만하다.인보드 | + | 묘는 공의 분영(墳塋)과 같은 곳에 쌍분이다. |
- | 배(配)는 정부인연안이씨찬성사식(貞夫人延安李氏贊成事湜)의 | + | 공조판서(工曹判書)요 |
- | 분영(墳塋)과 같은곳에 쌍분이다. 一남을 두었으니 희량(希亮)이며 공조판서(工曹判 | + | 후로(厚老)는 |
- | 書)요 | + | 귀성(貴成)이 임진란(壬辰亂)에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정략장군(定略將軍)에 승관(陞官)하고 |
- | 老)는 | + | 그 제(弟) 한성(漢成)은 경학과 문장으로 |
- | 이 임진난(壬辰亂)에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정략장군(定略將軍)에 승관(陞官)하고 | + | \\ |
- | 그제(弟) 한성(漢成)은 경학과 문장으로 ㅡ세에 저명하였다.명曰 | + | 功存翊戴(공존익대) 왕업을 도운 공이 크다\\ |
- | 功存翊戴(공존익대) 왕업을 도운 공이 크다 | + | 化治藩臬(화치번얼) 치화(治化)는 삼도지방에 흡족하였네.\\ |
- | 化治藩臬(화치번얼) 치화(治化)는 삼도지방에 흡족하였네. | + | 於乎丕顯(어호비현) 장하도다 큰 덕업이여\\ |
- | 於乎丕顯(어호비현) 장하도다 큰 덕업이여 | + | 世臣偉烈(세신위열) 대대로 공훈이 위대하고 열열하였다.\\ |
- | 世臣偉烈(세신위열) 대대로 공훈이 위대하고 열열하였다. | + | 爰最其大(원최기대) 이에 대략을 간추려서\\ |
- | 爰最其大(원최기대) 이에 대략을 간추려서 | + | 恭銘于碣(공명우갈) 삼가 명하여 비에 새기노라.\\ |
- | 恭銘于碣(공명우갈) 삼가 명하여 비에 새기노라. | + | \\ |
- | 4 | + | \_\_영가(永嘉) 후인(後人) 권상규(權相圭) 근찬(謹撰) |
- | 永嘉後人權相圭謹撰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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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14.1749263777.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7 11:36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