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a-016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양쪽 이전 판이전 판
다음 판
이전 판
a-016 [2025/05/19 20:26] ssio2a-016 [2025/05/28 07:23] (현재) ssio2
줄 1: 줄 1:
 ===임인대동보서(壬寅大同譜序) (1902년)=== ===임인대동보서(壬寅大同譜序) (1902년)===
 +<WRAP 35.5em justify><hidden \_한문 원문 보기> 
 +<typo ff:'한양해서'>
 \_壬寅大同譜序\\ \_壬寅大同譜序\\
-僑基川與錦溪先生嗣孫黃斯文宇鎭氏接鄰蓋因通家而誼尤篤也今夏黃氏設譜所於錦陽精舍日與諸友乘閒一訪則丁乙家剞劂氏方齊會而致力焉適坐於堂見亭下一松圍大而不知幾抱幹直而不知幾尋偃蹇如虯龍蒼鬱如姻雲其土厚而根深根深而葉茂故也仍感人之氏族亦類是而心會焉黃氏之譜役幾訖宇鎭氏與其三從叔鶴周族人友英托以一言弁之友英卽海月先生之後也念世契之重不敢辭然旣不能於言且世多有譜族辭則吾無另語而終歸蹈襲遂以向之有感於亭松者取譬而告之歟休哉黃氏之族也學士公諱洛自中國來箕城之越松此亭之松始托根於越松歟其後或著代不直兄亡而弟及雖古昔不易之典而猶爲人家之不幸也則抑類於稚松之困於蓬雚歟金吾公諱溫仁仍爲諸派之鼻祖此松之挺幹而始大者也閱數世有檢校諱璡評理諱瑞大匡諱 +僑基川與錦溪先生嗣孫黃斯文宇鎭氏接鄰蓋因通家而誼尤篤也今夏黃氏設譜 
-王庸 +所於錦陽精舍日與諸友乘閒一訪則丁乙家剞劂氏方齊會而致力焉適坐於堂見 
-始支分而派別此松之枝幹漸茂者也司藝諱謹以直節名判書諱有定以淸德著正言諱以淸白錄府尹諱鉉錦溪諱俊良大海諱應淸海月諱汝一諸先生俱以道德文章顯一世而錦溪卽溪門之高弟也則此松之偃蹇如虯龍者乎牧使諱原老襄武諱希碩監察諱季夏繕工正諱震孫持平諱允元正郞諱允亨諸君子俱以科甲宦業顯屢世而其後圭組多不盡擧則此松之蒼鬱如姻雲者乎於乎祖先之積德累仁類松之土厚而根深也子孫之孝友敦睦類松之培殖而滋養也程子曰修譜系立宗法以管攝天下人心蘇氏曰觀吾譜者孝悌之心油然而生譜烏可已也遹追乎祖先之積德累仁允勉乎後承之孝友敦睦則異日之繁衍昌大奚啻如亭松之閱千百歲而不改益茂者乎始譜與重刊顚末俱在黃氏譜牒今不更贅而以取譬一轉語爲黃氏頌之盍勉之哉 +亭下一松圍大而不知幾抱幹直而不知幾尋偃蹇如虯龍蒼鬱如姻雲其土厚而根 
-    歲在壬寅仲秋上澣眞城李中麟謹撰 +深根深而葉茂故也仍感人之氏族亦類是而心會焉黃氏之譜役幾訖宇鎭氏與其三 
- +從叔鶴周族人友英托以一言弁之友英卽海月先生之後也念世契之重不敢辭然 
-(번역문) +旣不能於言且世多有譜族辭則吾無另語而終歸蹈襲遂以向之有感於亭松者取 
-  내가 풍기에서 금계錦溪선생의 종손宗孫인 선비 우진宇鎭씨와 인접해 살면서 대개 서로 세의世誼가 있어 친하게 터놓고 사는 사이인지라 우의가 더욱 돈독했다 +譬而告之<fc #ff0000>猗</fc>歟休哉黃氏之族也學士公諱洛自中國來箕城之越松此亭之松始托根 
-  금년 여름에 황씨黃氏가 금양정사錦陽精舍에 보소譜所를 설치하였음으로 어느 날 친구 여러 명과 함께 한가로움을 틈타 한 번 가보았다。 목판을 판각하는 기술공들이 마침 함께 모여 힘을 기울여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마침 그 정자 마루에 앉아 정자 아래 소나무 한 그루를 보고 있었는데 나무 둘레가 커서 몇 아름이나 되는지 알지 못하겠고、 곧아서 몇 길이나 되는지도 알 수 없고、 또 가지가 높이 솟고 굽은 것이 마치 용龍이 춤추는 모양 같고 푸르고 울창하기가 연기와 구름이 뭉게 오르는 듯하였다 +於越松歟其後或著代不直兄亡而弟及雖古昔不易之典而猶爲人家之不幸也則抑 
-  대개 그 땅이 비옥하여 뿌리가 깊게 뻗었고 잎이 무성한 까닭이리라。 이를 보고 사람의 씨족도 역시 이와 같구나 하는 감회를 느꼈다 +類於稚松之困於蓬雚歟金吾公諱溫仁仍爲諸派之鼻祖此松之挺幹而始大者也閱 
