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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보서(辛亥譜序) (1851년) -돈(墩)
신해보서
우리 東方禮儀之國에 사는 士大夫집들로서 族譜없는 집이 없으니 그 族譜라는
것은 위로 祖宗의 根本을 研究하여 밝히고 아래로 子孫의 所自出을 밝히는 것
이다. 따라서 族譜를 만들지 목하면 祖上을 追慕하는 誠意가 不足하고 宗族間에
敦睦하는 義意가 없게 될 것임으로 仁人君子가 반듯이 이것을 急先務로 하여
族譜를 作成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컨대 우리 平海黃氏는 처음 學士公이 바다
를 건너 東方平海의 月松에 上陸하신 後로 一千八百餘年의 歲月이 지났고 新羅
高麗以來名公巨卿과 文章德業이 代代로 끊이지 않아 歷史에 항상 빛났다.
구러나 世系와 族牒이 傳해 오지 목하고 文獻의 憑據가 없어서 錦溪海月兩先生
의 博學多聞한 知識으로도 오히려 詳審치 못하여 찾고 걷우고 모아서 겨우 草
譜만 撰成하고 오직 後人에게 바라는 바 있더니 지난 庚寅年에 처음으로 板刻
한 族譜를 豊基錦陽에서 編成하여 기리 傳承하게 하였음은 그 追遠敦宗之誠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後辛卯年에 春川의 承旨燾氏가 자기의 漏
譜 즉 庚寅譜에 빠져 있음을 理由로 다시 完譜를 제작하였으나 혹 疏漏한 것과
謹嚴한 禮統을 失醜한 것이 있어 우리 黃氏의 平海로 本貫을 삼은 자 이를 遺
恨으로 여기는 이가 없지 않더니 庚戌年 가을에 다시 修譜할 것을 계획하였으
나 三派子孫이 合譜를 도모하기가 어려울 듯함으로 이에 檢校公評理公兩派는
豊基에 譜所를 設置하고 大匡公派는 清安에 譜廳을 設置하여 各祖其祖하고 各
派其派하였으나 오직 檢校公支派와 海月公支派의 子孫이 어느 누구는 후히 보
이고 또 누구는 엷게 보이겠는가 가항차 海月公宗孫錫五氏가 辛亥譜할 뜻을 書
札로 懇請한바 있고 後人은 詳考해 보기 바란다.
原稿印版에 붙이고져 윗사람에게 報告할때 宗人들이 나에게 序文을 부탁함에
내가 譜所에 오래 있어 대략 그 顛末을 아는 고로 이것을 卷末에 붙여두는 바
이다.
숭정(崇禎) 기원후(紀元後) 4(四) 신해(辛亥) 중춘(仲春) 하한(下澣) 예손(裔孫) 돈(墩) 근지(謹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