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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慶州黃氏 始祖 諱 士清 七世孫인 致弘祖는 通政大夫와 折衝將軍을 歷任하셨고
八世孫인 基錫叔은 宮內府 主事를 歷任한 바에도 不拘하고
찾아보시지도 아니하시고 單獨으로 光武十一年에 慶州로 編纂한 것은
理解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族譜를 소중히 保存하던 중 九世孫인 海哲이 苦心하던 중
마침 議政府市宗親會가 發足될 當時 機會가와서 東西古今을 巡訪하며 探問한 바
慶北 蔚珍 越松亭에 모신 始祖 學士公 洛字 할아버지 時祭에 參席
癸亥年 十月中丁日인 僉宗族長들의 協助로서 찾던 중
大邱 同源閣都有司인 慶南양산 黃宇贊 族長의 도움으로
檀紀四三○九年에 編纂된 丙辰譜 第一卷에서 찾아
議政府市로 持叅한 것을 보니 이것이 찾던 先祖의 諱 士淸의
어른이 않이냐고 묻자 海哲은 야심 속에 다음해인
檀紀四三一七年三月十五日인 大邱 同源閣 時祭에 參席하여 問議한 바 있습니다
그리하여 仝 甲子年十月丁日에 다시 時祭에 參席 越松에 오신
族長들에게 問議하던 중 慶北 盈德郡 창수면 상계二洞에 계신
황장구 族長과 함께 가 본 결과 二百年前 族譜에도 諱 士清만 登載되었고
後孫은 無后로서 不得已 宗親會와 合議의여 國立圖書館에 가서 閱覽한 바
亦是 諱 士淸만 登載되었고 後孫은 無后로서 海哲은 分明한 先祖임을 確證하고
門中에서 三百餘年前에 慶州로 移貫한 것을 다시 平海로 할 수 있느냐고 反問함으로
不得已 本貫을 慶州로 계승키로 하였다
忠敬公 後孫인 鸞의 할아버지 正郞公派 五世孫인 諱 進雲의 次子이신
諱 士淸 先祖는 壬辰亂 兵禍로 당시 平海에서 慶州로 移貫된 것이
틀림없다고 確定됨으로 이 族譜를 再編纂하여 後孫에 傳하는 바이다
後孫 海哲 謹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