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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_평해황씨 초간 세보서\\ | + | \_토박이들(化民)((화민(化民): 자기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에 사는 백성이 그 고을의 원에게 자기를 이르던 일인칭 대명사)) |
| - | 토박이들化民 화민化民: | + | |
| - | | + | 황재연(黃在淵)((황재연(黃在淵): 평해 문절공파 23세, 父 壽坤. 字 時仲, 號 鶴軒, 純廟乙酉(=1825)生通德郞公志廉行潔修道有方遠近士友莫不聳服乙酉(=1885)正月十八日卒壽六十一墓芝山酉坐 (문절공파보 1-132) |
| - | 字 亨叔, 純廟丙子(=1816)生辛卯(=1891)正月十三日卒壽七十六墓可壯谷壬坐 (문절공파보 1-429) | + | 황정(黃瀞)((황정(黃瀞): 평해 문절공파 23세, 父 錫久. 字 景遇, 號 銅塢, 純廟庚辰(=1820)生一八二○年公天姿溫雅志行兼潔文華夙就筆翰尤精三解不中退臥林泉東鄕名碩歎惜虛老乙酉授通政戊子陞 |
| - | , 황재연黃在淵 황재연黃在淵: | + | |
| - | 字 時仲, 號 鶴軒, 純廟乙酉(=1825)生通德郞公志廉行潔修道有方遠近士友莫不聳服乙酉(=1885)正月十八日卒壽六十一墓芝山酉坐 (문절공파보 1-132) | + | (閤下)((합하(閤下): 정일품 벼슬아치를 높여 부르던 말))께 글을 올립니다.\\ |
| - | , 황정黃瀞 황정黃瀞: | + | \\ |
| - | 字 景遇, 號 銅塢, 純廟庚辰(=1820)生一八二○年公天姿溫雅志行兼潔文華夙就筆翰尤精三解不中退臥林泉東鄕名碩歎惜虛老乙酉授通政戊子陞 | + | \_엎드려 생각하니 저희들(民等)((민등(民等): 본인을 지칭))의 선조인 한(漢)나라 |
| - | | + | 학사공(學士公) 휘(諱)((휘(諱): 돌아간 조상이나, |
| - | 閤下 합하閤下: | + | 낙(洛)은 한(漢)나라 광무(光武)황제 건무 4년(建武 4年)((건무4년(建武4年): 서기 28년, 무자(戊子), 신라(新羅) 유리왕(瑠璃王) 5년))(=서기 28년, 신라 유리왕 5년)에 구대림(丘大林) 장군(將軍)과 같이 동국(東國)(=신라(新羅))으로 오셔서 우리 군(本郡) 월송(月松)에 사셨으니 팔도(八道)(=전국(全國)) 기성(箕城)(=평해) 황씨(黃氏)의 시조(始祖)이십니다.\\ |
| - | 께 글을 올립니다. | + | \\ |
| - | 엎드려 생각하니 저희들民等 민등民等: | + | \_신라(新羅) 때 부터 고려(高麗)를 거쳐오는 동안에 누차 난리를 겪어서 묘소(墓所)를 실전(失傳)했으므로 옛터(遺墟地)에 단을 설치하고(設壇) 비석(碑石)을 세우고, 본 고을(本邑)에 사는 자손(子孫)들이 매년 시월(十月) 중정일(中丁日)에 향(爇香)((설향(爇香): 원문에는 [殿/ |
| - | 의 선조인 한漢나라 학사공學士公 휘諱 휘諱: 돌아간 조상이나, | + | \\ |
| - | | + | \_또 다행스럽게도 바닷가의 모래톱(沙汀)((사정(沙汀): 바닷가의 모래톱))에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빽빽이 울창해서 설단(設壇)한 비각(碑閣)의 울타리(垣墻)((원장(垣墻): 울타리))가 비바람(風雨)의 피해(被害)를 막아서 다년간 무너지는 걱정이 없었는데 근래(近來)에 와서 푸른나무의 붉은 껍질과 긴 가지의 많은 솔잎이 점점 도끼와 낫(부근(斧斤) )으로 침해(侵害)를 입어서 민둥산에 이르렀습니다. 저희들(民等)이 보호(保護)하고 있는 선조(先祖)의 단(壇)과 비각(碑閣)은 오직 이 소나무가 유구(悠久)하게 있어야만 하는데 그 형편을 어쩔 수 없는지라 지금 생각하니 송추(松楸)((송추(松楸): 산소(山所) 둘레에 심는 나무를 통틀어 일컬음. 주로 소나무와 가래나무를 심음)) |
| - | (=서기 28년, 신라 유리왕 5년)에 구대림丘大林 장군將軍과 같이 동국東國(=신라新羅)으로 오셔서 우리 군本郡 월송月松에 사셨으니 팔도八道(=전국全國) 기성箕城(=평해) 황씨黃氏의 시조始祖이십니다. | + | |