-  황씨의 족보 닦는 역사役事가 거의 마침에 우진씨와 그의 삼종숙三從叔인 학주鶴周씨와 족친인 우영友英씨가 나에게 서문序文 한마디를 쓰라고 부탁하였다。 우영友英은 즉 해월海月선생의 후손이다。 우리 집과 대대로 사겨온 세의世誼가 두터웠음을 생각하니 감히 사양할 수가 없다。 그러나 문장에 능치 못하고 또 세대마다 많이 족보의 서문들이 있을 것인즉 내가 별다르게 할 말이 없겠고 마침내는 다른 서문들에 답습하는데 귀결되고 말 것이니 지난날의 정자 소나무에서 느낀 바를 비유하여 말하고자 한다 +數世有檢校諱璡評理諱瑞大匡諱𤨭始支分而派別此松之枝幹漸茂者也司藝諱謹 
-  아름답도다! 황씨의 족벌族閥이여! +以直節名判書諱有定以淸德著正言諱以淸白錄府尹諱鉉錦溪諱俊良大海諱應 
-  학사공 휘諱 황낙黃洛은 중국에서 평해의 월송越松에 왔으니 이 정자의 소나무도 (풍기에 있는) 저 월송에 뿌리를 의탁해 두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淸海月諱汝一諸先生俱以道德文章顯一世而錦溪卽溪門之高弟也則此松之偃蹇 
-  그 후 대수代數가 바르게 나타나지 않아 형이 없어지고 동생이 그 자리를 차지함은 비록 옛날에도 바꿀 수 없는 법이었으니 이는 어느 집이고 가문들의 불행이다。 、 생각건대 마치 어린 소나무가 쑥대밭에서 곤궁을 당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구나。 금오공金吾公 휘諱 온인溫仁은 여러 파派의 시조가 되니 이 소나무도 줄기가 쭉 뻗어 처음부터 크게 된 것이리라。 몇 대를 지나 검교檢校공 휘諱 진璡、 평리評理공 휘 서瑞、 대광大匡공 휘 용 +如虯龍者乎牧使諱原老襄武諱希碩監察諱季夏繕工正諱震孫持平諱允元正郞諱 
-王庸 +允亨諸君子俱以科甲宦業顯屢世而其後圭組多不盡擧則此松之蒼鬱如姻雲者乎 
-에서 비로소 파가 나누어졌으니 이 소나무의 가지가 생겨 점차 무성하게 되었구나 +於乎祖先之積德累仁類松之土厚而根深也子孫之孝友敦睦類松之培殖而滋養也 
-  사예司藝 휘 근瑾이 강직한 절개로 이름이 났고、 판서判書 휘 유정有定이 맑은 덕德으로 들어 났고、 정언正言을 지낸 휘 정玎은 청백리淸白史에 기록되었고、 부윤府尹 휘 현鉉과 금계錦溪 휘 준량俊良과 대해大海 휘 응청應淸과 해월海月 휘 여일汝一 등 여러 선생들이 갖추어 모두 도덕 문장이 한 세대에 두드러졌다 +程子曰修譜系立宗法以管攝天下人心蘇氏曰觀吾譜者孝悌之心油然而生譜烏可 
-  금계는 즉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우뚝한 제자였으니 이는 마치 이 소나무가 우뚝 서고 힘차서 용이 춤을 추는 것 같음과 비유할 수 있지 않는가 +已也遹追乎祖先之積德累仁允勉乎後承之孝友敦睦則異日之繁衍昌大奚啻如亭 
-  목사牧使 휘諱 원로原老와 양무襄武 휘 희석希碩과 감찰監察 휘 계하季夏 선공정繕工正 휘 진손震孫、 지평持平 휘 윤원允元과 정랑正郞 휘 윤형允亨 등 여러 군자들 모두가 과거科擧 갑과甲科에 올라 벼슬을 지내고 업적이 여러 대代에 드러났으며 그 후 벼슬한 이들이 부지기수였으니 이는 이 소나무의 울창함과 같지 않은가。 아! 선조의 덕德을 쌓고 인仁을 쌓았음은 마치 소나무가 흙이 비옥하여 뿌리가 깊은 것 같지 않겠는가? 자손들의 효도와 우애가 도탑고 친목함은 마치 소나무가 북돋움을 받아 좋은 영양을 취하고 있는 것과 같지 않은가?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족보세계族譜世系를 닦고 종중의 법을 세워서 천하의 인심을 섭렵한다고 했고、 소蘇씨는 말하기를 우리 족보를 보는 이는 효제孝悌의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고 했으니 족보族譜를 어찌 그만 둘 수 있겠는가。 선조들의 쌓은 덕德과 인仁을 이어받아 뒤를 이을 후손들에게 효도와 우애、 그리고 도타운 친목정신을 권면한다면 참으로 훗날에 번영이 창대昌大하리니 어찌 정자의 소나무가 천백년이 지나도록 더욱 무성하는 것과 비교될 뿐이겠는가 족보 초간본 두 번째 발간의 시종始終내역은 황씨 보첩譜牒에 다 갖추어 있으므로 이제 다시 더 군더더기 말은 필요가 없을 터이니 다만 비유를 들어 황씨를 칭송하며 권면하는 바이다 +松之閱千百歲而不改益茂者乎始譜與重刊顚末俱在黃氏譜牒今不更贅而以取譬 
