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사랑묘명(從仕郞墓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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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從仕郞墓銘
公諱守平字彦銜姓黃氏系出平海國初開國功臣平海君 希碩於公爲七代祖也考通訓大夫行江西縣令任祖通訓 大夫行鎭海縣令允利曾祖通政大夫行禮曹叅議坤江西 公娶贈吏曹叅判行淸風郡守金士元女生公公天質敦厚 事親以誠睦族以和鄕黨宗族無一怨惡娶彰善大夫巨山 令女生一男三女男紐女長適林樗次適金鐩次適任唐春 川故鄕先塋在焉親戚居焉公亦居其地李氏歸寧于興城 公嘗往來不幸遘疾以嘉靖己酉二月二十九日/卒于興城 享年四十九安厝于古皐道里金午坐子向/之原李氏後公 三十年以萬曆戊寅九月十一日亦以疾沒/享年八十一葬 于公右傍銘曰一命纔及不滿其德作善降祥/後昆膺福


종사랑묘명(從仕郞墓銘)
 공(公)의 휘(諱)는 수평(守平)이요 자(字)는 언함(彦銜)이니, 성은 황씨(黃氏)요 계통은 평해(平海)에서 나왔다. 국초(國初) 개국공신(開國功臣) 평해군(平海君) 희석(希碩)이 공에게 7대조가 된다.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강서현령(江西縣令)을 역임(行)하신 임(任)이요, 할아버지는 통훈대부 진해현령(鎭海縣令)을 역임(行)하신 윤리(允利)요, 증조(曾祖)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예조참의(禮曹叅議)을 역임(行)하신 곤(坤)이다.
 강서공(江西公, 부친 任)이 증(贈) 이조참판(吏曹叅判) 청풍군수(淸風郡守)을 역임(行)하신 김사원(金士元)의 딸에게 장가들어 공을 낳았다.
 공은 천성이 돈후(敦厚)하여, 어버이를 섬김에 정성으로 하고 종족과 화목하게 지내니, 향당(鄕黨)과 종족(宗族) 가운데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창선대부(彰善大夫) 거산령(巨山令)의 딸에게 장가들어 1남 3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뉴(紐)요, 딸은 맏이가 임저(林樗)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김수(金鐩)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임당(任唐)에게 시집갔다.
 춘천(春川)은 고향으로 선영(先塋)이 있는 곳이요 친척들이 사는 곳이라, 공 또한 그곳에 살았다. 이씨(부인)가 흥성(興城)으로 근친(歸寧)을 갔는데, 공이 일찍이 그곳을 왕래하다가 불행히 병을 얻어, 가정(嘉靖) 기유년(己酉年, 1549) 2월 29일 흥성에서 별세하니 향년 49세였다. 고고도리(古皐道里) 금오좌자향(金午坐子向)의 언덕에 안장하였다.
 이씨는 공보다 30년 뒤인 만력(萬曆) 무인년(戊寅年, 1578) 9월 11일에 역시 병으로 별세하니 향년 81세였다. 공의 오른쪽 곁에 장사지냈다.

 명(銘)하여 이르되:
一命纔及 한 벼슬이 겨우 미쳤으나
不滿其德 그 덕에는 차지 못하였네.
作善降祥 선을 행하면 상서가 내리나니,
後昆膺福 후손이 복을 받으리라.
  (Claude 번역, Sonnet5, 2026/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