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검교공파보서(己亥檢校公派譜序)=== \_**己亥檢校公派譜序**\\ \_우리 황씨(黃氏)의 파보(派譜)는 지난 임술년(壬戌年)에 종가(宗家)의 백종형(伯從兄) 영래(永來)씨가 처음 닦은 족보(族譜)로서 이것은 한 집안 세계(世系)를 기록(記錄)한 책(冊)이다.\\ \_그 후(後) 36년(三十六年)이 지나서 무술년(戊戌年)에 금양정사(錦陽精舍)에서 다시 중수(重修)하였는데 이때 통문(通文)을 발(發)하니 원근(遠近)에 사는 종친(宗親)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일제(一齊)히 호응(呼應)하여 모두 한 곳에 모여 일심협력(一心協力)하고 있었다. \\ \_이때 지나던 한 객(客)이 묻기를 그대들이 족보(族譜)의 의의(意義)를 아는가? 그리고 고(告)하여 말하되 천하(天下)에 생민(生民)의 역사(歷史)가 오래니 가문(家門)이 없을 수 없고 가문(家門)이 있은 즉 족속(族屬)이 생(生)하는 법(法)이며 족속(族屬)이 생(生)한 즉 사족지가(士族之家)에 반드시 족보(族譜)가 있는 법(法)이니라. 이 족(族)이라는 것은 흩어진 자손(子孫)들을 모아서 서로 사이가 소원(疏遠)해진 것을 친합(親合)하게 하는 것이요, 보(譜)라는 것은 그 세계(世系)를 밝혀 기록(記錄)하고 잃어버리고 빠진 것은 보첨(補添)한 것이니라.\\ \_서전(書傳)((서전(書傳): 중국(中國) 송나라(宋--) 때에, 주희(朱熹)의 제자(弟子) 채침(蔡沈)이 ≪서경(書經)≫에 주해(註解)를 달아 편찬(編纂)한 책(冊). 10책.))에 이르되 능(能)히 높은 덕(德)을 밝혀서 구족(九族)((구족(九族): 1. 고조(高祖)ㆍ증조(曾祖)ㆍ조부(祖父)ㆍ부친(父親)ㆍ자기(自己)ㆍ아들ㆍ손자(孫子)ㆍ증손(曾孫)ㆍ현손(玄孫)까지의 동종(同宗) 친족(親族)을 통틀어 이르는 말. 자기(自己)를 본위로 직계친(直系親)은 위로 4대 고조(高祖), 아래로 4대 현손(玄孫)에 이르기까지이며, 방계친(傍系親)은 고조(高祖)의 4대손이 되는 형제(兄弟)ㆍ종형제(從兄弟)ㆍ재종형제(再從兄弟)ㆍ삼종형제(三從兄弟)를 포함(包含)한다.\\ 2. 어머니 쪽인 외조부(外祖父), 외조모(外祖母), 이모(姨母)의 자녀(子女)와 처족(妻族)인 장인(丈人)ㆍ장모(丈母), 아버지 쪽인 고모(姑母)의 자녀(子女), 자매(姊妹)의 자녀(子女), 딸의 자녀(子女)와 자기(自己)의 동족(同族)을 통틀어 이르는 말.\\ 3. 중국(中國)에서 이르던 동쪽(東-)의 아홉 오랑캐. 견이(畎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를 이른다.))을 친근(親近)히 하라 하였으니 이는 요(堯)임금 같은 이도 구족(九族)이 소명(昭明)한 연후(然後)에 민심(民心)이 순화(順和)하는 정치(政治)가 이루어짐을 말한 것이다. 또 정자(程子) 즉 명도(明道) 선생(先生) 같은 분도 보계(譜系)를 밝혀서 종법(宗法)을 세움으로서 천하인심(天下人心)을 관장(管掌) 포섭(包攝)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_무릇 보계(譜系)가 소명(昭明)치 못한 즉 어느 조상(祖上)의 자손(子孫)인지 알지 못하고, 더욱이 친진(親盡) 즉 5세(五世) 이상(以上)이 되지 않는 당내(堂內)에서라도 서로 알지 못하는 자(者) 있다하니, 이 어찌 사람을 가르치고 조상(祖上)을 존숭(尊崇)하며 종족(宗族)을 수합(收合)하는 도리(道理)라 할 것이겠는가. 반드시 모아 들이고 상세(詳細)히 기록(記錄)하면 백세(百世)라도 한 계통(系統)이 되고 천리(千里)를 격(隔)하여도 한 집안 같은 것이다.\\ \_이로 인(因)하여 홀망(忽忘)하게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 어찌 그 의의(意義)가 중차대(重且大)하지 않다 하리오. 