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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9-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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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9-001 [2025/05/21 12:51] ssio2c9-001 [2025/05/23 20:39] (현재) ssio2
줄 8: 줄 8:
 \_공의 성은 황씨요 휘(諱)는 서(瑞)니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세자를 위하여 세 번이나 원나라에 갔다 와서 익대공훈(翼戴功勳)으로 벼슬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금어대(金魚袋) 첨의평리(僉議評理)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고 시호를 문절(文節)이라 하였으니 족보에 기록되어 있고 또 고려 『문헌통고(文獻通考)』에 찾아보면 첨의(僉議) 주열(朱悅)과 좌정승(左政承) 한종유(韓宗愈)와 지첨의(知僉議) 황서(黃瑞)와 전서(典書) 양사도(梁思道)와 시중 차원부 등 5인이 동시에 문절(文節)로 시호를 받았다 하니 충분한 증거이고 충(忠)자가 문(文)자로 바뀌었다 하나 위선(衛先)의 도(道)에 무방하다 하겠다. \\ \_공의 성은 황씨요 휘(諱)는 서(瑞)니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세자를 위하여 세 번이나 원나라에 갔다 와서 익대공훈(翼戴功勳)으로 벼슬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금어대(金魚袋) 첨의평리(僉議評理)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고 시호를 문절(文節)이라 하였으니 족보에 기록되어 있고 또 고려 『문헌통고(文獻通考)』에 찾아보면 첨의(僉議) 주열(朱悅)과 좌정승(左政承) 한종유(韓宗愈)와 지첨의(知僉議) 황서(黃瑞)와 전서(典書) 양사도(梁思道)와 시중 차원부 등 5인이 동시에 문절(文節)로 시호를 받았다 하니 충분한 증거이고 충(忠)자가 문(文)자로 바뀌었다 하나 위선(衛先)의 도(道)에 무방하다 하겠다. \\
  
-\_시조의 휘는 낙(洛)이니 한(漢)나라 성제(成帝) 건시(建始) 3년 신묘에 출생하여 수화(綏和) 계축에 대장군 강하후(江夏侯)로 봉함을 받았는데 광무(光武) 4년 무자에 갑고의 아들 휘 온인(溫仁)은 금오장군(金吾將軍) 태자검교(太子檢校)를 하였으니 이분이 바로 평해의 선조시고 1세를 지나 휘 유중(裕中)은 문하시중으로 삼남을 두셨으니 백씨의 휘는 진(璡)이니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이요 계씨의 휘는 용()이니 숭록대부(崇祿大夫)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으로 시호는 충경(忠敬)이요 중씨(仲氏)는 곧 공이시다. \\+\_시조의 휘는 낙(洛)이니 한(漢)나라 성제(成帝) 건시(建始) 3년 신묘에 출생하여 수화(綏和) 계축에 대장군 강하후(江夏侯)로 봉함을 받았는데 광무(光武) 4년 무자에 갑고의 아들 휘 온인(溫仁)은 금오장군(金吾將軍) 태자검교(太子檢校)를 하였으니 이분이 바로 평해의 선조시고 1세를 지나 휘 유중(裕中)은 문하시중으로 삼남을 두셨으니 백씨의 휘는 진(璡)이니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이요 계씨의 휘는 용(𤨭)이니 숭록대부(崇祿大夫)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으로 시호는 충경(忠敬)이요 중씨(仲氏)는 곧 공이시다. \\
  
