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0-003

문서의 이전 판입니다!


동종인족보서(同宗人族譜序)

 한문 원문 보기

 한문 원문 보기

 同宗人族譜序
古者族必有譜譜者譜其族之源派也譜必有序序者序其 譜之顚末也吾東方表表巨姓莫不有譜有序譜序之於吾 東亦古也吾黃氏出於平海舊爲國著姓而獨於譜與序閥 焉爲子孫者僅不失宗系世次而至於旁枝遠派則無所考 而識焉自吾始祖檢校公仁溫以後連五代皆有官職而位 望顯於世又其下四代亦皆擢文科登顯仕而明公鉅卿前 後相望爾時未經無一家相傳之譜而中年屢經亂離舊家 靑氊蕩失於兵燹流𥦻之中其序譜之亡失而無傳無足怪 也吾宗人之所痛恨其有亡乎吾再從兄黃煬晦叔甫慨然 於斯志欲修緝族系以幸其終不至於珉珉也乃轉借他譜 之連派者而傳寫之尋問古老之流傳者而附錄之至於往 尋籍卿遍訪姓族聞其所未聞見其所未見於是自源而究 其派由根而達乎枝分䟽代系合爲一卷自吾九代祖判書 公有定以上世代荒邈文籍無徵故只錄其世次職名而事 跡之載國乘者文章之膾人口者隨聞見剳爲別錄以弁于 卷首自八代祖詮以下則其內外根派特記之詳焉卷秩雖 不多而旁近六七邑表表名族盖莫非吾祖先之苗裔而散 處他道遠邑亦多噫吾祖先積德毓慶之流及於無窮者亦 可想見於此矣去年秋晦叔兄袖此一部來示余且曰吾之 於此譜留念非不久致力非不勤矣而耳目不廣緝錄甚尠 誠可恨也然若使吾宗人及爲吾子孫者不替其事繼而修 之則或可由此而成完譜矣此豈非吾與子之所共勉也子 其爲一語以序之余辭不獲謹頷之退則鄭重而不敢下筆 已十有餘朔矣兄之懇至再至三而不已則亦不敢終以不 文辭於是乎謹序其成譜之顛末書之卷尾以歸之遂膽寫 一本莊于家且念先世累代墳塋未能皆有表誌深恐久遠 之後子孫有不識其某祖某位塋故謹列其墓山之名號地 面及坐向蓐次錄于後以備吾子孫之取覽云
  丙申閏五月既望族末成均典籍黃中衍謹序


같은 종인의 족보 서문(同宗人族譜序)
고려 충렬왕이 원나라 조정에 들어갔을 때 익대공(翊戴功)이 있어 현(縣)을 승격시켜 평해군(平海郡)으로 삼았다.
○ 삼가 살피건대, (고려) 충렬왕이 세자로서 원나라에 들어갔다가 왕이 된 후 열한 차례 원나라에 들어갔으니, 여기서 말한 익대공은 반드시 덕우(德祐) 원년에 왕이 원나라 황제의 딸(제국대장공주)을 왕비로 맞이하고 즉위하여 동환(東還, 동쪽으로 돌아옴)한 때일 것이다. (이는) 원(元) 지원(至元) 12년(1275년)이다. 지원 12년 을해(乙亥)로부터 대명(大明) 홍무(洪武) 25년 임신(壬申)에 우리 태조께서 나라를 얻어 즉위하시기까지를 통틀어 계산하면 119년이 된다.

 또 살피건대, 익대(翊戴)의 공이 있었다면 반드시 군(郡)에 봉해지고 훈작(勳爵)의 품계가 있었을 것인데, 다만 첨의평리(僉議評理)라 칭하고 현을 승격시켜 군으로 삼았다고만 하니, 이는 또한 반드시 (조정에) 아뢰어 청하고 윤허를 받는 절차가 있었을 것이나, 다만 “현을 승격시켜 군으로 삼았다”고만 하고 국승(國乘, 국사國史)에 기록되지 않고 군지(郡誌)에도 실리지 않았으니, 전해 들은 바 없는 아픔이 어떠하겠는가.

  여일(汝一)이 삼가 적다.
  (Claude 번역)

0-003.1783813477.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6/07/12 08:44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