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원정기(慕遠亭記)
바다 동(東)쪽에 명산(名山)이 많으나 그 중(中)에서도 백암(白巖)이 가장 우뚝 솟아 흡사 구름과
하늘에 용(龍)이 서리고 범이 앉은 형세(形勢)로서 한 가지는 북(北)쪽을 뻗어나가 서로
서리고 굴절(屈折)하여 돌연(窃然) 고요히 마을이 생기니 그곳이 소대촌(蘇台村)이다. 마을 남(南)쪽 약(約)
10리허(十里許)에 신령(神靈)한 온천(溫泉)이 있으니 이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有名)하다. 그곳은
기성(箕城) 씨(氏)의 자리잡은 터전이다. 그 후(後) 여러 어른들이 선조(先祖)의 업적(業蹟)을 빛내기 위(爲)하여
정자(亭子)를 건립(建立)하니 때는 을사년(乙巳年) 봄이다.
자손(子孫)들이 모든 힘을 모아 공사(工事)를 착수(着手)하여 다음해 낙성(落成)을 하였으니
그 규모(規模)는 6가3동(六架三棟)이다. 좌우(左右)에 방(房)이 있고 가운데 조그만
마루가 있으니 이름하여 가로대 모원(慕遠)이라.
매년 이에 모여 재목(齋沐)를 하여 제사(祭祀)를 들이고 자손(子孫)들이 이에 모이며 화목돈독(和睦敦督)을
다짐하고 이에 모여 글을 읊고 배애(盃𢜺)을 푸니 이에 산(山)은 높은 것을 더한 것 같고
물은 맑은 것을 더한 같으며 구름과 달과 고기와 새들이 한층 빛을 자랑하며
거(居)한 자(者) 평안(平安)히 생각(生覺)하고 지자(至者) 따뜻하게 눈을 식히니 이는 곧 정자(亭子)의 큰 자랑이라.
옛날엔 소대(蘇台)에 소일한 모든 분(分)들이 문장(文章)과 덕행(德行)이 당세(當世)에 뛰어나서 임천(林泉)에 수
없이 머물러 세상(世上)을 맞추도록 그 청고(淸高)한 정조(貞操)가 밝고 평안(平安)하여 진구(塵臼)밖으로 형출(
迥出)하여 원숭이와 학(鶴)이 서로 맹서(盟誓)하고 풀과 나무가 향기를 같이하니 이는 곧 정자(亭子)의
고사(故事)라.
어느 날에 황군(黃君) 경호(景浩) 진화(鎭華) 석곤(錫坤) 등(等)이 찾아와서 나에게 모원정기(慕遠亭記)를 요청(要請)하기로
그 분(分)들은 오래 전(前)부터 잘 아는 처지(處地)라 서로 잊을 수 없어 오래오래
생각(生覺)한 결과(結果) 조선(祖先)을 위(爲)한 이념(理念)이 충만(充滿)함으로 전일(傳日) 좋고 좋은 그곳에서 서로 예(禮)를
갖추어 그 근본(根本)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이를 말함이라.
시대(時代)의 조류(潮流)에 따라 질긴 것이 무너지고 예(禮)가 무너져서 조상(祖上)을 추념(追念)한 것을 마치
가는 털을 보듯하니 맺힌 것을 끊고 바람에 나부끼는 죽대같이 하여 혹(或) 회수(淮水)를
건너온 귤(橘)같이도 하며 혹(或) 다른 것을 넘어 가는 담비와 같이 하여 능(能)히 그 선조(先祖)의
업적(業蹟)을 보존(保存)한 자(者)가 누구일 것인가.
소대(蘇台)를 지날 적에 마을이 순박(淳樸)하고 풍속(風俗)이 후(厚)하여 선인(先人)들의 가르침을 받고 선인(先人)의
글을 읽으며 선인(先人)들의 밭을 갈아 나이 많은 이나 어린이나 높은 이나 친(親)한
이들이 생업(生業)에 안도(安堵)하며 그 뜻을 같이 하여 할아버지는 손자(孫子)에게 전(傳)하고
아버지는 자식(子息)에게 전(傳)하여 대대(代代)로 바꾸지 아니하는 것이 곧 모(慕)라 장차(將次) 천추만세(千秋萬歲)를
하루같이 할 것이다. 시전(詩傳)에 말씀하시기를 영원(永遠)히 효(孝)를 생각(生覺)하라 하셨으니 효사(孝思)가
얽히면 초당(草堂)이 막힌 것이니 사악준미(四嶽峻嵋)도 석은 곳이 높다 제봉(諸峰)이 나립(羅立)한 것은 아손(兒孫)과
같다.
구양수(歐陽修) 씨(氏)의 기(記)에 말하기를 바다 구름의 남(南)쪽 두원에 허씨(許氏)의 세대(世代) 먼 모(慕)를 생각한
것과 같다 하였으니 만약(萬若) 금일(今日)에 기성(箕城) 씨(氏)를 논(論)한 즉(則) 서로 이러이러 한 자(者) 마치
제봉(諸峰)이 나립(羅立)한 것과 같으니 멀리 모(慕)를 생각하는 것이 거의 허씨(許氏)를 사양할 바 없다.
내가 그 세덕(世德)과 가풍(家風)을 들은지 오래이다. 그럼으로 붓을 잡아 정자(亭子)앞에 탁명(托名)하노라.
세(歲) 신해(辛亥) 중추절(仲秋節) 영양(英陽) 남병기(南炳基) 서(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