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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14 [2025/06/07 11:36] – 만듦 ssio2c32-014 [2025/06/09 22:10]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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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헌대부삼도관찰사잠재공묘갈명(資憲大夫三道觀察使潛齋公墓碣銘)=== ===자헌대부삼도관찰사잠재공묘갈명(資憲大夫三道觀察使潛齋公墓碣銘)===
-<WRAP 37em justify><hidden \_한문 원문 보기>+<WRAP 37em justify>
 <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 <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
-자헌대부삼도관찰사잠재공묘갈명(資憲大夫三道觀察使潛齋公墓碣銘) +\_**자헌대부삼도관찰사잠재공묘갈명(資憲大夫三道觀察使潛齋公墓碣銘)**\\ 
-안동부(安東府) 서쪽 四十리 풍산(豊山) 시우동(時雨洞) 화전산등(花+\_안동부(安東府) 서쪽 40(四十)리 풍산(豊山) 시우동(時雨洞) 화전산등(花田山嶝)에 고(故)
  
-관찰사황공(觀察使黃公)의 분묘가 있으나 묘갈이 매몰되어 사적을 고증할 수없 +관찰사(觀察使) 황공(黃公)의 분묘가 있으나 묘갈이 매몰되어 사적을 고증할 수 없어  
-어 후손제씨가 민망하게 생각하던중 다시 비문을 써서 표석을 세우고자 논의한 후 +후손 제씨가 민망하게 생각하던 중 다시 비문을 써서 표석을 세우고자 논의한 후 
-환덕병기(煥德昞琪)를 내게 보내어 비문을 지어주기를 청하거늘 돌아보건대 내가 +환덕(煥德) 병기(昞琪)를 내게 보내어 비문을 지어주기를 청하거늘 돌아보건대 내가 
-늙고 병들어 감내하기 어렵고 또 공의 세대가 이미 五百여년이 지나 고징할 문헌이 +늙고 병들어 감내하기 어렵고 또 공의 세대가 이미 5백(五百)여년이 지나 고징할 문헌이 
-없으니 어찌 추상(推想)과 억으로 망령되게 스스로 허물을 부르리요.그러나 굳이 +없으니 어찌 추상(推想)과 억으로 망령되게 스스로 허물을 부르리요. 그러나 굳이 
-사퇴할 수 없어 삼가 그 보첩에 기재된것에 의거하여 짓노라。 +사퇴할 수 없어 삼가 그 보첩에 기재된 것에 의거하여 짓노라.\\
-살피건대 공의 휘는 천계(天繼)요 자는 성극(聖極)이며 잠재(潛齋)는 호라。황씨(黃 +
-氏)의 선대에 학사휘락(學士諱洛)이라는 어른이 중국으로부터 동국에 오셔서 평해 +
-(平海)에 사셨으므로 관향을 평해로 삼고 시조가 되셨다. +
-그 후 고려조에 와서 태자검교휘온인(太子檢校諱溫仁) 군기소윤휘우정(軍器少尹 +
-諱佑精) 문하시중휘유증(門下侍中諱裕中)의 삼대를 지나서 삼중대광보극시충경공휘 +
-용(三重大匡輔國諡忠敬公諱墉)이라는 분이 바로 공의 증조이시다. +
-조의 휘는 태백(太白)이니 형조전서(刑曹典書)요 이조(李朝)에서 증우의정(贈右議 +
-政)이요 고의 휘는 우(祐)이니 병조전서(兵曹典書)요 이조에서 증좌의정(贈左議政)이 +
-라비위(妣位)는 실전되었으며 처음에 좌상공(左相公)이 사현자(四賢子)를 두셨는데 +
-장(長)은 휘천록(諱天祿)이니 판도판서(版圖判書)요 이조에서 증영의정(贈領議政)이 +
-요 차(次)는 휘천상(諱天祥)이니 문하시중(門下侍中)이요 三차는 휘천복(諱天福)이니+
  
-밀직부사(密直副使)이요 공이 그 四자로 공민왕조(恭愍王朝)에 등과하였으나 려조에+\_살피건대 공의 휘는 천계(天繼)요 자는 성극(聖極)이며 잠재(潛齋)는 호라. 
