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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보서(庚辰譜序) (1880년)=== <WRAP 37em justify><hidden \_한문 원문 보기> <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 \_**庚辰譜序**\\ 凡人本乎祖猶木之根水之源也木自根而達平枝水由源而沿乎派矣況人 豈有本而不究苗也有後而不明其先乎是以士之有譜所以明先系之何自 而某爲某祖也譜之有序所以究後承之何由而誰爲誰孫也吾姓之貫箕而 著國與我東之名家世族其德業風節非無駢美匝輝而累經兵燹譜乘之莫 傳固其宜也以錦海兩先生之博聞草輯而未詳傳疑繼有南塘公所序之譜 各藏未刊者久矣粵庚寅錦翁之胄孫山俉伯仲公與吾慕古窩曾大父剏設 譜所干豐之錦陽互證胥校辨訛質疑壽其傳而成其完鋟出二卷則其述先 貽後之功果何如而其後辛卯壽春承旨令宗更修譜于洛之華寺輪通諸邑 活印六冊而以長派之不應爲欠矣去庚戌秋山南之嗣孫憲周氏先告各邑 與遠邇諸宗合謀並力綴其貴而正其謬古之漢學士今據信蹟而改以唐朝 則其眞<fc #ff0000>鷹</fc>之顯晦亦有時而然以力綿而僅成三卷猶未免率漏之歎各思有 八路會同之意矣廼者豐宗範鱗宇鎭甫主幹其事每恨前譜之不廣定有司 輪告于各道遠邑且遣貫邑愈徃勤督積有年所而間値歲歉自至<fc #ff0000>坦培</fc>延拖 矣今夏始與族從濤及瀞偕到則各處僉宗長湍禮浩慶州應極平海在淵江 陵炳淸安弼欽己齊會而設役矣共閱幾朔參互勘檢遂成幾卷印得若干秩 昔之未詳今得益詳後之傳疑先破其疑派系之多糢昭穆之易失瞭然於開 卷寓目之間有苦祖考儼臨雲仍傍列推之一本如枝之連根派之溯源雖世 曠地遐之宗悅然合堂同席獲識講敦孝油然生風以之厚不讓蘇程之譜則 庶不負今日收族作譜之意而告訖之夕譜廳之會宗以吾海月先祖卷弁有 序且參掌幹之任不可無一言遂不敢辭而略敍顚末庸附于左\\ \_\_崇禎後五庚辰端陽節後裔孫冕九謹序 <WRAP rightalign> 鷹: 雁/眞\\ 坦培: 止且止吾 </WRAP> </typo> </hidden> \\ <typo ff:'바탕'; fs:1em; lh:1.5em> \_**경진보서**\\ \_무릇 사람이 조상(祖上)을 근본(根本)으로 하는 것이 나무의 뿌리와 물의 근원(根源)과 동일(同一)한 것이다. 나무는 뿌리로부터 가지에 달하며 물은 근원(根源)으로부터 지류(支流)에 이르나니라. 하물며 사람이 어찌 근본(根本)이 있는데 그 싹을 생각지 않겠으며 후세(後世)가 있는데 그 선세(先世)를 밝히지 않겠는가. 이것이 사족지가(士族之家)에 족보(族譜)를 두게 되는 소이(所以)이며 또 족보(族譜)는 선계(先系)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누가 누구의 조상(祖上)이 됨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족보(族譜)의 서문(序文)이 있는 소이(所以)는 후승(後承)이 어디로 말미암아 누가 누구의 자손(子孫)이 됨을 알게 하는 것이다.\\ \_우리 성(姓)이 본관(本貫)을 평해(平海)로 한 후(後)에 우리나라 명가세족(名家世族)들과 함께 그 덕업풍절(德業風節)이 아름다움을 가지런히 하여 두루 빛남이 없지 않았으나 여러차례 병화(兵火)를 겪어 보첩(譜牒)을 소실(燒失)하고 전(傳)치 못하였으니 이는 대동지환(大同之患)에 있음직한 일이나 오종(吾宗)의 불행(不幸)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 말미암아 금(錦) 해(海) 양(兩) 선생(先生)의 박식다문(博識多聞)으로 이루어진 초집(草輯)마져 자세(仔細)하지 못하여 의문(疑問)으로 전(傳)하였으며 이어 남당공(南塘公) 초보(草譜)도 발간(發刊)하지 못함이 오래더니 지난 경인년(庚寅年)에 금계공(錦溪公)의 주손(胄孫) 산오(山梧) 백중공(伯仲公)이 나의 증대부(曾大父) 모고와(慕古窩)와 함께 보소(譜所)를 풍기(豊基) 금양(錦陽)에 설치(設置)하고 서로 증거(證據)를 들어 교정(校正)하되 그릇된 곳을 변증(辨證)하고 의심(疑心)나는 곳을 질문(質問)하여 오래도록 이 보책(譜冊)이 전(傳)해지기를 소원(祈願)하면서 완공(完功)을 이루어 두 권(卷)을 새겨 출판(出版)한 것인즉 그 선대(先代)의 뜻을 받아 이었고 후세(後世)에 물려주는 공(功)이 과연(果然) 무엇으로 비할고? \\ \_그 후(後) 신묘년(辛卯年)에 춘천(春川) 종승지(宗承旨) 도(燾)씨(氏)가 서울 화장사(華藏寺)에 보청(譜廳)을 설치(設置)하고 수보(修譜)하여 6권(六卷)을 활판(活版)으로 인쇄(印刷)하였으나 장파(長派) 풍기(豊基)의 불응(不應)이 흠이였었다. 