 \_공의 일가에 이와 같이 벼슬이 혁혁한데도 세상에 많이 나타나지 못한 것은 자손된 자의 한이 아닐 수 없다. 자고로 국가의 성쇠도 무상하고 사람의 흥찬(興贊) 또한 때가 있는 법. 세월이 오래되고 증거도 인멸되어 있는데 자손들이 사적(史蹟)을 고증하여 밝혀서 후손에게 전하여 알게 한다는 것은 간단하고 쉬운 일은 아니다. \\ \_공의 일가에 이와 같이 벼슬이 혁혁한데도 세상에 많이 나타나지 못한 것은 자손된 자의 한이 아닐 수 없다. 자고로 국가의 성쇠도 무상하고 사람의 흥찬(興贊) 또한 때가 있는 법. 세월이 오래되고 증거도 인멸되어 있는데 자손들이 사적(史蹟)을 고증하여 밝혀서 후손에게 전하여 알게 한다는 것은 간단하고 쉬운 일은 아니다. \\
줄 14: 줄 14:
 \_그러나 보본(報本)하고자 하는 정(情)과 우모(寓慕)하고 싶은 성(誠)이 없을 수 없기에 원근의 자손들이 뜻을 모아 공의 신도비(神道碑)를 세우기로 논의를 정하고 세명(世明)과 보(甫)가 행장을 가지고 나에게 비명을 청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선조의 관작(官爵)과 시호(諡號) 등이 족보와 고려사(高麗史)에 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선현들의 손에 의해 기록된 당시의 사행(事行)과 휘적(徽蹟) 등을 한 조각도 고증할 자료가 없으니 전하는 말만 가지고 만족할 수 없는 형편이고 보면 선생의 고명하신 붓으로 상(上)과 하(下)를 참고하고 여러 기록들을 증거로 보완하여 후세 자손에게 전할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라 내가 정신도 희미하고 병든 몸으로 감히 부탁을 받을 수 없어 재삼 사양하였으나 마지못하여 가지고 온 행장을 살펴보니 공이 충렬(忠烈), 충혜(忠惠), 충숙(忠肅), 충목(忠穆) 4조(朝)에 벼슬하면서 왕명으로 원(元)나라에 서른한 번이나 다녀왔기에 그 공으로 익대(翼戴)의 공훈(功勳)을 받았으니 그 충군의 성덕(盛德)과 가언선행(嘉言善行) 등이 만분의 일이라도 얻어질 것 같고 또 정려나 신도비를 세울 수 있는 광영이 될 것이다. \\ \_그러나 보본(報本)하고자 하는 정(情)과 우모(寓慕)하고 싶은 성(誠)이 없을 수 없기에 원근의 자손들이 뜻을 모아 공의 신도비(神道碑)를 세우기로 논의를 정하고 세명(世明)과 보(甫)가 행장을 가지고 나에게 비명을 청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선조의 관작(官爵)과 시호(諡號) 등이 족보와 고려사(高麗史)에 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선현들의 손에 의해 기록된 당시의 사행(事行)과 휘적(徽蹟) 등을 한 조각도 고증할 자료가 없으니 전하는 말만 가지고 만족할 수 없는 형편이고 보면 선생의 고명하신 붓으로 상(上)과 하(下)를 참고하고 여러 기록들을 증거로 보완하여 후세 자손에게 전할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라 내가 정신도 희미하고 병든 몸으로 감히 부탁을 받을 수 없어 재삼 사양하였으나 마지못하여 가지고 온 행장을 살펴보니 공이 충렬(忠烈), 충혜(忠惠), 충숙(忠肅), 충목(忠穆) 4조(朝)에 벼슬하면서 왕명으로 원(元)나라에 서른한 번이나 다녀왔기에 그 공으로 익대(翼戴)의 공훈(功勳)을 받았으니 그 충군의 성덕(盛德)과 가언선행(嘉言善行) 등이 만분의 일이라도 얻어질 것 같고 또 정려나 신도비를 세울 수 있는 광영이 될 것이다. \\
  
