通德郞 壽村 黃一漢公 墓碑

통덕랑 수촌 황일한 공 묘비(通德郞 壽村 黃一漢公 墓碑)
 王輪山 雉洞에서 通政府君 諱紐公을 위시한 先兆와 같이 계시는 壽村은 本貫이 平海이고 諱가 一漢、字가 孟陽、壽村은 雅號이다。
 一七五二年에 翊衛司 翊贊、木川縣監을 歷任하시고 湖南實學의 泰斗이신 考 頤齋 諱胤錫公과 妣 昌原丁氏의 長男으로 出生하여 一七九八年 四十七歲로 考終하시기 까지 文翰이 出衆하고 孝友로 이름이 있었다。 五歲부터 祖考이신 晩隱 諱壥公에게 受學한후 文藝가 漸進하여 聲譽가 있었다。 正祖二十二年 道臣으로 文學、華閥 二十餘人을 選拔하게 할 때 九經條問에 六十二條로 條對하여 道臣이 馳啓하였지만 是歲에 長逝하여 恩典을 받지 못하였다。
 遺稿 二卷이 越松世稿에 收載되어 傳하지만 이는 一九〇九年의 仙里火變중 燒失을 僥倖히 면한 殘卷이다。 墓는 바로 이 王輪山 雉洞의 巽坐이 다。 前配 羅州林氏라 一女를 두어 扶安人 金基洨에 出嫁했고 後配 文化柳氏와는 秀瓊、秀瑛의 二男을 얻었다。 이제 公의 二百週忌를 앞두고 七世孫 炳茂가 崇碑를 세우면서 碑文을 요청하기에 欽仰하는 마음으로 草하고 銘辭를 달아둔다。
 文藝와 道學으로 이름을 떨쳤고 이어온 英慧를 드높혔으니
 後承들도 이를 이어받아 더욱 昌盛하리라。
  一九九六年 봄
  六世孫 元九 삼가짓고
  八世孫 邦衍 삼가쓰고
  七世孫 炳茂、炳寬 삼가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