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은(玄隱) 황공(黃公) 묘갈명(墓碣銘)== \_**현은(玄隱) 황공(黃公) 묘갈명(墓碣銘)**\\ \_현은(玄隱) 황공(黃公)의 휘는 득구(得九)요 자는 광칠(光七)이다. 시조(始祖) 휘 낙(洛)은 한(漢)나라 때 학사(學士)인데 교지국에 사신가던 중 풍랑을 만나 동쪽으로 표류되어 평해(平海)에 안착하여 살았도다.\\ \_중세(中世)에 와서 휘 온인(溫仁)은 태자검교(太子檢校)요 휘 우정(佑精)은 소윤(少尹)이요 휘 유중(裕中)은 시중(侍中)이며 휘 용(𤨭)은 관(官) 숭록대부(崇祿大夫)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이며 시호는 충경공(忠敬公)이시다. 공이 휘 태백(太白)을 생하니 증 우의정(右議政)이요 휘 우(祐)를 생하니 증 좌의정(左議政)이요 휘 천계(天繼)를 생하니 호는 잠재(潛齋)며 자헌대부(資憲大夫)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시다. 공이 서울에서 선성현(宣城縣)에 낙향하니 고을 사람들이 추대하여 선성지(宣城誌)에 사실이 실려있다. 8(八)대에 이르러 휘 한성(漢成)은 호 취적헌(取適軒)인데 백씨(伯氏)인 호 만휴당(晩休堂) 휘 귀성(貴成)과 더불어 즐기는 가운데 잠시도 그 곁을 떠나지 않았도다. 휘 세림(世琳)을 생하니 진사(進士)시고 전하여 생 휘 흥세(興世)는 호 고선(孤仙)인데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요 생 휘 하응(河應)은 통덕랑(通德郎)이시다. 생 휘 순남(舜南)이요 생 휘 일봉(逸鳳)은 호 목소(鶩巢)인데 휘 구석(九錫)을 계사(系嗣)하시니 호 학남공(鶴南公)이시며 공의 고조(高祖)시다.\\ \_증조의 휘는 화진(華鎭)으로 호 미려(美麗)인데 증 통정(通政)이다. 조의 휘 부원(富源)인데 통덕랑(通德郞)이며 호 주전(紬田)이다. 고의 휘 종호(宗浩)인데 호 소암(素菴)이요 참봉(參奉)이다. 비위(妣位)는 경주김씨(慶州金氏)요 호용(皓庸)의 딸이다.\\ \_공께서 을미(乙未) 9(九)월 17(十七)일에 생하시니 목현리에서 거처하였는데 체구가 풍만하고 도량이 침착하며 묵중하였다. 장성하여서 독서에 힘쓰고 공부하며 농사에 부지런하고 선대(先代)의 규범을 독실하게 지켰다. 말수가 적고 착실함은 온 마을에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경계하는 선비라고 일컬었다. 공이 하세한지 수십년에 이르렀는데 다만 옛노인들의 입으로 전하는 말을 믿고 또한 공께서 모년(暮年)에 이르러서 그 문장이 아름답고 청정하게 빛나고 화려하였음에도 실제로 옮기기가 요원하여서 상세히 기록지 못함을 개탄할뿐이로다.\\ \_어떤 사람이 세상의 풍진을 싫어하여 현묘(玄妙)한 가운데 숨어서 살았단 말인가. 산하(山下)에서 살면서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물가에 가서 고기도 잡으며 세월의 도도(滔滔)함을 알지 못하였도다. 진실로 그 뜻이 컷으며 누구와 더불어서 알 수가 있었던가. 5(五)월 20(二十)일에 천수를 다하였으니 묘(墓)는 목현리 삼봉산(三峰山) 병좌원(丙坐原)이며 배위(配位)는 영양남씨(英陽南氏) 덕연(德淵)의 딸이다.\\ \_1(一)남 四녀를 두었으니 남은 병희(昞晞)요 여는 권오주(權五疇), 김사문(金四文), 안이모(安利模), 남중한(南重漢)이다. 병희(昞晞)는 4(四)남 1(一)녀를 두었으니 남은 중기(仲起), 용기(用起), 흥기(興起), 변기(變起)요 여는 이좌문(李佐文)이다. 중기(仲起)의 남은 광수(光洙)이다. 이하는 자손들이 많고 번성하여서 모두 다 기록하지 못하는도다.\\ \_공의 품성(禀性)이 넓고 굳세며 활달하였고 재조와 덕망을 갖추었으며 항시 그 재덕을 활용하는 가운데 관직에 나가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지 않았으며 글을 쓰지도 않고 하물며 문사(文士)도 만나지 않았다. 공은 온갖 괴로움을 견디어내면서 현공산수(玄空山水)와 함께 영원히 짝하면서 천명을 마치었도다. 흙을 즐기고 자세를 낮추고 살았으니 후손들에게도 한점의 욕됨이 없고 이치에 어긋남이 없었도다.\\ \_공의 어진 아들 병희(昞晞) 군(君)이 옷소매 속에 가장(家狀) 한 통(通)을 휴대하고 나의 낡은 집을 방문하여 나를 보고 명(銘)을 부탁하기에 이 늙은이가 글이 거칠고 비루함을 생각지도 못한 채 차마 사양하지도 못하고 곧 느낀 바를 간략하게 엮어서 이에 명(銘)하기를\\ \\ 운산(雲山)이 푸르고 푸르른데 위대한 분이 묻힌 곳일세.\\ 어진 자손들은 선대의 규범(規範)을 잘 좇아 나감으로서 \\ 비석(碑石)을 세워서 아름다운 빛이 가득하도다.\\ 또한 두터운 덕(德)을 계속 쌓아서 멀리 그리고 밝게 세상에 오래도록 펼쳐져서 \\ 이 글이 천백세(千百歲)가 지난 뒤에도 밝아서 \\ 행여나 손상(損傷)함이 없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로다.\\ \\ \_\_병진(丙辰)년 첫가을 선성(宣城) 이준규(李準規) 삼가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