-\_조의 휘는 우정(佑精)이니 군기소윤(軍器少尹)이요, 고의 휘는 유중(裕中)이니 문하시중(門下侍中)이요, 자는 종량(宗亮)이니 호부전서(戶部典書)요, 손은 세영(世英)이니 진사로 예빈시동정(禮賓寺同正)이요, 증손은 둘이니 용기(龍起)는 예빈장(禮賓將)이요, 운기(雲起)는 내자소윤(內資少尹)이요, 용기에게 세 아들이 있으니 길보(吉甫)는 병사(兵使)요, 계보(季甫)는 보승낭장(保勝郞將)이요, 유보(有甫)는 중랑장(中郞將)이요, 길보의 자는 득재(得載)니 함풍(咸豊)현감이요, 득중(得重)이니 호조좌랑(戶曹佐郞)이요, 유보의 자는 후(厚)니 예빈판관(禮賓判官)이요, 득재의 자는 옥숭(玉崇)이니 한성판윤(漢城判尹)이요, 후의 자는 옥산(玉山)이니 예빈참봉(禮賓奉)이요, 옥강(玉崗)이니 삼우당습독(三友堂習讀)이요, 옥숭의 자는 보곤(輔坤)이니 생원이요, 보곤의 자는 우(瑀)니 성주(星州)목사요, 찬(瓚)이니 안릉참봉(安陵奉)이요, 연(璉)이니 훈도요, 우의 자는 응하(應河)요, 응청(應淸)이니 진사로 진보(眞寶)현감이니 명계서원(明溪書院)에 봉향하고 응징(應澄)이니 증통훈대부장예원판결사(贈通訓大夫掌隸院判決事)요, 응청의 자는 거일(居一)이니 증공조참의(贈工曹議)요, 유일(有一)이니 성균관정자(成均館正子)요, 경일(慶一)이요, 천일(千一)이요, 억일(億一)이요, 응징의 자는 여일(汝一)이니 문과로 승지(承旨) 공조참의(工曹議) 증이조참판(贈吏曹判)이요, 찬의 자는 득시(得時)요, 득룡(得龍)이요 득원(得元)이요, 연의 자는 응쇄(應碎)요, 응정(應挺)이요, 응탁(應擢)이요, 득시의 자는 영복(榮福)이요, 희복(希福)이요, 득룡의 자는 춘우(春雨)요, 득원의 자는 복수요, 응쇄의 자는 춘일(春一)이요, 응탁의 자는 도일(道一)이요, 승일(承一)이요, 득중의 자는 옥견(玉堅)이요, 옥견의 자는 세복(世福)이요 세복의 자는 영(瑛)이요, 영의 자는 맹춘(孟春)이요, 중춘(仲春)이요, 계춘(季春)이니 원주(原州)판관이요, 자는 하수(河壽)니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이요, 옥산의 자는 인석(麟碩)이요, 구석(龜碩)이요, 계석(季碩)이요, 인석의 자는 한좌(漢佐)니 진사요, 한필(漢弼)이요, 한우(漢佑)요, 한창(漢昌)이요, 구석의 자는 한보(漢輔)요, 계석의 자는 한침이요, 한좌(漢佐)의 자는 세원(世元)이니 문과진사(文科進士)요, 준(浚)이니 자헌대부(資憲大夫) 의금부사(義禁府事)요, 한필의 자는 세환(世還)이요, 한우의 자는 응종(應悰)이요 한창의 자는 응만(應萬)이니 비안(比安)현감이요, 한보의 자는 응경(應敬)이요, 한침의 자는 준(俊)이요, 옥강의 자는 영(英)이니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예천군수(行醴泉郡守)요, 자는 혁(革)이니 증가선대부(贈嘉善大夫) 행홍천현령(行洪川縣令)이요, 자는 중추(仲秋)요, 계추(季秋)요, 세원의 자는 민전(敏全)이니 선무랑(宣務郞)이요, 준의 자는 삼계(三繼)니 통정대부(通政大夫) 원주목사(原州牧使)요, 중숙(重淑)이니 통덕랑(通德郞)이요, 세환의 자는 승성(承成)이니 예빈(禮賓)이요, 응종의 자는 모일(模一)이요, 응만의 자는 순일(順一)이요, 응경(應儆)의 자는 정일(廷一)이요, 중추의 자는 오견(五堅)이요, 계추의 자는 천석(天錫)이다. \\+\_조의 휘는 우정(佑精)이니 군기소윤(軍器少尹)이요, 고의 휘는 유중(裕中)이니 문하시중(門下侍中)이요, 자는 종량(宗亮)이니 호부전서(戶部典書)요, 손은 세영(世英)이니 진사로 예빈시동정(禮賓寺同正)이요, 증손은 둘이니 용기(龍起)는 예빈장(禮賓將)이요, 운기(雲起)는 내자소윤(內資少尹)이요, 용기에게 세 아들이 있으니 길보(吉甫)는 병사(兵使)요, 계보(季甫)는 보승낭장(保勝郞將)이요, 유보(有甫)는 중랑장(中郞將)이요, 길보의 자는 득재(得載)니 함풍(咸豊)현감이요, 득중(得重)이니 호조좌랑(戶曹佐郞)이요, 유보의 자는 후(厚)니 예빈판관(禮賓判官)이요, 득재의 자는 옥숭(玉崇)이니 한성판윤(漢城判尹)이요, 후의 자는 옥산(玉山)이니 예빈참봉(禮賓奉)이요, 옥강(玉崗)이니 삼우당습독(三友堂習讀)이요, 옥숭의 자는 보곤(輔坤)이니 생원이요, 보곤의 