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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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08 [2025/05/19 12:06] – 121.166.63.129 | a-008 [2025/05/26 10:02] (현재) – ssio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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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진대동보서(庚辰大同譜序) (188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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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庚辰譜序 | + | \_庚辰大同譜序\\ |
- | 凡人本乎祖猶木之根水之源也木自根而達乎枝水由源而沿手派矣況人豈有 | + | 譜以著代昭孝也合族修睦也遠者易忘關而或略則豈孝睦之道也哉吾氏自學士公 |
- | 本而不究其苗也有後而不明其先乎是以士之有譜所以明先系之何自而某爲 | + | 舟海而東盖幾二千祀世級派系不免有杞宋之歎譜不傳故也肆惟我先祖錦溪先生 |
- | 某祖也譜之有序所以究後承之何由而誰爲誰孫也吾姓之貫箕而著國與我東 | + | 始爲裒輯草譜而海月先生及南塘公亦各有所修皆尙未完逮我高祖考山南梧柳伯 |
- | 之名家世族其德業風節非無騈美匝輝而累經兵燹譜乘之莫傳固其宜也以錦 | + | 仲公乃據諸舊本而博稽詳訂正其誤補其略以檢校評理大匡公第爲兄弟三派其諸 |
- | 海兩先生之博聞草輯而未詳傳疑繼有南塘公所序之譜各藏未刊者久矣粵庚 | + | 漏派之有籍可據者附錄以待他日合而一部始克刊行此庚寅之大同譜也其後八十 |
- | 寅錦翁之胃孫山梧伯仲公與吾慕古窩曾大父刱設譜所於豊之錦陽互證胥校 | + | 年庚戌我先子紹而修之又得啓沃公派金吾公以下八世信蹟始見則先祖惜無嗣之 |
- | 辨訛質疑壽其傳而成其完鋟出二卷則其述先貽後之功果何知而其後辛卯壽 | + | 歎雖未識其何由然默會當時之事意必有微晦之然者歟盖昔之闕而今存則幸矣但 |
- | 春承旨令宗更修譜於洛之華寺輪通諸邑活印六冊而以長派之不應爲欠矣去 | + | 以始合者復分而爲派譜此先子之遺恨也宗議由是不廢申自困敦之歲而遠邇僉同 |
- | 庚戌秋山南之嗣孫憲周氏先告各邑與遠邇諸宗合謀並力綴其遺而正其謬古 | + | 於是族大父範鱗氏再從叔顯周氏與平海宗瀞氏幹其事定有司收單載工設所於錦 |
- | 之漢學士今據信蹟而改以唐朝則其眞 | + | 陽以初重刊皆於此成序系紀蹟率由舊揆而舊所附錄之派陞系原譜遵先訓也復有 |
- | 䧹 | + | 新入者置之附譜亦竣後之志也舊有凡例而今又別立派而復合也首屠維跨上章而 |
- | 眞 | + | 告訖總九卷嗚呼竊惟學士公子孫宜不止此而上世之文獻不幸無徵則無如之何也 |
- | 之顯晦亦有時而然者然以力綿而僅 | + | 所存各派之散處諸道者又不幸皆衰替而莫之相親也今也絶者繼漏者收分者合而 |
- | 成三卷猶未免率漏之歎各思有八路會同之意矣迺者豊宗範鱗宇鎭甫主幹其 | + | 爲全譜則百世而一統千里而同閈輕遠如浮雲疎遠若塗人漠然不可知者庶幾因此 |
- | 事每恨前譜之不廣定有司輪告於各道遠邑且遺貫邑愈徃勤督積有年所而間 | + | 而不至於忽忘也觀吾譜者可以油然生孝敬之心翕然興厚睦之風而門運之回泰亦 |
- | 値歲歉自至 | + | 將權輿於此矣豈非幸哉昔在盛時先父老之賢孝歷幾世積幾年而尙歎其難况乎以 |
- | 止且 | + | 今日氣數能成之於數期之間誰之勞哉此特由祖先積累之誠以遺我後人而僉宗老 |
- | 峿延拕矣今夏始與族從燾及瀞偕到則各處僉宗 | + | 之克承勤幹有以致之於此亦可見也詩曰聿修厥德無忝爾祖其斯之謂乎諸宗以不 |
- | 長湍禮浩慶州 | + | 肖爲錦溪宗嗣與聞斯役不揆僭越竊附一言以繼先子之後非敢曰有所述惟忝是懼 |