 +황씨(黃氏)의 선대에 학사(學士) 휘(諱) 낙(洛)이라는 어른이 중국으로부터 동국에 오셔서  
 +평해(平海)에 사셨으므로 관향을 평해로 삼고 시조가 되셨다.\\ 
 + 
 +\_그 후 고려조에 와서 태자검교(太子檢校) 휘(諱) 온인(溫仁), 군기소윤(軍器少尹) 휘(諱)  
 +우정(佑精), 문하시중(門下侍中) 휘(諱) 유중(裕中)의 3대를 지나서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  
 +시(諡) 충경(忠敬) 휘(諱) 용(𤨭)이라는 분이 바로 공의 증조이시다.\\ 
 + 
 +\_조의 휘는 태백(太白)이니 형조전서(刑曹典書)요 이조(李朝)에서 증(贈)  
 +우의정(右議政)이요, 고의 휘는 우(祐)이니 병조전서(兵曹典書)요 이조에서 증(贈)  
 +좌의정(左議政)이라. 비위(妣位)는 실전되었으며 처음에 좌상공(左相公)이 사현자(四賢子)를 두셨는데 
 +장(長)은 휘(諱) 천록(天祿)이니 판도판서(版圖判書)요 이조에서 증(贈) 영의정(領議政)이요  
 +차(次)는 휘(諱) 천상(天祥)이니 문하시중(門下侍中)이요 3(三)자는 휘(諱) 천복(天福)이니 
 + 
 +밀직부사(密直副使)이요공이 그 4()자로 공민왕조(恭愍王朝)에 등과하였으나 려조에
 국운이 다함으로 이태조(李太祖)를 도와 창업에 협찬한 공신으로 경기(京畿) 전라 국운이 다함으로 이태조(李太祖)를 도와 창업에 협찬한 공신으로 경기(京畿) 전라
-(全羅) 경상(慶尙) 三도 관찰사(觀察使)의 중직(重職)에 등용(登用)되었으나 만년에 +(全羅) 경상(慶尙) 3()도 관찰사(觀察使)의 중직(重職)에 등용(登用)되었으나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경기(京畿) 포천(抱川)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안동(安東) 풍산현(豊山 +벼슬을 버리고 경기(京畿) 포천(抱川)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안동(安東) 풍산현(豊山縣)에  
-縣)에 거지(居地)를 정하였다. +거지(居地)를 정하였다.\\ 
-장하시도다. 때는 이조초창기(李朝草創期)라 성조(聖朝)의 기세는 흡사 용이 하늘 + 
-로 날아올라가는듯 하였고 국내의 많은 일대영현(一代英賢)들은 가진 재조(才操)를 +\_장하시도다. 때는 이조(李朝) 초창기(草創期)라 성조(聖朝)의 기세는 흡사 용이  
-역량껏 뽐낼무렵인데 공이 그 틈에 참여하였음은 그 문무재덕(文武才德)이 겸비하 +하늘로 날아올라 가는듯 하였고 국내의 많은 일대영현(一代英賢)들은 가진 재조(才操)를 
-였음을 가히 우러러 생각할만 하도다. 당시 조정(朝廷)에서는 덕화(德化)로 국내민 +역량껏 뽐낼 무렵인데 공이 그 틈에 참여하였음은 그 문무재덕(文武才德)이 겸비하였음을  
-심을 수습하고 백성을 안돈시킴에 시급한 때이므로 특히 관찰사(觀察使)같은 요직 +가히 우러러 생각할만 하도다. 당시 조정(朝廷)에서는 덕화(德化)로 국내민심을  
-(要職)은 문무겸전하고 또 인격과 덕망이 높은분이라야 하였을 터인데 공이 三차나 +수습하고 백성을 안돈시킴에 시급한 때이므로 특히 관찰사(觀察使)같은 요직(要職)은  
-발탁되어 세번 방백(方伯)의 인수(印綬)를 차게했으니 은위(恩威)가 병행되어 족히 +문무겸전하고 또 인격과 덕망이 높은 분이라야 하였을 터인데 공이 3()차나 
-써 민심을 수습하였음을 넉넉히 우러러 짐작할 수 있다. +발탁되어 세번 방백(方伯)의 인수(印綬)를 차게 했으니 은위(恩威)가 병행되어 족히 
-그러나 후세에 홀로 한스러운 병화의 피해를 몹시 치뤄 사적(史蹟)이 없어지고  +써 민심을 수습하였음을 넉넉히 우러러 짐작할 수 있다.\\ 