사마천(司馬遷)이 자기(自己) 세계(世系)의 서문(序文)을 지은 것과, 반고(班固)의 세기(世紀) 서술(敍述) 등(等)을 모두 제 집의 내력(來歷)을 기술(記述)한데 불과(不過)한 것이다.\\ \_노릉(盧陵)의 구양수(歐陽修)와 미산(眉山)의 소씨(蘇氏) 즉 소식(蘇軾)이가 처음 자기(自己)의 가보(家譜)를 기술(記述)하여 씨족(氏族)의 근원(根源)과 분파(分派)의 소목서열(昭穆序列)이 있음을 밝히니, 자연(自然)히 그 조선(祖先)의 세계(世系)가 밝아지고 세대(世代)의 착오(錯誤) 즉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등(等)의 세계(世系)의 의심(疑心)도 풀려졌던 것이다.\\ \_지금 황씨(黃氏)의 족보(族譜) 있은지 4백여년(四百餘年)에 중간(重刊)과 속간(續刊)한 것이 여러 차례였고, 이것을 조상(祖上)에서 보면 다 같은 자손(子孫)이나 자손(子孫)의 대(代)에 이르러 친(親)한 자(者)가 나뉘어 멀어지고 모였던 자(者)가 흩어져 갈라지니, 그 뜻이 어디 근거(根據)한 것인가. 그 상세(詳細)한 연유를 듣고자 원(願)하노라 하거늘 내가 이르기를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답(答)하지 않고 넘어가려 하였더니 부득이(不得已) 말하노라.\\ \_우리 황씨(黃氏)의 동방(東方)에 나타나게 된 연대(年代)는 오래다. 중국(中國) 고대(古代) 전욱제왕(顓頊帝王) 때에 황성(黃姓)을 받은 이래(以來)로 이어 내려오기를 수천년(數千年)인데 그동안 만천하(滿天下)의 황씨(黃氏)가 모두 황제헌원(黃帝軒轅)씨를 시조(始祖)로 삼았으니, 그 후(後) 당(唐)나라 학사공(學士公)이 배를 타고 우리나라 동해안(東海岸) 월송(越松)에 오셔서 사시게 된 후(後)로 갑고(甲古) 을고(乙古) 병고(丙古) 3형제(三兄弟)를 두셨는데, 이 3분이 나라에 공(功)을 세워 각각(各各) 봉작(封爵)을 받은 후 그 봉작(封爵)에 따라 기성(箕城) 장수(長水) 창원(昌原)으로 관향(貫鄕)을 삼고 3파(三派)로 나누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세대(世代)가 멀고 황박(荒朴)하여져서 역사(歷史)를 고증(考證)할 문헌(文獻)은 없다. 그리고 그 중에도 평해황씨(平海黃氏)가 가장 멀고 오래되며 금오공(金吾公)을 중조(中祖)로 삼고 수대(數代)를 지나, 검교(檢校) 평리(評理) 대광(大匡) 3형제(三兄弟)분이 나누어 3파(三派)가 되고, 이름난 재상(宰相)과 높은 관원(官員)이 청사(靑史)에 빛나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여러차례 병란(兵亂)과 화재(火災)를 치뤄서 문적(文籍)이 없어져서 동근(同根) 동조(同祖)이면서도 서로 보고 알지 못하여 타인(他人)과 같이 되었으므로 한탄하더니, 우리 조상(祖上) 금계(錦溪) 선생(先生)이 넓게 여러 문중(門中)에 흩어진 가승(家乘)을 상고하여 비로소 초보(草譜)를 편집하고, 이어서 해월(海月) 선생(先生)의 편수(編修)한 보첩(譜牒)이 있은 뒤로 모든 분파(分派)가 한 근원(根源)에서 시작(始作)되고 여러 가지가 한 나무 줄기에서 나왔음을 알게 되었으니 종통(宗統)과 분파(分派)가 나타나고 소목(昭穆)이 밝혀졌다.\\ \_지금 우리 평해황씨(平海黃氏)가 전국(全國) 각읍(各邑)에 산거(散居)하고 무려 그 수(數)가 수십만(數十萬)에 달(達)한다. 