- | 䧹極平海在淵 | + | 旣以謝諸宗亦以勉後之慈孫云爾\\ |
- | + | \_\_歲庚辰秋九月後裔孫宇鎭謹序 | |
- | + | </ | |
- | 江陵炳淸 | + | </ |
- | 安弼欽 | + | \\ |
- | 已齊會而設役矣共閱幾朔叅互勘檢遂成幾卷印得若幹帙昔之未詳 | + | \_경진대동보서\\ |
- | 今得益詳後之傳疑先破其疑派系之多糢昭穆之易失暸然於開卷寓目之間有 | + | \_족보는 세대(世代)의 차서(次序)를 나타내고 효(孝)를 밝히고 친족들을 합치고 돈목 |
- | 若祖考儼臨雲仍傍列推之一本如枝之連根派之溯源雖世曠地遐之宗怳然合 | + | (敦睦)을 이루는 것이다.\\ |
- | 堂同席獲識講敦孝油然生風以之厚不讓蘇程之譜則庶不貧今日收族作譜之 | + | \_멀리 떨어져 살게 되면 잊어버리기 쉽고 빠뜨려 지기 쉬우며 혹은 생략되게 되나니 어찌 |
- | 意而告訖之夕譜廳之會宗以吾海月先祖卷弁有序且叅掌幹之任不可無一言 | + | 효와 돈목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 | 遂不敢辭而略敘顚末庸附於左 | + | \_우리 성씨(姓氏)는 학사공(學士公)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온 때로부터 거의 |
- | 崇積後五庚辰端陽節後裔孫冕九謹序 | + | 2(二)천년이나 되어 세대의 등급과 파(派)의 계통이 증거 될만한 증빙이 없는 한탄을 면할 |
- | [출처: 경진충경공파보(2001)] | + | 수가 없게 되었으니, 이는 족보가 전해지지 않은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우리 |
- | + | 선조인 금계(錦溪)선생이 처음으로 족보 초단(草單)을 수집하고, 해월(海月)선생과 남당공(南 | |
- | 경진보서 | + | 塘公) 역시 각각 꾸민 바가 있었으나 모두 완성을 보지 못하였는데, 나의 고조부인 산남 |
- | 무릇 사람이 조상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 나무의 뿌리와 물의 근원과 같은 것이다. 나무는 뿌리로부터 가지에 달하며 물은 근원으로부터 지류에 이르나니 하물며 사람이 어찌 근본이 있는데 그 싹을 생각지 않겠으며 후세가 있는데 그 선세를 밝히지 않겠는가? | + | (山南) 오류(梧柳) 형제분들께서 여러 구본(舊本)을 근거로 하여 널리 상고하고 상세히 |
- | 숭정후 5五 경진庚辰(1880) 단양절 후예손 면구冕九 근서 | + | 그 틀린 바를 정정(訂正)하고 그 생략된 것을 보충하여 검교(檢校), 평리(評理), 대광(大匡) |
- | [출처: 경진충경공파보(2001)] | + | 공이 차례대로 형제 3(三)파가 됨을 밝히고, 그 외 여러 누락된 파가 증거 될만한 적(籍)이 |
- | + | 있는 것은 부록(附錄)으로 남겨두어 훗날을 기다리게 하고, 합하여 한 부(一部)로 묶어 | |
- | 庚辰大同譜序 | + | 비로소 간행하니 이것이 바로 경인(庚寅, 1770(一七七○))년 본(本)인 대동보(大同譜)이다.\\ |
- | 譜以著代昭孝也合族修睦也遠者易忘闕而或略則豈孝睦之道也哉吾氏自學 | + | \_그 후 80(八十)년이 지난 경술(庚戌)년 (1850(一八五○))에 우리 아버지가 이어서 족보를 닦고, |
- | 士公舟海而東蓋幾二千祀世級派系不免有杞宋之歎譜不傳故也肆惟我先祖 | + | 또 계옥공파(啓沃公派)와 금오(金吾)공이 이하 |
- | 錦溪先生始爲衰輯草譜而海月先生及南塘公亦各有所修皆尙未完逮我高祖 | + | 처음에 읽어보니 선조가 후사가 없는 것을 탄식했는데, 비록 그 이유를 알지는 못하나 |
- | 考山南梧柳伯仲公乃據諸舊本而博稽詳訂正其誤補其略以檢校評理大匡公 | + | 묵묵히 당시의 일을 이해해 보건대, 생각키로는 반드시 무슨 희미하고 어두운 일이 있어서 |
- | 第爲兄弟三派其諸漏派之有籍可據者附錄以待他日合而一部始克刊行此庚 | + | 그러 했을 것이다.\\ |
