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4-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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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4-021 [2026/07/28 09:50] – ssio2 | c4-021 [2026/07/28 09:57] (현재) – ssio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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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여기에서 麗韓 때부터 宦業과 文章이 이어왔던 우리 黃氏도 麗朝 때부터 譜牒이 있어 왔겠지만 子孫들이 散居하면서 歎惜하게도 繼代가 荒樸해지고 文籍이 無徵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龜岩傍祖 諱載重께서 李韓 肅宗癸未(一七〇三)에 京兆、春川、淸安등의 宗親등과 協議하여 乙酉譜(一七〇五)를 修譜하게 되었다. 그러나 頤齋先祖 諱胤錫께서는 英祖庚午(一七五〇)에 家傳舊牒과 先代의 遺稿、遺跡 외에 高麗史 龍飛御天歌등의 官邊書와 請家譜牒을 詳考하여 學士公 諱洛을 鼻祖로 하고 叅贊 平海君 諱淑卿을 始祖로 삼는 世系를 確定하였다. 이러한 先系의 考徵結果는 乙酉年(一七六五)에 春川의 有河宗丈에게 答信하면서 詳論한 理論을 參考하면 分明함을 알 수 있다.\\ | \_여기에서 麗韓 때부터 宦業과 文章이 이어왔던 우리 黃氏도 麗朝 때부터 譜牒이 있어 왔겠지만 子孫들이 散居하면서 歎惜하게도 繼代가 荒樸해지고 文籍이 無徵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龜岩傍祖 諱載重께서 李韓 肅宗癸未(一七〇三)에 京兆、春川、淸安등의 宗親등과 協議하여 乙酉譜(一七〇五)를 修譜하게 되었다. 그러나 頤齋先祖 諱胤錫께서는 英祖庚午(一七五〇)에 家傳舊牒과 先代의 遺稿、遺跡 외에 高麗史 龍飛御天歌등의 官邊書와 請家譜牒을 詳考하여 學士公 諱洛을 鼻祖로 하고 叅贊 平海君 諱淑卿을 始祖로 삼는 世系를 確定하였다. 이러한 先系의 考徵結果는 乙酉年(一七六五)에 春川의 有河宗丈에게 答信하면서 詳論한 理論을 參考하면 分明함을 알 수 있다.\\ | ||
| - | \_따라서 十六世紀 前半、春川에서 興城에 南下하여 卜居하기 시작한 從仕郎 諱守平의 從仕郞派 後裔들은 南中故族으로 學行을 이어오면서 丁酉譜(一八九七)와 甲申譜(一九四四)등을 修譜할 때 頤齋先祖께서 考定해 놓은 前揭 世系를 敬遵하여 왔다.\\ | + | \_따라서 十六世紀 前半、春川에서 興城에 南下하여 卜居하기 시작한 從仕郞 諱守平의 從仕郞派 後裔들은 南中故族으로 學行을 이어오면서 丁酉譜(一八九七)와 甲申譜(一九四四)등을 修譜할 때 頤齋先祖께서 考定해 놓은 前揭 世系를 敬遵하여 왔다.\\ |
| \_그런데 丙辰年(一九七六)에 平海宗親의 發의로 平海、豊基、春川、淸安、高敞 등지에 分居하고 있는 宗親들이 大同譜를 修纂하면서 始祖 平海君 諱淑卿을 罪悚스럽게도 春川派에서 주장하고 있는 參議公 諱致祖의 一諱라고 한 일이 있었다.\\ | \_그런데 丙辰年(一九七六)에 平海宗親의 發의로 平海、豊基、春川、淸安、高敞 등지에 分居하고 있는 宗親들이 大同譜를 修纂하면서 始祖 平海君 諱淑卿을 罪悚스럽게도 春川派에서 주장하고 있는 參議公 諱致祖의 一諱라고 한 일이 있었다.\\ | ||
c4-021.1785199839.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6/07/28 09:50 저자 ssio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