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9-025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 양쪽 이전 판이전 판다음 판 | 이전 판 | ||
| c9-025 [2026/09/22 10:19] – ssio2 | c9-025 [2026/09/23 20:59] (현재) – ssio2 | ||
|---|---|---|---|
| 줄 1: | 줄 1: | ||
| ===가은공 황하흠 행장(稼隱公 黃夏欽 行狀)=== | ===가은공 황하흠 행장(稼隱公 黃夏欽 行狀)=== | ||
| - | < | + | < |
| <hidden \_한문 원문 보기> | <hidden \_한문 원문 보기> | ||
| - | <ff Batang, AppleMyungjo, | + | <ff Batang, AppleMyungjo, |
| <typo fs:1.2em; lh: | <typo fs:1.2em; lh: | ||
| **稼隱黃公行狀**\\ | **稼隱黃公行狀**\\ | ||
| - | 黃氏之貫平海出身自新羅謹學士洛其鼻祖也 本朝有諱希碩以開國功封府院君諡襄武自是珪笏相承中世諱德弼號詠而始居靑鳧生諱元兆號羞菴於公五世以上也高祖曰彩文贈寺正曾祖曰昌大贈參贊祖曰喜鍾贈戶判考曰載坤壽陞中樞妣恩津宋氏秉燮女 哲宗壬戌三月某甲生公于靑雲里第諱應錫字孝若兄弟二人公居秀氣稟淳朴才性寬厚甫受學于萬隱伯公而粗知義方云篤孝父母侍側不離維悅親義爲日用事而日復一日少不解弛和愉之色恍然形於面柔溫之聲翕然發於言語莫非天出而自然也 課農幹務而備供甘而用天之道因地之利溢愼節成就養左右有隱無方臾水而漁費爲度閣之需臾山而樵炊給堂室之溫時累而日蓄月貯而歲積晨昏之奉朝夕之具未嘗忘于己而察諸身少無矯揉造爲之狀言雖分處幷室食不能先於口衣不得先於身自家機杼之出田園之物鎬釜之味一不敢自私而隣比之饋親戚之幣城市之珍必獻其親而藏之待乏自由見信於人而與其兄弟相處一被連業無宿怨而無僞嘉有事則必問於謀成有味則必同於共餐始終無違一於孝悌 聞其古今賢孝子弟嘉言善行則記之以不忘踐之有造言非孝悌則不口行非孝弟則不趍緖其本然之天而覺其良知行其良能物物平繩事事緖度三百閭閻十百童冠咸曰孝子稱言公年〇數十而歲値壬辰某丁內艱哀毁過半踰月求山安厝未定爲請地師曰吉地乃積善人所得而如我喪人則徒爲母氏體魄之便安處取己云云其時所與地師感其言激其誠不得任諸意決之踏山日久誠力至勤山日丁午凶鳥弔其喪子而告吉啞啞而去地師怪其鳥而親其翔下處則可謂地秘之穴瞠然而揖日余多點穴來始有見此云云天必使斯人身在凶疾之中而鑒其誠神及處以示其明徵乎及其襄禮之日役塋等輩弔喪賓明無不悅服而願表其情實于時大人公在其位而止之曰夫烏之啼樂如孝非常何指此子所以乎盛論直爲我而亦誤吾兒〇抑亦家庭之規必由自來矣聞世稱黃處士㶅晩翠翁公之傍先也〇彼青中有黃豈非斯翁之德之始也哉 免闋三年後事其大人公尤致服勤至死不懈口有三問之節而曰安則喜動於面若曰否則憂懣於己夜以禱天晝以祈山請身願代嘗糞自試誠必復其常而止之此乃人子之當爲而世級日降民鮮久矣其能强勉而能之乎 六年丁酉某丁外艱其前日親病差有減勢而公方釋慮擬以出外之意放于洞門則庭狗猝然吠走而報凶天不使斯人己存平易之間而奈其精力逼處以示其閔極乎免經歛襄後父兄諸親願成而方說呈官之議公泫然環願曰前喪之時吾大人之說有若聽信則今此大人之喪又發此論如爲吾而反僖吾親〇自處之道亦由所受也 | + | <wrap hanmun> |
| - | + | 黃氏之貫平海出自新羅漢學士洛其鼻祖也至 本朝有諱希碩以 | |
| - | 甲戌秀葽節完山柳東夔 謹書 | + | 開國功封府院君 諡襄武自是珪笏相承中世諱德弼號詠而始居靑 |
| + | 鳧生諱元兆號羞菴於公五世以上也高祖曰彩文贈寺正曾祖曰昌 | ||
| + | 大 贈參贊祖曰喜鍾 贈戶判考曰載坤壽陞中樞妣恩津宋氏秉燮 | ||
| + | 女 哲宗壬戌三月某甲生公于靑雲里第諱應錫字孝若兄弟二人公 | ||
| + | 居季氣稟淳朴才性寬厚甫受學于萬隱伯公而粗知義方云篤孝父母 | ||