- | 寅之大同譜也其後八十年庚戌我先子紹而修之又得啓沃公派金吾公以下八 | + | \_대개 옛날에 빠졌던 것이 이제 존속되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다만 처음에 합했던 것을 |
- | 世信蹟始見則先祖惜無嗣之歎雖未識其何由然默會當時之事意必有微時之 | + | 다시 갈라서 파보(派譜)로 삼았으니, 이는 우리 아버지가 남기신 한(恨)이었다.\\ |
- | 然者數蓋昔之闕而今存則幸矣但以始合者複分而爲派譜此先子之遠恨也宗 | + | \_종중(宗中)의 의논이 이것으로 연유하여 폐기되지 않아서 곤돈(困敦) 즉 丙子년(1876(一八七六)) |
- | 議由是不廢中自困敦之歲而遠邇僉同於是族大父範鱗氏再從叔顯周氏與平 | + | 으로부터 시작하여 멀고 가까운 일가들이 모두 같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에 대부 범린(範鱗)씨와 |
- | 海宗瀞氏幹其事定有司收單載工設所於錦陽以初重刊皆於此成序系紀蹟率 | + | 재종숙(再從叔) 현주(顯周)씨와 평해 종친 정(瀞)씨가 그 일을 주간하여 유사(有司)를 정하고 |
- | 由舊揆而舊所附錄之派陞系原譜遵先訓也復有新入者置之附譜亦竣後之志 | + | 족보에 실을 단자(單子)를 모아서 공사를 행할 장소를 금양(錦陽)에다 설치하고 초간(初刊), |
- | 也舊有凡例而今又別立派而復合也首屠維跨上章而告訖總九卷鳴呼竊惟學 | + | 중간(重刊)을 모두 여기에서 간행하였으며, 이어서 기적(紀蹟)을 모두 옛 계획대로 말미암아 |
- | 士公子孫宜不止此而上世之文獻不幸無徵則無如之何也所存各派之散處諸 | + | 구보(舊譜) 부록(附錄)에 있던 파(派)를 원보(原譜)에 올려서 계통을 이었으니, 이는 선대의 |
- | 道者又不幸皆衰替而莫之相親也今也絶者繼漏者收分者合而爲全譜則百世 | + | 교훈을 따른 것이다.\\ |
- | 而一統千裏而同閈輕遠如浮雲疎遠若塗人漠然不可知者庶幾因此而不至於 | + | \_다시 새로 들어온 사람이 있으면 부록(附錄)의 보책에 두었으니 이는 후일을 기다려 |
- | 忽忘也觀吾譜者可以油然生孝敬之心翕然興厚睦之風而門運之回泰亦將權 | + | 뒷사람의 일로 맡긴다는 뜻이다.\\ |
- | 輿於此矣豈非幸哉昔在盛時先父老之賢孝歷幾世積幾年而尙歎其難況手以 | + | \_옛날에는 범례가 있었는데 이제는 별도로 파를 갈랐다가 다시 합쳤다. 제일 먼저 도유 |
- | 今日氣數能成之於數期之間誰之勞哉此特由祖先積累之誠以遠我後人而僉 | + | (屠維, 기묘년 1879(一八七九))에 시작하여 상장(上章, 경진년 1880(一八八〇))에 넘어와서 마쳤으니 모두 아홉 권이 되었다.\\ |
- | 宗老之克承勤幹有以致之於此亦可見也詩曰聿修厥德無忝爾祖其斯之謂乎 | + | \_아! 슬프도다.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학사공(學士公)의 자손들이 마땅히 여기에 그치지 |
- | 諸宗以不肖爲錦溪宗嗣與聞斯役不揆僭越竊附一言以繼先子之後非敢曰有 | + | 않고 더 많을 것이나 상대(上代)의 문헌이 불행하게도 증거를 댈 수가 없으니, 어찌할 수가 |
- | 所述惟忝是懼旣以謝諸宗亦以勉後之慈孫雲爾 | + | 없는 일이구나. 남아있는 각 파가 여러 도에 흩어져 거처하는 사람들이 또 불행하게도 모두 |
- | 歲庚辰秋九月後裔孫宇鎭謹序 | + | 쇠잔하여 서로 친근히 지낼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단절되었던 자를 이어주고 누락된 자를 |
- | + | 거두고 갈라져 있던 자를 합하여 완전한 족보를 만들었으니, 백 대가 하나의 계통으로 되고 | |
- | (번역문) | + | 천리나 되게 멀리 사는 사람들이 한 마을에 사는 것과 같이 되었다. 종친간에 가볍게 보고 |
