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진중간보서 (한글 추가 및 띄어쓰기)
오직 생민(生民)은 기(氣)로써 생(生)함에, 기(氣)는 즉(則) 족원(族源)이라
동기(同氣)가 분생우분생(分生又分生) 즉(則) 동종(同宗)이오,
동종(同宗)이 번연즉성족(繁衍則姓族)임에 그 성족(姓族)이
영세존속(永世存續)의 반석(磐石)은 필수(必修) 족보(族譜)니,
고(故)로 천하지만성(天下之萬姓)이 소중자야(所重者也)라,
경호수보자야(競乎修譜者也)라 요지(要旨)는 근원(根源)을 소명(昭明)하야
승세광영책(承世光榮策)이니라
연이(然而)나 인간세상(人間世上)에 조성씨족(肇姓氏族)보다
선우유보(先于有譜)려면 세세사적(世世事蹟)이 실록(實錄)이려니
오호(嗚呼)라, 조성(肇姓)이 수수천재(數數千載)오,
아족역황제헌원씨(我族亦黃帝軒轅氏)의 기(기)를 이어 육종(陸終)씨께서
조성황(肇姓黃)이러니 어언(於焉) 4천여년(四千餘年) 성족(姓族)이
무려 10대성(十大姓) 중(中) 제8위(第八位)인 반여억(半餘億) 한국(韓國)의
성족(姓族)도 제16위(第十六位)인 60여만(六十餘萬)이라는대
한황동도기(韓黃東渡紀)가 신라대(新羅代)라는 사실(事實),
일왈(一曰) 한(漢)이오, 일왈(一曰) 당(唐)이니
6백여년(六百餘年)의 차이(差異), 그 중(中) 하나(一)은 허(虛)오, 하나(一)은
진(眞)이라.
지후세(至後世)하야 각기(各己) 가첩(家牒)에 세대(世代)를
수록(修錄)이나 이 역시(此亦) 오(誤)도 있고 정(正)도 있어
상호(相互) 주장(主張)이 다름에 대동합성(大同合成)이 영조(英祖) 대(代)에
인출(印出)이나 쾌(快)치 못함은 묘연(杳然)한 태고사(太古事)를
어떻게(如何) 오차(誤差)가 없을손가. 선세(先世)에 기(旣)히
신화(神話)로 와전(訛轉)을 신적(信蹟)하여, 한(漢)으로써
숙종(肅宗) 연간(年間)에 입비(立碑)러니, 세속제문적(世俗諸文籍)이
방한(傍漢)이라. 한(漢)으로써 전세상(全世上)에 전파(轉播)나
개판보(開版譜)에 운(云)하되 한조(漢朝)에는 학사지직(學士之職)이 없음이나
고자문학지사(古者文學之士)를 학사(學士)라 이르렸든가 의심(疑心)이든 중(中)
순조(純祖) 연간(年間)에 상고(上古)로 세전가첩(世傳家牒)이
정선(旌善)에서 출현(出現), 그 첩(其牒)에 왈(曰) 당조(唐朝)로 명백(明白)하야
선고(宣告) 각읍(各邑)하야 제종(諸宗)이 합모(合謀)로
역철이정(力綴而正)함이 고지한(古之漢)을 이개이당조(而改以唐朝)하야
이래(以來) 세세수보(世世修譜)에 반포(頒布)라, 우(又)는 갑술관향보(甲戌貫鄕譜)
때(時) 한남(咸南) 이원(利原)에서 소출(所出)인 만성보(萬姓譜) 중(中)
또한(亦) 당조(唐朝)임이 재확인(再確認)뿐 아니라,
시대적(時代的) 환경(環境), 국제적(國際的) 조류(潮流) 또는
한당제도(漢唐制度)며 이민족(異民族)의 우거편의차세대(寓居便宜此世代)의
봉작(封爵) 지명(地名) 등등(等等)이 신라(新羅)
통일(統一) 대(代)임을 가(可)히 추념(追念)케 하노라.
거년(去年) 일족(一族)이 탁어(託於) 중국(中國) 황천(潢川)
황성연구회(黃姓硏究會)의 회신문(囘信文)
'한국황씨시조고증천견(韓國黃氏始祖考證淺見)' 역시 당대초(唐代初)로
견해야(見解也)라 연이(然而)나 근세(近世)에도 변란(變亂) 중(中)에
실기계첩(失其系牒)하고 황차(况且) 남북(南北)이
세격불통(勢格不通)이라 미지선계지족(未知先系之族)이
왕왕(徃徃)하니 또한 무궁지통(無窮之痛)이라
욕심어근원(欲尋於根源)은 고금(古今)이 불이(不異)오,
후호(後乎)아.
통합지여(統合之餘)에 거북종친(居北宗親)을
소명승사(昭明承嗣)일는지 심구의(甚懼矣)라.
나(余)는 본시(本是) 멸식(蔑識)하여 종유사(宗有司)에 부당(不當)이오나
외람(猥濫)히도 자소이래(自少以來) 무술(戊戌) 병진(丙辰) 양보(兩譜)와
우금수역중임(又今修亦重任)은 첨종장(僉宗丈)의 배려(配慮)이오나
과분지의(過分之儀)오 향년(向年)의
평해군(平海君) 불천지묘(不遷之廟) 중건일(重建日)에는
각향(各鄕) 첨종(僉宗)을 루루심려(屢屢心慮)드려 송구의(悚懼矣)라.
지우(至于) 첨위(僉位)의
지성(至誠)에 숙연(肅然)이옵고 향후(向後) 또한(亦) 묘당보존(廟堂保存)에
성력(誠力)을 구(救)합니다.
금차(今次) 수보(修譜) 운운(云云)은 기(旣)히
수년전(數年前)부터나 시기상조(時機尙早)로 연연작(延延昨)
기묘(己卯) 가을(秋) 평해군묘(平海君廟) 전사(奠祀)를 계기(契機)로
발기(發起), 각문(各門)에
통고(通告)나 기지간(其之間)에 혹(或) 수문보(修門譜)로 인(因) 누단(漏單)이
유감야(遺憾也)라. 동파지친(同派至親)임에 합성돈족(合成敦族)이
당연(當然)하와 권고(勸告)나 종불여(終不與)니 여하(如何)리오.
월익계춘(越翌季春)부터 편철(編纂)에 임석(臨席) 1여년(一年餘)에 완성(完成)을
목전(目前)에 두고 회고(囘顧)러니 임원(任員) 제현(諸賢)의 고로(苦勞)와
첨종장(僉宗丈)의 협찬지도(協贊指導)로 막중대사(莫重大事)
팔소기(八所期)에 달(達)한 바니 감지덕지의(感之德之矣)로다.
당우(當于) 경제난국(經濟難局)하야 춘천(春川) 장(丈) 윤근(允根) 보(甫)의
장재력(掌財力)에 제종(諸宗)이 합력일관(合力一貫)으로
석일미흡(昔日未洽)했든 묘원(廟院)을 보완(補完) 찬란(燦爛)히 세전(世傳)케
됐음은 천륜(天倫)인
보지선령(報之先靈)이오, 본지후예(本之後裔)니라.
석일(昔日) 선현(先賢) 등(等)의 박문다식(博文多識)으로 오황미적(吾黃美蹟)을
이비어서술(已備於敍述)인 바 졸손(拙孫) 불감계서(不敢繼序)나
전말(顚末)과 소견(所見)을 략기(畧記) 구서지하(舊序之下)에 부(付)하노이다.
단기4333년 세 경진(庚辰) 계동(季冬) 하한(下澣) 후예손 인모(麟模)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