| + | 侍側不離怡悅親意爲日用事而日復一日少不懈弛和愉之色恍然形於面 | ||
| + | 柔溫之聲翕然發書言語莫非天出而自然也課農幹務而備供甘而用天之道因 | ||
| + | 地之利謹愼節制就養左右有隱無方或水而漁費爲庋閣之需或山而樵炊 | ||
| + | 給堂室之溫時累而日蓄月貯而歲積晨昏之奉朝夕之具未嘗忘于心而察諸 | ||
| + | 身少無矯揉造爲之狀焉雖分處異室食不能先於口衣不得先於身自家 | ||
| + | 機杼之出田園之物鍋釜之味一不敢自私而隣比之饋親戚之幣城市之珍必獻其親 | ||
| + | 而藏之待乏自由見信於人而與其兄弟相處一被連業無宿怨而無僞喜有 | ||
| + | 事則必問於謀成有味則必同於共餐始終無違一於孝悌聞其古今賢 | ||
| + | 孝子弟嘉言善行則記之以不忘踐之以有造言非孝悌則不口行非孝弟則 | ||
| + | 不趨循其本然之天而覺其良知行其良能物々平繩事々循度三百閭閻十百 | ||
| + | 童冠咸曰孝子稱焉公年纔數十而歲値壬辰某甲丁內艱哀毁過制踰月 | ||
| + | 求山安厝未定爲請地師曰吉地乃積善人所得而如我喪人則徒爲母氏體 | ||
| + | 魄之便安處取己云々其時所與地師感其言激其誠不得任諸意決之踏 | ||
| + | 山日久誠力至勤山日正午凶鳥弔其喪子而告吉啞々而去師怪其鳥而親其翔 | ||
| + | 下處則可謂地秘之穴瞠然而揖曰余多點穴來始有見此云天必使斯人身在凶疾 | ||
| + | 之中而鑒其誠神及處以示其明徵乎及其襄樹之日塋役等輩遠外賓明無不 | ||
| + | 悅服而欲表其情實于時大人公在其位而止之曰夫烏之啼集如或非常何指此 | ||
| + | 子所以乎盛論直爲我而亦誤吾兒爾抑亦家庭之規必由自來也夫世稱黃處 | ||
| + | 士㶅晩翠翁公之傍先也噫彼靑中有黃豈非斯翁之德之始也歟旣闋三年後 | ||
| + | 事其大人公尤致服勤至死不懈日有三問之節而曰安則喜動於面若曰否則憂懣 | ||
| + | 於心夜以禱天晝以祈山請身欲代嘗糞自試誠必復其常而止之此乃人子之當 | ||
| + | 爲而世級日降民鮮久矣其能强勉而能之乎六年丁酉某甲丁外艱其前日親病差 | ||
| + | 有減勢而公方釋慮擬以出外之意放于洞門則庭狗卒然吠走而報凶天不使斯人 | ||
| + | 心存平易之間而察其情力逼處以示其閔極乎旣經歛襄後父兄諸親欣感而方說 | ||
| + | 呈官之議公泫然環顧曰前喪之時吾大人之說有若聽信則今此大人之喪又發此論如 | ||
| + | 爲吾而反背吾親爾自處之道亦由所受也夫述其家狀者萬隱公公之伯康也吁此 | ||
| + | 有時兄有時弟豈非公家之法之刱也歟其後禮制無憾而已畢公自身專力於耕稼 | ||
| + | 而隱跡於雲山之中故而稼隱爲號也庚戌三月某甲以疾終于居第享四十九葬于 | ||
| + | 南柯村細谷壬丙之原配坡平尹氏通政光宗女合祔子悳潤道潤女林永洛林在賢 | ||
| + | 悳潤四男一女觀模復模艮模恒模女幼道潤三男東模西模南模餘幼不錄嗚呼公 | ||
| + | 以寬朴之姿良知之能自成乎百行之源而有始有終一於孝而以至動天格物所以見 | ||
| + | 於日用之間者無或出於儒家之模範夫豈無所本而能如是哉公沒後三十餘載 | ||
| + | 而家狀褒彰稧帖序墓碣銘等券數年內編成於是乎忠厚之德著於鄕仁孝之 | ||
| + | 政施於家上有壽躋西樞恩榮溢於泉壤下及慶流後昆蘭玉滿於庭砌則天之 | ||
| + | 所以報施善人是耶曰公之長子悳潤甫以感慕之誠屢請余敍次之役辭之不得乃按 | ||
| + | 据遺事而第錄如右以塞孝子之請\\ | ||
| + | </ | ||
| + | 鮮曆甲戌秀葽節完山柳東夔謹書 | ||
| </ | </ | ||
| </ff> | </ff> | ||
| 줄 38: | 줄 80: | ||
| 하늘이 내린 군자라 아니하지 못하리라. \\ | 하늘이 내린 군자라 아니하지 못하리라. \\ | ||
| \\ | \\ | ||
| - | 과농(課農)을 하고 여가가 있으면 부모에게 드릴 음식을 준비하고 | + | \_과농(課農)을 하고 여가가 있으면 부모에게 드릴 음식을 준비하고 |