- | 족보는 세대世代의 차서次序를 나타내고 효孝를 밝히고 친족들을 합치고 돈목敦睦을 이루는 것이다。 | + | 또 멀게 보기를 뜬구름과 같이 하고, 소원히 여기기를 길가는 사람 같이 여겼으며, 막연히 |
- | 멀리 떨어져 살게 되면 잊어버리기 쉽고 빠뜨려 지기 쉬우며 혹은 생략되게 되나니 어찌 효와 돈목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 | 서로 알 수 없던 사람들이 거의 이로 인하여 소홀히 여겨 잊어버리는 데에 이르지 않게 할 |
- | 우리 성씨姓氏는 학사공學士公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온 때로부터 거의 2二천년이나 되어 세대의 등급과 파派의 계통이 증거 될만한 증빙이 없는 한탄을 면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이는 족보가 전해지지 않은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우리 선조인 금계錦溪선생이 처음으로 족보 초단草單을 수집하고、 해월海月선생과 남당공南塘公 역시 각각 꾸민 바가 있었으나 모두 완성을 보지 못하였는데、 나의 고조부인 산남山南 오류梧柳 형제분들께서 여러 구본舊本을 근거로 하여 널리 상고하고 상세히 그 틀린 바를 정정訂正하고 그 생략된 것을 보충하여 검교檢校、 평리評理、 대광大匡공이 차례대로 형제 3三파가 됨을 밝히고、 그 외 여러 누락된 파가 증거 될만한 적籍이 있는 것은 부록附錄으로 남겨두어 훗날을 기다리게 하고、 합하여 한 부一部로 묶어 비로소 간행하니 이것이 바로 경인庚寅(1770)년 본本인 대동보大同譜이다。 | + | 지어다. 우리 족보를 보는 자들은 유연하게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기고, 흡연하게 |
- | 그 후 80八十년이 지난 경술庚戌년(1850)에 우리 아버지가 이어서 족보를 닦고、 또 계옥공파啓沃公派와 금오金吾공이 이하 | + | 서로 두터이 돈목하는 기풍을 일으켜 가문의 운이 크게 좋아 돌아오는 것이 여기에서 |
- | 대개 옛날에 빠졌던 것이 이제 존속되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다만 처음에 합했던 것을 다시 갈라서 파보派譜로 삼았으니、 이는 우리 아버지가 남기신 한恨이었다。 | + | 시작될 것이니 어찌 다행이 아니겠는가? |
- | 종중宗中의 의논이 이것으로 연유하여 폐기되지 않아서 곤돈困敦 즉 병자丙子년(1876)으로부터 시작하여 멀고 가까운 일가들이 모두 같게되었다고 하였다。 이에 대부 범린範鱗씨와 재종숙再從叔 현주顯周씨와 평해 종친 정瀞씨가 그 일을 주간하여 유사有司를 정하고 족보에 실을 단자單子를 모아서 공사를 행할 장소를 금양錦陽에다 설치하고 초간初刊、 중간重刊을 모두 여기에서 간행하였으며、 이어서 기적紀蹟을 모두 옛 계획대로 말미암아 구보舊譜 부록附錄에 있던 파派를 원보原譜에 올려서 계통을 이었으니、 이는 선대의 교훈을 따른 것이다。 | + | \_지난 날 태평성세에 먼저 여러 어른들의 현명함과 효도함이 몇 대를 거치고 또 몇 대를 |
- | 다시 새로 들어온 사람이 있으면 부록附錄의 보책에 두었으니 이는 후일을 기다려 뒷사람의 일로 맡긴다는 뜻이다。 | + | 쌓아 왔어도 오히려 그 어려움을 한탄했거늘, 하물며 오늘날의 기세와 운수로서 능히 길지 |
- | 옛날에는 범례가 있었는데 이제는 별도로 파를 갈랐다가 다시 합쳤다。 제일 먼저 도유屠維(기묘년 1879)에 시작하여 상장上章(경진년 1880)에 넘어와서 마쳤으니 모두 아홉 권이 되었다。 | + | 않은 기간에 이것을 이루었으니, 누구의 공로인가? |
