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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海黃氏從仕郎公派世譜 序
蘇洵의 宗譜法에서 導源한 族譜가 우리 나라에서는 李韓中葉인 十六世紀부터 漸行하여 戶戶에 乘이 있고 氏氏마다 譜가 있어 왔다. 門閥이 形成되면서 祖上을 높혀 밝히고 그 後裔임을 自覺하여 矜持를 갖음과 동에 親戚間의 紐帶를 敦篤하게 힘쓰기 위함이었다.
여기에서 麗韓 때부터 宦業과 文章이 이어왔던 우리 黃氏도 麗朝 때부터 譜牒이 있어 왔겠지만 子孫들이 散居하면서 歎惜하게도 繼代가 荒樸해지고 文籍이 無徵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龜岩傍祖 諱載重께서 李韓 肅宗癸未(一七〇三)에 京兆、春川、淸安등의 宗親등과 協議하여 乙酉譜(一七〇五)를 修譜하게 되었다. 그러나 頤齋先祖 諱胤錫께서는 英祖庚午(一七五〇)에 家傳舊牒과 先代의 遺稿、遺跡 외에 高麗史 龍飛御天歌등의 官邊書와 請家譜牒을 詳考하여 學士公 諱洛을 鼻祖로 하고 叅贊 平海君 諱淑卿을 始祖로 삼는 世系를 確定하였다. 이러한 先系의 考徵結果는 乙酉年(一七六五)에 春川의 有河宗丈에게 答信하면서 詳論한 理論을 參考하면 分明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十六世紀 前半、春川에서 興城에 南下하여 卜居하기 시작한 從仕郎 諱守平의 從仕郎派 後裔들은 南中故族으로 學行을 이어오면서 丁酉譜(一八九七)와 甲申譜(一九四四)등을 修譜할 때 頤齋先祖께서 考定해 놓은 前揭 世系를 敬遵하여 왔다.
그런데 丙辰年(一九七六)에 平海宗親의 發의로 平海、豊基、春川、清安、高敞 등지에 分居하고 있는 宗親들이 大同譜를 修纂하면서 始祖 平海君 諱淑卿을 罪悚스럽게도 春川派에서 주장하고 있는 參議公 諱致祖의 一諱라고 한 일이 있었다.
물론、우리나라 族譜는 十六世紀부터 普及되면서 몇 家譜를 除外하고는 先代의 系譜에 模糊한 點이 적지 않음은 어느 氏族을 막론하고 모두 認知하는 狀況이기에 繼代가 多枝的일 수 있으나 頤齋先祖께서 明確하게 審定해 놓은 世系를 修正할 만한 反證이 없는 한 丁酉、甲申譜의 前例로 回歸함이 千萬妥當하다고 믿는 바이지만 宗親들과의 紐帶를 疏忽히 할 수 없다는 門中諸彦의 意見도 있어서 丙辰大同譜의 世系를 仍襲하되 始祖 平海君 諱淑卿만은 丁酉、甲申譜의 世系位置로 삼기로 했다.
이 壬午譜는 우리 黃氏의 자랑스러운 來歷을 정리해 놓은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從仕郎派 後裔들이 祖上의 훌륭한 行績을 거울삼아 앞으로 더욱 바람직한 宗族成員이 되도록 勉勵하는 새삼스러운 機緣이 될것이다.
公曆二〇〇二年 壬午正月
裔孫 文學博士 元九 謹序
c4-021.1783843023.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6/07/12 16:57 저자 ssio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