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보발(戊戌譜跋)=== \_**戊戌譜跋**\\ \_우리 동방(東方)의 사족지가(士族之家)에 가장 귀중(貴重)한 일은 보첩(譜牒)을 닦아서 밝히는 일이니 저 보첩(譜牒)이라는 것은 종족(宗族)을 수합(收合)하고 세계(世系)를 명확(明確)히 해서 영세불망(永世不忘)케 하는 것이다.\\ \_생각(生覺)컨대 우리 평해황씨(平海黃氏)가 상고(上古) 이래(以來)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일국(一國)에 산처(散處)한 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서, 만력(萬歷) 병오년(丙午年)에 침류정(枕流亭) 초집(草輯)이 청안(淸安)에서 시발(始發)되고, 그 후(後) 50년(五十年)이 지난 효묘(孝廟) 7년(七年) 병신(丙申)에 각가(各家)에서 가승(家乘)을 편수(編修)한 이래(以來)로 3백여년간(三百餘年間)에 대동보(大同譜)가 6차(六次)요, 파보(派譜)가 4차(四次)로되, 불행(不幸)하게도 남북차서(南北次序)가 문란(紊亂)하여 첨가(添加)되고 누락(漏落)한 자(者)가 많이 있고 또 계통(系統)을 잃고 파계(派系)가 전도(顚倒)되어 조손형제지항렬(祖孫兄弟之行列)을 분변(分辨)키 곤란(困難)한 것이 없지 않았다. \\ \_세대(世代)가 멀고 세월(歲月)이 오래되니 동족(同族)이 마치 길손과 같이 됨을 느끼게 되었다. 갑술년(甲戌年)의 대동보(大同譜) 이후(以後)는 세속(世俗)이 많이 변역(變易)되고 또 을유해방(乙酉解放)으로 풍속(風俗)이 소원(疏遠)하고 강상(綱常)이 문란(紊亂)하더니 뜻밖에 625동란(六二五動亂)으로 동족(同族)이 남북(南北)으로 이산(離散)하고 골육(骨肉)이 상쟁(相爭)하여 파계(派系)를 분변(分辨)하기 어렵게되니 진실로 동족(同族) 간(間)에 서로 길가는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_실(實)로 강개지한(慷慨之恨)이라 통탄(痛歎)하고 한심(寒心)스럽기 그지없는 고(故)로 정유년(丁酉年) 봄 한식절(寒食節)에 청원군(淸原郡) 미호역전(美湖驛前) 양한당(養閒堂) 13세손(十三世孫) 의모(義模)씨의 효려(孝廬)((효려(孝廬): 상제(喪制)가 상제(喪制) 노릇을 하고 거처(居處)하는 곳.))에서 애마(哀麻) 중(中)에도 노고(勞苦)를 돌보지 않고 보사(譜事)를 개시(開始)할 것을 발설(發說)하니 원근(遠近) 족친(族親)들이 모두 크게 찬성(贊成)하므로 유사(有司)를 분정(分定)하고 정성을 다하여 힘을 모았으며 수단(收單)을 서둘러서 대사(大事)를 달성하니 진실(眞實)로 우리 동족(同族)의 큰 다행(多幸)이 아닐 수 없다.\\ \_나는 역시 감사공(監司公)의 후예(後裔)로서 비록 어리석고 천견박식(淺見薄識)이지만 어찌 수수방관(垂手傍觀)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의모(義模)씨와 더불어 난만상의(爛慢相議)하여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참여(參與)하였으니 외람(猥濫)함을 헤아리지 않고 수보(修譜)의 전말(顚末)을 이상(以上)과 같이 약기(略記)하는 바이다.\\ \_\_무술(戊戌) 소춘(小春) 후예손(後裔孫) 원모(元模) 근발(謹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