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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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서유정제단비기사(判書有定祭壇碑記事)=== | ===판서유정제단비기사(判書有定祭壇碑記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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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ypo ff:'한양해서'> | + | <typo ff:ChosunGS; fs:1.2em; lh: |
+ | <typo wf='ChosunGS'> | ||
\_判書有定祭壇碑記事\\ | \_判書有定祭壇碑記事\\ | ||
嗚呼此故工曹判書黃公諱有定祭壇之碑也壇之上有一封大墳墳上數許步有一小墳 | 嗚呼此故工曹判書黃公諱有定祭壇之碑也壇之上有一封大墳墳上數許步有一小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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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一部世稱米囷爲詩文有唐人風誦公之族孫海月公汝一拾取舊聞略有記述然公 | 論語一部世稱米囷爲詩文有唐人風誦公之族孫海月公汝一拾取舊聞略有記述然公 | ||
當勝國之季身登第科官至典書事業文章必有可垂於後者而累經兵燹家乘無餘登第 | 當勝國之季身登第科官至典書事業文章必有可垂於後者而累經兵燹家乘無餘登第 | ||
- | 之在麗季\_國初尚未之的而遺文之傳於世者兄有七言詩一絕(詩見攷證編)嗚呼惜 | + | 之在麗季\_國初尙未之的而遺文之傳於世者兄有七言詩一絶(詩見攷證編)嗚呼惜 |
- | 哉公始居榮川子孫移家豊基公既顯仕\_國朝長子銓以學行薦爲持平次子鉉文科官 | + | 哉公始居榮川子孫移家豊基公旣顯仕\_國朝長子銓以學行薦爲持平次子鉉文科官 |
祭酒季子誕生員官訓導孫曾以下科宦至十餘人錦溪先生黃公俊良公之姓孫吏曹判 | 祭酒季子誕生員官訓導孫曾以下科宦至十餘人錦溪先生黃公俊良公之姓孫吏曹判 | ||
- | 書金公淡公之宅相也内外雲仍列居豊榮二郡而世代已邈封塋莫的豈不深可痛哉九 | + | 書金公淡公之宅相也內外雲仍列居豊榮二郡而世代已邈封塋莫的豈不深可痛哉九 |
世孫寒泉公中衍爲公作先塋圖如上所云而迺曰故老相傳如此又曰未能的指墓所今 | 世孫寒泉公中衍爲公作先塋圖如上所云而迺曰故老相傳如此又曰未能的指墓所今 | ||
去寒泉之世又近二百年其將敦從而決其疑信也今\_上八年甲辰閏三月後孫諸人因 | 去寒泉之世又近二百年其將敦從而決其疑信也今\_上八年甲辰閏三月後孫諸人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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已苟盡其如在之誠則如水在地之靈庶有以狗辜在上港惟此墳之爲吾祖墓雖未驗其 | 已苟盡其如在之誠則如水在地之靈庶有以狗辜在上港惟此墳之爲吾祖墓雖未驗其 | ||
端的而考之古籍兄在此山之中則設壇供虔何疑於義起遂於階下築壇朕奠配以貞夫 | 端的而考之古籍兄在此山之中則設壇供虔何疑於義起遂於階下築壇朕奠配以貞夫 | ||
- | 人奉化鄭氏蟄持平公于其下而祀之諸孫序立將事以禮既畢又相謂曰從令以往歲一 | + | 人奉化鄭氏蟄持平公于其下而祀之諸孫序立將事以禮旣畢又相謂曰從令以往歲一 |
奠祀在情禮宜然不可不立石以記其由越十有五年己未夏伐石將鐫屬若鍊識其陰若 | 奠祀在情禮宜然不可不立石以記其由越十有五年己未夏伐石將鐫屬若鍊識其陰若 | ||
鍊以吏書金公之裔亦嘗與聞於掘驗築壇之議今於是役何敢以不文辭遂略書顚末如 | 鍊以吏書金公之裔亦嘗與聞於掘驗築壇之議今於是役何敢以不文辭遂略書顚末如 | ||
右云\\ | 右云\\ | ||
\_\_外裔孫左副承旨宣城金若鍊謹撰 | \_\_外裔孫左副承旨宣城金若鍊謹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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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판서 유정 제단비 기사\\ | \_판서 유정 제단비 기사\\ | ||
\_아! 이는 작고한 공조판서(工曹判書) 황공 휘 유정(有定)의 제단비(祭壇碑)이다.\\ | \_아! 이는 작고한 공조판서(工曹判書) 황공 휘 유정(有定)의 제단비(祭壇碑)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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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 공이 이미 조선왕조에서 뚜렷한 벼슬을 했고 맏아들 전(銓)이 학행이 뛰어나 천거되어 지평이 되었다. 둘째 아들 현(鉉)은 문과에 올라 좨주(祭酒)였고 막내 아들 연(鋏)은 | 살았다. 공이 이미 조선왕조에서 뚜렷한 벼슬을 했고 맏아들 전(銓)이 학행이 뛰어나 천거되어 지평이 되었다. 둘째 아들 현(鉉)은 문과에 올라 좨주(祭酒)였고 막내 아들 연(鋏)은 | ||
생원에 합격 관이 훈도(訓導)였다. 손자와 증손 이하로 과거에 오르고 벼슬한 이가 십여명이나 된다. 금계선생(錦溪先生) 황공 주량(俊良)은 공의 자손이다. 이조 판서 김공 담(淡)은 | 생원에 합격 관이 훈도(訓導)였다. 손자와 증손 이하로 과거에 오르고 벼슬한 이가 십여명이나 된다. 금계선생(錦溪先生) 황공 주량(俊良)은 공의 자손이다. 이조 판서 김공 담(淡)은 | ||
- | 공의 외손이다. 내외(内外)후손들이 풍기와 영주 두 고을에 퍼져 살고 있는데 세대가 이미 | + | 공의 외손이다. 내외(內外)후손들이 풍기와 영주 두 고을에 퍼져 살고 있는데 세대가 이미 |
오래 되어서 무덤을 명확하게 알 수 없으니 어찌 깊이 통탄하지 않겠는가!\\ | 오래 되어서 무덤을 명확하게 알 수 없으니 어찌 깊이 통탄하지 않겠는가!\\ | ||
\_공의 9(九)세손 한천(寒泉)공 중연(中衍)이 공을 위해서 선영도(先塋圖 : 선조들의 무덤 위치도)를 만들기를 앞에서 말한 대로 만들었는데 옛날 노인들이 서로 전하기를 이와 같다고 | \_공의 9(九)세손 한천(寒泉)공 중연(中衍)이 공을 위해서 선영도(先塋圖 : 선조들의 무덤 위치도)를 만들기를 앞에서 말한 대로 만들었는데 옛날 노인들이 서로 전하기를 이와 같다고 | ||
줄 79: | 줄 82: | ||
\_드디어 간략하게 일의 시종(始終)을 이와 같이 쓰는 바이다.\\ | \_드디어 간략하게 일의 시종(始終)을 이와 같이 쓰는 바이다.\\ | ||
\_\_외 후손 좌부승지 선성(宣城) 김약연(金若鍊) 삼가 짓다. | \_\_외 후손 좌부승지 선성(宣城) 김약연(金若鍊) 삼가 짓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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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16.1747798895.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1 12:41 저자 ssio2