| - | 신라新羅때 부터 고려高麗를 거쳐오는 동안에 누차 난리를 겪어서 묘소墓所를 실전失傳했으므로 옛터遺墟地에 단을 설치하고設壇 비석碑石을 세우고, 본 고을本邑에 사는 자손子孫들이 매년 시월十月 중정일 中丁日에 향爇香 설향爇香: | + | \\ |
| - | 을 피우고 제사祭祀를 지낸지가 이미 몇 백년이나 되었으며, | + | \_엎드려 비노니 상세히 살펴보신 후에 지역(地域)의 경계(境界)를 전후좌우(前後左右)에 거리를 정(定)해서 보호(保護)하는 뜻을 완문(完文)((완문(完文): 조선시대 관부(官府)에서 향교·서원·결사(結社)·촌(村)·개인 등에게 발급하는 문서. 어떠한 사실의 확인 또는 권리나 특권의 인정을 위한 확인서, 인정서의 성격을 가진다.\\ |
| - | 桴海而東이니 극개극창만세위종克開克昌萬世爲宗이오”, | + | 완문은 관부에서 일방적으로 발급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
| - | 또 다행스럽게도 바닷가의 모래톱沙汀 사정沙汀: | + | \\ |
| - | 에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빽빽이 울창해서 설단設壇한 비각碑閣의 울타리垣墻 원장垣墻: | + | \_군수님의 처분處分을 바랍니다.\\ |
| - | 가 비바람風雨의 피해被害를 막아서 다년간 무너지는 걱정이 없었는데 근래近來에 와서 푸른나무의 붉은 껍질과 긴 가지의 많은 솔잎이 점점 도끼와 낫(부근斧斤)으로 침해侵害를 입어서 민둥산에 이르렀습니다. 저희들民等이 보호保護하고 있는 선조先祖의 단壇과 비각碑閣은 오직 이 소나무가 유구悠久하게 있어야만 하는데 그 형편을 어쩔 수 없는지라 지금 생각하니 송추松楸 송추松楸: | + | \\ |
| - | | + | 갑신(甲申)(=1884년) 윤(閏)5월 일\\ |
| - | 엎드려 비노니 상세히 살펴보신 후에 지역地域의 경계境界를 전후좌우前後左右에 거리를 정定해서 보호保護하는 뜻을 완문完文 완문完文: | + | |
| - | | + | |
| - | 으로 증명立旨 입지立旨: | + | |
| - | 하셔서 누대로 내려온 잔손孱孫 잔손孱孫: | + | |
| - | 으로 하여금 선단先壇의 지역地域을 보존保存하도록 해주시기를 천만번 비오니 하교下敎해 주십시오. | + | |
| - | 군수님의 처분處分을 바랍니다. | + | |
| - | 갑신甲申(=1884년年) 윤閏5월 | + | |
| - | 黃明九, 黃載運, 黃 澣, 黃鐘運. | + | 황명구(黃明九), 황재운(黃載運), 황\_간(黃\_澣), 황종운(黃鐘運).\\ |
| - | 黃 濬, 黃敎旭, 黃吉運, 黃 洙, | + | 황\_준(黃\_濬), 황교욱(黃敎旭), 황길운(黃吉運), 황\_수(黃\_洙),\\ |
| - | 黃千運, 黃景禧, 黃應信, 黃 泂, | + | 황천운(黃千運), 황경희(黃景禧), 황응신(黃應信), 황\_형(黃\_泂),\\ |
| - | 黃周河, 黃季厚, 黃柄七, 黃敎英, | + | 황주하(黃周河), 황계후(黃季厚), 황병칠(黃柄七), 황교영(黃敎英),\\ |
| - | 黃永湜, 黃禹鉉, 黃永昌, 黃斗祥, | + | 황영식(黃永湜), 황우현(黃禹鉉), 황영창(黃永昌), 황두상(黃斗祥),\\ |
| - | 黃之海, 黃孝葉, 黃錫海, 黃鐘八, | + | 황지해(黃之海), 황효엽(黃孝葉), 황석해(黃錫海), 황종팔(黃鐘八),\\ |
| - | 黃斗漢, 黃成海, 黃允弼, 黃炳河, | + | 황두한(黃斗漢), 황성해(黃成海), 황윤필(黃允弼), 황병하(黃炳河),\\ |
| - | 黃泗中, 黃聖河 等 | + | 황사중(黃泗中), 황성하(黃聖河) 등(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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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01.1778899384.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6/05/16 11:43 저자 ssio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