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훈대부선공감정평해황공묘갈명(通訓大夫繕工監正平海黃公墓碣銘)=== \_通訓大夫繕工監正平海黃公墓碣銘 幷序\\ 公諱震孫字寅卿號竹塢黃氏系出平海上祖大唐學士諱洛始顯于東國逮至高麗金 吾將軍太子檢校諱溫仁益大而昌生諱佑精軍器少尹生諱裕中門下侍中生諱璡檢 校軍器監正生諱之挺生諱原老司錄叅軍\_贈左副承旨生高祖諱瑾資憲大夫漢城 左尹曾祖諱有定號米囷\_本朝資憲大夫工曹判書祖諱鉉成均館大司成以經明行 修爲世師儒考諱仲夏生員妣宜人順天朴氏進士文益女以\_世宗丙午生公于龍仁 某里第\_世祖庚辰登第官繕工監正世祖丙戌卒壽四十一葬榮州治南蓮花山東栗 浦之上亥坐原有碣配淑人慶州金氏墓龍仁林川生員公兆下亥坐原育一男一女男 啓沃號草谷弘文館應敎女適漢陽趙琮淸河縣監啓沃男自順將仕郞女慶州金友信 慶州李友騫自順男萊次蕃\_宣祖壬辰與趙提督憲首倡義旅卒于錦山趙琮男仁琬 義琬進士禮琬智琬信琬亨琬女安東權億齡萊子世迪蕃子世謹世鳳世迪子允德亨 德悟德世謹子允熙允岱世鳳子尙好餘不錄鳴乎公以出倫之資承習乎簪組文獻之 世經學文章宜其有可傳於後世者而世級累轉杞宋無微徵勝歎裁且舊碣歲久漫漶 메䵝不能讀後孫海根經紀伐石于海貳而滑可鐫可琢囑記其事辭之固而其請盖 勤親親之誼與有聞於斯役尤有成甚發不揆僭越略敍顚末以備來劫銘曰蓮花之山 盤而秀栗浦之水淸而泱芳是惟君子之藏曷需而蹙宜發而昌我庸銘于貞石芳相終 始乎天壤\\ \_\_辛丑八月日傍裔孫謹撰 \\ \_통훈대부 선공감정 평해 황공 묘갈명 병서\\ \_공의 휘는 진손(震孫)이요 자는 인경(寅卿)이며 호는 죽오(竹塢)이다.\\ 황씨의 선계(先系)는 평해에서 나왔고 윗 조상은 당나라 학사(學士) 휘 낙(洛)이니 비로소 동국에 나타나 고려 금오장군(金吾將軍) 태자검교(太子檢校) 휘 온인(溫仁)에 미쳐서 더욱 커져 창성해 졌다. 온인(溫仁)은 우정(佑精)을 낳았으니 이는 군기감소윤(軍器監少尹)을 지냈고 그가 유중(裕中)을 낳았으니 이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이었다.\\ \_유중이 진(璡)을 낳았으니 이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이요 그가 지정(之換)을 낳고 지정이 원로(原老)를 낳았으니 이는 사록참군(司錄叅軍)으로 좌부승지에 추증 되었다.\\ \_원로가 근(瑾)을 낳았으니 이는 공(公)의 고조(高祖)가 되며 자헌대부 한성좌윤(資憲大夫漢城左尹)으로 그는 공에게는 고조(高祖)가 된다.\\ \_증조(曾祖)는 휘가 유정(有定)이니 호가 미균(米囷)으로 본조 자헌대부공조판서(資憲大夫工曹判書)요 조(祖)의 휘는 현(鉉)이니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으로 경서에 밝고 행동이 잘 닦아져서 세상의 사표가 되는 선비였다.\\ \_아버지의 휘는 중하(仲夏)니 생원이요, 어머니는 의인(宜人) 순천박씨니 진사 문익(文益)의 딸이다. 세조 병오(1426(一四二六))년에 공을 용인(龍仁) 어느 마을 자택에서 낳았다.