| 하늘의 이치를 따라 땅으로 인한 이 일의 비결을 성취하여 좌우에게 | 하늘의 이치를 따라 땅으로 인한 이 일의 비결을 성취하여 좌우에게 | ||
| 저축은 있으되 낭비는 없음을 가르쳤다. | 저축은 있으되 낭비는 없음을 가르쳤다. | ||
| 줄 56: | 줄 98: | ||
| 같은 반찬을 같이 먹고 시종 한 번도 효도하고 공경함을 어긴 바가 없었다.\\ | 같은 반찬을 같이 먹고 시종 한 번도 효도하고 공경함을 어긴 바가 없었다.\\ | ||
| \\ | \\ | ||
| - | 그 옛적이나 지금이나 어진 자와 효자제와 가언과 선행을 들은즉 | + | \_그 옛적이나 지금이나 어진 자와 효자제와 가언과 선행을 들은즉 |
| 기록함은 지나온 자취를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데 말로 지음이 있음이라. | 기록함은 지나온 자취를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데 말로 지음이 있음이라. | ||
| 효제(孝悌)가 아니면 입으로 행하지 말 것이며, 효제가 아니면 | 효제(孝悌)가 아니면 입으로 행하지 말 것이며, 효제가 아니면 | ||
| 줄 64: | 줄 106: | ||
| 수 천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말하기를 효자라 칭할 것이로다. \\ | 수 천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말하기를 효자라 칭할 것이로다. \\ | ||
| \\ | \\ | ||
| - | 공의 나이 겨우 수 십세 때 임진년(壬辰年)(( 1892년이다. 공이 31세 때이다.))에 | + | \_공의 나이 겨우 수 십세 때 임진년(壬辰年)(( 1892년이다. 공이 31세 때이다.))에 |
| 모부인(어머니) 상을 당하여 달이 넘도록 산지(장지)를 구하였으나 | 모부인(어머니) 상을 당하여 달이 넘도록 산지(장지)를 구하였으나 | ||
| 모실 자리를 정하지 못하였다. 지사(地師 : 풍수)에 청해 가로되 | 모실 자리를 정하지 못하였다. 지사(地師 : 풍수)에 청해 가로되 | ||
| 줄 101: | 줄 143: | ||
| 어찌 이 옹(翁)의 덕의 비롯함이 아니랴. \\ | 어찌 이 옹(翁)의 덕의 비롯함이 아니랴. \\ | ||
| \\ | \\ | ||
| - | 상을 면한 후 3년 후 그 대인공(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더욱 슬픔을 참지 못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어도 쉬지 아니하였다. 입으로 세 번 묻는 삼문의 절차가 있으니 가로되 편안한 즉 기쁨을 얼굴에 나타내고 그렇지 아니하면 근심을 몸으로 번민하여 밤에는 하늘에 빌고 낮에는 산에 빌어 내몸이 아픔을 대신하여 달라고 청하고 대소변을 치우는데 정성을 다했으며 반드시 그 평상시와 같이 깨끗이 하는데 정성을 다하는 것이 사람의 자식의 당연한 도리이나 세덕이 날로 퇴폐해서 많은 사람 중에 이같은 사람은 흔하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도다. 그 능히 힘쓰고 애쓰는 것이 거룩하지 아니하랴. | + | \_상을 면한 후 3년 후 그 대인공(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