-    때는 임인(1902)년 8八월 상순 +一轉語爲黃氏頌之盍勉之哉\\ 
-    진성眞城 이중린李中麟 이중린李中麟: 1838 ~ 1917. 1. 20.  +\_\_歲在壬寅仲秋上澣眞城李中麟謹撰 
-     경상북도 안동安東 출신으로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국권이 위태로워지자 1895년 음력 12월 이만도李晩燾를 의병장으로 하는 선성의진宣城義陣에 가담하였다. 부장副將의 직책을 맡아 활동하다가 1896년 2월에 의진이 해산되자 자신의 토지를 팔아 청량산을 근거지로 의병을 규합하고 의진을 재정비하였다.  +</typo> 
-     이중린은 김도현을 중군으로 삼고 7읍 연합의병진을 구성하여 태봉에서 일본군을 맞아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다. 같은 해 4월 이인화李仁和에게 의진의 지휘권을 넘기고 물러났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두산백과) +</hidden> 
-은 삼가 짓는다+\\ 
 +\_임인대동보서\\ 
 +\_내가 풍기에서 금계(錦溪)선생의 종손(宗孫)인 선비 우진(宇鎭)씨와 인접해 살면서 대개 서로 세의(世誼)가 있어 친하게 터놓고 사는 사이 인지라 우의가 더욱 돈독했다.\\ 
 +\_금년 여름에 황씨(黃氏)가 금양정사(錦陽精舍)에 보소(譜所)를 설치하였음으로 어느 날 친구 여러 명과 함께 한가로움을 틈타 한 번 가보았다목판을 판각하는 기술공들이 마침 함께 모여 힘을 기울여 일을 하고 있었다나는 그때 마침 그 정자 마루에 앉아 정자 아래 소나무 한 그루를 보고 있었는데 나무 둘레가 커서 몇 아름이나 되는지 알지 못하겠고곧아서 몇 길이나 되는지도 알 수 없고또 가지가 높이 솟고 굽은 것이 마치 용()이 춤추는 모양 같고 푸르고 울창하기가 연기와 구름이 뭉게 오르는 듯하였다.\\ 
 +\_대개 그 땅이 비옥하여 뿌리가 깊게 뻗었고 잎이 무성한 까닭이리라이를 보고 사람의 씨족도 역시 이와 같구나 하는 감회를 느꼈다.\\ 
 +\_황씨의 족보 닦는 역사(役事)가 거의 마침에 우진씨와 그의 삼종숙(三從叔)인 학주(鶴周)씨와 족친인 우영(友英)씨가 나에게 서문(序文한마디를 쓰라고 부탁하였다우영(友英)은 즉 해월(海月)선생의 후손이다우리 집과 대대로 사겨온 세의(世誼)가 두터웠음을 생각하니 감히 사양할 수가 없다그러나 문장에 능치 못하고 또 세대마다 많이 족보의 서문들이 있을 것인즉 내가 별다르게 할 말이 없겠고 마침내는 다른 서문들에 답습하는데 귀결되고 말 것이니 지난날의 정자 소나무에서 느낀 바를 비유하여 말하고자 한다.\\ 
 +\_아름답도다! 황씨의 족벌(族閥)이여!\\ 
 +\_학사공 휘(황낙(黃洛)은 중국에서 평해의 월송(越松)에 왔으니 이 정자의 소나무도 (풍기에 있는) 저 월송에 뿌리를 의탁해 두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_그 후 대수(代數)가 바르게 나타나지 않아 형이 없어지고 동생이 그 자리를 차지함은 비록 옛날에도 바꿀 수 없는 법이었으니 이는 어느 집이고 가문들의 불행이다생각건대 마치 어린 소나무가 쑥대밭에서 곤궁을 당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구나금오공(金吾公(온인(溫仁)은 여러 파()의 시조가 되니 이 소나무도 줄기가 쭉 뻗어 처음부터 크게 된 것이리라몇 대를 지나 검교(檢校)공 휘((), 평리(評理)공 휘 서(), 대광(大匡)공 휘 용 