- | 아! 슬프도다。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학사공學士公의 자손들이 마땅히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을 것이나 상대上代의 문헌이 불행하게도 증거를 댈 수가 없으니、 어찌 할 수가 없는 일이구나。 남아있는 각 파가 여러 도에 흩어져 거처하는 사람들이 또 불행하게도 모두 쇠잔하여 서로 친근히 지낼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단절되었던 자를 이어주고 누락된 자를 거두고 갈라져 있던 자를 합하여 완전한 족보를 만들었으니、 백 대가 하나의 계통으로 되고 천리나 되게 멀리 사는 사람들이 한 마을에 사는 것과 같이 되었다。 종친 간에 가볍게 보고 또 멀게 보기를 뜬구름과 같이 하고 소원히 여기기를 길가는 사람 같이 여겼으며、 막연히 서로 알 수 없던 사람들이 거의 이로 인하여 소홀히 여겨 잊어버리는 데에 이르지 않게 할지어다。 우리 족보를 보는 자들은 유연하게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기고、 흡연하게 서로 두터이 돈목하는 기풍을 일으켜 가문의 운이 크게 좋아 돌아오는 것이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니 어찌 다행이 아니겠는가? | + | 우리 후인들에게 남겨 줌에서 계승하여 이르게 했다는 것을 또한 여기에서 볼 수가 있다.\\ |
- | 지난날 태평성세에 먼저 여러 어른들의 현명함과 효도함이 몇 대를 거치고 또 몇 대를 쌓아 왔어도 오히려 그 어려움을 한탄했거늘、 하물며 오늘날의 기세와 운수로서 능히 길지않은 기간에 이것을 이루었으니、 누구의 공로인가? | + | \_시경에 이르기를,「이제 그 덕을 닦아서 너의 조상을 더럽히지 말라」고 한 것이 바로 |
- | 시경에 이르기를、 「이제 그 덕을 닦아서 너의 조상을 더럽히지 말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을 이른 말일 것이다。 여러 종친들이 내가 금계錦溪공의 종손宗孫으로 이 족보 역사役事에 참여하여 들은 것이 있다는 이유로 참람되고 지나친 이름을 개의치 아니하고 가만히 한 마디 말을 첨부하여 우리 아버지의 글 뒤에다 이어 놓으라고 하니、 감히 조술하는 바는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나、 오히려 더럽힐까 두렵기만 하다。 이미 이렇게 종친들에게 말씀을 드리고 또한 이것으로 후대의 사랑스런 후손들에게 권면하는 바이다。 | + | 이것을 이른 말일 것이다. 여러 종친들이 내가 금계(錦溪)공의 종손(宗孫)으로 이 족보 |
- | 경진庚辰년(1880) 가을 9九월 후손 우진宇鎭은 삼가 서문을 짓는다。 | + | 역사(役事)에 참여하여 들은 것이 있다는 이유로 참람되고 지나친 이름을 개의치 아니 |
+ | 하고 가만히 한 마디 말을 첨부하여 우리 아버지의 글 뒤에다 이어 놓으라고 하니, 감히 | ||
+ | 조술하는 바는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나, 오히려 더럽힐까 두렵기만 하다. 이미 이렇게 | ||
+ | 종친들에게 말씀을 드리고 또한 이것으로 후대의 사랑스런 후손들에게 권면하는 바이다.\\ | ||
+ | \_\_경진(庚辰)년(1880(一八八〇)) 가을 9(九)월 후손 우진(宇鎭)은 삼가 서문을 짓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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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08.1747624014.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9 12:06 저자 121.166.63.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