자는 우(瑀)니 성주(星州)목사요, 찬(瓚)이니 안릉참봉(安陵奉)이요, 연(璉)이니 훈도요, 우의 자는 응하(應河)요, 응청(應淸)이니 진사로 진보(眞寶)현감이니 명계서원(明溪書院)에 봉향하고 응징(應澄)이니 증통훈대부장예원판결사(贈通訓大夫掌隸院判決事)요, 응청의 자는 거일(居一)이니 증공조참의(贈工曹議)요, 유일(有一)이니 성균관정자(成均館正子)요, 경일(慶一)이요, 천일(千一)이요, 억일(億一)이요, 응징의 자는 여일(汝一)이니 문과로 승지(承旨) 공조참의(工曹議) 증이조참판(贈吏曹判)이요, 찬의 자는 득시(得時)요, 득룡(得龍)이요 득원(得元)이요, 연의 자는 응쇄(應碎)요, 응정(應挺)이요, 응탁(應擢)이요, 득시의 자는 영복(榮福)이요, 희복(希福)이요, 득룡의 자는 춘우(春雨)요, 득원의 자는 복수요, 응쇄의 자는 춘일(春一)이요, 응탁의 자는 도일(道一)이요, 승일(承一)이요, 득중의 자는 옥견(玉堅)이요, 옥견의 자는 세복(世福)이요 세복의 자는 영(瑛)이요, 영의 자는 맹춘(孟春)이요, 중춘(仲春)이요, 계춘(季春)이니 원주(原州)판관이요, 자는 하수(河壽)니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이요, 옥산의 자는 인석(麟碩)이요, 구석(龜碩)이요, 계석(季碩)이요, 인석의 자는 한좌(漢佐)니 진사요, 한필(漢弼)이요, 한우(漢佑)요, 한창(漢昌)이요, 구석의 자는 한보(漢輔)요, 계석의 자는 한침이요, 한좌(漢佐)의 자는 세원(世元)이니 문과진사(文科進士)요, 준(浚)이니 자헌대부(資憲大夫) 의금부사(義禁府事)요, 한필의 자는 세환(世還)이요, 한우의 자는 응종(應悰)이요 한창의 자는 응만(應萬)이니 비안(比安)현감이요, 한보의 자는 응경(應敬)이요, 한침의 자는 준(俊)이요, 옥강의 자는 영(英)이니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예천군수(行醴泉郡守)요, 자는 혁(革)이니 증가선대부(贈嘉善大夫) 행홍천현령(行洪川縣令)이요, 자는 중추(仲秋)요, 계추(季秋)요, 세원의 자는 민전(敏全)이니 선무랑(宣務郞)이요, 준의 자는 삼계(三繼)니 통정대부(通政大夫) 원주목사(原州牧使)요, 중숙(重淑)이니 통덕랑(通德郞)이요, 세환의 자는 승성(承成)이니 예빈(禮賓)이요, 응종의 자는 모일(模一)이요, 응만의 자는 순일(順一)이요, 응경(應儆)의 자는 정일(廷一)이요, 중추의 자는 오견(五堅)이요, 계추의 자는 천석(天錫)이다. \\
  
 \_아! 한 집안에 이렇게 많은 벼슬이 있었으니 전광찬후(前光贊後)하는 것은 이치가 그렇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자손이 더욱 번성한데 우모(寓慕)할 곳이 없다는 것은 공을 위하여 미안하고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23세 사손(嗣孫)인 재우(載宇)가 나를 찾아 와 명(銘)을 청하니 후생된 자 어찌 감히 사양만 하리요. 가지고 온 행장을 살펴서 위와 같이 기술하고 이어서 명을 하니 명왈(銘曰) \\ \_아! 한 집안에 이렇게 많은 벼슬이 있었으니 전광찬후(前光贊後)하는 것은 이치가 그렇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자손이 더욱 번성한데 우모(寓慕)할 곳이 없다는 것은 공을 위하여 미안하고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23세 사손(嗣孫)인 재우(載宇)가 나를 찾아 와 명(銘)을 청하니 후생된 자 어찌 감히 사양만 하리요. 가지고 온 행장을 살펴서 위와 같이 기술하고 이어서 명을 하니 명왈(銘曰) \\
c9-001.1747799468.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1 12:51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