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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군수(平海郡守)에게 올린 청원문(請願文)
토박이들(化民)1)
황순구(黃錞九)2),
황재연(黃在淵)3),
황정(黃瀞)4)
등은 군수님(城主)5)께 글을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하니 저희들(民等)6)의 선조인 한(漢)나라
학사공(學士公) 휘(諱)7)
낙(洛)은 한(漢)나라 광무(光武)황제 건무 4년(建武 4年)8)(=서기 28년, 신라 유리왕 5년)에 구대림(丘大林) 장군(將軍)과 같이 동국(東國)(=신라(新羅))으로 오셔서 우리 군(本郡) 월송(月松)에 사셨으니 팔도(八道)(=전국(全國)) 기성(箕城)(=평해) 황씨(黃氏)의 시조(始祖)이십니다.
신라(新羅) 때 부터 고려(高麗)를 거쳐오는 동안에 누차 난리를 겪어서 묘소(墓所)를 실전(失傳)했으므로 옛터(遺墟地)에 단을 설치하고(設壇) 비석(碑石)을 세우고, 본 고을(本邑)에 사는 자손(子孫)들이 매년 시월(十月) 중정일(中丁日)에 향(爇香)9)을 피우고 제사(祭祀)를 지낸 지가 이미 몇 백년이나 되었으며, 상향축문(常享祝文)에 이르기를 “중조옥패(中朝玉佩10) 부해이동(桴海而東)이니 극개극창(克開克昌) 만세위종(萬世爲宗)이오”, 즉 “중국(中國) 조정(朝政)에서 벼슬하다가,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동(東)쪽으로 와서, 가문을 여시고 번창하게 하였으니, 만세(萬世)의 조종(祖宗)입니다”라고 했으니, 후손(後孫)으로서 추모(追慕)하고 존경(尊敬)함이 당연합니다.
또 다행스럽게도 바닷가의 모래톱(沙汀)11)에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빽빽이 울창해서 설단(設壇)한 비각(碑閣)의 울타리(垣墻)12)가 비바람(風雨)의 피해(被害)를 막아서 다년간 무너지는 걱정이 없었는데 근래(近來)에 와서 푸른나무의 붉은 껍질과 긴 가지의 많은 솔잎이 점점 도끼와 낫(부근(斧斤) )으로 침해(侵害)를 입어서 민둥산에 이르렀습니다. 저희들(民等)이 보호(保護)하고 있는 선조(先祖)의 단(壇)과 비각(碑閣)은 오직 이 소나무가 유구(悠久)하게 있어야만 하는데 그 형편을 어쩔 수 없는지라 지금 생각하니 송추(松楸)13)
주변을 금호(禁護)(=벌목금지)하여 비바람(風雨)에 시달리는 근심을 방비(防備)하는 방법 뿐 인지라 다행하게도 군수님께서 선정한 혜택(惠澤)으로 특별히 공문(公文)을 정중하게 내려 보내어서 영구(永久)히 금호(禁護)의 방법(方法)을 준수(遵守)하도록 해주시기를 우러러 아룁니다.
엎드려 비노니 상세히 살펴보신 후에 지역(地域)의 경계(境界)를 전후좌우(前後左右)에 거리를 정(定)해서 보호(保護)하는 뜻을 완문(完文)14)으로 증명(立旨)15)하셔서 누대로 내려온 잔손(孱孫)16)으로 하여금 선단(先壇)의 지역(地域)을 보존(保存)하도록 해주시기를 천만번 비오니 하교(下敎)해 주십시오.
군수님의 처분處分을 바랍니다.
갑신(甲申)(=1884년) 윤(閏)5월 일
황명구(黃明九), 황재운(黃載運), 황 간(黃 澣), 황종운(黃鐘運).
황 준(黃 濬), 황교욱(黃敎旭), 황길운(黃吉運), 황 수(黃 洙),
황천운(黃千運), 황경희(黃景禧), 황응신(黃應信), 황 형(黃 泂),
황주하(黃周河), 황계후(黃季厚), 황병칠(黃柄七), 황교영(黃敎英),
황영식(黃永湜), 황우현(黃禹鉉), 황영창(黃永昌), 황두상(黃斗祥),
황지해(黃之海), 황효엽(黃孝葉), 황석해(黃錫海), 황종팔(黃鐘八),
황두한(黃斗漢), 황성해(黃成海), 황윤필(黃允弼), 황병하(黃炳河),
황사중(黃泗中), 황성하(黃聖河) 등(等)
완문은 관부에서 일방적으로 발급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개는 당사자 또는 관계 단체의 진정 또는 청원에 의하여 발급하게 된다. (한국민족문화백과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