| + | 더욱 슬픔을 참지 못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어도 쉬지 아니하였다. | ||
| + | 입으로 세 번 묻는 삼문의 절차가 있으니 가로되 편안한 즉 | ||
| + | 기쁨을 얼굴에 나타내고 그렇지 아니하면 근심을 몸으로 번민하여 | ||
| + | 밤에는 하늘에 빌고 낮에는 산에 빌어 내몸이 아픔을 대신하여 | ||
| + | 달라고 청하고 대소변을 치우는데 정성을 다했으며 반드시 | ||
| + | 그 평상시와 같이 깨끗이 하는데 정성을 다하는 것이 사람의 자식의 | ||
| + | 당연한 도리이나 세덕이 날로 퇴폐해서 많은 사람 중에 이같은 사람은 | ||
| + | 흔하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도다. 그 능히 힘쓰고 애쓰는 것이 거룩하지 아니하랴.\\ | ||
| + | \\ | ||
| + | \_그 후 6년 정유(丁酉)(( 1837년이다. 공이 36세 때이다.))에 | ||
| + |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다. 그 전일 어버이의 병의 차도가 조금 | ||
| + | 좋아지는 것 같아서 공이 쌀을 씻으러 동문 밖에 이르렀을 때 | ||
| + | 집의 개가 갑자기 짖으면서 흉보를 전하였고 하늘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 ||
| + | 이미 평이지간(平易之間)에 있지 못하시니 어찌 그 정력이 다한 처지라 | ||
| + | 그 민극(閔極)함을 보리요. 대렴을 마친 후 부형들과 모든 친척들이 | ||
| + | 성복을 이룬 후 방향으로 관아에 올릴 의론을 하므로 공이 흔연히 돌아보고 | ||
| + | 하는 말이 전상(前喪)의 때는 나의 대인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는데 | ||
| + | 이제 또 대인의 상에 또 이 의론을 발설함은 나를 위함이며 | ||
| + | 나의 어버이도 기뻐하지 않으려니 옛 법도를 또한 이어 받으리라. \\ | ||
| + | \\ | ||
| + | \_가장(家狀)을 지은 자 만은(萬隱)공은 공의 백강(큰아버지)이다. | ||
| + | 아아 슬프도다. 이에 형이 있고 이에 아우가 있으니 | ||
| + | 어찌 공의 집의 법도의 창작이 아니리요. 그후 예성(禮成)을 | ||
| + | 유감없이 마치고 공 자신이 농사에 힘을 다하고 운산(雲山)의 | ||
| + | 속에 자취를 감춘 고로 가은(稼隱)이라 호를 하였다. \\ | ||
| + | \\ | ||
| + | \_경술(庚戌)(( 1910년이다.)) | ||
| + | | ||
| + | 남아촌 세곡 임향원에 장사지내니 배 파평윤씨 통정대부(通政大夫) | ||
| + | 광종의 따님과 합봉을 했다. | ||
| + | 아들은 덕윤(悳潤)과 도윤(道潤)이며, | ||
| + | 덕윤에 4남 1녀가 있으니 관모, 복모, 간모, 항모, 딸은 어리다. | ||
| + | 도윤에 3남이 있으니 동모, 서모, 남모이며, | ||
| + | \\ | ||
| + | \_오호라 공은 너그럽고 순박한 모습으로 양지로 훌륭함을 스스로 이루었음이라. | ||
| + | 백행의 근원으로 유시유종(처음부터 끝까지) 효성이 한결같아서 하늘이 감동하여 | ||
| + | 사물을 격동시킨 소이에 이르렀다. 일용의 일을 부모에게 물어서 | ||
| + | 행하는 것을 볼진대 효가 없이 어찌 유가의 모범이 될 수 있으며 | ||
| + | 또한 어찌 근본이 없이 능히 이와 같이 되리요. \\ | ||