 +(𤨭)에서 비로소 파가 나누어졌으니 이 소나무의 가지가 생겨 점차 무성하게 되었구나.\\ 
 +\_사예(司藝휘 근()이 강직한 절개로 이름이 났고판서(判書휘 유정(有定)이 맑은 덕()으로 들어 났고정언(正言)을 지낸 휘 정()은 청백리(淸白史)에 기록되었고부윤(府尹휘 현()과 금계(錦溪휘 준량(俊良)과 대해(大海휘 응청(應淸)과 해월(海月휘 여일(汝一등 여러 선생들이 갖추어 모두 도덕 문장이 한 세대에 두드러졌다.\\ 
 +\_금계는 즉 퇴계(退溪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우뚝한 제자였으니 이는 마치 이 소나무가 우뚝 서고 힘차서 용이 춤을 추는 것 같음과 비유할 수 있지 않는가.\\ 
 +\_목사(牧使(원로(原老)와 양무(襄武휘 희석(希碩)과 감찰(監察휘 계하(季夏선공정(繕工正휘 진손(震孫), 지평(持平휘 윤원(允元)과 정랑(正郞휘 윤형(允亨등 여러 군자들 모두가 과거(科擧갑과(甲科)에 올라 벼슬을 지내고 업적이 여러 대()에 드러났으며 그 후 벼슬한 이들이 부지기수였으니 이는 이 소나무의 울창함과 같지 않은가아! 선조의 덕()을 쌓고 인()을 쌓았음은 마치 소나무가 흙이 비옥하여 뿌리가 깊은 것 같지 않겠는가? 자손들의 효도와 우애가 도탑고 친목함은 마치 소나무가 북돋움을 받아 좋은 영양을 취하고 있는 것과 같지 않은가?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족보세계(族譜世系)를 닦고 종중의 법을 세워서 천하의 인심을 섭렵한다고 했고()씨는 말하기를 우리 족보를 보는 이는 효제(孝悌)의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고 했으니 족보(族譜)를 어찌 그만 둘 수 있겠는가선조들의 쌓은 덕()과 인()을 이어받아 뒤를 이을 후손들에게 효도와 우애그리고 도타운 친목정신을 권면한다면 참으로 훗날에 번영이 창대(昌大)하리니 어찌 정자의 소나무가 천백년이 지나도록 더욱 무성하는 것과 비교될 뿐이겠는가족보 초간본 두 번째 발간의 시종(始終)내역은 황씨 보첩(譜牒)에 다 갖추어 있으므로 이제 다시 더 군더더기 말은 필요가 없을 터이니 다만 비유를 들어 황씨를 칭송하며 권면하는 바이다.\\ 
 +\_\_때는 임인(1902)년 8()월 상순 
 +진성(眞城이중린(李中麟)((이중린(李中麟): 1838 ~ 1917. 1. 20. \\ 경상북도 안동(安東출신으로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국권이 위태로워지자 1895년 음력 12월 이만도(李晩燾)를 의병장으로 하는 선성의진(宣城義陣)에 가담하였다. 부장(副將)의 직책을 맡아 활동하다가 1896년 2월에 의진이 해산되자 자신의 토지를 팔아 청량산을 근거지로 의병을 규합하고 의진을 재정비하였다. \\ 이중린은 김도현을 중군으로 삼고 7읍 연합의병진을 구성하여 태봉에서 일본군을 맞아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다. 같은 해 4월 이인화(李仁和)에게 의진의 지휘권을 넘기고 물러났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두산백과) ))은 삼가 짓는다
 +</WRAP>
  
a-016.1747654002.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9 20:26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