그러나 정국(政局)은 방금(方今)은 나라 안이 들끓고 남북(南北)은 완전(完全) 양분(兩分)되었으니 갈라진 자(者)는 근본(根本)을 찾기 어려워 잃어 버리기 쉽고, 또 분파(分派)가 오랜 자(者)는 근원(根源)을 찾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평해(平海) 청안(淸安) 양파(兩派)의 제종(諸宗)들은 보사(譜事)가 거창한 일이라 하여, 각기(各己) 제 조상(祖上)만 숭상하고 제 파(派)만 편수(編修)하니 대동보(大同譜)를 할 수 없음을 가히 알 수 없으나, 이때에 서둘러 합보(合譜)하지 못하면 앞으로 각파(各派) 종족(宗族)을 수합(收合)하기 더욱 힘들 것 같고 또 후진(後進)들로 천년전(千年前) 조상(祖上)이 누구인지 알지 못할 것을 두려워, 족숙(族叔) 정진(正鎭) 태진(泰鎭)으로 더불어 합의(合議)하고 곧 수단(收單)을 거두어 검교공(檢校公) 이하(以下)부터 파계(派系)를 정(定)하니 곧 일가(一家)의 보첩(譜牒)이라 하겠다.\\ \_이렇게 한 것은 분파(分派)나 만들려는 뜻이 결(決)코 아니라. 내 말을 믿지 못하거든 저 금수(錦水) 위에 일편부운(一片浮雲)을 보라. 무심(無心)히 떠다니며 합(合)했다 흩어졌다 하는 것이 마치 인사(人事)의 합산(合散)이 일정(一定)치 않음과 같음을 알 것이다. 내가 여기에 무슨 다른 뜻이 있으리요 하니 그 객(客)이 긍정(肯定)하고 물러갔다.\\ \_종인(宗人)들이 헌이 무상(無狀)((무상(無狀): 1. 아무렇게나 함부로 행동(行動)하여 버릇이 없음.\\ 2. 일정(一定)하게 정해진 모양(模樣)이 없음.\\ 3. 내세울 만한 선행(善行)이나 공적(功績)이 없음.))하나 보사(譜事)에 듣고 참여하라 하니 참람함을 헤아리지 않고 망가은괄(忘加隱括) 즉 좁고 비뚤어진 것을 바로 잡는데 자기(自己)를 잊어버리고, 그 세대(世代)의 착오(錯誤)된 것을 고치고 그 원파(源派)의 문란(紊亂)한 것을 가리고, 또 주(註)를 달고 부연하였으며 관직(官職)의 잘못된 것을 정정(訂正)하고, 누락된 것을 보첨하며 끊어진 데를 잇고, 붙인 자를 올려서 대소(大小) 모든 일을 다 들어 맞추었으니, 또한 일가(一家)의 대동보(大同譜)라 할만하다. 아! 선대(先代)의 선부로(先父老)의 어진 효성(孝誠)으로도 3년(三年)이 걸려서 이루어졌는데 오히려 어려움을 한탄한 바 있었거늘 더욱이 지금(至今)과 같은 비색한 세운(世運)에 능(能)히 1년(一年)에 보사(譜事)를 완성(完成)했으니 이는 조상(祖上)의 쌓은 공덕(功德)의 소치(所致)로 후손(後孫)에 내려주신 은덕(恩德)이라 하겠다.\\ \_그리고 태진(泰鎭)씨의 자기(自己)를 잊어버리고 근면(勤勉)한 성의(誠意)가 이 일을 완결(完結)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음을 사례(謝禮)한다. 시전(詩傳)에 이르기를 너의 덕성(德性)을 닦아서 네 조상(祖上)에 욕(辱)되게 하지 말라하였으니, 무릇 여러 종인(宗人)들은 멀리 조상(祖上)의 깊은 은혜(恩惠)와 후(厚)한 유덕(遺德)을 추모(追慕)하여 후세(後世)들의 효우(孝友)와 돈목(敦睦)을 힘쓰게 하면, 다음날에 문운(門運)이 번창함을 저울질하리라 하노라.\\ \_족보(族譜)의 시초(始初)와 전말(顚末)은 구보(舊譜) 서문(序文)에 갖추어 있으니, 헌이 다시 더 말하지 않노라.\\ \_\_조선(朝鮮) 개국(開國) 578년(五百七十八年) 기해(己亥)(=1959) 후예손(後裔孫) 통사랑(通仕郞) 권지(權知)((권지(權知): 조선(朝鮮) 시대(時代)에, 과거(科擧) 합격자(合格者)로서 성균관(成均館), 승문원(承文院), 교서관(校書館), 훈련원(訓鍊院), 별시위(別侍衞) 등에 나누어 배치(配置)되어 임용(任用) 대기(待機) 중(中)인 견습(見習) 관원(官員). 문과(文科) 출신(出身)의 경우(境遇) 삼관(三館)인 성균관(成均館), 승문원(承文院), 교서관(校書館)에 나누어 배치(配置)되고 무과(武科) 출신(出身)의 경우(境遇) 훈련원(訓鍊院)과 별시위(別侍衞)에 나누어 배치(配置)되었다.)) 승문원(承文院) 부정자(副正字) 헌([土憲])((26세, 세진(世鎭)의 장자. 字 경도(景度), 號 금주(錦洲). 1875년생 1972년졸)) 謹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