-전한것이 없으니 관직의 품계와 조정에 익찬(翼贊)한 공적이 고징할 길이 없음을  + 
-감스러운 일이라 하지않을 수 없었다.연이나 태산의 높음을 우러러보고 가히 은 +\_그러나 후세에 홀로 한스러운 병화의 피해를 몹시 치뤄 사적(史蹟)이 없어지고  
-언덕의 높이를 헤아릴 수 있으며 또 창해의 큰것을 보고 작은 시내물의 흐르는 도+전한 것이 없으니 관직의 품계와 조정에 익찬(翼贊)한 공적이 고징할 길이 없음을  
 +감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이나 태산의 높음을 우러러보고 가히 은 
 +언덕의 높이를 헤아릴 수 있으며 또 창해의 큰 것을 보고 작은 시내 물의 흐르는 도수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공의 큰 덕의 저명한 것으로 소덕을 가히 추측할만하다.\\
  
-수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와같이 공의 큰 덕의 저명한 것으로 소덕을 가히 추측 +\_배(配)는 정부인(貞夫人) 연안이씨(延安李氏) 찬성사(贊成事) 식(湜)의 (女)요  
-할만하다.인보드 +묘는 공의 분영(墳塋)과 같은 곳에 쌍분이다. 1()남을 두었으니 희량(希亮)이며  
-배(配)는 정부인연안이씨찬성사식(貞夫人延安李氏贊成事湜)의 소녀(女)요 묘는 공의 +공조판서(工曹判書)요 2(二)녀는 한성부윤(漢城判尹) 조익(趙翊)에게 출가하였다. 판서(判書)의 자  
-분영(墳塋)과 같은곳에 쌍분이다. 一남을 두었으니 희량(希亮)이며 공조판서(工曹判 +후로(厚老)는 사(錄事)요 증현손 이하는 번연하여 다 기하지 못하고 8(八)세손  
-書)요 녀는 한성부윤조익(漢城判尹趙翊)에게 출가하였다. 판서(判書)의 자 후로(厚 +귀성(貴成)이 임진(壬辰亂)에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정략장군(定略將軍)에 승관(陞官)하고 
-老)는 사(錄事)요 증현손 이하는 번연하여 다 기하지 못하고 세손 귀성(貴成) +그 제(弟) 한성(漢成)은 경학과 문장으로 일()세에 저명하였다. 명 왈()\\ 
-이 임진(壬辰亂)에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정략장군(定略將軍)에 승관(陞官)하고 +\\ 
-그제(弟) 한성(漢成)은 경학과 문장으로 ㅡ세에 저명하였다.명曰 +功存翊戴(공존익대) 왕업을 도운 공이 크다\\ 
-功存翊戴(공존익대) 왕업을 도운 공이 크다 +化治藩臬(화치번얼) 치화(治化)는 삼도지방에 흡족하였네.\\ 
-化治藩臬(화치번얼) 치화(治化)는 삼도지방에 흡족하였네. +於乎丕顯(어호비현) 장하도다 큰 덕업이여\\ 
-於乎丕顯(어호비현) 장하도다 큰 덕업이여 +世臣偉烈(세신위열) 대대로 공훈이 위대하고 열열하였다.\\ 
-世臣偉烈(세신위열) 대대로 공훈이 위대하고 열열하였다. +爰最其大(원최기대) 이에 대략을 간추려서\\ 
-爰最其大(원최기대) 이에 대략을 간추려서 +恭銘于碣(공명우갈) 삼가 명하여 비에 새기노라.\\ 
-恭銘于碣(공명우갈) 삼가 명하여 비에 새기노라. +\\ 
-4 +\_\_영가(永嘉) 후인(後人) 권상규(權相圭) 근찬(謹撰)
-永嘉後人權相圭謹撰+
 </typo> </typo>
 </WRAP> </WRAP>
c32-014.1749263777.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7 11:36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