그리고 지난 경술년(庚戌年) 가을에 산남(山南)의 사손(嗣孫) 헌주(憲周)씨(氏)가 먼저 각읍(各邑)에 통고(通告)하고 원근(遠近) 제종(諸宗)들과 합모(合謀) 병력(並力)하여 그 빠진 곳을 깁고 그릇된 곳을 바로 잡아 옛날 한학사(漢學士)를 신적(信蹟)에 의거(依據)하여 당(唐)나라로 고친 것인즉 그 옳은 것이라도 밝아지고 안 밝아지는 것은 또 한때가 있는 법(法)이니라. 그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힘 부족(不足)으로 겨우 보책(譜冊)을 3권(三卷)밖에 완성(完成)치 못하였다는 것은 후일(後日)에 경솔(輕率)하게 누락(漏落)시킨 한탄을 면(免)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팔도(八道)의 종인(宗人)들이 모여 합의(合議) 협력(協力)한 결과(結果)인데 장차 어찌할 것이리요?\\ \_이제 경진수보(庚辰修譜)는 풍기(豊基) 종인(宗人) 범린(範麟) 우진(宇鎭) 두 사람이 주간(主幹)이 되어 매양(每樣) 지난번 보첩(譜牒)이 넓게 수합(收合)되지 못하였음을 한탄하면서 유사(有司)를 정(定)하여 각도(各道) 원읍(遠邑)에 두루 통고(通告)하고 또 평해(平海)에는 사람을 보내어 부지런히 독려(督勵)하였으나 수년간(數年間)을 요(要)하였다. 이것은 지방(地方)에 흉년(凶年)이 들어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이루어지지 못함이였다. 비로소 금년(今年) 여름으로 족종(族從) 도(濤)와 정(瀞)으로 더불어 함께 금양(錦陽)에 이르른 즉 장단(長湍)의 예호(禮浩), 경주(慶州)의 응극(應極), 평해(平海)의 재연(在淵), 강릉(江陵)의 병(炳), 청안(淸安)의 필흠(弼欽) 등(等) 각읍(各邑) 제씨(諸氏)가 이미 모여 설역(設役)을 하고 있는지라 함께 수개월(數個月)을 더 격은 후(後)에 서로 감검(勘檢)하여 드디어 몇 권(卷)을 완성(完成)하고 약간(若干) 질(帙)을 인쇄(印刷)하였으니 옛날의 상세(詳細)치 못한 것을 이제 더욱 자세(仔細)하게 다듬었으며 후세(後世)에 의심(疑心)으로 전(傳)한 것을 먼저 깨우쳐 그 의심(疑心)을 풀었노라.\\ \_그리고 파계(派系)에 모호(模糊)함이 많은 것과 소목(昭穆) 항열에 분간(分諫)키 곤란(困難)한 점(点)을 밝혔음으로 보책(譜冊)을 한번 열어 살펴볼 때 조선(祖先)이 엄연히 오신 것 같으며 자손(子孫)이 곁에 벌려서 있는 것 같음을 느끼리라. 다시 한번 추상(推想)할 때 한줄기의 가지가 뿌리에 연(連)한 것과 같으니 비록 세대(世代)가 멀고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떨어져 있는 종친(宗親)들이라 할지라도 합당동석(合堂同席)하여 돈목(敦睦)과 효제(孝悌)를 강론(講論)하며 유연(油然)한 풍속(風俗)을 진작(振作)시키는 같음이 있어 상호돈후(相互敦厚)한 정(情)이 생기는 것 같도다. 이러니 어찌 소씨(蘇氏)와 정씨(程氏)의 족보(族譜)에 사양하겠는가. 무릇 제종(諸宗)은 오늘날 수족작보(收族作譜)의 뜻을 저버리지 말도록 효제충신지도(孝悌忠信之道)를 힘쓸지로다. 보사(譜事)를 종료(終了)하는 밤에 보청(譜廳)에 모인 종친(宗親)들이 우리 해월(海月) 선조(先祖) 서문(序文)도 권두(卷頭)에 있고 또한 장간(掌幹)의 소임(所任)도 맡은 사람이니 일언(一言)이 없어서는 안되지 않겠느냐 하므로 무사(蕪辭)를 무릅쓰고 두어줄 전말(顚末)을 기록(記錄)하여 보책(譜冊) 말미에 붙이노라.\\ \_\_숭정(崇禎) 후(後) 5(五) 경진(庚辰) 단양절(端陽節) 후예손(後裔孫) 면구(冕九) 근서(謹序) </typo> </W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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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6 17:48 저자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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