| + | \\ | ||
| + | \_공이 세상을 떠난 후 30여 년이 되어 가장과 포창(褒彰)(( 유림(儒林)의 | ||
| + | 선비들이 공의 효행을 천거하여 1932년에 | ||
| + | ' | ||
| + | 유림향약본소' | ||
| + | 鄕約本所)에서 내린 포창완의문을 말하며, 공의 주손인 황병상이 | ||
| + | 물려받아 소장하고 있다. 공의 효행을 기려 1966년에는 청운마을에 정효각(㫌孝閣)이 세워졌다.)), | ||
| + | 계첩서문, | ||
| + | 충후한 덕을 마을에 펴고 인과 효를 가정에 베풀어 위로 수제와 서추(西樞)를 두고 | ||
| + | 은혜와 영화는 천양(저승)에 가득 차서 아래로 경사가 후곤(後昆)에 흘러서 | ||
| + | 자손이 뜰에 가득 찼으니 하늘이 내린 선인(善人)이 아니겠는가. | ||
| + | 공의 장자 덕윤군이 감모(感慕)의 정성을 여러 번 나에게 청하는지라 | ||
| + | 서차의 일을 사양하였으니 얻지 못하고 이에 유사를 안을 하여 | ||
| + | 위와 같이 기록하여 효자의 청에 답하노라.\\ | ||
| - | 그 후 6년 정유(丁酉) 1837년이다. 공이 36세 때이다. | + | \_\_갑술(甲戌)(( |
| - | 에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다. 그 전일 어버이의 병의 차도가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아서 공이 쌀을 씻으러 동문 밖에 이르렀을 때 집의 개가 | + | |
| - | + | ||
| - | 가장(家狀)을 지은 자 만은(萬隱)공은 공의 백강(큰아버지)이다. 아아 슬프도다. 이에 형이 있고 이에 아우가 있으니 어찌 공의 집의 법도의 창작이 아니리요. 그후 예성(禮成)을 유감없이 마치고 공 자신이 농사에 힘을 다하고 운산(雲山)의 속에 자취를 감춘 고로 가은(稼隱)이라 호를 하였다. | + | |
| - | + | ||
| - | 경술(庚戌) 1910년이다. | + | |
| - | | + | |
| - | + | ||
| - | 오호라 공은 너그럽고 순박한 모습으로 양지로 훌륭함을 스스로 이루었음이라. 백행의 근원으로 유시유종(처음부터 끝까지) 효성이 한결같아서 하늘이 감동하여 사물을 격동시킨 소이에 이르렀다. 일용의 일을 부모에게 물어서 행하는 것을 볼진대 효가 없이 어찌 유가의 모범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어찌 근본이 없이 능히 이와 같이 되리요. | + | |
| - | + | ||
| - | 공이 세상을 떠난 후 30여 년이 | + | |
| - | , 계첩서문, | + | |
| - | + | ||
| - | 갑술(甲戌) 1934년이다. | + | |
| | | ||
| - | 완산(完山) 류동기(柳東夔) 류동기 선생은 자(字)가 선초(善初), | + | 완산(完山) 류동기(柳東夔)(( 류동기 선생은 자(字)가 선초(善初), |
| - | | + | |
| + | \\ | ||
| <typo fs: | <typo fs: | ||
| 전(前) 청송문화원 원장 심명택(沈明澤) 번역\\ | 전(前) 청송문화원 원장 심명택(沈明澤) 번역\\ | ||
c9-025.1790039958.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6/09/22 10:19 저자 ssio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