\\ \_세조 경진(1460(一四六○))년에 과거에 올라서 벼슬이 선공감정(繕工監正)이었다. 세조 병술년에 돌아가시니 수(壽)는 42(四二)세였다. 영주군 영내 남쪽 연화산 동쪽 율포(栗浦)의 위 해좌원(亥坐原)에 장사냈는데 비갈이 있다.\\ \_공의 부인은 공인(恭人)(: 정5(五)품, 종5(五)품 문무관 아내에게 준 작호) 경주 김씨니 묘가 용인 임천의 생원공의 묘 아래 해(亥)좌원에 있다. 일남 일녀를 양육했는데 아들은 계옥(啓沃)이니 호가 초곡(草谷)으로 홍문관응교요 딸은 한양 조씨 종(琮)에게 시집 가니 종은 청하(淸河) 현감이다. 계옥의 아들은 자순(自順)이니 장사랑이다. 딸은 경주 김우신(金友信) 경주 이우건(李友騫)에게 시집갔다. 자순의 아들은 래(萊)요 둘째는 번(蕃)이다.\\ \_선조 임진(1592(一五九二))년에 제독(提督) 조헌(趙憲)과 더불어 우두머리로 창의하여 싸웠는데 금산에서 전사하였다.\\ \_조종(趙琮)의 아들은 인완(仁琬), 의완(義琬), 진사 예완(禮琬), 지완(知琬), 신완(信琬), 형완(亨琬)이요, 딸은 안동 권씨 억령(億齡)에게 출가했다.\\ \_내(來)의 아들은 세유(世迪)이요 번(蕃)의 아들은 세근(世謹), 세봉(世鳳)이고 세유(世迪)의 아들은 윤덕(允德), 형덕(亨德), 오덕(悟德)으로 흩어져 살았다.\\ \_세근의 아들은 윤희(允熙), 윤대(允岱)이고 세봉의 아들은 상호(尙好)이며 나머지는 기록하지 않는다.\\ \_아! 공은 뛰어난 자질로 벼슬이 높고 문헌을 잘 다루는 그러한 세대들에게 이어서 학습 하였으니 경학과 문장이 후대에 전할 만한 것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_그러나 세상이 여러 번 변하여 증거가 될 만한 문서가 없으니 탄식을 가늘 수가 없다. 또 옛날에 세운 묘갈이 해가 오래되어 뭉글어지고 희미하게 글씨가 보이지 않게 되어 후손 해근(海根)이 경영 할 계획을 가지고 돌을 해주에서 잘라 왔으니 돌이 매끄럽고 좋아서 새기기도 좋고 쪼을만도 하다.\\ \_나 헌([土憲])에게 일의 사실을 기록하라고 하기에 한사코 사양했으나 그 청이 끊이지 않았다.\\ \_나는 종친을 친밀히 하는 정의(情誼)와 이 역사(役事)에 참여하여 들은 바가 있기에 더욱이 외람 되고 주제넘은 것을 헤아리지 않고 시종을 간략히 서술하여 훗날을 대비하며 명(銘)을 짓노니 \\ 蓮花之山盤而秀 연화산은 얼기설기 서려 있으면서도 빼어나 \\ 栗浦之水淸而泱 율포의 물은 맑으면서도 넓게 출렁이는구나\\ 芳是惟君子之藏 여기가 바로 군자가 묻힌 곳이니, \\ 曷需而蹙宜發而 어찌 머뭇거리고 주저하며 기다려 삼갈 것인가. (마땅히 펴서 승창하는 것이 옳은 일이도다.)\\ 昌我庸銘于貞石 나 여기 단단한 돌에다 명(銘)을 새기노니 \\ 芳相終始乎天壤 영원히 이 천지와 함께 수명을 같이하리라.\\ \_\_신축(辛丑)(1961(一九六一))년 팔월 일 방후손(傍後孫) 헌([土憲])은 삼가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